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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읽는 서유기 ]
용마의 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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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5 년 5 월 [통권 제145호]  /     /  작성일25-05-04 22:05  /   조회13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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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의 서천여행단 구성은 그 중요성에 따르면 손오공-저팔계-사오정-용마의 순서가 되지만, 귀순하는 순서에 따르면 손오공-용마-저팔계-사오정의 순이 된다. 용마의 귀의가 저팔계나 사오정 이전에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하다. 손오공이 여행단의 눈이라면 용마는 여행단의 발이 되기 때문이다. 용에서 말로 변한 그것은 서천으로의 전 여정을 함께한다.

 

사진 1. 용의 출현.

 

손오공과 삼장이 길을 가는데 한 마리 옥룡이 나타나 삼장이 타고 가던 백마를 삼켜버린다. 손오공은 옥룡을 도발하지만 두 번의 교전 끝에 물속에 숨어 버리자 결국 관세음보살의 힘을 빌린다. 원래 이 용은 서해 용왕의 셋째 아들이었는데 야명주를 깨뜨린 죄로 참수형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이것을 관세음보살이 구원하여 삼장을 기다리도록 안배한 것이었다. 이에 관세음보살은 용을 불러내어 백마로 변신시킨 뒤 삼장의 탈 것으로 내어준다. 그런 뒤 다음 날에는 보타낙가산의 산신을 시켜 고삐와 안장과 채찍을 내어준다. 삼장은 옥룡이 변한 백마를 타고 새로운 여행을 계속한다. 

 

용의 정체

 

손오공 다음으로 서천여행단의 일원이 되는 용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그것이 야명주를 태운 죄로 사형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생들은 두꺼운 구름[無明]이 해[佛日]를 가린 캄캄함 속에 살아간다. 이 햇빛 없는 어둠의 세계를 비추는 것이 야명주다. 그것은 전면적인 밝음은 아니지만 무명의 구름에 덮힌 암흑세계를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한다. 이것을 무명의 불길로 태웠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이 용을 구원하여 물 아래에 잠겨 있게 한다. 번뇌의 불길을 시원한 물로 제어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이 용의 정체는 그것이 사는 지명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뱀의 똬리 산[蛇盤山], 매의 근심 강[鷹愁澗]에 산다.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산은 깊이 웅크린 자아의식의 형상화이다. 뱀은 한껏 웅크려서 자기를 지키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사람을 해치는 독을 뿜는다. 자아의식이 바로 그렇다. 가만히 있을 때는 전혀 흔적이 없지만 그것이 발현되면 양날의 칼이 되어 안팎을 해친다. 그것을 똬리 튼 뱀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그것은 매의 근심 강[鷹愁澗]에 산다. 강의 물결에 투영된 그림자를 자기의 무리로 착각한 새들이 그곳으로 날아들어 빠져 죽는다는 강이다. 매의 입장에서 볼 때 먹을 것이 사라지는 일이므로 걱정이 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유기』에서 물은 아뢰야식을 상징한다. 물(아뢰야식)을 자기의 집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또 뱀처럼 웅크리고 있다는 점에서 용은 말나식의 상징이 된다. 그것은 여타 다양하게 설치된 장치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우선 “매의 근심 강에서 뜻의 말[意馬]에 고삐를 매다[鷹愁澗意馬收韁]”는 장 제목이 그렇다. ‘뜻의 말[意馬]’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용이 귀순하여 삼장의 탈 것이 되므로 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뜻의 말’인가? 그것은 “마음 원숭이[心猿]가 바름에 귀의하다”라는 바로 직전의 제목과 대응한다. 마음 원숭이는 손오공의 별명이다.

 

그리고 이 ‘마음 원숭이’와 ‘뜻의 말’, 즉 의마심원意馬心猿은 불안하게 날뛰는 마음과 생각을 가리키는 관용어로 쓰인다. 여기에서는 심·의·식의 심心(아뢰야식)과 의意(말나식)를 가리킨다. 말나식은 아뢰야식에 의지하므로 양자 간에는 일종의 주종관계가 성립한다. 손오공과 용의 관계가 그렇다. 용은 백마로 변신하여 삼장의 탈것이 되는데 손오공은 말을 사육하는 전문가이다. 그가 일찍이 천상에서 천마들을 관리하는 필마온弼馬溫의 직을 수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말들은 손오공을 친근히 여기며 그에게 의지한다. 그것이 아뢰야식에 의지하는 말나식의 특징과 일치한다. 

