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는 불상의 미학]
왜 고승들은 도솔천 상생을 서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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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 / 2023 년 6 월 [통권 제122호] / / 작성일23-06-05 11:46 / 조회3,621회 / 댓글0건본문
지난 호에서 『상생경』에 근거하여 미륵신앙과 관련된 승려 도상을 세 유형으로 나눴다. ① 미륵불감 협시 승려, ② 한쪽 무릎을 꿇거나 합장하며 서원하는 승려, ③ 『법화경』의 수마기두 승려이다. 특히 수마기두 승려는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며 도솔천에 상생하기를 서원하는 승려 도상이다. 수마기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를 칭찬하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행위이다. 이와 같이 미륵신앙과 『법화경』 승려의 연관성은 북위시대부터 미륵불감과 이불병좌도상이 함께 표현되는 것을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상생경』에서 승려를 언급한 부분은 세 곳이다(『고경』 제121호 참조).
이들은 첫째 도솔천에 상생하여 미륵을 친견하는 승려, 둘째 미륵이 하생할 때 그를 따르는 승려, 셋째 상생하지 못하고 미래세의 용화삼회를 기다리는 승려들이다. 따라서 승려 도상 중에 서원 승려는 미륵하생을 함께 경험하고 협시 승려와 수마기두 승려는 도솔천에서 미륵을 친견하고 그가 염부제에 하생할 때 함께하는 승려 도상이다. 서원 승려는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고 열심히 수행정진하며 미륵하생을 기다리는 승려 도상이다.
도솔천 상생을 서원한 고승들
그렇다면 현세에서 도솔천에 상생하기 위해서 미륵신앙과 『법화경』을 실천하는 승려가 실존했을까?
『고승전』을 보면 도안(312~382) 이후 법현(337~422)과 현장(602?~664), 의정(635~713)의 행적을 통해 미륵상생신앙은 널리 알려졌다. 도안은 379년 장안에 머물렀을 때 전진(351~394)의 부견(재위 357~385) 왕이 진주로 수를 놓은 미륵금동상을 선물했다. 도안은 그의 죽음 전에 미륵상 앞에서 도솔천에 상생하기를 기원하였다.(주1) 도안의 제자 담계曇戒는 그가 아팠을 때 미륵의 명호를 염불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른 8명의 승려처럼 도솔천에 상생하기를 서원하였다. 도안과 도원은 이미 도솔천에 상생하였는데 자신만 아직 못했으니 도솔천에 상생하고자 한다고 하였다.(주2)
천태대사 지의智顗(538~597)는 수나라(581~618) 시대의 승려로, 천태종의 개조開祖이다(사진 1). 지의선사는 도솔천에 왕생하기를 서원하고 임종할 때 관음이 내영하기를 원했다. 지의는 『미륵상생경소』 1권과 『미륵성불경소』 5권을 저술했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고승전』에 근거하여 그의 제자 혜빈慧斌(대업 8년 612년 입적), 지희智晞(556~627), 관정灌頂(정관 6년 632년 입적)은 지의가 도솔천에 상생했다고 하였다. 지희는 입적을 준비하고 제자들에게 인연법을 설법하였다. 한 제자가 “스승님은 어디로 왕생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지희가 대답하길, “장차 북서쪽 하늘 모퉁이에 있는 도솔천에 상생할 것이다. 그곳엔 파란색 궁전이 있다. 지의선사도 이미 그곳에 있다. 좌우 변에 수많은 천인이 모두 보좌 위에 앉아 있는데 오직 한 자리가 비어 있다. 이는 관정을 위한 자리이다. 앞으로 6년 후에 입적하여 도솔천에 상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관정법사는 정관 6년(632) 8월 7일 국청사에서 입적하므로 지희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였다.
