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 사막이 숨긴 불교미술관 ]
싯다르타 태자가 네 개의 성문을 드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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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 2024 년 12 월 [통권 제140호] / / 작성일24-12-05 11:23 / 조회166회 / 댓글0건본문
사문출유四門出遊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싯다르타 태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이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도 태자를 극진히 사랑하고 보살폈다.
사문유관과 생노병사의 고통
태자는 지나치게 총명하였고 무슨 일이든 열심이었다. 태자는 성인이 된 후 세상의 온갖 괴로움을 보고 모든 중생의 고통을 구제할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태자가 깊은 사색에 잠기는 일이 자주 일어날수록 부왕의 마음은 어두워졌다. 그래서 부왕은 태자를 즐겁게 하여 홀로 사색에 잠기는 일이 없도록 항상 마음을 썼다.
오랫동안 궁전 속에만 있던 태자는 어느 날 문득 궁전 밖으로 나가 바람이나 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뜻을 부왕에게 전하니 왕은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왕은 곧 화려한 수레를 마련하게 하는 한편 신하들에게 태자가 이르는 곳마다 값진 향을 뿌리고 꽃으로 장식하여 태자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라는 분부를 내렸다.
싯다르타 태자를 태운 수레가 동쪽 성문을 벗어났을 때였다. 첫 번째 나갔을 때는 늙은 사람을 보았는데, 노인의 머리는 마른 풀처럼 바래고 몸은 그가 짚은 지팡이처럼 바짝 말라 숨을 헐떡이며 걷고 있었다.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태자는 시종에게 물었다. “왜 저 사람은 저런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시종은 대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태자는 침통한 표정으로 혼잣말로 “그렇다면 나도 결국 저런 늙은이가 되겠구나!” 이는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권2의 내용이다.
두 번째 나갔을 때는 병자를 보고, 세 번째 나갔을 때는 죽은 사람을 보고, 네 번째는 나갔을 때는 출가수행자를 본다. 이는 각각을 성문 남쪽에서 보고, 한 번은 성문 동쪽에서 보고, 한 번은 성문 서쪽으로 가서 보고, 또 성문 북쪽으로 가서 보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림에서는 태자가 16세 가량의 어린 태자로 보이지만, 동아시아의 다른 불화들에서는 태자가 상당히 늙은 형상으로 그려졌다. 이를 두고 유교적 문화의 영향으로 회자膾炙되기도 한다.
<사진2>가 바로 동문 밖에서 노인을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화면에는 태자가 말을 타고 성문을 나오는데 옆에는 마부가 있다. 길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동자의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다. 제발에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而時太子 出城東門 觀見老人 問因緣時
그때 태자가 궁성 동문으로 나가 노인을 만나 그의 운명에 대해 묻다.
작품 속 건물에는 성문과 성벽 모퉁이만 나타난다. 성은 정사각형 모양이며, 성벽에 돌출 돈대墩臺(군사방어시설)를 새워 성문 역할을 하고, 그 위에 누각이 있다. 평대平臺(평평하게 다진 방어기지)는 세 칸으로 나뉘며 난간으로 분리되고, 지붕은 헐산옥정歇山屋頂(합각지붕)이다. 성벽 위로 등거리의 돌출된 돈대가 있고 벽돌을 붉은 선으로 그려 강조하고 있다. 성벽의 황토색 벽돌과 성문 교각의 녹황색 벽돌과 구별되며, 정자 난간의 붉은색, 청색의 지붕 등 건축물의 색상이 서로 다르다. 육중한 성벽, 요철凹凸의 돈대, 정교한 누각 등 다채로운 건축 양식을 형성하고 있다.
인물과 건물의 비례 관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대어산人大於山(사람이 산보다 크다)(주1)은 북조시대 회화 양식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으며, 성문이 좁고 태자만이 드나들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 태자는 보관을 쓰고 소매가 늘어지는 붉은색 도포를 입고 흰 얼굴에 붉은 입술을 하고 있어 영준英俊(지혜롭고 총명한 모습)한 모습에 약간의 어린 티가 나고 있다.
마부는 걸으며 붉은 갈기의 백마를 구사驅使하고 있으며, 마부도 긴 소매의 붉은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 비단 건을 쓰고 있다. 노인은 소매가 좁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 모자를 쓰고, 발에는 검은 장화를 신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구부정한 몸을 하고 있다. 옆에 있는 동자도 소매가 좁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 부드러운 폭건幅巾(전통적인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데, 둘 다 남루한 느낌을 준다. 그림 속 인물들의 복식은 완전히 한식漢式(중국식)으로 마치 당나라 귀족 소년과 가난한 사람이 만나는 장면과 같다.
막고굴 북량(397~439) 석굴 제275굴에 있는 같은 주제의 그림에는 보살 복장을 하고 있는 태자와 백발의 구부정한 노인, 상반신은 드러나고 허리에는 짧은 치마를 두르고 맨발 차림으로 그려져 있다. 시자들도 상의는 입지 않았고 허리에 긴 치마를 둘렀다. 인물 형상과 복식이 서역 양식 그대로이다. 이 벽화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남문에서 병자를 만나다
같은 그림의 하단에 그려져 있다. 태자가 남문 밖으로 나왔을 때, 거기에는 중병에 걸린 노인이 나무 밑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제발에 다음과 같이 씌여 있다.
而時太子 出城南門 見一病人 問因缘時
그때 태자가 남문으로 나가면서 병자를 만나 그 원인을 물었다.
