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정심사 영산재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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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5 년 11 월 [통권 제3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817회 / 댓글0건본문
석가모니의 영산회상에 참석해보지 못한 말법중생은 그 회상을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하고 회중은 그것을 통해 옛날의 영산을 그린다. ‘인도 영축산만 영산이 아니다. 어디든 영산이다. 검단산이 영산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정심사 주지스님이 검단산 자락에 야단법석을 차리고 영산회상을 펼쳤다.
전날까지 뿌옇던 미세먼지로 호흡이 곤란하더니 아침에 쏟아진 빗줄기에 콧구멍이 뚫렸다. 다행히도 행사 시작하기 전에 비가 멈춘 걸 보면 주지스님 말씀대로 검단산이 영산은 영산인가 보다. 때는 바야흐로 시월 스무 나흗날, 검단산 단풍신이 영향중(影響衆)으로 강림하여 도량을 종종으로 장엄하는 가운데 영산회상이 시작되었다.
법회가 시작되었거나 말거나 커피타서 마시고 친구 만나 수다 떨고 밥도 먼저 먹었다. 백설기 한 덩이 챙겨 넣고는 떡 들고 가는 보살 졸졸 쫒아가서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두 개 더 얻어서 가방에 불룩이 넣었다. 언제나 염불보다는 잿밥이 먼저다. 배가 차고 나니 소리가 들려온다. 화청이다. “타고지고 타고지고 반야용선 타고지고 가고지고 가고지고 극락세계 가고지고 … 가봅시다 가봅시다 좋은국토 가봅시다 천상인간 두어두고 극락세계 가봅시다” 범패와는 달리 빠른 민요가락에 얹힌 소리가 비구니 스님의 타고난 목청을 타고 듣는 이의 애상을 자아낸다. 이번 영산재를 주관하신 인묵 스님한테 들은 이야기로, 부모가 돌아가시고 재를 지낼 때 숙연하고 조용하던 분위기를 눈물바다로 바꿔놓는 것이 화청이라고 한다. 그럴 법 한 것이, 가사를 듣다 보면 구구절절 불효자의 가슴을 지지는 내용이 나온다. 부모님 생전에 불효한 자식일수록 펑펑 울면서 지갑을 연다고 한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 쏟아지는 눈물의 양과 꺼내는 돈의 액수가 죄책감에 비례할 것이다.
주지스님의 발원으로 세워진 사리전각에 성철 스님 사진이 전시되었다. 생전에 한 번도 스님을 직접 뵙지 못했고 <선림고경총서> 작업했던 인연으로 시자스님들을 통해 들어서 알게 되었다. 선지(禪旨)에 까막눈인 채로 일을 하려니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한 번은 해석 안 되는 부분에 밑줄 그어서 해석해 주십사하고 원택 스님 편에 전해드린 적이 있었다. 얼마 있다가 쪽지에 몇 자 적힌 답장이 왔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백운 청산을 읊은 한시 한 수였다. 문면(文面)으로는 읽히나 도대체 어록의 해당부분과 어떻게 연관이 된다는 건지 깜깜했다. ‘해석을 해달라는데 이게 무슨 암호람. 도인이면 단가. 중생이 알아듣게 설명해야지.’ 하면서 휴지통에 넣었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혼날 상상을 하며 그때의 무지를 한탄한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사진 속의 그분을 만났다.
사진으로 대면한 소감은 ‘도인도 일단 잘생기고 볼 일이다’였다. 도인 났다고 소문났는데 가서 보니 못생겼으면 얼마나 폼이 안 날까, 따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진전을 준비한 친구가 한 컷 한 컷 설명을 해주었다. 수좌들이 가득 앉아있는 가운데 누더기 차림으로 선방을 한가운데를 거니는 모습. 해인사 선방 어느 결제 때 예기치 않게 불쑥 나타나셨다고 한다. 또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시자의 손길을 흐뭇한 표정으로 받고 계시는 사진도 있다. 웃음 띤 얼굴도 있고 짜증 섞인 표정도 있다. 불멸의 순간들이 담긴 편편에 불멸의 누더기가 있다. 꼭 그 누더기 안 입어도 성철 스님은 성철 스님이지만, 그러나 스승을 흠모하며 따라가는 제자들에게는 그 누더기가 필요하다. 색이나 소리로 나를 구하는 자는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구절을, 가르침을 얻어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러나 색과 소리로 영산을 표현하며 여래를 떠올려야 하는 중생에게 영산재가 필요하듯이.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어 떡이 무사한지 확인하며 뿌듯해 하고 있던 차에 영산재 팸플릿과 정심사 소식지가 눈에 들어왔다. 절 입구에서 받아 넣고는 까맣게 잊었는데 무료한 차에 훑어보다가 마음에 점을 찍는 글을 만났다.
‘부러움과 간절함이 인연되어’라는 제목으로 공양주 보살님이 쓴 글이다.
“이 깊은 가을 날, 무성했던 잎사귀를 떨구고 가벼워지는 나무를 보며 인생을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나무에 매달려 있는 메마른 낙엽도 있지만, 바람 한 번에 미련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이 더 보기 좋습니다.” 2000년 경, 정심사 도량에 가을이 완연하던 어느 일요법회의 주지스님 법문 중 제 마음에 잔잔히 남아있는 말씀 일부입니다. 하남에 살던 저는 타 사찰의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초발심에 수행처를 찾던 중 친구의 권유로 정심사에서 삼천배기도와 일요법회에 참석하며 부처님 법을 알아가는 기쁨으로 그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 당시 공양간에는 두 분의 노보살님이 계셨는데 스님께 공양 올리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어떻게 하면 나도 스님공양을 해드릴 수 있을까’ 마냥 부러웠습니다. 그 후 지방으로 이사를 갔고 몸과 마음에 찾아온 불청객으로 작은 암자에 요양 겸 들어갔다가 그 절의 공양주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정심사와의 인연이 아주 멀어진 줄 알았는데 작년 늦가을, 십수 년 만에 다시 찾은 정심사에 공양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부러움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새 공양간에서 맑고 청정하신 우리 스님들과 기도제일 보살님들께 정성을 다하여 공양지어 드리오니 언제나 편안하게 드시길 발원합니다.
-공양주 법연행 합장
그 밑에 – 추운 계절에 어울리는 버섯유부탕을 소개합니다 - 라는 제목으로 재료와 요리법을 소개했다. 요리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한번쯤 만들어보고 싶게 써 놨다.
1. 각종 버섯(표고, 느타리, 팽이버섯 등)을 다지고 두부는 꼭 짜서 으깨고 호박은 채쳐서 소금에 살짝 절여 꼭 짜고 모두 섞어 속을 만든다.
2. 냉동유부는 뜨거운 물에 데쳐 속을 넣고 데친 미나리로 입을 묶는다.
3. 냄비에 배추와 두부, 버섯 등을 돌려가며 담고 표고, 무, 다시마로 끓인 육수를 부어 끓으면 청양고추를 넣다 빼고 소금으로 간한다. 마지막으로 쑥갓을 넣고 불을 끈다.
이 분한테 밥 얻어먹는 정심사 스님들과 신도들, 복 받았다. 소림사 주방장도 이 분에게 질 것 같다. 옛날에 소림사 무술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주방장이 초절정고수라는 게 밝혀지곤 했는데 여기 공양주가 숨은 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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