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돈오, 단박깨침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박희승 / 2016 년 6 월 [통권 제3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81회 / 댓글0건본문
돈오(頓悟)란 무엇인가?
선에서는 깨달음을 돈오, 즉 단박 깨침이라 합니다. 돈오(頓悟)의 사전적인 뜻은 단박 돈(頓)자에 깨달을 오(悟)자로 단박에 깨친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이 오랜 시간 걸리는 것이 아니라 찰나 간에 단박에 깨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돈오법, 돈오선, 돈법이라는 말도 씁니다.
이것이 조사선의 종지(宗旨)이고 특색입니다. 중국에서 정립된 선종이 짧은 기간에 천하에 확산된 이유는 바로 이 찰나 간에 깨치는 돈오법이라는 가치 때문입니다. 돈오선이 나오기 이전에 불교는 중생이 세세생생 수행해서 깨쳐야 부처가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입장에서 불교를 닦아가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달마 대사는 2조 혜가 스님에게 마음을 바로 깨치는 돈오법을 전했고, 4조 도신과 5조 홍인 대사에 이르러 ‘동산법문’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때 6조가 된 무지렁이 나무꾼 혜능이 찾아와 8개월 행자생활 만에 단박 깨치고 조사선을 정립합니다. 『육조단경』에는 “돈오”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선지식아, 나는 홍인화상 회하에서 언하대오(言下大悟)하여 진여본성을 단박에 보았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지혜를 돈오하여 각자 마음을 보아 스스로 자성을 단박 깨치게 하련다.”
- 『고우스님 강설 육조단경』, 244쪽.
육조 스님은 홍인 화상이 『금강경』 읽어주는 말을 듣고 돈오하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이 돈법을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들이 스스로 단박 깨치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선(禪)입니다. 선의 깨달음은 단박 깨침, 돈오입니다.
그러므로 선에 바른 안목을 갖추려면 돈오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선에서 말하는 단박 깨침, 돈오란, 나를 포함하여 우주 만물이 중도연기로 존재하기 때문에 나온 입장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 만물이 연기로 존재하니 실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아, 공이라 하였습니다. 나도 연기로 존재하니 무아, 공입니다. 나와 우주 만물은 서로 서로 의지하여 존재합니다. 내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은 양변의 편견일 뿐 나는 본래 중도연기로 존재합니다. 내 마음이라는 것도 실체가 없이 공한 것이요, 내가 중도연기고 무아 공이니 깨칠 나란 본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중생이라 착각하며 평생 살아가고 있으니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본래 무아 공인데, ‘있다’는 착각에 빠져 편견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선지식을 만나 내 자성이 본래 실체가 없는 무아, 공이란 것을 바로 알면 돈오한다는 것입니다. 아(我), 나라고 할 실체가 본래 없는데 내가 착각해서 중생이니 부처니, 깨달음이니 번뇌니 하고 양변에 집착하고 살았구나! 이것을 단박에 깨치는 것이 바로 돈오선입니다.
비유하면, 우리가 잠 잘 때 꿈을 꾸다 깹니다. 꿈꾸다가 깨어날 때는 찰나 간에 깨어나지요? 꿈 깨는 것과 같은 것이 돈오, 단박 깨침입니다. 우리가 내가 중생이라 착각하고 살다가 선지식의 돈오 법문을 듣고 내가 중생이라는 착각만 단박 깨치면 현실을 바로 보게 됩니다. 꿈속을 헤매다 깨어나면 꿈속 일이 모두 허망하고 사실이 아니듯이 착각에서 벗어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열립니다.
단박 깨침이니 단박에 닦는 돈수(頓修)
중생이라는 착각만 단박 깨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 영원히 지혜로워집니다. 깨달음이 꿈 깨는 것과 같으니 점차 깨치는 것이 아니고 찰나 간에 깨칩니다. 단박에 깨치니 단박에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문에서는 점점 닦아간다거나 점점 깨친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중생-부처, 번뇌-지혜, 못깨침-깨침 등 일체의 대립하는 양변이 실체가 없고 연기 현상일 뿐입니다. 중생도 부처도 연기 무아입니다. 연기 무아를 깨치는 것이니 깨달음 그 자리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선문(禪門)에서는 중생과 부처의 양변을 인정하지 않으니 중생이 닦아서 부처 된다는 말도 방편으로 쓰는 말이지 실법이 아닙니다. 본래 부처인데 중생이라 착각하고 있으니 몰록 깨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는 겁니다. 찰나 간에 착각만 비우면 됩니다. 찰나 간에 비우니 단박에 닦는 돈수(頓修)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평생 선방에서 좌선하는 것은 닦는 것이 아니고 뭐냐? 이것은 아직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꿈속 일입니다. 깨치지 못하고 착각 속의 일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직 자신이 무아 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중생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아직 달이 아닌 손가락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 법이 아니니 진실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선문에서 돈오를 잘 설명한 법어로 마조 스님의 제자 대주 스님의 설명이 유명합니다.
