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큰스님께 배운 막장과 스승님께 배운 집장
페이지 정보
박성희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10:08 / 조회2,421회 / 댓글0건본문
푸드멘터리로 꾸며 내는 시사 교양프로그램인 한국인의 밥상이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합니다. 국민 아버지이자 국민 할아버지이신 최불암 선생님의 목소리와 작가의 맛깔난 감성 글이 어우러져 힐링의 영상이 되어 주고 있는 멋진 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의 음식 이야기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내기에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우리는 어머니를 떠올리고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합니다.
밥심과 밥정
산다는 건 결국 밥을 먹는 일입니다. 밥 먹고 사는 일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밥 때문에 목이 메고, 밥 때문에 초라해 지지만 그 온전한 한 끼를 위해 타향살이를 마다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밥은 우리 삶의 전부인가 봅니다. 목수는 톱밥, 군인은 짬밥, 쇠 만지는 이는 쇳밥, 봉제사는 실밥, 그리고 사찰에선 절밥, 엄마는 집밥입니다. 삼라만상이 밥으로 통하는 우리에게 밥심과 밥정은 이렇게나 힘이 셉니다.
건강 양생 백과사전 「보양지」
조선의 실학자 풍석 서유구는 『임원경제지』 중에 「보양지」를 통해 사람의 몸을 집에 비유하였습니다. 건강 양생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보양지」에는 사람의 몸을 집에 빗대어 이름을 붙입니다. 귀·눈·코·입은 창과 문이라고 했고, 손·발과 사지의 뼈마디는 기둥과 서까래요, 머리카락과 피부는 벽·기와·담장이라 했습니다.
보통 집이란 폭풍과 세찬 비로 흔들리거나 벌레와 좀이 침식하기도 하고 좀도둑들이 재산을 훔쳐 가기도 합니다. 이를 가만히 놔두고 단속할 줄 모르면 세월이 갈수록 집이 동쪽으로 기울고 서쪽으로 퇴락하여 거처할 수가 없게 됩니다. 대개 몸이란 집이고, 마음은 집에 거처하는 주인입니다. 주인이 항상 주인 노릇을 잘할 수 있다면 창문·기둥·서까래·담벼락이 모두 완전하고 견고해집니다. 이는 마음이 건강하면 몸은 저절로 건강해진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데 명상은 특효약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마음 밭을 일구어 기름진 토양을 만들고, 그 밭에 여문 씨앗을 뿌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마음이 수행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우리가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데도 인간은 고뇌하며 삽니다. 삶 속에서 경험하는 고뇌가 무엇인지 깊이 연구해서 그 고뇌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 했습니다. 마음 밭의 환경도 마찬가지겠지요. 기름진 땅에 잘 여문 씨앗을 심어 놓고 건강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는 동안 때론 비바람이 몰아쳐 가지가 꺾인 때도 있을 것이고, 다 자란 열매가 익기도 전에 땅으로 떨어져 허망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뇌와 불안을 해결하는 것이 수행이니 우리는 기꺼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숙제를 풀어 가며 살아갑니다.
이 시대의 화두는 ‘건강’입니다. 육체의 건강만이 아니라 몸을 지배하는 마음의 건강이 매우 중요합니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는 음식이 화두이고,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명상이 화두가 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일상생활은 대중생활에 불편함이 없이 만들어진 훌륭한 규범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규범들은 일반인들의 삶 속에도 스미게 되었고, 앞으로도 큰 사랑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발효꽃이 피었습니다
사찰에서의 기본 생활습관, 마음공부, 그리고 수행음식의 관점에 바라보는 건강한 식생활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습니다. 사찰음식은 로컬푸드의 원조이고 슬로푸드의 시작입니다. 발효음식의 꽃을 피웠고, 생명존중 사상이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음식을 약으로 생각하는 식약동원의 정신이 스며 있습니다. 또한 몸과 마음이 음식과 더불어 진하게 발효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발효음식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우리는 대표적으로 김치와 장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술과 식혜, 그리고 식초와 젓갈을 들 수 있습니다.
중국의 유교 경전인 「서경」에 보면 “내가 술과 단술을 만든다면 그대는 누룩과 엿기름이 되어 주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밀을 띄운 누룩은 술을 빚을 때 사용하고, 곡식을 싹 낸 엿기름은 달게 하는 재료임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누룩을 쓸 때는 일반적으로 술·식초·장·젓갈에 모두 넣어 만들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룩으로 단지 술과 식초를 빚었을 뿐이라고 『옹치잡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엿기름으로는 식혜를 만들어 엿을 완성시키는 용도로만 사용되어 그 쓰임새가 적었지만 누룩은 보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룩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메주를 사용하여 장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니 저는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여 보다 정확하고 건강한 누룩과 메주를 만들어서 장 건강에 좋은 다양한 발효음식으로 승화해 보고자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발효음식의 대표주자 사찰음식
사찰음식의 기본은 로컬푸드이고, 슬로푸드입니다. 로컬푸드이기에 제철 식재료이고, 슬로푸드이기에 발효음식입니다. 불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라이프 스타일이 산문 밖의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는 것은 “경험해 보니 그게 옳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규칙적인 생활습관, 올바른 식습관, 수행을 통해 이루어 가는 마음공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자연스레 만들어진 에너지입니다. 선한 에너지는 파장이 크고 그 울림은 보다 멀리 퍼지기 때문에 산문 안의 파장을 산문 밖에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의 생명존중 사상과 발우공양의 지혜, 마음 밭을 일구는 삶의 방식 등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가는 데 길라잡이가 되어 줍니다. 이런 것이 진리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믿고 보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불가의 내림음식 중 가장 핵심은 발효음식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스승님께 배운 집장과 쌍계사 방장이셨던 고산스님께 직접 배운 막장의 비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산사의 건강한 발효균으로 만들어서 더 건강하고 맛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균이 사는 환경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니 우리의 일상에서도 좋은 균과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도 지혜로운 살림살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재래식 된장과는 달리 오래 숙성시키지 않아도 되는 막장과 채소를 넣어 만드는 집장(즙장)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막장을 오래 숙성시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콩으로만 메주를 쑤지 않고, 전분질을 섞어서 막장용 메주를 따로 쑤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밀이나 멥쌀, 보리 등의 전분질이 들어가면 당분이 분해되어 발효가 빠르고 단맛도 많이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소개하는 막장은 2019년도에 선재스님과 함께 쌍계사 방장이셨던 고산스님께 직접 배운 큰스님의 비법입니다.
