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 사막이 숨긴 불교미술관 ]
불교미술에서 붓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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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5 11:07 / 조회227회 / 댓글0건본문
지난 글에서는 돈황 벽화 중 붓다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그림 즉, ‘본생도本生圖’에 대해 살펴보았다. 본생담이 비록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의 신화나 전설에서 유래한다고 하더라도 『본생경本生經』이라는 경전도 있으며, 돈황 초기 벽화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그러므로 불교미술 연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본생도를 통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붓다는 전생에 여러 생에 걸쳐 선업을 지음으로써 그 공덕으로 금생에 싯다르타 태자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붓다의 탄생을 미술에서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경전에서는 싯다르타 태자 출생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마야부인은 그 나라의 풍습에 따라 아이를 낳으려고 친정인 콜리성拘利城으로 가는 길이었다. 늦은 봄 화창한 날씨였다.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카필라迦毘羅와 콜리의 경계에 이르렀다. 가까이에 상서로운 곳으로 알려진 룸비니藍毘尼 동산이 있었다. 룸비니 동산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일행은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마침 가까이에는 무우수無憂樹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야부인은 아름다운 꽃을 만지려고 오른팔을 뻗었다. 그 순간 갑자기 산기를 느꼈다. 일행은 곧 나무 아래 휘장을 쳐 산실을 마련하였다.
바로 이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붓다의 탄생도’ 즉 〈석가탄생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먼저 인도의 ‘탄생도’를 간략히 살펴본 다음 돈황 벽화의 ‘탄생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쿠샨왕조 시대의 간다라 미술(부조)
아름답게 조각된 〈싯다르타 태자 탄생〉 부조는(사진 1) 1,800여 년 전 고대 인도 간다라 지역 쿠샨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아래에서 마야부인이 태자를 낳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 부조를 살펴보면, 마야부인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고 있고,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이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다. 모두 미래 부처님의 탄생을 찬양하러 온 것이다. 왼쪽에는 제석천이 곱고 아름다운 옷을 두 손에 감싸고 태자를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부조는 전체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인물의 다양한 표정이 생생하다. 이처럼 표현력이 풍부한 이 작품은 1,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쿠샨Kushan 시대 간다라 조각 예술의 걸작이다. 쿠샨 시대에는 대승불교가 확립되고 간다라 미술이 번영하였다. 그 원인으로는 1세기 무렵부터 인도의 서북변경西北邊境이 동서교역東西交易의 요지에 자리하여 활기를 띠며 쿠샨왕조王朝 아래서 그리스 양식 간다라 미술이 번창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조각의 형태는 갸름한 얼굴로 음영이 짙은 모습이고, 옷의 주름 무늬는 그리스 양식이다. 이 조형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에까지 전래되었다.
영국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소장 〈태자 탄생도〉 부조는(사진 2)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아래에서 마야부인의 붓다의 탄생을 묘사하였다. 마야부인은 오른손에는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고 있고, 왼손은 여동생 마하프라자빠파티Mahaprajapati(부처님의 양모)에게 기대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오른쪽에는 궁녀가 부채를 들고 서 있다. 마야부인은 삼절三折 자세로 서 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고 있다. 좌우에는 신중이 협시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범천이 있다.
마야부인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높게 틀어 올린 머리, 동근 얼굴, 온몸에 각종 장신구를 착용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을 들어 나뭇가지를 잡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으로 꼬아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 S자 모양의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밖의 장면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태자 탄생을 돕는 주변 인물, 신중들의 모습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은(사진 5) 9세기 인도 비하르Bihar의 나란다Nalanda에서 제작된 부조로,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아래에서 태자를 낳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머리는 상투를 높이 틀어 올리고, 보석으로 견고히 장식하고 있으며 다양한 목걸이, 귀걸이, 완장, 머리띠, 신발 등을 보석 장신구로 장식하여 몸 전체를 근엄하고 우아해 보이게 하고 있다. 무우수 나뭇가지를 손에 잡고 몸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S자 모양으로 자연스럽고 우아하며 연꽃대좌에 맨발로 서 있다. 오른쪽 무릎 아래에는 신중의 왕인 제석천이 갓 태어난 태자를 양손으로 받쳐 안고 있다.
