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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벽화 이야기]
육조도정도와 안수정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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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2 년 6 월 [통권 제110호]  /     /  작성일22-06-07 10:50  /   조회5,06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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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사찰에서 「육조도정도」 벽화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육조도정도」는 말 그대로 육조혜능 스님이 방아를 찧는 모습을 그린 벽화라고 하겠다. 이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여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혜능보다는 육조六祖라는 말로 더 많이 불리어지는데 중국 선종의 제6대 조사인 까닭에 그러하다. 

 

육조도정도六祖搗精圖

 

혜능 대사는 당나라 태종 12년에 태어났으며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나무 장사를 하며 지냈다. 어느 날 땔감을 지고 장터에 나갔다가 어떤 나그네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들었다. 그 가운데,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다(應無所住而生其心)”라는 구절을 듣고 내면이 진동하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어머니에게 출가의 뜻을 말씀드리고 거처를 마련해 드린 후 황매산에서 『금강경』을 강설한다는 홍인대사를 찾아뵈었다. 

 

사진 1. 운문사 대웅보전 내부에 있는 육조도정도.  

 

홍인대사는 혜능과 문답을 나누어 보고 그의 그릇됨을 알아보고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뻤으나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스승이 신참 행자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주변에서 알게 되면 혹시 혜능의 신변에 해가 생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홍인대사는 오히려 꾸지람을 하고 혜능에게 후원으로 가서 방아를 찧도록 했다. 남방 출신으로 체구가 왜소했던 혜능은 힘이 부족하여 어깨에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방아를 찧었고 장작을 패기도 하였다. 

 

어느 날 홍인대사는 제자들을 불러 모아 전법傳法의 시기가 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각자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담아 게송으로 지어 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게송을 지어 올리지 못했다. 오로지 교수사의 신분으로 스승을 대리하여 동산법문을 지도하고 있던 신수神授 상좌만이 게송을 지어 남쪽 회랑 벽에 아래와 같은 게송을 남몰래 붙여 놓았다.

 

身是菩提樹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 같네.

時時勤拂拭 자주 부지런히 털고 닦아

勿使惹塵埃 먼지가 앉고 때 묻지 않게 해야 하네.

 

홍인대사는 이 게송을 보고 아직 신수의 깨달음이 깊지 않음을 알았다. 하지만 대중들의 신망을 받는 교수사의 위치를 생각하여 짐짓 훌륭한 게송이라고 칭찬하며 이와 같이 수행하면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후원에서 방아 찧고 장작 패며 일하기 바빴던 혜능도 우연히 어린 동승이 읊고 있는 이 게송을 듣게 되었다. 혜능은 동승의 인도를 받아 남쪽 회랑에 가서 신수의 게송을 보고 깨침의 경지가 아님을 알았다. 이에 혜능은 글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신수의 게송 옆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써 붙이니 대중들이 이를 보고 웅성거렸다.

 

菩提本無樹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非臺 맑은 거울도 받침대도 아니네.

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何處惹塵埃 어느 곳에 먼지가 앉고 때가 끼는가.

 

이후 여덟 달이 지난 어느 날, 홍인대사가 방앗간에 들러 혜능에게 “내 너의 견해가 쓸 만하다고 생각하나 혹 사람들이 너를 해칠까 염려하여 너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지 않음을 알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이에 혜능이 “예, 제자도 스님의 뜻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홍인대사는 주장자를 세 번 내리쳐 삼경에 조실 방으로 오라는 암시를 주었다.  

 

사진 2. 은해사 대중 방에 그려진 육조도정도.  

 

그날 밤 삼경에 홍인스님으로부터 『금강경』 강설을 들은 혜능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에 홍인대사는 아직 머리도 깎지 않은 행자신분이었던 혜능이 깨쳤음을 인가印可하였다. 이렇게 하여 혜능은 제5조 홍인대사를 이어 선종의 제6조가 되었다. 이후 혜능은 남쪽으로 내려가 중국 선종을 크게 선양하여 남종南宗의 조종祖宗이 되었다. 

