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심금을 울리는 웅장한 북소리, 법고法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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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2:51 / 조회2,621회 / 댓글0건본문
북 제작 보유자 악기장 윤종국
인간이 처음 출현한 때로부터 글자가 만들어져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하기 바로 전까지의 기간을 선사시대先史時代라 한다. 이 기간은 수백만 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95% 이상을 차지하는 긴 시간을 차지한다. 덥수룩한 머리를 풀어헤친 구석기인들이 자갈돌 망치나 동물 뼈를 사용해서 사냥하는 장면은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원시인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인류의 첫 악기, 북
그들은 사냥한 동물을 통해 고기를 얻었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가죽은 인류 역사 초기부터 인간에게 중요한 생활재로 인간이 가진 연약한 피부를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등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군집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급작스러운 위기 시에 서로 간에 빠른 연락이 필요하게 된다. 나무로 공명통을 만들어 가죽을 입혀 두들기니 모두가 빨리 알아차릴 만큼 웅장하고 큰소리를 냈다. 이렇게 북이 탄생하게 된다.
역사시대에 고저장단高低長短을 갖춘 북은 중요한 의식과 음악에서 사용하게 된다. 특히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법고法鼓는 범종각 사물四物 중의 하나로 아침·저녁 예불 때에 울리게 된다. 법고, 범종, 목어, 운판으로 구성된 사물에서 범종은 천상과 지옥에 있는 중생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법고는 땅 위에 사는 중생을 일깨우기 위해 울린다.
큰 북의 울림소리는 장대하고 먹먹하다. 북에서 시작되는 소리는 끝없이 열린 하늘 천공天空을 휘돌아 우리의 심장은 물론 심금까지 울리게 한다. 날이 밝아 오는 첫새벽에 들려오는 웅장한 법고 소리는 우리의 일상을 일깨워 새날을 시작하게 하고, 해질녁 북소리는 땅 위 중생들의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진다.
북메우기, 고장鼓匠
악기장은 전통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고구려의 벽화 등을 통해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악기 제작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던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이 있어 국가에서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편종編鐘, 편경編磬 등의 유율타악기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어敔·축柷·건고建鼓·응고應鼓·삭고朔鼓 등의 궁중제례악宮中祭禮樂에서 사용하는 악기들을 만들었다. 그중 전통 북 제작하는 기술을 일컬어 ‘북메우기’라 하고, 북을 메우는 장인은 한자로 ‘고장鼓匠’이라 한다. 예전에는 북 만드는 공예기술을 무형문화재에서 북메우기 종목으로 따로 분류하였으나 지금은 악기장으로 통합되었다. 정리하면 우리나라에서 악기장은 북 제작, 현악기, 편종·편경 3가지 분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북은 전통음악의 정악용과 사찰용, 민간용 등으로 나뉘며, 흔히 알려진 사찰의 법고나 농악용 매구북, 판소리의 소리북 외에도 정악의 좌고座鼓, 용고龍鼓, 영고靈鼓, 교방고敎坊鼓 등 14종에 이르고, 민간용으로 소고와 장고 등으로 다양하다.
북메우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울림통 제작과 가죽 무두질 기술이다. 생가죽을 다루는 무두질은 현재 일부만 전하고 있다. 어떤 가죽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북소리도 달라지기에 가죽에 대한 이해는 북악기장에게 중요한 일이다. 소의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서 예전보다 소의 크기가 커져 더 큰 사이즈의 북을 만들 수 있다고 하나 큰 소는 작은 소에 비해 가죽 힘이 약해 소리의 탄력이 덜하다고 한다.
좋은 소리의 북을 얻기 위해서는 섬유질이 단단한 황소 가죽을 사용하는 게 좋고 털의 상태가 힘이 있고 잘 빠지지 않는 게 유리하다고 한다. 흠집이 없는 것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울림통은 통나무의 안쪽을 깎아내는 방법과 여러 개의 나무쪽을 연결하여 둥글게 울림통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이 가운데 나무쪽을 이어붙이는 기술이 손이 많이 가고 난이도가 높다.
울림의 소리를 만드는 윤종국 장인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북 제작 보유자인 윤종국 장인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시작해서 4대째 북 제작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물북은 하지 않고 전통북을 전문으로 제작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북 제작 보유자였던 고故 윤덕진尹德珍 선생으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아 북 메우기 기술을 연마한 지가 40여 년이 되었다.
하나의 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무와 가죽 다루는 것은 기본이고 그림 그려 채색하는 작업까지 모두 능수능란해야 한다. 모든 북에 그림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상징성을 갖는 특별한 북에는 화려한 그림이 곁들여지기 때문에 북의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나무에서부터 가죽 다루기는 물론 그림까지 섭렵해야 한다.
