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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화염 속에 태어난 인쇄의 꽃, 금속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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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10:35  /   조회2,18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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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임인호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신라시대 제작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목판본으로 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되었는데, 추정 출간 연대가 751년 이전으로 판명되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이다.

 

불교 경판 조성과 인쇄술

 

고려시대에 제작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은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고, 『직지直指』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목판에 글을 새기는 일은 정밀한 기술을 요한다. 게다가 금속활자는 목제활자보다 제작 과정이 훨씬 어렵고 정교한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후대에 남길 만한 중요한 내용을 선별하여 인쇄본으로 제작하였고, 그 내용은 주로 불교 경전이 중심을 이루었다. 제작에 걸리는 시간과 막대한 노동과 정성을 생각한다면 이 작업은 단순한 인쇄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수행, 염원을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사진 1. 금속활자 직지.

사진 2. <직지> 현상복제본.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경전 조성 역량은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계승 발전되어 많은 불교 경전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었다. 특히 고려시대는 신라시대 때부터 발달해 온 인쇄술이 가장 고도화되어 발전했던 시기로, 무엇보다 방대한 규모의 불교 경판 조성사업이 진행되었다. 1011년(현종 2)에는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초조대장경이 발원되었다. 이 대장경은 고려 최초의 대장경으로 1087년(선종 4)이 되어서야 완성되었으며, 거의 6,000권 규모의 목판으로 당시의 한역漢譯된 대장경으로는 동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었다.

 

조성 후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로 옮겨 봉안하였으나, 1232년(고종 19) 몽골 침략으로 초조대장경은 소실되고 말았다. 고려시대 또 하나의 대규모 경전으로는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얼마 후, 대각국사 의천이 초조대장경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교장敎藏이다. 이를 위해 1091년(선종 8)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1102년(숙종 7)경까지 4,700여 권의 경판을 조성하였다.

 

사진 3. 흥덕사지.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1236년(고종 23년) 대장경 조성사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고려사』 권24, 고종 38년 9월 무오에는 “국왕이 성의 서문 밖에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에 행차하여 모든 관료들을 거느리고 분향하였다. 현종 때 판본(초조대장경)이 임진년(1232, 고종19) 몽골 병사에 의해 불타 버렸다. 국왕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다시 발원하여 도감을 설치하고 16년 만에 공역을 마쳤다.”고 하였다.

 

이 기록에서 팔만대장경의 조성사업이 1236년부터 시작되어 1251년 9월 강화경江華京(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대장경판당에서 경찬의례의 개최로 일단락되었다고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담당 관청의 설치와 인적, 물적 자원의 확보와 같은 사전 작업, 경판의 취합 및 경찬법회의 개최 등의 마무리 작업 과정까지 포함한다면, 조성사업은 거의 16년 동안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장경 사업을 통하여 불법佛法을 보급하고 극락정토의 왕생을 기원하였고, 더불어 왕실의 안녕, 국태안민國太安民, 풍년을 기도하였다.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한 삶의 바람을 담은 염원이었다.

 

화염에서 태어나는 금속활자

 

고려는 각종 불경과 대장경 간행 등의 거대한 국가사업을 뛰어난 목판 인쇄술로 이루어냈다. 당시 고려의 우수한 종이와 사경寫經, 각종 서적이 이미 중국으로 전해졌으며, 쇠와 불을 다루는 기술과 인쇄에 필요한 먹의 제조기술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사진 4. 청주시 금속활자전수교육관 입구.

 

13세기 혼란스러운 정세 속의 고려는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지식 정보의 확산과 공유가 필요했다. 그들의 인쇄기술은 나무에 머무르지 않았다. 불을 이용하는 기술이 뛰어났던 그들은 쇳물을 이용하는 고난이도의 제작법을 만들어 낸다. 금속으로 만든 활자는 기술에 따라 나무보다 더 섬세한 필체를 구사할 수도, 무엇보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목활자는 만들어진 판본 한 가지로 계속 찍어내야 하고 오래 사용하면 닳게 된다. 그것을 보완한 금속활자는 필요에 따라 글자를 조합해서 사용 가능하고 오래 사용 가능했다. 그만큼 제작에 있어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명칭이 길어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로 줄여 부른다. 고려 우왕 3년(1377)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음을 명기하고 있다. 1985년 청주 운천동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흥덕사興德寺’가 새겨진 청동금구와 청동발우가 발견되면서 직지를 인쇄하였던 흥덕사(사적 제315호)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사진 5. 금속활자전수교육관.