 

「육조도정도」는 이러한 내용을 벽화로 표현한 것이다. 벽면의 크기에 따라 구도의 변화는 있으나 인물 표현에 있어서 방아를 찧고 있는 혜능慧能만을 그린 경우와 <사진 1>이나 <사진 2>에서와 같이 돌을 짊어지고 방아를 찧는 혜능과 홍인대사의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는 경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안수정등도岸樹井藤圖

 

 「안수정등도」 벽화는 존재와 삶의 실상을 밝혀 미혹을 타파한 부처님께서 밝혀 주신 교설 중에 하나를 나타낸 벽화이다. 그 내용은 인간이 처한 삶의 위급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데 많은 불자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벽화로 표현된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이 「안수정등도」야말로 인간의 오욕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많은 경종을 울리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안수정등도」는 신통력이 뛰어났던 빈두로賓頭盧(piṇḍola: 不動의 뜻) 존자尊者에게 설하신 『위우타연왕설법경』 (빈두설경賓頭說經이라고도 함)의 비유를 벽화로 표현한 것으로 경의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한 사나이가 있었다. 이 사나이는 훤히 펼쳐진 벌판을 어슬렁어슬렁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이때 그 사나이의 뒤에는 험악하게 생긴 코끼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참 달아나다 보니까 깊은 구덩이가 하나 보였다. 사나이는 그 구덩이 속으로 급히 몸을 숨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 안을 내려다보았다. 

 

사진 3. 운문사 응진전의 안수정등도 벽화.  

 

그런데 다행히 칡넝쿨이 밑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사나이는 칡넝쿨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까 그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사가 사방에서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까 위에서는 코끼리가 내려다보고 있었고 들판에는 불이 일어나 사방을 휩쓸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도 없고 위로 올라갈 수도 없어서 중간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었다. 조금 더 있으니 자기가 매달려 있는 그 칡넝쿨을 하얀 쥐 한 마리와 검은 쥐 한 마리가 와서 갉아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큰일이 난 것이다. 위로 올라가자니 사나운 코끼리가 버티고 있고, 밑으로 내려가자니 무서운 독사가 버티고 있고, 그대로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얀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칡넝쿨을 갉아대기 시작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난처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왔다 갔다 하면서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 것이 아닌가. 이 사나이는 이렇게 위급한 지경에 있으면서도 그 꿀 한 방울 한 방울에 재미를 붙여 더 많은 꿀을 떨어뜨려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 꿀을 먹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표현한 것이 「안수정등도」 벽화이다. 운문사 응진전의 벽화(사진 3)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사나이의 모습이 넓은 배경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이 외에도 소백산 구인사 벽화도 사실적인 배경 표현이 돋보이며 경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또한 해인사의 벽화도 경의 내용을 명료하게 전달해 준다.

 

이외에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많은 벽화들이 경전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경전의 내용을 재음미해 보면 배경 등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중요한 내용은 잘 전달해 주고는 있으나 좀 더 충실하게 배경을 표현하여 말 그대로 문자로 기록된 경전을 시각적으로 재현해 내기 위한 정교한 도상의 틀을 구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안수정등도의 상징

 

그러면 우리의 인생을 아주 재미있게 비유한 것으로 벽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빈두설경』의 내용이 어떠한 가르침을 위한 비유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그 사나이는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하는 것이며, 벌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한다. 뒤에 따라오는 코끼리는 무상하고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말하는 것이며, 웅덩이는 생사生死의 험난함을, 그리고 사방의 독사는 우리의 육신을 이루고 있는 네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대를 가리킨다. 매달려 있는 칡넝쿨은 우리의 생명줄을 상징하며, 흰 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을, 끝으로 꿀벌 다섯 마리가 번갈아가며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 것은 곧 인간의 오욕을 비유한 것이다. 오욕이란 재물욕, 애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을 말한다.

 

경전은 이렇게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실감나는 상황을 설정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지나가는 세월에 밀려서 마침내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경은 설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실제적으로 처해 있다면 어떻게 해야 코끼리도 물리치고 독사도 떠나서 완전한 자유를 얻겠느냐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온전히 인식하고 동시에 해결의 길을 가리키는 것이 『빈두설경』의 메시지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경전의 참다운 뜻을 이해하고 자각할 때 고뇌와 역경을 떠나서 완전한 기쁨과 감로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안수정등도」 벽화는 이야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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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위덕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철학박사). 김해시청 벽화공모전, 전통미술대전 심사위원역임. 미술실기 전서-산수화의 이해와 실기(공저)
사)한국미술협회 한국화 분과위원, 삼성현미술대전 초대작가. 국내외 개인전 11회, 단체 및 그룹전 300여 회.
다수의 불사에 동참하였으며 현재는 미술 이론과 실기 특히, 한국 불화의 현대성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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