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태자가 네 개의 성문을 드나들다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전체 기사

월간고경

[돈황, 사막이 숨긴 불교미술관 ]
싯다르타 태자가 네 개의 성문을 드나들다


페이지 정보

김선희  /  2025 년 1 월 [통권 제141호]  /     /  작성일25-01-05 13:07  /   조회128회  /   댓글0건

본문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불전고사화佛典故事畵〉는 중국 고대의 종교,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군사, 교통, 지리, 민족관계 등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사미술의 전통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던 중국에서는 불교가 수용되면서 〈불전고사화〉의 내용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불교와 관련된 전통적인 설화가 중국인들의 생활과 연관된 이야기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왕궁을 떠나 수행의 길에 들어서다

 

장경동에서 출토된 〈불전고사화: 이별, 삭발, 수행〉 작품은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진 1〉은 비단 바탕에 그린 두루마리 형식으로, 산수와 인물이 채색화로 그려졌다. 〈불전고사화〉의 내용은 싯다르타 태자가 사대문을 지나며, 노인, 병자, 죽음 그리고 수행자를 만나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마침내 궁궐을 떠나 수행의 길을 걷게 되는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수행자의 길은 가족과 세속을 내려놓고, 사랑과 욕정을 끊으며, 계율을 지키고 마음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는 29세에 궁궐을 떠나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 

 

사진 1. 불전고사화 ‘이별 삭발 수행’(유물번호: Steinpainting 97 Ch.lv.0012). 세로 58.5×가로 18.5cm, 견본 채색, 대영박물관 소장. 사진: btitishmuseum.org.

 

〈사진 2〉의 화면 윗부분은 진리의 길로 나아가기로 한 싯다르타 태자가 29세 되던 해 2월 8일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아버지 정반왕도 모르게 찬타카Chandaka(혹은 찬나)와 함께 왕국을 빠져나온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계곡에 도착한 태자는 말에서 내려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장신구를 찬타카에 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진 2. 불전고사화 중 이별을 그린 상단 부분도.

 

“이 목걸이를 부왕에게 전하거라. 그리고 싯다르타는 죽은 것으로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려라. 내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왕위 같은 세속의 욕망은 털끝만큼도 없다. 다만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 길을 걷는다고 말씀드려라.”

 

이 길이 태자의 출가임을 알아차린 찬타카는 무릎을 꿇고 함께 머물며 시봉하기를 간청한다. 그림 속의 태자는 바위 위에 앉아 마부 찬타카와 붉은 갈기의 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찬타카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한쪽 다리를 꿇고 함께 있기를 원하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백마는 앞발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 이때 태자는 담갈색의 소매가 넓은 수포袖袍와 흰 중단中單을 입고 있으며, 찬타카는 담홍색 둥근 소매의 장포長袍를 입고 있으며, 모두 한漢나라 시대의 복식服飾이다. 

 

사진 3. 불전고사화 중 삭발을 그린 중단 부분도.

 

세속의 집착을 버리고 삭발하다

 

〈사진 3〉은 화면 중단 두 번째 단락 부분에 해당한다. 싯다르타 태자가 세속적인 집착을 버리기 위해 머리를 깎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경전에서는 “태자는 애착과 고뇌의 뿌리인 머리를 깎고 싶었지만 깎을 도구도 없었다. 이때 제석천이 칼을 들고 오니 천신이 받아 머리를 깎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림에는 태자가 옷깃을 교차해서 여미는 연한 갈색 긴 소매의 장포를 입고 바위 위에 앉아 머리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석천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한 단락씩 섞여 있는 긴 소매의 장포에 흰색 중단을 입고 긴 머리에 관을 쓰고 있다. 칼을 들고 태자의 머리를 깎으려는 모습이다. 그 옆의 천신은 보살 복장으로 벌거벗은 상반신에 천의를 걸치고 허리에는 긴 치마를 두르고 합장하고 서 있다. 태자의 앞에는 오비구五比丘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경전에서는 “교진녀를 비롯해 오비구들이 태자를 수행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빨간색과 갈색의 긴 소매 장삼을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를 쓰고 있다. 태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4. 불전고사화 중 수행을 그린 하단 부분도.

 

〈사진 4〉는 마지막 단락 부분으로 맨 하단에 자리하고 있다. 싯다르타 태자가 6년 동안 산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대마 1개와 쌀 한 톨만을 먹겠다고 다짐했다. 6년 동안 사라수 아래 앉아 있다 보니, 피골이 상접하고 형체가 야위었다. 그림 속에는 나무토막처럼 마른 태자가 바위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상체는 나신이고, 하반신은 붉은 천을 두르고 명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의 머리 위에는 나뭇가지와 낙엽이 쌓여 있다.

