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건축 이야기]
목탑인가 전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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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화 / 2021 년 8 월 [통권 제100호] / / 작성일21-08-04 14:25 / 조회6,740회 / 댓글0건본문
불교건축 이야기 8: 쌍봉사 대웅전
쌍봉사 대웅전(당시 보물 제163호)은 가로·세로가 모두 한 칸이며 층수는 삼층인 건물로, 1984년 4월 2일 기도를 마치고 촛불을 끄지 않은 신도의 실수로 소실되었다. 1986년 바로 복원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복원된 건물이고 문화재가 가진 이전의 진정성은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현재로선 더 이상 문화재가 아니다.
법주사 팔상전
이 건물에 대해서는 탑인지, 전각인지 견해가 일치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대체로 미술사를 전공한 연구자들에 비해 건축역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목탑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아마도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목탑이 희소한 것이어서 목탑이었으면 하는 심정이 크고, 건축형식면으로만 보자면 탑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일본·중국은 우리와 다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쌍봉사 대웅전하면 연상되는 건물이 바로 법주사 팔상전(사진 1)일 것이다. 이 건물은 팔상전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팔상전이란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의 그림으로 장엄한 건물로 다른 사찰에서는 예외 없이 탑이 아닌 전각이다.
법주사 팔상전 사리구 중 탑지.
법주사 팔상전 사리호.
법주사 팔상전이 특별한 것은 1968년 해체수리 과정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면서 팔상전이 중층 전각이 아니라 목탑이라는 사실을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특별하냐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목탑에 전각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사진 2). 중국에는 많은 탑이 있지만 이 가운데 목탑은 불궁사 석가탑이 유일하며 편액은 석가탑이다. 일본도 전각명의 편액이 걸려 있는 사례를 찾을 수 없는데, 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냥 탑이기 때문이다.
사진 2. 중국 불궁사 석가탑(응현목탑).
사진 2. 일본 법륭사 목탑.
공통적인 것은 모두 내부에 불상을 봉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탑은 본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묘탑이며, 처음부터 불상을 부조하거나 봉안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불상을 봉안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같은 탑이라고 봐야하나? 탑이라고 하면 가장 중요한 기준이 사리봉안 여부인데, 쌍봉사 대웅전은 분명 사리장치가 없다. 아마 지금 이 순간 쌍봉사 대웅전이 탑인지 전각인지 묻는다면 불교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하나 같이 “탑이 아니다.”고 말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 글을 다 따라 읽고 난 후 다시 질문을 해 보겠다.
사리신앙에서 경전신앙으로
부처님이 입멸한 후 다비하여 수많은 진신眞身사리를 얻게 되면서 이 사리로 인해 생겨난 것이 불탑이다. 그래서 우리는 “탑”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해서는 “불탑”의 줄임말인 것이다. 불탑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각자의 문화에 맞게 수용되었다.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전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위기를 맞이했는데, 바로 사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신사리를 대신하여 부처님의 말씀이신 경전經典을 탑에 넣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법法사리”이다.
사진 3. 석가탑 출토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사진 4. 개운사 아미타불좌상 복장유물 중 주본周本 『화엄경』.
실제로 부족한 진신사리를 법사리로 점점 대체하게 되면서인지, 시기가 내려올수록 공교롭게도 건축계획상 중심사역에서 탑의 존재감이 작아지고, 조성 빈도 역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대신 다른 방식의 법사리 신앙이 눈에 띄게 되는데, 이중 대표적인 것이 복장에 경전을 넣는 경향이다. 고려시대 불보살상의 복장에도 많은 경전이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으로 각종 복장물을 넣으면서 경전도 함께 넣는 것이다(사진 3·4).
사진 5. 봉은사 판전.
사진 6. 환성사 대웅전 불단 위 경전.
사진 7. 쌍봉사의 항공사진(다음). 대웅전은 중앙에 배치.
