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큰스님 추모 기사]
중생의 허망한 꿈을 깨우고 수행자의 길을 밝히신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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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스님 / 1998 년 3 월 [통권 제9호] / / 작성일20-05-06 08:36 / 조회11,138회 / 댓글0건본문
큰스님이 가신 지 벌써 다섯 해, 오늘은 스님의 생신날입니다. 이 날을 축하해 주러 오신 여러 스님들과 불자님들, 감사합니다.
원래 음력 2월은 불교의 사대 기념일인 부처님 출가재일(8일)과 열반재일(15일)이 함께 들어 있는 달입니다. 생로병사의 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에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깨침을 이루시고 중생을 제도하시고 열반에 드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인연을 되새겨 보는 달입니다. 또한 큰스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후에는, 스님께서 우리에게 오셨던 참뜻이 무엇이었던가를 반조해 보는 달이기도 합니다.
큰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늘에 실천하시고 우리에게 몸소 가르치셨기에 스님의 탄신일은 우리에게 부처님 오신 날 다음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스님은 평생 생일 축하를 받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오히려 마음속에 생일날이 없으셨는지도 모릅니다. 마흔 해 전 천제굴에 주석하실 때의 일입니다. 당시 스님께서는 귀신을 잠재우는 도인으로 알려져서 주변 각지에서 선망 조부모님의 천도재를 지내고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불자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스님의 생일상을 차리려고 찾아 왔을 때의 일입니다. 스님께서는 “출가한 사람은 속가의 생일을 세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공양구를 모두 담 너머로 버리게 하셨습니다. 그 후 열반하실 때까지 단 한 번도 생일상을 받은 일이 없으며, 그 날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도 만나지를 않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육조단경』의 “무념(無念)으로 위종(爲宗)하고 무상(無相)으로 위체(爲體)하며 무주(無主)로 위본(爲本)이라”는 말씀과 “항상 자기의 허물을 살피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다(常自見己過하고 不見世間過니라)”는 말씀을 자주 인용하여 강조하셨습니다. 곧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볼래야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참으로 도를 깨친 사람이라는 말씀을 항상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마도 자신의 생일을 보지 않고 사신 분이어서 생일날을 세지 않으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글은 스님께서 직접 기록한 것으로 이 사바세계에 오신 뜻을 설명하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1947년(정해년) 가을에 나는(36세) 크나큰 환상을 안고 문경 봉암사로 갔었다. 우봉스님은 사찰 운영의 전 책임을 지고 보문스님은 10년간 장경 수호에 진력하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이었다. 자운스님과 법웅 수좌도 함께 왔었다. 주지로는 보안 노장을 모시고, 십여 대중이 동거하였다.
그러나 칠성각의 철폐, 일반 불공 및 기재(忌齋)의 거부 등으로 막심한 식량난에 빠지게 되어 우봉스님의 노력으로 군에서 다대한 양곡 특배를 얻어서 임시 모면을 하였다. 자운스님은 율장 연구에 여념이 없었고, 신춘(新春)이 되어 월산스님 기타 몇 스님들이 더 입주하였다. 나는 하기(下記)의 공주규약 초안을 대중에게 제시하고 상세한 설명을 가하였다.
고불고조의 유칙(遺勅)을 완전하게 실행한다 함은 불조 교법이 전연 민멸(泯滅)되었으니 다소간이나마 복구시켜 보자는 것이 주안점이었다. 그러고 교법 복구의 원칙하에 나의 수시제안이 있을 것인 바, 그 제안에 오점이 발견되지 않는 한 대중은 무조건 추종할 것을 재삼 다짐하고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전 예배부터 연습하게 되니, 그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대중 전체의 과감한 노력으로 그 성과는 일취월장하였다. 발우는 자재 관계상 당분간 보류하였으나 기타는 대개 구비하게 되었다. 자운스님은 보조장삼을 상세히 보기 위하여 송광사까지 갔다 오고, 육환의 원형은 법웅 수좌가 손수 팠다.
