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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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2020 년 4 월 [통권 제84호] / / 작성일20-05-28 16:09 / 조회6,734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 영남대 교수
지옥에 동백이 피었습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손 들고 찬송합니다
지옥에도 목련화가 집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팔 걷고 내다버립니다
봄이 끝나면 그곳으로 주소를 옮길까 합니다
땅값이 오르기 전, 집 한 채를 사서
지옥을 잘 지키겠습니다
설마 그곳에도 불성이 있겠지요
제가 출가를 하겠습니다
뒷산에다 절을 짓고, 철새에게 백팔배를 가르칠 겁니다
돌들에겐 목탁 치는 법을, 밭 가로 흩날리는 비닐들을 끌어 모아,
참선에 몰두토록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지옥도 불국토라 할 만 하겠죠?
아, 그러면
저 극락이 설 자리는 또 어디인가요?
청도 운문사 내원암 가는 길에
도랑가로 내려가, 물고기 스님 세 분에게 묻는다
물속을 왔다 갔다, 금새 돌 밑으로 숨고
아무도 응대하지 않는다
불멸의 침묵이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구름도 몸이 무거워 밑바닥으로 내려와 눕는다
지옥도 짐이고, 극락도 짐이란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란다
들 것에 실려 떠나는 생각을 본다
내 생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떠나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삭발한 허망을 붙들고 우는 신발을 쳐다보았다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터벅터벅 천국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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