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및 특별서평]
새로 나올 책을 소개합니다 / 윤회의 자아와 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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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8 년 6 월 [통권 제10호] / / 작성일20-07-14 18:25 / 조회13,178회 / 댓글0건본문
정승석/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교수
이 책은 1997년도 성철선사상연구원에서 실시한 학술연구비 지원사업 중 저서 부분에 선정된 책입니다. 정승석 선생님은 1년 여의 연구 기간을 통해 불교 교리 연구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인 자아와 무아, 업과 윤회를 8장으로 나누어 연구하였습니다. 저자의 서문을 고경 독자분들에게 미리 소개합니다.
자아와 무아, 업과 윤회는 불교 교리 연구의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주제로서 논의되어 왔다. 국외의 연구 동향도 이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특히 무아설과 윤회설의 관계에 대해서는 기존의 연구 결과가 두 가지 관점으로 귀결된 상태로 머물러 있다. 보다 일반적 경향은 무아설이 불교의 본질이자 원의(原義)를 대변하고, 윤회설이 대중 구제의 방편으로서 설시(說示)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의 라다크리슈난과 일본의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를 대표로 하는 두 학자는 불교의 무아설이 인도 전통의 자아관을 수용하면서도 후대에 그것과의 차별을 지향하는 데서 전개된 사고라고 결론짓는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무성한 고찰과 논의가 전개되었으나, 무아설과 윤회설의 양립을 직접적으로 취급하여 보다 선명한 견해를 제시한 연구는 드물다. 특히 국내에서는 이 문제에 중점을 두어 심도 있게 고찰한 연구가 거의 없는 편이다. 이 점에서는 국내의 연구 동향이 난해한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받을 만하다.
이 책에서는 무아설과 윤회설의 양립을 직접 취급하고자 한다. 이 문제의 접근하는 시각은 이 책의 제목으로 천명되어 있다.
윤회설과 무아설의 양립은, 윤회의 주체로서 인격의 동일성을 담보하는 자아가 항존함을 인정하여야만 윤회도 성립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데서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무아설은 그러한 자아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성립한다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불교에서 윤회설은 무아설과 상충한다 점이 쟁점으로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이 쟁점에서는 앞서 말한 윤회의 전제가 불교의 경우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간과되어 있다. 불교의 윤회설은 상주(常住)하는 자아를 필수 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윤회설에는 상주 불변하는 자아가 있어야만 윤회가 이루어진다는 시각과 그러한 자아가 없어도 윤회가 이루어진다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전자는 힌두 사상 일반의 윤회설이고 후자는 불교의 윤회설이다. 이 책에서는 전자를 ‘유아(有我) 윤회’라고 칭하고 후자를 ‘무아(無我) 윤회’라고 칭한다. 따라서 ‘윤회의 자아와 무아’라는 주제로 이 책에서 고찰하고 있는 것은 유아 윤회와 무아 윤회에 내재되어 있는 사고 방식이다.
불교 본래의 입장에서는 사후 존재의 유무가 일차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이와 연관되는 모든 문제는 현존하는 인간이 세속적 욕구를 극복함으로써 저절로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 윤회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할애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속의 관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고통을 야기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과 이로부터의 해방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행위, 즉 업의 전환을 통해 자기개조가 가능함을 세속의 통념으로써 자각하게 하려는데 불교 윤회설의 의의가 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윤회는 사후 세계의 양태를 궁극의 관심사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세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자기 개조 또는 변신을 권유하는 인과의 논리이다. 이 점에서 윤회는 막연히 기대해도 좋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질과 양태가 변하는 일상 현실에서도 인간이 직접 체험으로 겪고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업,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의 의식이 윤회의 다양한 양상을 결정한다.
여기서 윤회의 다양한 양상을 결정하는‘자기 자신의 의식’을 어떠한 존재로 간주하느냐에 따라서 유아와 무아가 쟁점으로 대두된다. 그 존재의 불변성과 상주성을 인정하는 관점은 유아론(有我論)으로 전개되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관점은 무아론(無我論)으로 전개된다. 이는 곧 인간 개체로서의 ‘나’를 이해하는 사고 방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윤회설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은 윤회의 주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무상과 고통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나’의 정체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기’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으며, 어떠한 존재로서의 ‘자기’를 지향해야 바람직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윤회설의 취지이다.
무아설과 윤회설은 불교의 중심 교의로 인식되어 있으며, 특히 윤회설은 불교 신앙에서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는 그 양자의 상충을 납득할 만하게 해명하지 못함으로써, 불교를 전달하는 사람과 신앙하는 사람 모두에게 곤혹스러움이나 혼동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불교의 근본 사상에 대한 오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이 연구는 위와 같은 상황을 해소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로 시작되었다.
특정인의 연구 결과가 전통적인 난제를 완전하게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적어도 오해와 혼동의 폭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며, 아울러 이 난제의 해결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연구를 통해 불교에서 막연하게 통용된 주체 개념의 사상사적 위상을 연기설과 무아설의 정통 노선에 정립함으로써, 무아설이나 윤회설을 평가 절하하는 오해를 불식하고자 한다. 아울러 불교 신앙의 실제에서 윤회설에 대한 교리적 설명의 난점을 극복하는데 이 고찰이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삶의 주체인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의의를 부여하고 싶다.
- 1998년 6월 동악의 연구실에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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