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기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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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 1998 년 3 월 [통권 제9호] / / 작성일20-05-27 01:49 / 조회10,988회 / 댓글0건본문
"호랑이 해인 무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IMF다 해서 모든 물가가 너무나 많이 올라서 우리 서민들은 더욱더 삶이 힘겨워졌습니다. 이럴수록 열심히 정진하고 절약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백련암을 오게 된 것은 사촌 올케를 따라서였습니다. 삼천배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집에서 하루 2백배를 두 달쯤 하고서 올라왔지만 이천오백배까지는 거뜬히 할 수 있었으나 남은 5백배는 너무나 힘이 들어서 100배씩 나누어서 겨우 삼천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뼈 마디마디가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웠습니다. 부산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는 내내 온몸에 열이 나고 끙끙 앓으면서 왔지만 정신은 너무 맑아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큰 스님이 보시던 서적들
집에 와서는 일과를 계속하면서 능엄주를 어서 외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에 10번씩 큰소리로 매일같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 신심으로는 안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저에게는 용두사미격이었습니다. 우리집 처사가 오랫동안 만성 간염으로 고생을 하다가 93년 8월에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살아갈 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해서 정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94년 4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사가 떠나가기 전 시동생의 사업보증으로 사업하던 것과 집이 모두 경매 처분되고 저와 아이들은 단칸방으로 나와 살아야 했습니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공부시키며 살아가기엔 저 혼자선 그 일이 너무나 벅차고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매일같이 일과는 빠지지 않고 아침에 5시만 되면 일어나 일과를 끝내고 등교를 했습니다. 저는 조그마한 가내공업을 하면서 하루 일을 끝내고 저녁이면 해인선원에 나갔습니다. 형편이 되면 나가고 그것도 계속 갈 수 없을 때는 일과만 하는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백련암 아비라 기도 역시 2년 동안 못 가고 96년 정월기도를 가려고 구정을 며칠 앞두고 준비를 하면서 저녁에는 선방에서 두 시간 정도 앉았다 오곤 했습니다. 하루는 꿈에 제가 선방엘 갔는데 선방 문이 조금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여다보니 덜컥 겁이 나서 살짝 나왔으나 큰스님께서는 어느새 제 앞에 서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큰스님”하고서 그 앞에서 삼배를 올리고 나니 저만치에서 빨리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앞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너무 빨리 가셔서 뛰어서 따라갔습니다. 한참 걸어가시며 스님께서는 계속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 백련암 올라오는 어느 길목에서 스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있제!” 하시곤 “진달래꽃이 피거든 두 번 올라와서 꽃을 따먹어라!”하셨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어 산을 둘러봤더니 큰 소나무 밑에는 백련암 보살님들이 법복을 단정히 입고 모두 합장을 하고서 많이 서 계셨습니다. 모두들 너무나 환한 얼굴로 서 계시고 그 주위에는 진달래가 온산에 붉게 피어 있었습니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도 조금씩 피어 있었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제가 감탄을 하면서 “스님, 이 꽃이 진달래 꽃이지예”하고서 그 꽃잎을 따려고 하니 큰스님께서는 “지금은 따지 말고 태풍이 두 번 지나가거든 따먹어라” 하셨습니다.
저는 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사람들이 보게끔 조금 있다가 떠서 먹으라고 하신 것 같다 생각하고 그 꽃을 따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스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고는 “내, 간데이” 하시길래 옆에 계시던 보살님들과 같이 합장을 하고서 “스님,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인사를 드리고 가시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상하다, 지금은 제가 아프지도 않은데 왜 큰스님께서 저에게 약을 가르쳐 주시고 가셨을까 하고는 정월 아비라 기도를 갔다왔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는데 96년 3월달 쯤, 너무 피곤하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 일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감기도 오래 가고 목이 많이 아프고 해서 이비인후과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진찰을 하시더니 목에 큰 혹이 있다고 하시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소견서를 써주셨습니다. 2차 진료기관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더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너무 놀라 대학병원으로 갔더니 갑상선 종양, 2.5cm나 되는 혹이 성대를 박고 있어서 수술을 어서 해야 말을 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저는 의사선생님께 돈이 안 된다는 핑계로 수술날짜를 미루었습니다. 4월 아비라기도 이후 날짜를 잡고 집으로 왔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아비라기도를 꼭 하고서 수술해야지 하고는 큰스님께서 꿈에 현몽하신 말씀이 맞구나, 내가 아플 거라고 미리 약을 가르쳐 주셨구나 생각했습니다. 백련암을 올라오는데 길가에 혹시나 진달래가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이미 다 떨어지고 꽃술만 남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하고 원통전을 지나서 관음전으로 가는데 백련암 뜰에 진달래 참꽃 한 그루가 뒤늦게 피어 있었습니다. 저 꽃이 내 약이구나 생각하고는 관음전에다 짐을 풀었습니다. 전에 수월행 보살님께 제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보살님께서 꽃을 한번 따 먹어보라고 하셔서 둘이서 꽃나무 가까이 가서 손이 닫는 데까지는 다 따먹었습니다.