 

『서유기』와 불교 교리

 

『서유기』는 기본적으로 유식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서유기』의 모델이 되는 현장스님이 서천으로 떠난 것은 유식학의 바른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서유기』도 마찬가지다. 여래가 관세음보살을 파견하면서 유가행의 바른 가르침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직접 밝히는 장면도 있고, 관세음보살이 손오공에게 머리테를 씌운 것이 유가행의 바른 길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손오공 스스로도 고행의 길을 벗어나 유가의 문에 귀의했다는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2. 6정6갑의 갑진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유기』가 오로지 유가유식의 교리를 주제의식으로 삼는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는 인도와 중국의 다양한 불교적 실천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두루 선양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유기』의 모험담은 한 교리의 배타적 진리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어느 길이 되었든 착각과 집착의 요마를 퇴치하고 여래의 땅에 도착하도록 이끄는 길이라면 긍정의 대상이 된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서유기』는 유식을 모르는 사람이 유식을 말하고, 선을 모르는 사람이 선을 말하며, 밀교를 모르는 사람이 밀교를 말한 책이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야와 유식을 두 축으로 하되 중국불교의 다양한 실천론들이 모두 수용되어 있는 것이 『서유기』다. 그것은 여러 수호신들의 출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손오공과 용이 싸우는 현장에 수호신들이 나타나는 장면을 보자.

 

“내 말이 잡아먹혔다면 어떻게 길을 가느냐? 신세가 왜 이럴까? 말이 없으면 어떻게 그 먼 길을 간단 말이냐.” 삼장이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손오공이 그것을 보다가 참지 못하고 고함을 쳤다. “사부님! 좀 못난이처럼 굴지 말아요. 좀 앉아 있어 봐요. 내가 가서 그놈에게 말을 돌려받아 올 테니까.” 삼장이 손오공을 잡으며 말했다. “얘야! 어디 가서 말을 찾겠다는 거냐? 요괴가 가만히 숨어 있다가 나까지 해치면 어떻게 하냐? 말에 사람까지 없어지면 끝 아니냐?” 손오공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 쓸데없으신 양반아! 말은 타야겠다! 나더러는 가지 말라 ! 어쩌자는 거요? 이렇게 짐이나 지키면서 늙을 때까지 앉아 있겠단 거요?” 

 

사진 3. 6정6갑의 정해신.

 

이때 호법신들이 나타나 삼장의 호위를 자처한다. 6정6갑六丁六甲, 5방아제五方揭諦, 4치공조四值功曹, 18가람十八伽藍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6정6갑은 도교에서 신봉하는 시간의 신이다. 10간과 12지를 조합하면 60갑자가 된다. 이때 10천간의 각각에 6개의 간지가 성립한다. 그중 천간 정丁으로 조합되는 6개 간지는 여성적 에너지[陰]를 갖춘 신이 된다. 이들을 육정六丁이라 부른다.

 

다음으로 천간 갑甲으로 조합되는 6개 간지는 남성적 에너지[陽]를 갖춘 신이 된다. 육갑六甲이다. 그러니까 6정6갑의 12신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 수행자를 지키는 수호신이 된다. 그 의미와 12라는 숫자를 고려할 때 6정6갑의 12신은 12연기의 상징이다. 5방아제五方揭諦는 반야 수행자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금두아제金頭揭諦, 은두아제銀頭揭諦, 바라아제波羅揭諦,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마하아제摩訶揭諦가 그들이다. 『반야심경』의 주문, “아제아제~”를 신격화한 신들이다.

 

6정6갑이 시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면 5방아제는 공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다음으로 4치공조四值功曹는 연·월·일·시를 수호하는 도교의 신이다. 역시 그 의미와 4라는 숫자를 함께 고려하면 4성제의 신격화에 해당한다. 18가람은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구체적 명칭을 갖고 있다. 일일이 밝힐 필요는 없지만 그 명칭에는 청각적·시각적 요소가 공통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지각기관[六根], 지각대상[六境], 지각작용[六識]의 18계를 가리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교와 불교에서 기원하는 두 그룹의 시간의 신, 두 그룹의 공간의 신이 호법신으로 수행자를 지켜준다는 뜻이 된다. 『서유기』가 도교와 불교의 교리를 두루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외도에 대한 태도가 이러하므로 불교적으로 3승 12분교, 5시 8교를 두루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에 속한다. 물론 그 중심에 유식과 반야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역사적 인물인 현장의 정체성을 이루는 두 축이기도 하다는 것은 물론이다.

