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기도]
“이 문턱을 넘어서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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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야행 / 1998 년 3 월 [통권 제9호] / / 작성일20-05-27 01:52 / 조회11,224회 / 댓글0건본문
조반야행
"큰스님을 생각하다 보니, 고인이 된 우리 대장보살 대혜심 보살 생각이 나서 그리움이 한이 없다. 보살은 성전암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랜 친구같이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였다. 본받을 것이 많아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장보살과 성철스님의 인연 이야기를 들어 보고는 여러 가지 느끼는 바가 많이 있었다.
큰보살과 대장보살이 처음 만난 것은 6.25 직후 큰스님께서 오랜 산중 생활에서 생식과 어려운 정진을 하다가 산중 밖으로 나오셔서인지 몸이 조금 불편해서 병원에 입원하신 일이 있었다. 그때 보살이 처음으로 큰스님을 친견하러 갔는데, 큰스님께서는 첫 말씀이 “이 절 저 절 돌아다니면서 중 평이나 하다가 이제는 나를 달아 보려 왔냐? 그래 몇 근이나 되는지 달아 보아라” 하시니 보살이 놀라서 무의식중에 절을 하고 그 순간부터 인생관이 달라졌다고 한다. 큰스님의 말씀을 따르고 큰스님이 시키는 대로 어려운 용맹정진을 수행하고 극진히 시봉하였다. 도반들을 내 몸같이 아끼고 솔선수범하다 보니 어느 새 도반들은 대혜심 보살을 대장보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장보살과 몇몇 도반들이 다대포에 있는 D대학 노총장님 별장에 큰스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누구도 큰스님이 왜 오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날마다 총장님이 마당을 걸어 다니는 모습은 보았지만 한 번도 큰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큰스님께서는 대장보살에게 전화를 하셔서 갑자기 내일 아침에 떠난다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가보니 벌써 아침공양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스님, 갑자기 웬일이십니까?”하고 여쭈었더니 “볼일을 다 봤으니 가야지” 하신다. “무슨 볼일을 다 보셨습니까?” 하니 “어제 저녁 때 총장과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총장 한 사람과 대화가 이루어졌다면 천명 만명과 대화한 것보다 더 좋은 일이지. 그 한 사람의 영향은 헤아릴 수 없거든. 어제 오후에 저 마당 끝에 있는 둥구나무에 둘이 걸터앉아서 이야기를 했지” 하시면서 시자스님을 보고 떠나자고 일어서시니 우리 도반들은 어리둥절해서 어쩔 줄 모르고 따라나섰다. 문밖에는 택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전송을 하려고 하니 스님께서는 “이 문턱을 넘어서지 말라” 하시고는 택시를 타고 떠나셨다.
그 후 총장님께서는 다대포 별장의 옥상에 법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고, 책상 위에는 항상 보현행원품과 금강경을 놓고 보셨다고 한다. 지금은 큰스님, 총장님, 대장보살이었던 대혜심 보살님이 모두 떠나셨다. 그때를 회상하며 이 글을 쓰니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큰스님께서는 항상 많은 도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깨우쳐 주셨다. 막대기 하나는 끊기 쉬워도 여러 개를 묶은 막대 덩이는 끊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셨다.
어느 때 아비라기도 중에 몇몇 보살이 신심을 내어 3천배를 하기로 하였다. 이천배까지는 겨우겨우 했는데 도저히 더 할 수가 없어서 몇 사람이 빠져나갔다. 나도 쩔쩔매다가 신발을 신고 가려 하는데 큰스님께서 언제 어디서 보셨는지 그 큰 팔을 펴시고는 “안돼” 하면서 가로막고 계신 게 아닌가. 그래서 절뚝거리면서 다시 올라가 삼천배를 무사히 마친 적이 있다.
언젠가는 큰스님 생신을 맞이하여 큰보살의 발심으로 생일기도를 시작했다가 큰스님이 아시고는 노발대발 화를 내며 야단을 치셨다. 얼마나 야단을 맞았는지 모른다. 그 후 우리들은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2월 기도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어느 때는 기도 중에 서울의 어느 보살의 사위가 고등고시에 합격하였다고 연락이 왔다. 무척 기뻐서 수박을 몇 점 사 올려 기도 대중에게 한턱을 냈다. 모두들 신나게 먹었는데, 큰스님께서는 “먹은 사람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 더운 날에 수박 지고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은 생각해 봤나?” 하셨다.
그 밖에도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에 사무치는 가르침이 너무나 많아서 무엇부터 떠올려야 할지 앞뒤가 서지 않는다. 이제 그 가르침을 어디서 또 듣겠는가. 그렇지만 백련암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만 들어서도 마음이 꽉 차 옴을 느낀다. 그것은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상좌스님들의 올곧은 수행이 백련암을 가득 매우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벌써 초여름으로 가고 있다. 그렇지만 가야산 깊은 골에 자리한 백련암에는 이제 꽃이 한창일 게다. 어서 그 도량으로 달려가 큰스님이 항상 계시는 고심원에 엎드려 지극한 삼배를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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