천태대사 지의는 23세(560)에 혜사慧思(514~577)의 제자가 된다. 남악대사 혜사는 지의에게 법화삼매法華三昧를 강설하였다(사진 2). 또한 백제 웅주(공주) 출신 현광도 혜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혜사선사는 매일 『법화경』을 통독하고 어느 날 꿈에서 도솔천의 미륵을 만났다. 그는 미륵의 설법을 듣고 있는 많은 청중을 보고 스스로 결심하며, 그가 석가모니의 말법시대에 있고 『법화경』을 수지하니 미륵을 친견한다고 하였다. 그는 일체의 불법을 배우고자 하면 정계를 지니고 선법수행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불법정진의 공덕과 반야의 지혜는 모두 선법수행에서 생긴다고 하였다. 이는 수행자가 선정에 들어가야 중생들의 근기를 관찰할 수 있고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였다.
현광은 백제 위덕왕(재위 554∼598) 시기였던 589년(위덕왕 36년)까지 중국에 있었고, 그 이후 귀국하여 웅주(공주) 옹산에 머무르며 혜사에게서 배운 법화삼매를 백제에 전파하였다. 따라서 『법화경』 사상과 연관된 6세기 말 태안 마애불 조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고경』 제121호 참조).
또한 남악대사 혜사는 말법시대의 시작을 434년이라고 계산하였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고 500년 동안 정법시대이고, 그 후 1000년 동안 상법시대라고 하였다. 혜사가 설법한 말법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인 승려법난은 473년 혜은慧隱, 481년 법수法秀, 490년 사마혜어司馬惠御, 509년 유혜왕劉慧汪, 510년 유광수劉光秀, 514년 유승소劉僧紹 그리고 515년 법경法慶의 난이 있었다.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까지 법난이 발생한 이유는 북위가 수도를 핑청平城(현재 大同)에서 뤄양洛陽으로 옮긴 후 굶주림, 전염병, 전쟁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으로 위의 승려들은 십악업十惡業이 횡행하는 말법末法시대가 도래하여 곧 미륵이 염부제에 하생한다고 하였다. 위의 승려들 중에는 스스로 하생한 미륵이라 칭하는 이도 있었다.
위의 승려들은 스스로 미륵신앙을 실천하며 행적을 남겼지만, 원효(617~686)는 『미륵상생경종요』에서 도솔천에 상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즉 미륵신앙 수행자들은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사유관을 수행하면 도솔천 왕생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또한 『상생경』은 중품을 위한 경전이고, 『하생경』과 『성불경』은 하품을 위한 경전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원효는 미륵신앙 수행자를 중품과 하품으로 구분하였다. 상품에 해당하는 수행자들은 욕계를 벗어나 윤회의 사슬이 없는 곳으로 왕생하기 때문에 미륵신앙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라 경흥의 미륵사상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경흥은 『삼미륵경소』, 『미륵상생경요간기』에서 미륵신앙을 상중하 삼품三品으로 나누어 원효의 해석과 차이를 두었다. 경흥은 미륵신앙의 근본경전(미륵삼부경: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을 주석하였다. 경흥의 성은 수씨水氏이고. 웅천주熊川州 사람이다. 18세 때 출가하여 삼장三藏에 통달하고 이름을 신라 전역에 떨쳤다. 681년 문무왕(재위 661~681)이 임종 직전에 국사로 모실 것을 유언하였으므로 신문왕(재위 681~692)이 국로國老로 봉하였다. 그는 수행자의 근기와 선업공덕이 모두 다르므로 그에 따른 구제방편에도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과거의 업에 따라 상생과 하생으로 차별되어 각각 태어나는 곳이 다르고 인과가 다르므로 『미륵삼부경』이 있다고 하였다.
경흥이 이러한 『미륵삼부경』을 설법한 대상은 성자聖者와 이생異生이다. 보살을 뜻하는 성자는 이 세상의 보살을 위한 것[爲此方普薩]과 다른 세상의 보살을 교화하는 것[化他方普薩]을 뜻한다. 『상생경』에서 “여래가 백억 다라니문을 말씀하시면 미륵보살은 곧바로 증득한다.”, “여래가 십선의 과보를 설하자 시방보살이 수능엄삼매를 얻었다.” 여기에서 미륵보살과 시방보살은 여래의 설법으로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성자는 덕이 높은 고승을 존칭하며 번뇌(유루有漏)를 끊을 수 있는 무루혜無漏慧를 일부 성취한 승려를 말한다.
