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및 특별기고]
성철선사 상당법어 『본지풍광』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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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탁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21:32 / 조회1,794회 / 댓글0건본문
특집 | 성철대종사 열반 30주기 추모 학술대회 : 제2주제
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1.
성철性徹 선사는 1912년에 태어나 1936년(25세) 동산東山(1890~1965)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득도得度하여 사미沙彌가 되고, 1937년(26세)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그러는 동안 많은 수행과 법문과 교화에 힘쓰다 1993년 11월 4일(82세)에 입적하셨다.
선사가 활동했던 지난 세월,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선사가 사문으로 출가 생활을 시작한 당시 한반도는 일제강점기로, 조선 전래의 불교 역사, 사상, 의례, 출가자의 공동체 생활, 재가자의 신앙 등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조선 이래 전승된 교육 시스템인 강원은 동력을 잃어 갔고, 승가 공동체에는 대처승이 공인되는 변화가 있어 참선 수행 공동체는 해체되어 갔다.
해방 후, 이 모든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밀려들었다. 1962년 5월 <불교재산관리법>의 공표로 그 법에 따라 1962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소위 화동和同의 교단을 구성했지만, 내적 갈등은 여전하여 끝내는 법정 공방으로 치달았다. 1969년 대법원이 조계종의 종권이 비구승에게 있음을 판시함으로써 대부분의 다툼은 가닥이 잡혀 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종단에서는 총림叢林 제도를 정비했으니, 그때가 바로 1966년(55세), 김용사에서 해인사 백련암으로 수행처를 옮기고 이듬해 해인총림 방장으로 추대되던 때이다. 그 이전에는 「성철선사 연보」에서 볼 수 있듯이 수행처를 여러 곳으로 옮겼다. 범어사 금어선원에 시작하여 20여 곳 이상이 넘는다.
1967년(56세)에 ‘해인총림’ 방장으로 자리를 앉으면서 그동안 여러 도량에서 수행했던 성철선사의 수행 살림살이가 상당법어上堂法語를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상당법어를 책으로 묶은 게 바로 성철선사법어집性徹禪師法語集 『산山이 물 위로 간다-본지풍本地風光』(원택 엮음, 불광출판사, 1982)인데, 이 책의 「후기」에 원택스님은 이렇게 쓰고 있다.
“큰스님께서 해인총림海印叢林 방장方丈으로 주석住錫하신 1967년부터 지금까지 주로 총림의 정진대중精進大衆을 위해 말씀하신 법어 가운데서 상당법어上堂法語만을 정리하여 이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성철선사의 많은 책 중에서도 필자가 1967~1982년 사이의 상당법어집인 『본지풍광』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사에게는 선승들의 화두 수행을 지도하고 점검하는 스승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런 지도 행위의 한 형태가 ‘상당법어’이기 때문이다. 둘째, 조계종의 정체성 규정에 ‘상당법어’ 시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송광사가 ‘조계총림’으로 승격되던 1969년 봄부터, 구산수련九山秀蓮(1909~1983) 선사에게도 입적하던 1983년까지 약 15년에 걸친 상당법어집 『구산선사九山禪師 상당법어上堂法語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있음을 밝혀둔다. 구산선사가 성철선사보다 세납은 9세 위이고, 상당법어는 성철선사가 2년 먼저 실시했다.
2.
선불교 전통의 상당법어의 형식을 먼저 말해 보려고 한다. 전래의 일반적 형식을 먼저 말해 보기로 한다. 선사가 출가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아 방장으로 초대되면 대중을 향한 요즈음의 공개강좌에 해당하는 ‘보설普說’을 한다. 이때 자신은 누구의 법을 이어받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깨침을 얻었는지, 소위 염향사법拈香嗣法과 득법기연得法機緣을 밝히게 되어 있다. 현재 불교계에서도 많이 읽히는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에도, 또 『태고록太古錄』에도 ‘보설’이 실려 있다.
그러면 성철선사의 ‘사법’과 ‘득법’은 어떠한가? 성철선사는 누구의 법을 이었는가? 또 어떤 계기(다른 수행자와의 대화, 또는 화두 참구, 또는 상황)로 선적 체험을 했는가? 물론 ‘득법’에 관한 이야기는 『선요』처럼 일목요연하게 본인이 정리해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성철선사의 여러 법문이나 강의를 담은 서적을 통해 독자들이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런데 본 발표자는 ‘사법’에 대한 성철선사 자신의 언급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성철선사의 ‘사법’이 궁금한데, 이런 궁금함은 구산선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가설인데, 성철선사는 ‘스승 없이 선 수행’을 한 것이 아닌가? 설사 스승 내지는 좌선의 외형적 자세 등을 일러주는 스승은 있었더라도, 소위 ‘제자의 선 체험을 점검해 준 스승’은 없었던 게 아닌가? 성철선사는 스승에게 ‘점검 받는 인가’의 방식이 아닌, 옛 선배 조사祖師께서 남긴 말씀 즉, 어록을 통해 스스로 점검한 것이라는 걸 이번 학회에서 발표했다.