“돈오(頓悟)란 무엇인가? 돈이란 단박에 번뇌망상을 없애,
오란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 『돈오입도요문론』
번뇌망상은 실체가 없습니다.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나도 실체가 없는 무아, 공입니다. 그러니 내가 있다는 번뇌망상만 비우면, 깨달을 것도 없다는 것을 깨치는 겁니다. 결국, 깨달음, 돈오란 일체의 번뇌망상을 없애는 것입니다. 번뇌를 완전히 비워야 깨달음입니다.
어떤 이는 깨달아 부처가 되어도 습기나 미세한 망념은 있지 않겠는가? 하고 묻습니다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란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습기나 미세 망념이 남아 있는 깨달음이 아니고 완전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에서는 깨달음을 확철대오란 말을 쓰기도 합니다. 확실하게 크게 깨쳤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미세 망념이나 습기까지도 완전히 비워 생로병사를 해탈한 경지를 말합니다.
왜, 돈오돈수를 알지 못하는가?
돈오와 돈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 드려도 아직도 알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왜 깨달음을 돈오점수, 점오점수로 이해하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대체로 돈오돈수의 사상적인 근거는 중도연기이고, 점오점수의 기반은 생멸연기(生滅緣起, 내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으니 무아라는 입장. 여기에는 生死가 있다)입니다. 나와 우주만물의 존재원리가 중도연기(中道緣起, 내가 태어나는 것도 무아, 늙고 병드는 것도, 죽는 것도 그대로 무아라는 입장. 여기에는 生死가 하나다)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 깨달음이란 것도 무아, 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제 깨칠 게 없는 것을 깨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스님은 돈오돈수입니까, 돈오점수입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무돈무수(無頓無修)다 하고 말합니다. 깨달을 것도 닦을 것도 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완성되어 있고, 깨달아져 있습니다. 단지 ‘내가 있다’ ‘나는 중생이다’는 착각과 망상만 몰록 깨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는 겁니다. 본래는 깨달을 것도 닦을 것도 없는 무돈무수!
그러면 또 이렇게 물어요. “무돈무수면 애써서 공부할 필요가 없네요?” 번뇌망상과 착각에서 단박에 벗어나면 수행이란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누가 단박에 착각에서 깨칠 수 있습니까? 육조 스님도 8개월 행자생활을 했고, 성철 스님도 재가자로 화두 참선해서 42일 만에 동정일여에 이르렀고, 그 뒤에도 장좌불와 하는 등 각고의 정진을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마지막 번뇌까지 비우는 완전한 깨달음인 돈오돈수까지 밀고 나가 확철대오해야 합니다.
번뇌망상과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오하려면 진심으로 노력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세상에 그냥 되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본래부처라는 자기 자신에 믿음과 돈오라는 확신을 가지고 한 생각 한 생각, 매일 매일 공부해나가면 그 과정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설사 확철대오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 닦아가는 과정도 지혜로워지고 밝아집니다. 하는 만큼 행복합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천 줄기 눈물만 흐르네
구미에 있는 천생산(408m)은 정상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평평하게 생겼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함지박처럼 생긴 이 산을 방티산이라고 불렀습니다. 팔부 능선에 성벽을 쌓아 산성으로 만들어 전란 시 방어…
서종택 /
-
35불 불명참회와 관허공장법
지난 호에서 53불도상의 의미를 밝히고 조선시대까지 현존한 우리나라 53불신앙을 살펴보았다. 수(581∼618)나라 때 조성된 영천사 대주성굴의 53불과 우리나라의 53불 신앙은 수행자들의 과거 좌…
고혜련 /
-
성철 종정예하의 부처님오신날 한글법어 탄생 비화祕話
※ 6월호 목탁소리는 불기 2568년 5월 5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제40회 백고좌대법회에서 하신 법문을 요약해 소개합니다. 백련암 오르는 돌계단 중간…
원택스님 /
-
천금을 주고 먹는 채소음식
사찰음식은 더하기 음식이 아니라 빼기 음식입니다. 세간에서의 음식은 여러 가지 재료와 양념을 더하는 데 비법이 있다지만 사찰음식은 빼는 데 비법이 숨어 있습니다. 조리 시간도 아주 짧습니다. 전통 …
박성희 /
-
티베트 불교의 환생제도
티베트 불교를 이야기할 때 흔히 ‘린뽀체(Rinpoche)’, 즉 ‘뚤꾸(주1)’란 용어를 자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이야기는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실 이 전생제도는 …
김규현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