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세상을 깨우는 가장 조용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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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20:10 / 조회202회 / 댓글0건본문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는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그 문장으로 제 마음은 하나의 문처럼 시원하게 열렸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김서령 작가의 배추적은 외롭지만 않았고 사실 따스하기 그지없습니다.
겨울 산사의 맛
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겨울 저녁의 한적한 방, 희미한 등잔불, 바람이 창호지에 머뭇거리며 흔들던 소리, 그리고 따뜻한 숨결을 나누듯 둥근 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문장으로 추억을 소환합니다. 서로의 침묵 속에서 들리던 것은 기름 두른 팬에서 배추전이 노릇하게 익어가는 소리뿐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자리,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의 겨울을 조용히 데워 주는 식탁이 그곳에 모두 자리해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 속의 배추전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허기와 다른 사람의 허기가 맞닿아 온도를 맞추어 가는 작은 온기입니다. 김서령 작가의 글을 보면서 어느 순간, 저는 그 장면이 자연스레 산사의 공양간으로 시선이 옮겨갔습니다.

진관사는 조선시대 때 물과 육지의 모든 고혼들의 넋을 달래는 수륙재를 국가 차원에서 설행한 국행수륙재의 대표 사찰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우리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호국 도량입니다. 이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진관사는 우리시대에도 국행수륙재와 사찰음식, 템플스테이의 대표적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진관사는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정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마下馬는 조선시대 궁궐, 종묘, 문묘 등 주요 장소 앞에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있던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도록 지시한 푯돌(비석)을 의미합니다. 이 지점에 다다르면 모두가 평등해집니다. 하마비 앞에 서서 잠시 과거의 진관사와 오늘날의 진관사를 떠올립니다.
마음의 정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부처님의 도량으로 향하는 길은 눈부십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여여하게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정겹고,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듯한 묘한 기분마저 듭니다.
웅숭깊은 맛의 정체를 찾아서
진관사 산사음식의 웅숭깊은 맛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진관사의 미식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미식을 뛰어넘어 진관사의 소박하지만 세련된 멋을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진관사에서 배운 맛 가운데 가장 자주 떠오르는 단어는 ‘웅숭깊다’는 말입니다. 웅숭깊다는 것은 단순히 맛이 진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입안에서만 끝나는 맛이 아니라 삼킨 뒤에도 오래, 그리고 깊이 남아 마음의 어느 결을 천천히 흔드는 맛입니다.

예를 들어, 들깨죽은 혀끝에 닿는 순간 부드럽게 퍼지지만 그 부드러움은 곧장 몸으로 내려가 속을 천천히 덥히는 온기로 바뀝니다. 그것은 위장의 따뜻함이 아니라 마음 안쪽이 데워지는 감각에 더 가깝습니다. 우엉과 버섯을 활용해 만든 음식은 처음에는 담백하지만 씹을수록 ‘겹맛’을 드러냅니다. 겉의 단단함 속에 숨어 있던 단맛, 그 단맛 뒤에 조용히 따라오는 고소함, 그리고 삼킨 뒤 아주 은근하게 남는 흙의 향, 이것은 땅의 기억을 머금은 맛입니다.
또한 된장은 언제나 ‘기억의 맛’입니다. 입에 넣고 음미를 하면 포근한 우리집 향기, 거칠고 투박하지만 따스한 우리네 어머니의 손맛, 겨울밤 추억이 차례로 피어오르는 맛입니다.
더함보다 덜어냄
우리 음식에서 각각의 식재료를 어우러지게 만들어 주는 역할은 장이 담당합니다. 장은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불러내는 힘이 있습니다. 제철 식재료를 기반으로 하는 사찰음식은 사람을 자극하지 않고 차가운 결을 따스하고 부드럽게 녹입니다. 이 모든 맛은 기교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시간에서 왔고, 기다림에서 왔으며, 재료의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왔습니다.

맛은 ‘더함’에서 생기지 않고, 오히려 ‘덜어냄’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저는 사찰음식을 배우고 익히며 깨달았습니다. 사찰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 세상을 대하는 마음, 재료와 사람, 자연과 수행이 얽혀 있는 삶의 철학입니다.
그 철학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절집의 식문화를 몸으로 체험하며, 나의 신행 또한 그 배움 위에서 새롭게 다져보고 싶은 마음에 4개월 동안 진관사의 산사음식을 배우는 귀한 인연을 얻고 단순히 요리법만을 익힌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용한 가르침을 함께 배웠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도반들, 그 가운데 한 팀으로 인연을 맺은 도반들과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음을 이야기하며 불가佛家의 전통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갈 수 있도록 너른 품을 열어 주신 회주 계호스님의 배려가 우리에겐 첫 번째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또한 산사의 식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시고, 단정한 기운으로 배움의 과정을 차분히 이끌어주는 등불과 같은 주지 법해스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회주스님과 주지스님의 가르침을 이어서 우리에게 직접 산사음식을 가르쳐 주신 성돈스님의 손끝에서 피어난 진관사의 맛은 그야말로 향반입니다.
산사음식의 비결은 부처님 말씀 한자반
단순히 조리법만을 전하기 위함이 아닌 산사 음식문화를 소재로 한 법문으로 문을 열어 주시는 성돈스님의 가르침은 여러 도반들과 야단법석에 동참하여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듯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진관사에서 함께한 시간은 재가자로서 사찰음식을 전하고 있는 저에게 그동안의 신행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고, 일주일에 한 번 온전히 나를 깨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연구와 배움으로 다져 나가고자 다짐하면서 이와 같은 시간이 제 삶의 결을 다시 짜는 시간이 되어 보람으로 가득합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배운다는 것은 특별한 용기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항상 부족한 나를 깨달아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원력이 없이 사찰음식을 전해서는 안 된다며 사찰음식을 이야기할 때는 늘 부처님의 말씀을 한자반 올려서 전하라는 어른 스님들의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 봅니다.
사중 소임이 너무 많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어 우리 도반들에게 산사음식을 전해 주신 성돈스님은 진관사 지화장엄보존회 이사장 소임도 맡고 계시고, 진관사를 찾아 불교 기초교리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며 우리 모두가 부처님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성돈成暾(이룰 성, 아침해 돈), 부드럽게 세상을 완성해 가는 빛, 즉 빛을 이루고 빛을 전하게 되기를 바라는 깊은 축원이 담긴 법명입니다.

진관사에서의 많은 일상 속에 성돈스님께서는 당신의 재능을 수행을 통해 발견했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삶 가운데 아침해가 떠오르듯 주변을 온통 밝게 하는 수행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산사에서 만난 한 그릇의 공양이, 발우 안에 담긴 수행의 깊이가, 정성과 사랑으로 지어진 공양이, 품격이 묻어나는 산사음식이,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데워 주는 그 따뜻함을 함께 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배움은 축복이었습니다.
떠도는 넋까지도 온전히 품는 도량
진관사에서의 배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그곳에서 얻은 깊은 맛의 씨앗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마음에서 천천히 자라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씨앗이 더 깊은 뿌리를 내려 누군가의 삶에도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라며 저는 오늘도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매일 아침 발우공양을 실천하며 대중공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진관사는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도량이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떠도는 넋까지도 온전히 품는 도량입니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이치를 소중히 여기는 곳입니다. 모든 생명을 살피고, 모든 영혼을 기억하는 도량, 진관사는 그렇게 이 세상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품으며 하루하루의 수행을 이어갑니다.
몇몇 행사와 신행생활, 그리고 배움을 통해 몸과 마음에 담은 진관사에서의 추억을 펼쳐 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산사음식과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이어가고 있는 진관사의 마음결과 손길을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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