[불교건축 이야기]
산문 시스템, 정화와 환영의 건축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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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화 / 2021 년 5 월 [통권 제97호] / / 작성일21-05-04 13:56 / 조회5,608회 / 댓글0건본문
우리나라 사찰은 불교를 수용한 이웃 나라에 비해 복잡한 산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같은 문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사찰마다 모두 똑같지도 않다. 작은 사찰에는 산문을 많이 세우지 않지만,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사찰에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포함한 풀세트의 산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것을 보면 사찰의 형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유독 발달한 산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산山은 불교적인 세계관의 중심
사찰 자체를 산문이라고도 하지만, 사찰에 세운 문을 산문이라고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불교는 산과 관련이 깊다. 아마도 선禪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수행처로 산이 선호되었을 것이다.
불교가 성장하던 시기 사람들은 부처는 수미산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산을 중심으로 위에는 불국토, 아래에는 사바세계(현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불교가 전파되면서도 이러한 공간적 인식은 그대로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불교의 시작은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건축 또한 동아시아가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다. 그렇다고 불교건축이 동아시아에서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 특히 산문시스템이 그렇다.
초기 사찰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궁궐인근에 들어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세력도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부응한 불교는 이미 자리 잡은 삼론학이나 화엄학과 같은 성격의 불교가 아니라 막 전파되기 시작한 선문禪門들이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수행법상 산을 선호하였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수행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작은 사찰도 짓기 시작하였다. 물론 선문만 산을 선호했다는 것은 아니다. 교학적 성격의 사찰들도 역시 면학을 위해서는 산속에 사찰 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풍부해진 산문 시스템
사찰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무렵 규모를 갖춘 사찰들은 어디에 위치하든 사찰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표식을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당간이다. 하지만 당간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고려 말로 추정되는 회암사나 통도사의 당간이 마지막으로 보인다.
사진 1. 불교의 세계관.
공교로운 일인지 가장 이른 일주문이 기록상 1337년 통도사에서 확인되며, 남아 있는 것으로는 15세기 후반인 해인사 일주문이 있다. 이처럼 가장 늦은 당간과 가장 이른 일주문의 시기가 비슷한 점과 당간과 일주문의 역할이 비슷한 것을 보면 둘 사이에 ‘바통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진2. 통도사 당간
이외에도 천왕문의 등장은 산문시스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변화이다. 석탑이나 석등, 사리기 등을 보면 사천왕은 원래 부처님의 최측근으로 지근거리에서 불법의 네 방위를 수호하는 것이지만, 천왕문은 사찰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는 것이라 원래의 임무와는 크게 다른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 뭔가 그만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사진 3. 해인사 일주문.
사진 4. 보림사 일주문.
사찰에서 산문이란 단순한 출입만이 아니라 ‘필터링’의 의미가 있다. 필터링이란 곧 경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문을 통과하면 정화淨化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필터링의 효과는 모든 문이 갖는 기능인데, 이런 기능의 문을 중첩에서 늘어놓는다는 의미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깨끗해진다는 것이며, 더불어 실제 이동하는 거리에서 느끼는 거리보다 좀 더 많이 이동한 것처럼 느끼도록 공간을 분절해 놓는 것이다. 이렇게 문을 통해 공간을 분절하는 의도는 깊이감과 신성함을 효과적으로 느끼도록 하는 건축적 장치인 것이다.
각 문의 역할
일주문
일주문은 실제 기둥이 하나가 아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일주一柱란 의미는 당간의 상징성을 유지하면서 내부공간을 갖지 않아야 경계를 구분 짓는 의도가 좀 더 분명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형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보림사의 경우 4주1칸이기 때문에 일주문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일주문은 두 개(2주 1칸) 또는 네 개(4주 3칸)의 기둥을 나란히 배치하는 형식이다. 게다가 주련까지 ‘入此門內 莫存知解’라고 달고 있다면 일주문을 세운 뜻은 분명하게 전해지는 것이다.
사진 5. 쌍계사 기사문수와 나라연금강.
사진 6. 분황사탑의 인왕.
사진 7. 법주사 천왕문.
금강문(해탈문)
이 문에는 문수와 보현보살이 각각 동자의 모습으로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으며, 금강역사도 같이 봉안되어 있다. 문에 금강역사가 있다는 것은 불법을 수호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문의 기능과 어울리지만 문수동자와 보현동자도 있다는 것은 이 문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자극한다.
사진 8. 범음산보집의 12단 배설지도에서 정문의 위치.
금강역사가 문을 지키는 전통은 분황사탑에서도 표현되어 있으며, 12세기 개성 안화사의 신호문神護門도 천왕문이라기보다는 금강역사가 있는 금강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사례로는 15세기 후반의 도갑사의 해탈문이며, 임진왜란 직후 중창되는 대형사찰에서는 대부분 금강문이 들어서 있다.
당시 금강문을 세운 뜻은 물리치는 문만을 세운 것이 아니라 보살을 동자의 모습으로 세워 환영하거나 유도하는 의미로 세웠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 정확한 의미를 현재 알 수는 없다.
천왕문
원래 부처님의 사방을 옹위하는 존재였지만 사찰의 산문에 들어섰다는 것은 큰 변화이다. 물론 문 안에서 동서남북의 방위와 지물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부처님의 곁을 지키다가 길목을 지키는 변화는 그만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힘들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다.
사진 9. 일제강점기 봉정사 배치도에 표현된 정문(진여문).
우리나라에서 천왕문이 보편화된 시기는 외세의 침범에 맞선 사찰의 피해를 복구하던 17세기 전반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당시 왜군은 승군으로 활약한 불교를 철저하게 보복하였는데, 이후 전공을 인정받은 불교계는 전국적으로 사찰을 재건하면서 호법의 의미에서 천왕문이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지만 15세기 천왕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16세기에 조성된 사천왕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유행한 시기와는 달리 처음 지어진 시기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천왕문은 언제 왜 지어지기 시작했을까? 의외로 임진왜란이후 천왕문이 전국적으로 퍼진 현상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7세기 말 경주 사천왕사의 문두루비법에서 시작하는 사천왕의 활약은 이후 국난이 잦아지는 시기가 될 때마다 중국이나 한국 모두에게 꼭 필요한 건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거란? 몽고? 홍건적이나 왜구? 이처럼 국난의 시기를 거치며 부처님의 가피를 받고 싶어 했던 시기는 많지만, 그 이후의 변화와 연관 지어 판단을 해 보아야 천왕문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사천왕이 라마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시작시기를 가늠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문正門의 역설
정문의 사전적 의미는 주출입문을 말한다. 사찰에도 정문이 있는데 늘어선 산문 중에 무엇이 정문일까? 당연히 맨 앞의 일주문을 정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가장 안쪽의 문이다.
이는 수륙재가 의식 중에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천도하는 의식이 강조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수륙재는 상·중·하의 삼단을 갖추고 하단에서 무주고혼을 모아 상단으로 나아가 설법을 듣고 해탈하는 구조이다. 이때 절 밖이라고 설정되는 하단은 주로 문루에 차려지기 때문에 사찰로 들어가 부처님 앞에 나서는 설정을 위해서는 하단과 상단사이에 정문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정문이 사찰의 안마당에 세워지는데 봉정사 진여문, 송광사 법왕문, 흥국사 법왕문 등이 그 사례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산문시스템은 유독 발달하였다. 산문의 역학은 필터링도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유인 또는 환영하는 역할도 하며, 의식을 행하는 과정에서는 현실의 산문을 압축하여 정문하나로 표현하는 놀라운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산문시스템은 불교의 우월적 지위를 박탈당한 시대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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