 

용의 귀의와 여행 준비의 완료

 

그렇게 수호신들이 나타나자 손오공은 안심하고 강가로 나아가 용을 도발한다. “이 못된 미꾸라지야. 내 말 내놔라. 내 말 내놓으라고!” 손오공의 도발에 용이 불처럼 화를 내며 나타난다. 과거에 무명의 불길로 야명주를 태운 전적이 있는 불의 화신 아니던가? 그런데 용은 손오공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몇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달아나 물속에 깊이 나오지 않는다. 손오공이 강물을 휘저어 흙탕물을 만든다. 용은 다시 참지 못하고 나와서 몇 번 싸우다가 이번에는 물뱀으로 변해 풀숲에 숨는다. 손오공이 산신과 토지신을 불러 상황을 알아본다. 토지신에 의하면 이 용은 수천수만의 무수한 굴을 파놓고 출몰한다. 하나의 굴로 들어가면 만 개의 굴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4. 4치공조 호법신.

 

그것이 마음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이제 막 서천행의 초입에 든 손오공이 마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실체없는 것을 잡으려 하는 그 자체가 잘못이기도 하다. 이에 금두아제를 시켜 관세음보살을 모셔 오게 한다. 금두아제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반야심경』의 진언을 신격화한 다섯 신 중의 우두머리 신이다. 관세음보살의 경전인 『반야심경』을 대단락 짓는 금두아제가 관세음보살을 모셔 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에 속한다.

 

현장에 출두한 관세음보살이 용을 불러낸다. 그리고는 그것을 백마로 변신시킨 뒤 삼장의 탈 것으로 내어준다. 용을 백마로 변신시키는 일은 수행의 원리를 상징한다. 원래 용은 물 밖으로 나오면 하늘을 비상한다. 그런데 이 용은 말이 되어 지상을 떠나지 않는다. 초월의 길이 아니라 회향의 길이다. 대승의 길이다. 그것은 자아를 내려놓고 진리에 맡기는 길이기도 하다. 관세음보살은 용을 백마로 변화시키기 전에 용의 목에서 야명주를 제거한다. 이게 야명주이기는 하지만 밝게 비추는 대신 안개를 뿜기 때문이다. 

 

사진 5. 용을 조복시키는 관세음보살.

 

자아의식이 남아 있어 한계가 뚜렷한 밝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떼어낸 용은 이제 자아의식의 야명주가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으로 돌아간 야명주로 보는 것이다. 자아와 대상 세계를 둘로 나누지 않는 차원에 진입하려면 별도의 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아의 눈을 내놓아야 한다. 야명주를 관세음보살에게 맡기는 일이 그것이다. 이제부터 용은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을 눈으로 삼아 서천여행에 들어간다. 순화의 길이다. 

 

용마의 안장과 고삐와 채찍

 

용마를 얻은 일행은 마을의 토지신 사당의 사당지기 노인에게 밥과 차를 대접받는다. 노인은 삼장의 백마에 안장과 고삐를 선물한다. 또한 안장과 고삐를 채워 길을 떠나려 하자 다시 채찍을 선물한다. 이 안장과 고삐와 채찍은 서천 여행의 필수품이다. 우선 안장은 그 자리에 앉아 떠나지 않는 일이다. 안장에 앉아 타고 있는 백마를 자각하듯 그 의식이 드러난 자리를 확인하면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사진 6. 안장과 고삐가 채워진 말(당삼채).

 

고삐는 놓치지 않고 주시하는 일, 밖으로 달려 나가지 않도록 통제하는 일을 상징한다. 밖으로 달려 나가는 자아의식의 고삐를 잡아채는 것이다. 그것이 고삐를 선물한 뜻이다. 마지막으로 채찍을 선물한다.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거듭 나아가도록 주마가편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채찍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충분히 순화되지 않은 말에 채찍을 쓰면 낙마의 위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충분히 순화되지 않은 마음에 가행의 채찍을 쓰면 조급증으로 인한 폐해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채찍을 마지막에 선물한 것이다. 안장과 고삐에 익숙해진 뒤에 쓰라는 의미이다. 법의 흐름에 따라 나아가는 일에 충분히 익숙해졌다면 얼마든지 주마가편의 가행정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채찍은 필요하다. 조급증은 독이지만 지금의 틀을 벗어나는 일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봐도 바람처럼 달려 천리에 이른다[良馬, 見鞭影而, 追風千里].”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채찍은 대승에서 열어놓은 돈오속성의 길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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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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