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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
꽃다운 정신생명을 느끼게 한 엷은 분홍빛 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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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  1996 년 9 월 [통권 제3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9,34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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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 시인 

 

지금으로부터 이십 몇 년 전의 어느 맑은 날 ― 그것이 봄이었던가 가을이었던가는 잊어버렸지만, 더웁지도 춥지도 않은 때였으니 봄이나 가을 중의 어떤 청명한 날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빛바랜 이 사진을 보고 주름살이 환하게 펴지도록 기쁜 웃음을 지으셨다.

 

 

나는 미리 해인사 백련암에 연락하여 우리 성철 큰스님을 만나 뵈올 날짜와 시간을 받아서 오전 10시쯤에 이 분 앞에 나타나 뵈옵게 되었는데, 물론 그 극진한 이유는 이 분이 불교 공부에서뿐만이 아니라 선(禪)이나 계율 지킴에서도 이때 이 나라의 스님 중의 으뜸이라는 걸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니, 잠시나마 이 분을 찾아뵙고 배우고저 함이었다.

 

내가 이 분 앞에 불교식으로 오체투지(五體投地)의 큰절을 올린 다음에 두 무릎을 꿇고 경건한 자세로 앉아 있노라니, 스님께서는 나직한 소리로 “편히 앉으시오” 하셔서 그 말씀대로 편히 고쳐 앉으며 이 분의 얼굴을 자세히 우러러보니 둥그스름한 얼굴에 그득히 참 평안한 미소를 띠고 나를 보고 계시는 모습이 꼭 오랫만에 만나는 내 친형 같이만 느껴져서 마음이 흐뭇해져 오는 것이었다.
나는 더없이 마음이 솔직해져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서슴없이 여쭈었던 것이 시방도 기억에 새롭다.

 

“저는 육십이 멀지 않은 나이인데도 이쁘게 보이는 여자를 만나면 연연한 마음이 생기는 걸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떠신지요?”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나무래실 줄 알았는데 그러시지는 않고 그 대신 소리를 내어 웃으시더니 “여보시오 서정주 씨” 하고 나직이 부르시는 것이었다.

 

“서정주 씨는 큰 시인이라고 듣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직 모르시오? 아 그러니까 중들은 날이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불도 하고, 불경도 배워 읽고, 참선도 하고, 마음을 바로 닦으며 지내는 것 아니오. 큰 시인라고 하기에 그만큼한 일은 다 알아차려 사시는 줄 알았더니?” 하시면서 또다시 빙그레 웃으시고 계셨다.

 

나는 이때에 나도 모르게 “앗!” 하는 감탄사를 가슴에서 울려내고 있었는데, 그 까닭은 이 큰스님께 해탈한 도인의 모습을 보고 배우려다가 철저하게 성실한 한 구도자(求道者)의 솔직한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는 크게 감동한 때문이었다.

 

우리는 둘이 다 마음이 점점 더 가까워져서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누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지 겸상한 점심상이 들어와서 그걸 같이 함께 나누어 먹고, 그러고 나서는 오후에도 아마 두어 시간쯤 우리의 마음속을 털어놓고 있었는데, 참 이상했던 것은 이때 그의 상반신(上半身)의 주위에서는 아련한 후광(後光)이 일어나서 비치고 있던 일이다. 그 빛은 아주 엷은 분홍빛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빛깔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성인화(聖人畵)들에 나타났던 그 후광들의 빛깔과는 다른 빛이어서 아직껏 그것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성철 큰스님의 앉으신 몸 뒤에 어리었던 그 영원히 청정하게 꽃다운 정신생명을 느끼게 하던 엷은 분홍꽃빛이 실제 후광의 본색이고, 지금까지 화가(畵家)들의 성인화에 나타났던 그것들은 상상으로만 그럴싸하게 덧붙여 놓은 장식일 뿐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서너 시쯤 되어 내가 하직의 뜻을 아뢰자, 이 분은 “잠깐만 더” 하시더니 아래와 같은 당부의 말씀을 역시나 나직하고도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하고 계셨다.

“그러지 말고 여기서 나하고 한동안 같이 지내면서 부처님께 공손히 절이나 해 드리는 게 어떻겠소. 마음을 낮추어서 한 삼천번만 말이오. 그러면 당신의 시(詩) 쓰는 마음도 한결 더 좋아질 것인데……”


그러나 내게는 여러 가지로 보살펴야 할 직책상(職責上)의 일들이 서울에 쌓여 있어서 “당장 여기서는 그 일을 이행하고 갈 수는 없습니다만 서울에 가면 제 집에서 꼭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는 언약을 드리고는 총총히 이 분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 돌아온 뒤에도 교수 노릇을 할랴, 급한 원고들을 쓸랴, 또 무엇무엇을 할랴 등등으로, 그 삼천번 절하기로 한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며 걱정의 탄성만을 울리고 있었는데, 내 아내가 이걸 알고 “내가 당신 대신 해드리면 안 될까요” 하고 나서 주어서 이 일은 또 아내에게 맡길 수밖에 없이 되었다.

 

그래 내 아내는 하루에 백번씩을 꿇어 엎드려 절을 해서 한 달 만에 그 일을 다 해냈는데, 나는 이걸 우리 큰스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것까지도 미루고 또 미루어만 오다가 이 분의 열반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섭섭하고 죄송스런 생각만 내 차지가 되었다.

 

이러는 중에 큰스님의 열반 3주기를 맞이하여 그 옛날의 인연을 보여 주는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내게 그 분의 추모시와 아울러 이 글을 부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가 이것은 또 내 마음이 살아나갈 영원 속에서 이어서 계속해 나갈 것을 우리 성철 큰스님의 영혼 앞에 다짐하고 있을 밖에는 없이 되었다.

 

내 아내에게는 이 글을 쓰고 있던 오늘의 바로 아까에도 그녀의 방에 핀 난초꽃에 내가 대신 물을 주며 이십 몇년 전에 나를 대신해 그 절 삼천번을 해준 데 대해 또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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