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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산책]
푸른 구름 속에 법당이 숨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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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7 년 12 월 [통권 제8호]  /     /  작성일20-07-14 15:05  /   조회11,34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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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표 /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도전(1337~1398)은 고려말과 조선 초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고려시대에 정신세계의 토양을 갖추었고 조선시대에 그 뜻을 펴려고 한 인물이다. 그는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불교를 배척하는 글을 많이 지어,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였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끝없는 정치싸움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여, 그의 마음 속에는 불교를 사랑하고 동경하는 시를 많이 지었다. 아울러 스님들과도 많은 교류의 시를 지었다. 다음 시는 고헌화상(古軒和尙)을 심방하러 가는 도중에 느낀 것을 시로 읊은 것이다. 

 

 

訪古軒和尙途中 고헌스님을 방문하는 도중 

荒波不盡路無窮(황파불진로무궁) 황량한 언덕길 가도가도 끝이 없고,

雪滿山深落日風(설만산심락일풍) 눈 쌓여라 산 깊어라 해는 져서 바람이네.

始聽鍾聲知有寺(시청종성지유사) 종소리를 듣고서야 절 있는 줄 알았으니,

房櫳隱約碧雲中(방롱은약벽운중) 푸른 구름 저 가운데에 법당이 숨었구나.

 

앞의 두 구는 절을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한 것이고, 뒤의 두 구는 절이 있는 곳을 그려낸 것이다. 황량한 언덕길은 실제의 길일 수도 있고 도의 본체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눈도 쌓인 길이며, 산이 깊은 곳이며, 해는 져서 바람일어 찾아가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을 우리는 찾아가기 힘들 뿐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 알기도 힘들다.

단지 절집의 종소리를 듣고서야 절 있는 줄 알았으니 이것은 찾으려고 애쓴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푸른 구름 저 가운데 법당이 숨어 있는 것처럼 진리의 세계도 있다고 듣기만 하였지 구름 속에 있는 것을 깨달음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이상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현실주의자다. 현실에 대한 집념이 강할수록 이상에 대한 동경이 강하다. 그는 고헌화상의 세계를 통하여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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