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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기도]
아내에게 바친 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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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8 년 6 월 [통권 제10호]  /     /  작성일20-05-06 08:33  /   조회10,57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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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일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일상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은 매일 반일게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지도를 놓고 한참을 들여다 봐도 마땅한 곳이 없다. 길어봤자 4박 5일, 평범한 우리들에겐 그 이상의 휴가도 없지 않은가. 이때, 솔바람 물소리에 마음을 붙들어매고 벽과 마주 앉는 사람들이 있다. 비오 듯 땀을 쏟고 다리를 절룩이며 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진한 땀 내음을 함께 맡으며 앉은 자리, 섯는 자리에서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매년 여름·겨울방학과 휴가철이 되면 해인사 백련암에서도 그 환희의 날들이 한 달 여 이어진다. 수련회를 무사히 마치고 그 감회를 기록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부

 

 


 

 

주창길

 

너무도 부끄럽고 가슴이 시려서 지금도 떨리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 때에 자신의 모습이 이토록 초라하리라고 느끼기나 했겠습니까. 숱한 시간의 흐름 속에 그저 자신의 당위성만 내세우기에 급급했고, 애시당초 아내의 말이나 주위의 권유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성기였을지도 모를 일련의 시간들이 지날 즈음, 제 생활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굽힐 줄 모르는 제 성격만큼이나 잘 되어 가던 그간의 사업들이 까닭 없이 하나하나 기울고 말았습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실업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절에서 하는 수련회라도 다녀오면 훨씬 마음이 편할 것이라며 수련회 참가를 종용했지만 제겐 도리어 남을 원망하는 독한 마음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아들만이라도 수련회를 다녀오라며 권했습니다. 지난 여름, 수련회를 다녀온 아들 녀석은 자주 어른티를 내면서 저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세등등한 가장이 졸지에 아내와 아들로부터의 협공에 꼼짝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저토록 내 아이를 변하게 했을까 하는 의문과 갈등 속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겨울 수련회에 동참하게 된 것이 지난 1월의 일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겪는 절 생활에 조금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수련회 첫날, 어디에서고 삼배도 안 해 본 사람이 삼천배의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들 녀석도 한 수련회인데…’ 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조금씩 백련암의 분위기에 젖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 절대 금하는 통제망을 무사히 뚫고 주차장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에 서게 되었습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울리자 제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뜻밖에도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 있다면 아내라고 여겼을 정도였는데, 왜 그렇게 고마워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이젠 알 필요가 없습니다. 더 큰 삶을 위하여 수련회를 하면서도 아내만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제겐 새로운 세상을 얻게 해 준 수련회였기 때문입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아들 녀석이 그랬듯이 집에 계신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했습니다. 아쉽게도 부처님과의 맞 삼배였지만….
이젠 저희 집에 보배가 세 개로 늘었습니다. 늘 아침이면 아내와 아들과 함께 원상을 마주하고 일과를 하는 좌복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천한 중생이 어엿한 가정으로서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스님들과 법사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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