아버지 윤덕진 선생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에 사용된 ‘용고’, 청와대에 전시된 ‘문민고’를 만든 악기장이었다. 윤종국 장인에게 아버지는 다정하기보다는 엄격하고 치밀한 스승이었다. 말보다는 경험과 실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기에 혹독하게 피력하였다고 한다. 특히 북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가죽 다루는 일에는 무척이나 까다롭고 예민하게 교육하였다고 한다.
“무더운 겨울날 가죽 공장에서 부피도 크고 무게도 상당한 소가죽을 가지고 오는 심부름을 한 적이 있어요. 소가죽을 직접 지고 서울행 기차를 타면 일반실은 탈 수가 없었죠. 가죽 비린내가 진동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 화물칸에 옮겨야 했어요.
가죽이 얼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체온으로 가죽을 얼지 않도록 내내 녹여야 했어요. 하지만 냄새나는 가죽을 아무리 이리저리 옮겨가며 안고 있어도 어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부분은 얼룩이 피게 됩니다. 얼었다 녹은 가죽은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어요. 여름 가죽도 마찬가지예요. 7월에는 장마 우기라 습하기 때문에 가죽에 쉽게 곰팡이가 생기고, 8월에는 뜨겁고 쨍쨍한 햇빛이 강해서 가죽이 익습니다. 그래서 겨울과 여름에는 가죽을 들이지 않아요.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가죽은 과감하게 찢어 버리셨어요. 물론 그날의 가죽도 매몰차게 찢어 버리셨답니다. 겨울 가죽을 쓰지 않으실 거면서 일부러 심부름을 보내신거죠. 경험을 통해 가죽 고르는 방법을 알려주신 거예요.”
4대째 이어온 가업이고 지금은 북과 함께하는 삶이 그저 좋은 그이지만 처음부터 북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선친께서 40여 년 전 본격적으로 북을 배우라고 했을 때, 피비린내 나는 소가죽과 씨름하며 북을 메웠던 고된 일을 물려받고 싶지 않아 가출해 버렸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도, 궁금한 일도 많은 혈기 넘치는 20대 청년에겐 너무나도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계속 보아 왔던 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북 만드는 일은 죽은 나무와 죽은 소가죽으로 새롭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일”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곱씹어 보았고 지금까지 매일 보았던 일상의 기물인 북이 아닌 울림의 북을 생각하며 일을 시작하게 된다.
북 만드는 작업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보통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나무틀에 맞춰 한 사람이 소가죽을 당기면 다른 한 사람이 못질을 한다. 기술적으로 능숙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두 사람 간의 협업이 잘 이루어져야 좋은 소리를 지닌 북을 만들 수 있다. 다행히 든든한 형제들이 북 만드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 남다르게 우애가 깊은 형제 사이이긴 하지만 어느 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차남(윤신 악기장 전승교육사)과 막내(윤권 악기장 이수자)가 차례로 합류한다고 하였을 때는 걱정도 많았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만류하였지만 지금은 최고의 파트너로 함께하고 있다.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 우리끼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답니다. 양쪽에서 가죽을 당겨 가며 북소리를 조율하는데 눈빛만 보아도 서로 어디가 부족하고 잘되었는지 알 수 있어요. 이미 못질 한 가죽은 뜯으면 다시는 쓸 수가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이 소리는 아니라고 하면 바로 북을 뜯어 버립니다.”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가죽을 뜯어 버리는 형제의 결기는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 있다.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과 성품을 닮아 가고 있는 그들이 함께 아버지의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로 사찰의 법고法鼓를 만드는데, 윤종국 장인 집안에서 만들어진 법고는 경주 불국사, 양산 통도사, 하동 쌍계사, 인제 백담사, 양평 용문사 등 전국의 사찰에서 그 웅장한 소리로 만날 수 있다. 지름 2m, 폭 2m에 달하는 법고는 만드는 데 꼬박 3개월이 걸린다. 목재소에서 소나무를 구해 말리고, 썰고, 대패로 다듬고, 붙이고, 가죽을 씌우면 1차적인 과정이 끝나고 붓으로 전통 단청 무늬를 입히면서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된다.
완성된 북이 제 소리를 내고 중요한 의식에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하며 제 기능을 하고 있을 때, 범패梵唄에서 음악의 소리로 많은 이들에게 감흥을 줄 때 윤장인의 마음은 뿌듯하다. 바로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죽은 나무와 가죽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윤 장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소나무와 황소의 제2의 삶은 세상에 감동과 감화를 주는 일이다. 그러기에 고되고 힘든 북 만드는 일이지만 윤종국 장인은 하루도 쉼 없이 북을 다듬고 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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