돈황 막고굴의 태자 탄생도
막고굴 제209호 구룡신화(사진 6) 그림 중앙에는 새로 태어난 싯다르타 태자가 서 있고, 아홉 마리의 용들이 태자를 목욕시키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향수를 뿌리고 있다. 양쪽에는 수금과 음악을 연주하고 향을 피우는 신들이 있다. 목욕 후, 왕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순수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태자가 궁전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담고 있는 막고굴 제290굴의 벽화다(사진 7). 그림 윗부분 오른쪽에는 마야부인이 새로 태어난 태자를 품에 안고 네 마리의 용이 모는 용마차를 타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좌우로는 인간의 몸과 동물의 머리를 가진 천신들과 공후를 연주하는 비천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림 상단 왼쪽에는 다섯 명의 기병이 용마차를 향해 달리고 있고, 선두는 왕관을 쓰고 있으며, 나머지 네 명의 기수는 왕을 위해 일산을 들고 서로를 따라가고 있다. 이는 정반왕淨飯王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모든 신하들을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 그들을 영접하는 장면이다. 그림 하단 왼쪽에는 사람들이 태자를 둘러싸고 안뜰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태자가 왕궁으로 들어가는 길에 사원에 들르는데, 뜻밖에도 모든 신중들이 엎드려 예배한다. 이를 보고 군중은 태자의 위신력(가피력加被力)에 감탄하며 왕자를 ‘하늘 중의 하늘’이라고 소리친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불탄도〉는(사진 8) 영국의 스타인Aurel Stein이 1907년의 원정에서 본국으로 가지고 간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중국 당나라 시대의 견본화이다.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 탄생의 ‘관정灌頂’과 ‘일곱 걸음’의 두 장면을 묘사하는 그림이지만 따로 장면을 구분하지 않았다.
상단에는 태자가 금빛 수반 위에 서 있다. 태자의 얼굴과 몸의 형태는 중국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목욕을 시키러 온 궁녀들의 옷차림도 중국식 복장이다. 이는 5세기 북위시대 왕즉불王卽佛 사상으로 인해 중국화된 불상을 표현한 것이다. 윗부분은 마야부인이 오른쪽 갈비뼈에서 태자를 낳은 후 하늘의 아홉 마리 용이 정수淨水를 뿌려 관욕시키는 장면이다.
아홉 마리의 용의 머리가 검은 구름 속에 싸여 있는데, 중국식 용의 형상임을 뚜렷이 알 수 있다. 경전에서는 “하늘에서는 용왕이 따뜻한 물과 찬물로 된 두 종류의 청정한 물을 석가의 몸에 뿌렸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용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인도의 용 신앙이 경전에 반영된 것으로 불법의 외호자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에서는 이와 달리 용은 왕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금색이나 황색도 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왼편의 두 여인은 놀라는 표정을 하고 있으며, 허리를 굽힌 채 바라보고 있다. 오른편 두 여인 가운데 위쪽에 있는 여인의 머리 모양으로 보아 아마도 공주의 신분일 것으로 보인다.
하단 아랫부분(사진 9) 싯다르타 태자가 관정 후 남동쪽과 북서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태자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연꽃이 피어났음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연꽃 네 송이를 표현하였다. 이는 더러운 물에서 청정한 하늘을 향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세상에 맑은 향기를 뿌리는 연꽃을 형상화한 것으로 중생에서 부처, 예토穢土에서 정토淨土를 지향하는 중국 대승불교의 사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왕자의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왼쪽 손가락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즉 “하늘과 땅에서 나만이 존귀하다. 삼계가 괴로움이니 내가 마땅히 평안케 하리라.”라는 탄생게를 외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송나라 때의 제76굴 동쪽 벽 양쪽에는 8개의 탑이 그려져 있다. 그중 남쪽 윗층은 태자의 탄생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용 한 마리가 화려한 구름을 타고 싯다르타 태자를 목욕시키러 내려온다. 제290굴 천정에는 〈불전고사도佛傳故事圖〉가 있는데, 구룡이 관정하는 장면을 포함해 87개 단락으로 나누어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 이전 막고굴의 불화와 비단 견화絹畵는 대부분 한漢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송대宋代 초기 조씨曹氏 가족 통치 때 만들어진 제76굴은 그 동벽 중문 남북 양측에 ‘팔탑변불전’ 고사화古事畵(사진 10)가 그려져 있다. 이전 작품과 비교해 볼 때, 불전고사의 내용과 주제 선정, 인물, 경물 등의 조형적 구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그 내용과 양식을 분석해 보면, 그 기원은 인도 굽타 왕조와 팔라 왕조에서부터 토번吐藩 그리고 서역과 중국 요소가 혼재되었다고 보여진다. 돈황 제76호 굴은 당대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이후 송·원·청 왕조에 의해 개조되었다.
이상에서 돈황 벽화 중에 〈석가탄생도〉 제209굴(북주시대, 6세기)의 〈구룡신화〉와 〈태자 회궁〉 2점과 당대 〈불탄도〉(대영박물관 소장) 그리고 제76굴 송대 〈불탄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각 왕조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출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북주 시대에는 서역 양식인 운염법暈染法, 음영법陰影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당대의 견화에서는 인물의 복식服飾이나 배경이 한漢의 영향을 받았다. 표현방법 역시 중국 전통의 필묵 선묘線描 기법과 선염법渲染法을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제76굴의 〈불탄도〉는 비록 송대에 그려졌지만 당시 돈황은 송왕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고 조씨 일가가 통치하고 있었으므로 중원의 양식이 아닌 서역 양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미술의 양식변화는 당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따라 크게 작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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