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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스님 추모 기사]
그 해인사 길목에 들국화가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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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1996 년 9 월 [통권 제3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8,35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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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대선사 열반 3주기를 맞으며 - 그 해인사 길목에 들국화가 피어...

  

 원택스님

 

큰스님의 열반으로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헤일 수 없는 애도의 물결이 넘쳐 나던 그 해인사 길목에 호젓이 들국화가 피어 있습니다. 슬픔은 어디로 가버리고 스님에 대한 그리움만 길녘에 그렇게 쌓여 있습니다. 스님 뜻대로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이 천일 넘는 세월만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돌이켜 보면 큰스님 떠나신 후 밀려오는 공허를 채우려고 마음만 급했던 세월이었습니다. 누구나 가까이서 스님 모습을 뵙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님, 성철 큰스님」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5부작을 만들었습니다. 작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성철 큰스님 사진 및 수묵화전」을 개최하여 스님의 모습을 드러내 보기도 하였습니다.

 

 


 

 

뜻밖인 것은 이 전시회로 인하여 스님의 청동상을 3주기 행사 때까지 고심원에 모시는 인연을 만났습니다. 더불어 큰스님 추모 사업을 함에 있어서 예술의 전문가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우쳤습니다. 올 봄에는 백련불교문화재단 부설 「성철선사상연구원」을 개원하여 30여 명에 이르는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학술 논문 용역비 지원 사업을 펼쳤습니다. 이제 사리탑 설계도 완성에 이르러 이 가을에는 착공하려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구시대의 모조품이 아닌 이 시대의 조형 언어로써 문화 유산이 될 것을 발원하면서 여러분들이 애를 써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큰스님께서 바라신 일들이 아니라 스님을 따르는 저희들이 텅 빈 가슴의 공허를 달랠 길 없어 이렇게 해서라도 빈 공간을 채워 보려는 발버둥일 뿐입니다. “하라는 참선 공부는 하지 않고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은 일에만 매달린다”고 질책하시는 스님의 노성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큰스님! 부처님께서도 여덟 섬 너 말의 사리가 나오셨지만, 어디 팔만사천 탑을 세워 불교를 포교하라 하셨습니까?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부처님 덕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하였을 뿐이 아니겠습니까? 부다가야 대탑 앞에서, 청동대불 앞에서, 큰법당 앞에서 우리들은 부처님의 크나큰 가르침을 되새기고 있지 않습니까?” 큰스님을 위해서는 저희들 힘이 부족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후대에 전할 것이 없는 것 같아 송구하고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형상적인 일은 유위(有爲)의 법(法)으로서 한계가 있음을 저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늘 당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자기를 바로 보라. 그러기 위해 참선 부지런히 해라. 남 모르게 남을 돕고, 남을 위해 기도해라. 그것이 참 불공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법음을 실천하는 것만이 큰스님의 뜻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라 생각합니다.

 

“옛날 부처님 법대로 살자 하면서 봉암사 살 때, 청담스님·자운스님·법전이 하고 또 여러 스님들이 탁발 나갔제. 하루종일 탁발해서 짊어지고는 절로 돌아오제. 돌아오다가 다리 쉬엄을 하고 있다가, 우리 이 쌀 절로 가지고 가지 말고 그 동네 제일 가난한 집 찾아서 솥에 부어 주고 가자하면 다들 눈이 둥그래지거든. 지금같이 넉넉하지도 않지, 산골이니 탁발하기도 힘들거든. 그럼 오늘 탁발한 거 다 줘버리면 내일 또 나와야 우리 먹을 거 있제. 그래 탁발이 힘들거든. 그렇지만 우짜노. 각자 흩어져서 가난한 집 찾아 그 사람들 모르게 살짜기 솥에 부어 주고는 달아나듯이 돌아 나오제. 그런데 못사는 집일수록 아이들은 와 그리 많은지, 허허허… ” 혼자 어찌나 재미나 하시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스님께 드물게 보는 자상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모처럼 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우리도 덩달아 신이 나서 스님 다리를 더 열심히 주물러 드렸습니다.

 

스님 열반하신 후 일주기가 다가와서는, 정말 세월이 이렇게나 빠른가 하고 놀라면서 일주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하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신도님들과 일주기 행사를 의논하다가 “스님의 기일이 되었다 해서 제사 한 번 올리는 것으로 스님에 대한 우리의 애틋한 마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하여 마침내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주제를 걸고 칠일칠야 동안 팔만사천배 참회기도를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큰스님 진영 앞에서 단지 큰스님을 추모하는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큰스님께서 평생 우리들에게 일러주신 법문을 잘 실천하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행사를 갖기로 한 것입니다. 정말 일주일 동안 한마음 한뜻으로 스님을 추모하는 많은 분들이 모여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 손수 탁발하신 쌀을 남 모르게 부어 주던 그 자비의 실천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2주기 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칠일칠야 팔만사천배 참회기도에 참여하여 그 열기가 높았지만은 바깥세상으로의 자비의 실천은 공염불에 그친 듯합니다. 중생을 돕는 것이 참불공이라고, 중생을 돕는 것이 부처님께 불공 올리는 것보다 몇 천만 배 비유할 수 없이 그 공덕이 더 크다고 부처님은 항상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큰스님께서는 삼천배를 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참불공하라고 50여 년이나 당부하셨지만 큰스님 말씀 따라 실천하는 사람이 흔치는 않은 듯합니다.

 

큰스님께서 “영원한 생명 속에 무한한 능력이 있으니 자기를 바로 보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들이 참선을 부지런히 하여 마음을 닦아야 다다를 수 있는 머나먼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 당부하신 참불공은 지금 당장 누구라도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올해도 큰스님 3주기를 맞이하여 거창한 구호보다는 큰스님이 당부하신 참불공의 실천을  다짐하는 거룩한 칠일칠야 팔만사천배 참회법회가 많은 사람들이 동참한 가운데 이루어지길 부처님 전에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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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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