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깊은 산 속에서 흰구름 벗삼아
페이지 정보
편집부 / 1997 년 3 월 [통권 제5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6,991회 / 댓글0건본문
인간은 복잡할수록 도시를 떠나고 싶고, 때로는 이름없는 산사에서 질박한 노스님의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오늘은 고려 후기 나옹화상의 「산거(山居)」 시를 통하여, 스님이 생활한 산사의 담박한 맛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白雲堆裏屋三間 흰구름 겹겹이 쌓인 곳에 초가집 하나
坐臥經行得自閑 누워보고 앉아보고 거닐다 한가로움 터득했네
磵水冷冷談般若 바위 틈의 차가운 물 반야(般若)를 설하고
淸風和月遍身寒 청풍(淸風)은 달과 어울려 온 몸을 서늘케 하는구나
이 시의 소재로는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정성이 짙은 사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흰구름’은 속세와 진계(眞界)를 갈라놓고 있는 사물이다. ‘셋간 초가’는 그 속세에 있지만 외딴 곳에 있는 집이다. 흰구름 속에 사는 노승(老僧)의 세계를 이 초가 한 지점으로 집약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노스님은 고답적인 법문을 설하시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은 그저 앉았다 누웠다 하는 평범한 행동일 뿐이다. 산사에서 지내는 스님은 이러한 일상적인 행동에서 ‘스스로 마음의 자유를 얻고 자신의 한가로운’〔自閑〕의 경지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자연의 모든 것이 자신과 합일되는 것을 알게 된다. 차가운 시냇물은 자연의 일상적인 사물이지만 마치 반야경의 깊은 이치를 설하는 듯하고, 시원한 바람과 달빛도 이러한 한가로움을 확산시켜 자신과 어우러지는 것이다. 이것은 도를 깨우쳐 가는 경지를 말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산사의 스님은 일상의 생활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고, 나아가서 자연의 평범한 사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이루는 것이다. 즉 자연물의 서정성과 스님의 일상성이 합쳐져 한정(閑情)의 보다 높은 경지를 이루고 있으니, 우리 모두 산사로 달려가 보지 않으시렵니까.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화마가 할퀴고 간 산청에서 방생법회를 봉행하며
2001년에 성철 종정예하의 출생지에 생가를 복원하고 그 앞쪽에는 대웅전을 지었습니다. 경내로 들어오는 입구쪽에는 2층 목조기와집을 지었습니다. 2층 목조건물 1층 기둥은 직경 40cm가 넘는 돌기…
원택스님 /
-
홍성 상륜암 선준스님의 사찰음식
충남 홍성의 거북이 마을에는 보개산이 마을을 수호합니다. 보개산 숲속에는 12개의 바위가 있고 하나하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산자락의 끝에는 작은 암자 상륜암이 자리하고 있습니…
박성희 /
-
티베트 난민들의 귀의처 포카라의 빼마찰 싸캬 사원
포카라 근교 햄쟈(Hemja) 마을에 자리 잡은 따시빨켈(Tashi Palkhel) 티베트 난민촌 캠프 위에 자리 잡은 빼마찰 사원은 포카라-안나푸르나 간의 국도에서도 눈에 잘 띈다. 사진…
김규현 /
-
하늘과 땅을 품고 덮다[函蓋乾坤]
중국선 이야기 50_ 운문종 ❺ 문언文偃이 창립한 운문종의 사상적 특질은 ‘운문삼구雲門三句’에 있다고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서는 “소양韶陽(…
김진무 /
-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신록으로 눈부신 5월은 가족의 달이자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달’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어머니 마야부인을 통해 이 세상에 나오셔서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셨는데,…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