범부凡夫는 성자와 반대개념이다. 석가모니로부터 아직 보살수기를 받지 못한 시절 미륵의 이름은 아일다이고 범부에 속했다. 이들은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 한다. 이생은 이들이 번뇌에서 벗어날 때까지 계속 윤회하는 삶을 뜻한다. 이생은 각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 깨달음에 차이가 있으며, 삼품三品 수행을 한다. 이중 상품수행은 관불삼매觀佛三昧를 수행하고 여러 죄를 참회하여 부처님께서 몸을 드러내실 때 미륵보살을 친견한다. 중품수행은 관불삼매를 수행하고 정업을 닦아 죽은 후에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을 친견하는 것이다. 하품수행은 보시와 지계 등 갖가지 선善을 실천하고 미륵을 친견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죽은 후에 업보에 따라 다음 생을 받아 미륵이 하생할 때 용화삼회에 참가한다.
그러나 위의 승려가 왕생하고자 하는 도솔천은 불교의 삼계 중 욕계의 천상도에 속한다. 욕계의 인간도에서 생을 마친 중생이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선업의 공덕으로 다시 왕생한 세계이다. 즉 이들은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도솔천에서 생을 다하면 또 다시 윤회하여야만 한다.
4세기 석도안부터 6세기 지의대사, 7세기 현장법사까지 유명한 고승들이 죽은 후 모두 도솔천에 상생하기를 희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이들의 역경사업과 법화삼매 수행은 중생의 번뇌를 끊고 무루혜를 성취하기에 부족하였을까? 결국 이 부분은 필자의 연구력이 아직 부족하여 이번호에서는 문제 제기만 하였다. 따라서 이 부분은 필자가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가섭존자와 일승
그렇다면 윈강석굴 미륵불감의 협시 승려는 과연 소승불교의 성문승과 연각승에 속하는가? 아니면 대승불교의 보살승에 속하는가? 성문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이행하여 아라한과의 증득을 최고 목표로 하는 승려 집단이다. 대가섭존자(사진 3)는 4대 성문과 함께 성자聖者에 속한다. 4대 성문은 군도발탄존자, 라후라존자, 대가섭존자, 빈두로존자(사진 4)이다. 이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기를 받았지만 열반에 들지 못한다. 이들은 미륵보살이 하생하고 성불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연각승은 대중을 외면하고 싯타르타 왕자처럼 홀로 고행하며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승려를 말한다. 보살승은 육바라밀을 행하고 솔선수범하여 이타행을 취하는 승려들을 말한다, 『법화경』은 위의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은 자신의 성향과 근기에 따라 그 길을 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 삼승은 결국 법화를 상징하는 진실된 깨달음인 일승一乘으로 종결되어야만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윈강 5굴 서벽(『고경』 제120호 사진 8), 윈강 26굴 서벽(『고경』 제121호 사진 1) 미륵불감의 협시승려는 석가모니 제자 중에 번뇌를 끊지 못했지만 자신의 선업공덕으로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연각승일 것이다. 그러나 성문승 대가섭존자는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지만 미래세에 미륵이 출현할 때까지 홀로 기다렸다가 석가모니의 법의를 전달하는 명을 받는다. 법의를 전달한다는 의미는 불법의 정통성이 석가모니에게서 미륵으로 승계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이를 수행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 못하는 보살승의 이타행을 실천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을 몸소 실천한 승려가 대가섭존자라고 생각한다. 가섭존자는 다음 호 하생신앙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룬다.
<각주>
(주1) T. 2059/352/b13-15; T. 2059/353/b27.
(주2) T. 2059/356/b25-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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