다음날 아비라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오전기도를 하고 있는데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소나기도 멈추었고 수월행 보살님과 저는 바가지를 가지고 꽃나무 밑으로 가서 떨어진 꽃잎을 다 주워 모아서 깨끗이 씻어 먹었습니다. 다음 기도시간이 되어 관음전으로 갔는데, 또 천둥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그리곤 휴식시간이 되자 비가 멈춰 보살님과 저는 또다시 진달래꽃을 주워다 씻어 먹었습니다. 큰스님께서 꿈에서 ‘태풍이 두 번 지나고 나거든…’ 하시던 말씀과 같이 그 소나기는 두 번으로 끝이 났습니다.
저는 그날 밤 잠을 자고 다음 날 몸이 가뿐함을 느꼈습니다. 아비라도 부를 수 있었고 능엄주도 큰소리로 할 수 있었습니다. 전날은 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아비라도 능엄주도 하지 못했는데 그날은 몸도 마음도 상쾌했습니다. 집으로 올 때쯤에는 병이 씻은 듯이 나은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틀 후에 병원엘 갔습니다. 수술할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목을 만져 보시더니 혹이 없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이상하다며 동위원소 촬영을 한 번 더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전에 촬영한 것과 비교해 보고서 혹이 없어져서 수술은 안 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마나 기쁘던지 그 자리에서 마음속으로 ‘큰스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육신은 가셨지만 아직도 우리 곁에 계시면서 보잘것없는 저에게 신통력으로 병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하고 몇 번이고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난 후에는 이웃에서 동사무소에다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해주셔서 아이들 학비도 조금씩 나왔습니다. 또한 제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남구청에다 아마 수술비 신청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라디오 불교방송 ‘거룩한 만남’ 프로에서 찾아왔습니다.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지방에는 오지 못하고 서울 경기지역만 취재를 하다가 부산에는 보현회라는 모임에서 요청을 했다고 했습니다. 부산에는 두 번째로 오게 되었다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소개받으려고 남구청에 들렀다가 우리 가족을 소개받았다며 몇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러한 사정을 전혀 몰랐던 저로서는 “거룩한 만남에서 왔습니다.” 하였을 때 너무 당황했습니다.
저는 저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시라고 거절했으나 그냥 방으로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원상과 능엄주를 보시더니 불자집안이다 하시면서 기독교, 천주교 신자도 너무 많이 도왔다면서 이번에는 보살님 가족을 한번 방송하자고 하시더니 전화번호를 적어가지고 서울방송에다 신청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 창피하고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전국에 소문을 내야 하나 하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주에 서울 불교방송에서 취재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방송을 하고 나서 모금해서 모은 돈 7백 40만원을 가지고 진행하는 스님과 자원봉사자 여러분과 저의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그 돈을 받았지만 큰 짐을 진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어떻게 저 빚을 갚을까 하고 한푼 두푼 정성스럽게 모금한 돈이기에 함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겁이 나고 남에게 또 빚을 지는구나 생각하니 정말 괴로웠습니다. 거룩한 만남의 진행자 스님께서 “보살님, 이 돈을 꼭 아이들 학비에 써 주십시오” 하시면서 다른 데는 쓰지 말라고 하시길래 저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해 가을에 친정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니 친정 오빠께서 아이들 학비에 쓰라면서 이백만원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49재로 100만원은 첫재, 막재를 두 번 지내드리고 나머지는 큰아이 대학등록금으로 보태 썼습니다.
정말 너무 이상한 일은 꿈에 진달래 꽃 80%와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20%를 보았던 것같이 그해 들어온 돈이 같았습니다. 초여름에는 불교방송에서 7백 40만원, 법륜사에서 50만원을 가을에는 친정 오빠가 이백만원 해서 천만원이라는 큰돈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큰스님께서 저의 어려움을 아시고 병도 낫게 해주시고 돈까지 보내주신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어렵게 살아갈 때 큰스님께서 그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겨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스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자릴 빌어 전국에서 모금에 동참해 주신 불자 여러분, 거룩한 만남의 가족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웃에게 저에게 항상 베풀어 주신 여러 불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두 모두 성불하십시오.
98년 정월 아비라기도를 앞두고
부산에서 대은심(임미정)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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