선종의 전통에서는 제자는 자기의 체험을 스승에게 점검하는 방식으로 사법嗣法하는 것인 전통인데, 성철선사는 그것을 스스로 하는 과정에서 화두가 제대로 들리는지 점검하는 방법으로 ‘동정일여·몽중일여·오매일여’를 활용한 것이 아닌가? 즉, 어느 경우에나 화두가 한결같이 들리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이렇게 화두를 항상 참구하고, 그렇게 하여 뭔가의 선적인 체험이 생기면 그 체험이 선종 역대 조사들이 전하는 제대로 된 체험인지를 확인하는 점검이 필요하다. 이건 발표자 생각이지만, 당시 불교계의 상황으로 그런 점검을 해 줄 선사가 없었다고 본다. 부득이 성철선사는 역대 명안 조사들의 어록으로 자신의 선 체험을 스스로 점검했다. 성철선사는 해인총림의 방장으로 초빙되기 이전의 긴 세월, 여러 암자와 선방 수행 생활에서 체험하고 확인했다고 생각된다.
이미 성철선사에게는 화두 수행을 통해서 깨침을 얻었고, 그 깨침을 역대 조사의 선어록 독서를 통해 자신의 깨침이 역대 조사들의 깨달음 전통과 상응함을 확인했을 것으로 본 발표자는 추측한다. 『선문정로禪門正路』에 인용된 여러 서적과 이론들이 이런 추측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한편, 성철선사는 ‘돈오돈수’의 사상을 잘 드러낸 역대 선사들의 어록을 가려 뽑고, 그것을 제자 원택스님에게 한글 번역 보급을 당부하고, 출판에 즈음하여 전체 책의 이름의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라 붙였다. 성철선사 자신은 이런 책들을 ‘본래의 거울’ 즉, ‘고경古鏡’으로 활용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독자들에게도 이 책들을 거울로 삼아 스스로 자신의 화두 참선 체험을 스스로 점검하라는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상당법어집인 『본지풍광』은 성철선사의 출가 수행 생활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수행자를 지도하는 현장 기록이다. 이 책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성철선사는 『선문염송집』을 활용하여 상당법어를 한다. 안거 수행의 시작과 끝에 참선 대중에서 화두 수행을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를 당부하기도 하고 또 수행을 점검했는데, 그 점검을 상당법어로 시행했다. 구산선사도 이런 방법을 활용했다. 다만 두 선사 사이에는 독서의 범위와 ‘정신’이 달랐다고 생각된다. 독서 범위는 차치하고 ‘정신’만 말해 보면, 구산선사는 송광사 전통의 보조와 혜심의 선사상을 이어 가려는 ‘계승’ 정신이 철저했던 것으로 보이며, 성철선사는 평소에 주장하던 ‘돈오’ 정신에 철저했던 것으로 보인다.
3.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경덕전등록』과 『선문염송집』은 선종 승과僧科 시험과목으로 채택되고, 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승의 교육과 수행에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이런 전통 속에서 ‘전등’과 ‘염송’을 염롱拈弄하지 못하고서는 소위 ‘지도급 선사’라 할 수 없다.
조선시대 이래 지금에 이르도록 많은 선사가 『선문염송집』을 독서하고 수행에 활용했는데, 대표적으로 세 사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선문염송집』이 고려 말 진각혜심眞覺慧諶(1178~1234) 선사에 의해 편집되자, 그의 제자 각운覺雲 선사가 이 책에 주석을 붙였으니 이것을 『염송설화』라 한다. 『선문염송집』에 나오는 화두를 설명한 것이다. 둘째는 『선문염송집』과 『염송설화』를 대상으로, 이 두 책의 내용을 평가적으로 해석하고 코멘트를 붙이는 일종의 주석서가 나왔으니, 이것은 백파긍선白坡亘璇(1767~1852)의 사기私記이다. 셋째가 지금 필자가 소개하는 『본지풍광』이다. 성철선사의 『본지풍광』은 주로 『선문염송집』에서 상당법어의 자료를 가져왔다.
이상의 세 사례의 특징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고려 초 각운선사의 경우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에 등장하는 화두의 출전을 밝히기도 하고 때로는 화두에 붙은 염拈이나 송頌 등을 이치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벽암록』의 체제로 비교한다면 평창評唱과 형식이 유사하다. (2) 조선 후기 백파선사의 경우는 ‘임제의 삼구三句’라는 ‘백파 자신의 공식’을 활용하여 화두와 그 화두 붙은 염拈이나 송頌을 ‘차등화시켜 해석[판석判釋]’하고 있다. (3) 현대의 성철선사의 경우는 필자의 기존 연구에서 이미 밝혔듯이 “화두 참구를 권하여 학인들이 자신의 본분을 스스로 체험하게 했다.”고 본다.
상당법어는 3단락 구조로 구성되는데, 제1단락에서는 법의 주제를 청법 대중에게 제시하고, 제2단락에서는 그렇게 제시된 주제를 대중들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또는 제대로 알게 하려고 역대 선사들의 화두와 기연을 활용한다. 그러면서 사이사이 이렇게 ‘활용ʼ한 조사의 언구言句조차 성철선사는 자신 짧은 착어로 자취를 털어버린다. 마지막 제3단락에서는 이제까지 성철선사 자신이 인용한 옛 조사의 언구 및 지금까지 자신이 수행자를 지도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에 집착하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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