 

‘직지’는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이어 2004년 4월 유네스코 「직지상」이 제정되었다. 현재 흥덕사지 오른편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왼편에는 금속활자전수교육관과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자리하고 있어 청주는 세계 인쇄문화의 발상지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토종벌에서 시작하는 임인호 장인의 금속활자

 

금속활자전수교육관은 임인호 선생이 금속활자를 시연하고 체험, 그리고 전시하는 공간이다. 금속활자장은 쇠붙이를 녹여 인쇄용 금속활자를 주조하는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이르지만 실제적으로 각자, 주물, 조판, 인출 그리고 제본기술까지 갖추어야 금속활자장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1984년 서각에 입문한 임인호 선생은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현판, 목판 일을 하다가 1996년도 제1호 금속활자장이신 동림 오국진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 서각과 활자주조의 원리, 기능을 배우게 되었다. 당시 서각을 그만할까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금속활자를 만드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마치 보석을 발견하듯, 불과 흙속에서 태어난 활자는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다워 매료되었다고 한다.

 

사진 6. 밀납에 글을 새기다. 
사진 7. 빽빽이 자리 잡은 밀랍자字들.

 

금속활자의 주조방법은 밀납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의 두 가지로, 밀랍주조법은 밀랍에 새긴 밀랍자를 흙으로 싸서 구워 밀랍을 녹여 생긴 공간에 쇳물을 부어서 활자를 만드는 방법이고, 주물사주조법은 나무에 글자를 새겨 어미자를 만들고 주물사에 거푸집을 만들어 그 사이에 쇳물을 부어서 활자를 만드는 방법이다.

 

밀랍 자字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종벌에서 밀랍을 추출한다. 벌들은 겨울에 꿀을 꽉 채워 집을 짓게 된다. 꿀을 다 채우고 나면 벌들이 지어 놓은 꿀방의 칸들을 막는 마감재의 재료가 밀랍이다. 금속활자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토종벌의 벌집에서 시작한다. 으깬 벌집을 채반에 올려놓으면 꿀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위에 찌꺼기가 남는데 이것을 끓여서 밀랍을 추출하게 된다. 여러 번 추출 과정을 통해서 정밀한 밀랍이 마련되면 글을 새겨 넣을 수 있다. 만들어진 작은 밀랍 글 조각들을 서로 연결하여 쇳물길을 만들어 준다. 글새김도 정교하지만, 쇳물길을 잘 만들어 내지 못하면 활자의 성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사진 8. 금속활자 주조 시연.

 

밀납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1200도 고온의 청동 쇳물을 붓는 과정이다. 뜨거운 쇳물은 글자 길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이때 더도 덜도 말고 정밀한 양과 온도로 채워져야 식었을 때 완성도 높은 활자가 태어나게 된다. 온도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긴장된 시간이 흐른 후, 흙들을 털어내면 그 속에서 빛나는 활자들이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9. 1200도 쇳물붓기.

 

“저는 모래 속에서 활자가 드러날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예쁜 꽃이라고 한들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이라고 한들 저에게는 크게 감흥이 없어요. 그런데 활자를 꺼낼 때, 쇳물을 부어서 제가 원하는 그런 활자들이 나올 때 그렇게 큰 감흥과 성취감이 없어요. 저는 힘든 일 어려운 일들 속에서 누구의 탓을 하거나 불평이 없답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이 순간에 만족할 뿐입니다.” 

 

임인호 금속활자장은 화염 속에서 만들어지는 활자들이 그저 좋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정교함과 오랜 집중 그리고 화로의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15년 12월에는 직지의 금속활자를 638년 만에 복원하였는데, 5년을 꼬박 하루 3시간 자본 적 없이 작업하였다고 한다. 밤에는 각을 하고 낮에는 주물을 만들어야 했다. 그의 손길로 1377년 만들어진 누락된 『직지심체요절』이 다시 복원 완성된 것이다. 밀랍주조법 천연재료로 1년에 6〜9천자씩 복원해 3만 자를 제작하였으니, 그가 보낸 인고의 시간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사진 10. 매주 시연 및 교육을 하고 있는 임인호 금속활자장.

 

임인호 금속활자장은 한결같이 오늘을 보낸다. 어제의 작업을 오늘에 이어 하고, 오늘의 작업을 내일에 이어 할 것이다. 금속활자의 경우, 문화재 중에서도 매우 특수한 분야라서 따로 주문 제작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 그저 우리의 이러한 우수한 기술과 문화가 세계 최초로 시작되었음을 직접 방문하는 이들에게 또는 온라인을 통하여 끊임없이 선보이고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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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중현中玄 김세리金世理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 다산숲 자문위원. 성균예절차문화연구소, 중국 복건성 안계차 전문학교 고문. 대한민국 각 분야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연구 중. 저서로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차의 시간을 걷다』, 『영화,차를 말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공감생활예절』 등이 있다.
sinbi-10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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