큰스님께서는 우리가 한 장씩 찢어버리는 일력에 이 글을 적어 두셨습니다. 일력의 날짜가 서기 1965년 8월 22일 토요일이니, 운달산 김용사에 주석하시던 때입니다. 그 해는, 스님께서 팔공산 성전암의 만 십년 주석을 마감하고 김용사에 이주하여 처음으로 대중법회를 열고 대불련 학생에게 설교를 하시고 청담스님․석호스님 등 옛 도반 스님들을 만나시던 때이며, 해인사로 자리를 옮기기 1년 전입니다. 또한 그해 봄에 동산 노스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휴지 한 장도 아껴 쓰신 스님의 모습이 담긴 글이라 생각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큰스님 생일날을 앞둔 요 며칠 전, 스님 생각 간절하여 스님의 유품을 살펴보다가 특별히 이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글을 다시금 꼼꼼히 읽어보니, 스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과 평생 생일을 세지 않으셨던 이유가 이 글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아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결국, 스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허망한 꿈을 깨우기 위해 오신 것이며, 속스러운 흉내를 내는 것은 수행자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실천해 오신 것입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생일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찍이 해인사 주지직도 사양하고 맡지 않으셨으며, 해인총림과 방장 직도 불교의 교단과 교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당시 청담․자운․경산․영암스님 등 교계 원로스님들의 간청으로 해인사에서 열린 임시 종회에서 추대된 것입니다. 그리고 총림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지휘 전권(全權)을 방장이 맡아야 한다고 하며 주지 임명권도 부여되었지만, 단 한 번도 스님의 상좌를 주지로 앉히지 않으셨습니다.
게다가 종무 행정의 주요 삼직(三職)도 보지 않도록 배려하셨습니다. 또한 종단의 최고 책임직인 종정도 종단과 종도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종도들의 권고에 마지못해 맡으신 것이며, 한 번도 산문(山門)을 벗어나 종무행정에 관여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취임 인사하러 오는 총무원장에게는 첫째, 불교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말라. 둘째, 기본 재산을 축내지 말라. 셋째, 부채를 지지 말라는 기본 지침만을 일러주시고 모든 행정은 원장의 재량에 맡기고 일체 간섭하지 않으셨습니다.
한마디로 큰스님의 삶은 철저한 개인 부재의 일관된 연속이었으며, 종단을 위한 헌신이셨습니다. 그래서 해인총림을 세우고 열반하실 때까지 오로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시고, 불교의 기틀을 재정비하시고, 불교의 위상을 재고하는 일에 공헌하신 것입니다. 종정으로 계실 때도 언제나 개인의 존재를 돌보지 않으셨고, 또한 자신을 위한 명리나 접대는 철저히 초연하셨으며, 세속적인 욕심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으시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큰스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가르침을 어찌 한두 마디 말이나 행동으로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 모인 우리에게는 스님의 가르침을 이 땅에 길이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수행자는 수행자 나름의 몫이 있고, 재가 불자는 재가 불자 나름의 몫이 있습니다.
세월이 무상하여 스님 가신 지 다섯 해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스님의 업적이 퇴색되어질까 두려움이 앞섭니다. 스님의 고심(古心)이 항상 머무는 이 도량에서 우리 제자들은 더욱 새로운 신심으로 스님의 유훈을 받드는 일에 뜻을 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큰스님의 사리탑 건립입니다. 여러 불자님들은 물론 많은 분들이 물심(物心)으로 도와주시고 참여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문도를 대표해서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견(異見)으로 말미암아 다소 불사가 지연되고 소란스러움이 죄송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큰 결실을 이루는 과정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 또 다짐합니다.
올해는 경제난국으로 모든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큰스님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맞아 부처님과 큰스님의 더 큰 가호가 항상하시기를 기원 드리옵니다.
오늘을 축하해 주러 오신 불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불기 2542년 음 2월 19일
천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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