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히말라야를 넘어가는 옛길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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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11:48 / 조회2,261회 / 댓글0건본문
요즘은 인터넷 검색창에 ‘무스탕Musthang’ 또는 ‘머스탕’을 쳐보면 야생마, 포드 자동차, 양털 점퍼 등이 튀어나오지만 오늘 우리의 주제인 ‘무스탕’은 사뭇 성격이 다르다. 바로 히말라야산맥 속에 숨어 있는 고대 티베트 왕국을 뜻하는 것이기에….
무스탕 왕국으로
어찌 보면 이곳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내기에는 너무 높고 그리고 너무 척박한 지역이다. 하지만 만년설이 녹아 남쪽 사면으로 흘러내린 크고 작은 물줄기(주1)의 양안에 펼쳐진 초원지대에서는 예로부터 티베트 계열의 유목민들이 굳건히 뿌리를 내리면서 수준 높은 불교문화를 이룩하며 살아왔다.
물론 현재는 이 고대 왕국은 주체적인 왕정 체제를 잃고 네팔의 보호령 신세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매력적인 자연환경과 더불어 종교와 민속, 문화 등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키고 있어서 오늘날에도 오지 마니아들의 버킷리스트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필자가 갑자기 무스탕 행을 마음먹은 계기는 얼마 전 보우드나트(Boudnath S.) 대탑을 방문했을 때 거기서 일본의 유명한 순례승인 가와구치 에카이(河口慧海, 1866∼1945)의 체취를 맡고 나서 갑작스레 역마살이 발동하여 이번 순례길을 떠날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서둘러 여행사를 통해 허가증을 받고 포카라를 떠나 무스탕 입구의 거점도시인 좀솜(Jomsom, 2,720m)으로 출발하였다. 왜냐면 무스탕 일원은 겨울철에는 교통편이 끊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설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무스탕 계곡은 티베트와 네팔과 인도 사이에 위치한 협곡으로 외계적이고 인상적인 경치가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 이곳을 방문하려는 이유는 그런 시각적인 경계를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길에 남겨진 순례자들의 자취를 맡아 보고
자 함이었다.
무스탕을 경유하는 고대 순례길
8세기경 이 계곡길을 통과하여 티베트고원으로 입국한 순례자로는 먼저 빠드마삼바바(Padmasambhava, 蓮華生)를 꼽을 수 있다. 티베트 불교권에서는 빠드마삼바바가 샤캬모니 붓다보다 더 비중이 무거운 인물이다. 물론 실증적인 불교사적으로는 생몰연대와 행적이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설역 고원에 인도 후기불교를 처음 전파한 인물이다. 현재도 현지인들에게 대단한 추앙을 받으며 ‘구루 린포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강력했던 토번 왕국이 분열되어 오랜 암흑기로 접어서면서 불교문화의 십자로 역할을 했던 무스탕 왕국도 오랫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버렸다. 근래에 들어와서도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한 인접국들의 금지 조치로 신비의 베일이 걷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즈음 티베트를 합병한 중국과 네팔, 인도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제한적으로 풀렸다 잠겼다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지금껏 ‘금단의 왕국’이라는 호칭이 떠나지 않고 있다. 그 여파로 까다롭고 비싼 허가증(주2)을 받아야만 순례 내지는 관광이 가능한 구역으로 남아 있다.
물론 이런 금단의 기간에도 목숨을 담보로 한 탐험가와 순례자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759년에 이탈리아의 지우세페(Da Gargnago Giuseppe) 신부가 바티칸으로 보낸 편지에서 최초로 무스탕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산을 넘어 걸어가면 위대한 티베트 왕국 무스탕에 이른다. 이 왕국은 라싸Lasa로부터 독립해 있으며….”
또한 영어로 된 문헌 중에서는 1793년에 영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네팔을 방문한 커크패트릭Kirkpatric이 쓴 기록이 보인다.
“베니Beeni에서 곧장 북쪽으로 가면 묵티나트Muktinath 성지가 나온다. 그곳은 간다키 강으로부터 반 마일 정도 떨어져 있으며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화석돌이 강바닥에서 많이 발견된다. 강의 발원지는 북쪽에 있는 무스탕이며 까그베니에서 멀지 않다.”
1951년부터 1960년까지 9년간은 무스탕을 경유하여 티베트로 들어가는 외국인의 입국이 허용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토니 하겐, 지우세페 투치, 스넬그로브 같은 학자들이 무스탕에 입국하여 나름대로 학문적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1960년 이후부터 다시 외국인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1991년까지 지속되었다.
무스탕 계곡에 있는 가와구치 에카이 기념관
그 와중에 금단의 땅에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일본의 순례승 가와구치 에카이(河口慧海)이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혜초慧超 스님에 비견되는 탐험가로 황벽종黃壁宗 소속의 선승이었다. 그는 『티베트에서 3년(西藏旅行記: The three years in Tibet)』이란 무게 있는 여행기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사진 6. 가와구치가 저술한 티베트 여행기 『티베트에서의 3년』 일본어판, 영어판 표지.
그는 일본, 중국, 한국에는 없는 불경을 구해 오고자 하는 발원을 세우고 1897년 6월 하순 일본을 떠나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의 혜초스님이 도착한 동천축국東天竺國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인도 북부 다르질링으로 올라가서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인도인 선배 탐험가 ‘찬드라 다스’에게서 1년 5개월간 티베트어를 배운다. 1899년 1월 중국(몽골) 승려로 위장하여 네팔로 들어와 카트만두, 즉 보우드나트에 머무르면서 티베트로 들어가려는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당시 티베트와 중국은 외국인들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루트로는 티베트 입국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서북쪽의 오지를 통해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내서 그해 3월 초순 카트만두를 떠나 포카라를 거처 무스탕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때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티베트로 밀입국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세계 4대 종교에서 최고의 성산으로 꼽는 카일라스(St. Kailash)의 꼬라를 완주하고 드디어 라싸에 도착하여 최대의 총림인 세라Sera 대사원에서 1년 넘게 불경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신분이 발각되는 위기에 처하자 몰래 라싸를 빠져나와 이번에는 시킴Sikhim 왕국 쪽의 국경을 넘어 인도령 다르질링으로 내려와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네팔과 티베트에 들어간 최초의 일본인으로 이후 티베트학의 개조가 되었다. 지금도 무스탕 입구의 큰 도시인 좀솜의 무스탕박물관에는 그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마르파Marpha 마을에는 그가 머물렀던 우거가 보존되어 있다.
이렇듯 그의 체취가 남아 있는 마르파 마을은 티베트식 전통의 돌담과 돌집이 아름다울뿐더러 사과 산지로 유명하다. 아마도 높고 건조한 고산지대에서는 사과가 나오는 유일한 곳이어서 나는 며칠 틈이 나면 마르파에 와서 사과로 만든 특산품인 애플파이, 애플쥬스, 애플브랜디를 즐기면서 머릿속으로 그의 행로를 따라가 보기도 한다.
필자가 1993년 라싸에 처음 들어가 티베트대학에서 1년간 머물며 티베트학을 연구했던 때도, 1995년 처음 카일라스 산을 순례할 때도 모든 것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는데 하물며 한 세기 전 상황은 어떠했었을까? 생각하면 한 구도자의 절절한 구도심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그가 일본인이라면 어떻고 또 밀정 노릇을 좀 했으면 어떠리….
<각주>
1) 수많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크고 작은 냇물이 모여 드넓은 칼리 간다키Kali Gandakhi 강이 되어 남쪽으로 흘러가는데, 암몬 조개 화석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2)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를 대동한 조건으로 하는 비싼 허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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