 

〈사진 1〉에서 보듯이 전체 그림에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산수와 풍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그림의 구성은 이별, 삭발, 수행이라는 세 가지 장면이 산으로 구분되어 순서대로 전개하고 있으며, 이를 한 화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에 맞춰 배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산은 높고 나무는 듬성듬성하다. 볼륨감 있는 색조로 험준한 봉우리, 푸른 나무, 상서로운 구름 등을 강조하고 있다.

 

봉우리와 산의 변화무쌍한 풍경 속에 인물과 이야기의 적절히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별 장면의 가파른 봉우리,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이어지는 산맥은 싯다르타 태자의 구도 여정이 순탄치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삭발 장면의 구불구불한 산들 사이의 비좁은 장소는 결단력 있는 태자, 고난의 시자侍者, 그리고 초월적인 제석천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사진 5. 막고굴 제254굴 항마성도도降魔成道圖(북위, 汎友社, 2001).

 

위태롭게 솟은 가파른 봉우리와 수려한 나무들로 인해 정지된 화면에서 생동감이 넘친다. 수행 장면 중의 몽골 게르텐트 모양의 산은 산 같지만 산이 아니고, 나무 같지만 나무가 아닌 몇 개의 획劃을 쓱쓱 긋고 있다. 깨끗한 네란자라강尼連禪河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저기 샘물이 흐르고 과일나무가 많이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다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 후 5년 동안 여러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지독한 고행을 계속해 보았지만 깨달음은 얻지 못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어디를 찾아가 보아도 내가 배울 스승은 없다. 이제는 나 자신을 스승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태자는 홀로 숲속으로 들어가 커다란 보리수 아래 홀로 단정히 앉았다. 맑게 갠 날씨였다. 앞에는 네란자라강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사진 6. 막고굴 제254굴 항마降魔 부분도(북위, 汎友社, 2001).

 

이렇게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선정禪定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는 마음이 문득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이제는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이치가 그 앞에 밝게 드러났다. 마침내 싯다르타 태자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이때 태자의 나이 서른다섯, 이제는 그에게서 인간적인 갈등과 번뇌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깨달은 사람 즉, 붓다가 된 것이다. 이렇게 깨달음의 순간을 그림으로 묘사한 〈항마성도도降魔成道圖〉가 남아 있다. 

 

둔황 막고굴 제254굴은 북위魏魏 중기(약 465~500년)에 개착되었으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예술적, 학문적 가치가 높다. 남벽 동쪽에 있는 〈항마성도도〉는 조형이 풍성하고 생동감 넘치는 미술사의 걸작이다.

 

 

사진 7. 돈황 막고굴 항마성도도降魔成道圖(144.4x113cm, 비단에 채색, 당대, 프랑스 기메 박물관 소장)

 

사진 7-1. 항마성도도의 구성.

 

〈사진 5〉는 싯다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욕망의 군주 마왕魔王 파순波旬이 태자가 깨달음을 얻어 사람들을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까 두려워 마군중을 이끌고 와 방해한다. 이 마군들은 태자를 아름다움으로 유혹하거나 무력으로 공격하고 있으나 태자는 선정과 자비, 지혜로써 이들을 물리친다. 마침내 마군중의 항복을 받고 싯다르타 태자는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다. 여기서 마군은 깨달음의 과정에서의 장애 요소 즉, 내적 갈등과 번뇌, 외적 여러 가지 유혹 등을 의미하는데, 〈사진 6〉에서는 해괴한 요괴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 6〉은 펠리오가 돈황 장경동에서 반출한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항마성도의 내용을 묘사한 것으로 소승팔상小乘八相 중 제5상과 대승팔상 중의 무차상이다. 이러한 주제는 장경동에서 발견된 견화 중에서는 그렇게 많지 않다.

 

사진 8. 돈황 막고굴 항마성도도 중 정중앙 붓다 부분도(좌). 사진 9. 돈황 막고굴 항마성도도 중 삼면팔비명왕三面八臂明王 부분도(우).

 

석가모니불은 화면 중앙 연화좌에 앉아 손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머리 위에는 거대한 화개華蓋가 있다. 상방 구름 위에는 삼면三面 팔비八臂의 강삼세명왕降三世明王이 있고, 주변에는 싯다르타 태자의 깨달음을 방해하기 위해 공격하는 마군중이 그려져 있다. 그중 불을 품는 화기가 주목된다. 그림의 양면에는 위에서 아래로 다양한 자세의 불상이 그려져 있어 붓다의 남다른 위신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의 아랫부분에는 백상, 옥녀 등 칠보가 그려져 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김선희
동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수료,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동국대학교 연구교수, 창원대학교 외래교수, 경상남도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경상남도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 창원민속역사박물관 자문위원, 한국불교미술협회 회장, 한국교수불자연합회 감사 및 불교미술 작가로 활동 중이다.
seonhikr@naver.com
김선희님의 모든글 보기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