그리고 또 다른 방식은 경전을 봉안하는 전각을 짓고 불전佛殿처럼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대장전과 같은 전각을 말한다. 대장전은 경전·경판·윤장대와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법보法寶를 봉안하고 신앙하는 전각인데, 경전 자체를 신앙하는 전형적인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사진 8. 소실 전후 비교. 일제강점기.
이외에도 조선시대가 되면 경함이나 경전을 불단위에 올려놓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이것은 일상적인 의례에서조차 법보신앙이 빠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야외의식과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 도량을 꾸미는 식전행사로 경함을 들고 마당으로 나오는 차례가 있는 것을 보면 ‘경經’자체를 중요한 신앙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진 5·6).
목탑에서 불전으로
법주사 팔상전은 누가 물어도 목탑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쌍봉사 대웅전은 어떨까?
아마도 쌍봉사 대웅전을 외형적으로 본다면 목탑이라고 보는 것이 적확的確한 말이겠지만 역시 사리장치가 없기 때문에 탑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 역시 반박하기 힘들다.
사진 8. 소실 전후 비교. 2016년.
적절한 상승감을 표현한 체감율, 건물의 몸통에 비해 길게 뻗은 깊은 처마, 주불전인 극락전과 일치하는 배치축, 사면의 방향성이 모두 유효한 정방형의 평면, 탑돌이 가능하도록 안마당 중앙에 배치한 점 등을 보면 이 건물은 분명히 탑이 맞다.
이전의 수리에서 원래 모임지붕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복원은 그렇게 하였지만 소실 당시에는 팔작지붕이었으며, 용마루의 중앙에는 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상륜이 없었다. 이렇듯 쌍봉사 대웅전은 탑이라고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과 탑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탑도 전각도 아니거나 탑이면서 전각이거나
이제 쌍봉사 대웅전(사진 7·8)을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여기서 그치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데, 바로 꼭 필요한 것이 금산사 대장전과의 비교이다(사진 9).
금산사 대장전은 단층으로 정면과 측면이 모두 세 칸인 장방형의 건물이다. 다만, 용마루의 중간에 보주처럼 다듬은 큰 돌을 얹고 있는데 다른 전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장식이다.
금산사의 연혁을 적은 기록에 의하면 대장전은 원래 목탑이었지만 중수를 거치면서 보통의 전각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1943년에 적어 늦은 기록이라 할 수 있지만 앞선 시기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적고 있어, 그 이전의 기록을 참고하면서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단순히 망각에 의해 탑을 전각으로 바꾸었다면 용마루에 상륜을 남겨놓았을까? 당시 기록에는 ‘솥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쇠로 만든 것과 그 위에 불꽃모양의 보주가 놓여 있다.’고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복발과 보주 정도는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돌로 된 보주만 남았다. 이렇게 탑이 보통의 전각으로 변하다보니 위치도 마당 가운데서 한쪽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사진 9. 금산사 대장전. 지붕 위 보주.
이 금산사 대장전의 사례를 통해 목탑이 점차 보통의 전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진신사리 대신 법사리를 봉안하던 탑의 조영 전통은 점차 사라지고 이를 대체하는 다른 무엇인가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에서 간단히 살펴본 대로 점차 다양한 형태로 ‘법보(법사리) 신앙’이 발달하였으며, 더불어 진신사리 신앙 중 일부는 새롭게 등장한 적멸보궁으로 흡수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다시 질문 하면
목탑은 조성하고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공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석탑에 비해 조성빈도가 낮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다 사리신앙의 한계와 법보신앙의 새로운 전개로 인해 조탑造塔 횟수가 줄어들었고, 기존 목탑은 불전화佛殿化 되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법주사 팔상전은 이름만 바뀐 것이고, 쌍봉사 대웅전은 건축형식만 남은 것이고, 금산사 대장전은 의미만 남은 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혹시 글을 읽는 동안 답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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