막장 만들기
재료
메줏가루 2kg, 보리쌀 2컵, 고추씨 1컵, 엿기름 2컵, 물 3.5리터, 소금 500g, 다시마, 간장 2컵.
만드는 법
1. 물을 끓여서 60도로 식으면 면보에 엿기름가루를 넣고 물에 불려 주세요.
2. 불린 엿기름에 전분이 빠져나오도록 주물러서 엿기름물을 만들어 줍니다.
3. 엿기름물에 다시마를 넣고 30분 이상 가라앉혀 주고 윗물만 걸러 주세요.
4. 걸러낸 물을 냄비에 담아 보릿가루와 소금을 넣고 잘 풀어 약한 불로 끓여 주세요. (보리죽을 만들어 주세요).
5. 큰 그릇에 메줏가루와 보리죽, 고추씨 가루를 넣고 잘 버무려 주세요.
6. 간장이나 누룩 소금으로 마지막 간을 맞춰 줍니다.
7. 소독한 항아리에 담아서 천으로 입구를 덮은 다음 햇살이 좋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합니다.
TIP.
- 간은 취향에 따라 간장과 누룩 소금으로 하면 좋습니다.
- 간이 약하면 맛이 새콤해질 수 있으니 냉장 보관을 해 주세요.
-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는 선택하시면 됩니다.
- 보리쌀에 엿기름물을 넣어 밥을 해서 보리죽 대신 사용해도 좋습니다.
- 막장용 메주를 만들어서 사용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 모든 재료는 친환경 식재료 매장에서 구입했습니다.
집장(즙장) 만들기
담가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장으로 채소를 많이 넣고 담그기 때문에 ‘채장’이라고도 합니다. 집장은 16세기 말엽에 하생원이 쓴 『주방문酒方文』이란 음식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먹기 시작한 지가 꽤 오래되었고, 감칠맛이 절정을 이루는 맛있는 장이지만 지금은 집장을 담그는 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막 익은 집장은 콩, 밀, 무의 달착지근하고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고, 말려서 넣은 채소들이 잘근잘근 씹히는 맛이 식감이 아주 좋습니다. 집장 그대로 반찬으로 먹거나 쌈장으로 먹어도 좋지만 찌개로 끓여 먹어도 아주 간편한 요리가 됩니다.
집장을 제대로 담그려면 용도에 맞게 집장 메주를 만들어 사용하면 좋지만 여의치가 않을 때는 일반 메주를 굵게 빻아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도에 맞게 통밀이나 보리쌀을 넣어 만드는 집장용 메주를 만들어서 사용하면 전통의 맛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장을 담그는 메주는 보통 콩만으로 만들고, 고추장 메주는 콩에 쌀을 섞어 만듭니다. 이처럼 용도에 따라 메주의 재료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전통방식 그대로 재현해 보면 좋겠습니다.
옛날에는 메주를 띄울 때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두엄이나 잿불 남은 곳에 묻어서 일주일 정도 삭혔다는 이야기를 궁중음식연구원에서 공부하면서 한복려 스승님께서 직접 재현해 주시며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단지 입을 기름종이로 꼭꼭 봉하고 열을 받았을 때 터지지 않도록 겉에 진흙을 고루 발라서 잿더미 속에 묻어서 익혔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요즘에는 전기밥솥을 이용해 보온 상태로 10시간만 두어도 쉽게 완성되니 집장의 진미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집장 만들기
재료
메주콩 5컵, 밀(보리쌀) 3∼5컵, 찹쌀 2∼3컵, 엿기름 ½컵, 고춧가루 2큰술, 다진 마늘 2큰술, 간장(진간장) ½컵, 소금 적량, 채소(무, 당근, 오이, 우엉, 풋고추, 고춧잎, 토란대 등).
만드는 법
1. 콩 삶은 데에 통밀을 한데 섞어 절구에 찧어서 달걀 모양으로 빚어 집장용 메주를 띄워 잘게 빻아 줍니다.
2. 집장에 넣을 채소는 절여서 꼬들꼬들하게 말려 준비합니다.
3. 찹쌀밥을 질게 지어 메줏가루와 엿기름을 섞고 채소를 넣어 주세요.
4.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이나 간장(진간장)으로 간을 맞춥니다.
5. 버무린 것을 단지나 보온 밥솥에 담아서 따뜻하게 두고 익혀 주세요. 보온 상태에서 10시간쯤 두면 충분히 삭아요.
TIP.
- 집장용 메주를 만들기가 어려울 경우에는 일반 메주를 굵게 빻아 사용해도 좋습니다.
- 집장에 들어갈 채소는 반드시 절이거나 건조해서 넣어 주세요.
- 염도가 너무 낮으면 쉽게 변질이 될 수 있으니 저염일 경우엔 냉장 보관을 하세요.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