성문의 방향은 위 그림과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어 성문이 여러 방향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 아래 병자는 웃통은 벗고 하반신은 누더기를 입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붉은색과 누런색 옷에 두건을 쓴 시자들이 그를 부축하고 있다. 이 광경을 본 태자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춰 섰으며 그 자리에서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된다.
“내가 비록 존귀한 태자로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보화를 가지고 있어도 늙고 병들어 고생할 텐데 이 사람과 내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늙음의 고통이나 질병의 고통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없는 것일까?”
이 걸개그림에서는 서문과 북문으로 나가는 장면은 그려져 있지 않다. 태자가 서문으로 나갔을 때 장례행렬을 만나게 된다. 그는 여기서 자신도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며칠 뒤 태자는 북문을 거져 밖으로 나갔다가 출가사문出家沙門을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태자도 사문이 될 것을 결심한다.
‘사문출유’은 불전 고사화故事畵의 중요한 주제로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의 연기緣起이기도 하다. 이 ‘사문출유도’는 막고굴의 북량北凉 제275굴, 북주北周 제290굴, 제294굴, 오대五代의 제61굴, 송대의 제454굴에 그려져 있는데, 이 벽화들은 태자가 네 개의 대문을 나와 마주친 노인, 병자, 장례행렬, 수행자 등을 그리는 데 있어서 경전의 내용을 인도적으로 연역演繹하고 인물의 모습이나 복식, 그리고 회화 표현방식도 서역 양식에 가깝다. 견화絹畵는 중원의 예술가들이 재창조한 것으로 화면 속의 인물이나 복식 그리고 건축 양식은 이미 중원의 것과 유사하다. 회화 표현기법은 당대 주방周坊(주2)의 단아하게 정돈된 화풍에 가깝다.
이 제275굴은 막고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굴 중 하나이다. 다른 두 개의 굴 제268굴과 제272굴을 합쳐서 북량 3굴로 알려져 있다. 화면의 북쪽에는 남북조시기의 전형적인 궁궐 건물이 있는데, 벽화 속 대문은 정투영도법正投影圖法을 이용해 그려져 있는데, 작가는 건물의 전체적인 윤곽과 큰 대비 관계만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당시에는 완전한 회화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의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유치성幼稚性(미숙한 상태)과 다양성多樣性이 발견된다.
이 벽화에서 작가가 정투영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투영법을 사용해 그린 궁궐의 문이다. 그림에서 우리는 화가가 정투영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실현하지 못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치졸하게 그려진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 순진무구함을 발견할 수 있다.
벽화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네 개의 성루城樓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싯다르타 태자가 네 개의 문을 나들이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현재는 벽화의 훼손으로 인해 동문의 모습만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사진 속 백발의 노인은 눈썹을 찌푸리고 수염을 떨며 말을 탄 태자를 올려다보며 노년의 여러 가지 고통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태자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노인의 말을 듣고 있는 듯, 생각하는 듯 바라보고 있다. 또한, 성루 안에는 여인이 아기를 품에 안고 성 밖의 노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갓 태어난 아기에서 노인이 되기까지의 삶의 과정을 암시하는 듯하다.
북문에서 수행자를 만나다
〈사진 3〉은 북문에서 수행자를 만나는 장면으로 수행자는 오른손에는 발우를 들고 왼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태자 앞을 걷는 모습이다.
돈황 막고굴 제329굴 야반유성夜半逾城(초당初唐)도는 ‘유성출가’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네 개의 문에서 인생의 생, 노, 병, 사 고통을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행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어느 날 밤 부왕 몰래 궁성을 나와 숲으로 간다. 그림은 복잡하면서도 색상은 풍부하고 화려하다.
그림 속 싯다르타 태자는 왕관을 쓰고 백마를 타고 있으며, 왼손에 고삐를 잡고 있고, 오른손 손바닥이 바깥쪽을 향하고 있는데, 두광 상부에는 청록색 화개花蓋가 있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확고한 믿음과 용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네 천신天神은 말의 발굽을 잡고 공중을 질주하고 있다. 말 앞에는 선인仙人이 호랑이를 타고 길을 인도하고 있다. 그 뒤에는 그를 보호하는 천녀와 역사상이 있다. 비천이 악기를 연주하고 꽃을 뿌리며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며, 천화天花가 빙빙 선회하고 있다. 그림 전체의 선은 유동적이며 우아하고 생동감 넘친다. 색상은 남색과 백색이 주색이며 붉은색으로 점철되어 있다. 싯다르타 태자의 옷과 얼굴, 주변 천화는 채색되지 않았고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으며, 백마의 머뭇거리는 태도가 태자의 굳건한 자세와 대조되어 태자의 경건한 신념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출가는 ‘유성출가’라는 특징을 지닌다. 성문이 군사들에 의해 경계되고 있으므로, 천신들은 소리를 내지 않도록 말발굽을 잡고 있으며, 공중을 날아서 출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장면은 간다라 조각과 동아시아의 여러 불화에서도 동시에 묘사되고 있다.
<각주>
(주1) 장언원張彦遠, 『역대명화기歷代名画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위진 이후의 세간의 명적을 다 보았는데, 그 산수화는 산봉우리가 뭉쳐 있어 마치 머리 빗는 빗과 같다. 물을 그렸으나 흐름이 없고 사람은 산보다 크게 그렸다.[魏晋已降 名迹在人間者 皆見之矣 其画山水 則群峰之势 若钿飾犀櫛 或水不容泛 或人大於山]”
(주2) 주방周坊(약 730~약800). 당대의 저명한 인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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