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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의 글로벌 트렌드 ]
불교명상의 세계적 흐름과 지도자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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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수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20:31  /   조회5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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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고경』 제153호

불교명상의 글로벌 트렌드 1   

 

한국에서 명상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할 때 우리는 흔히 “서구에서도” 명상과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신문기사나 학술논문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현재 서구 불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구 불교에는 이전과 비교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시작과 역사적 흐름

 

서유럽 사회에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정보가 알려진 것은 이미 17세기의 일이지만, 불교가 실제로 존재감을 가지고 미국 대륙에 상륙하게 된 것은 185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중국 사찰이 세워지면서부터다. 철도 건설 등의 일자리를 찾아 미국에 온 중국인들이 본국의 신앙을 이어간 것이다. 

 

사진 1. 1893년 시카고 박람회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 세계종교회의. 미국 사회에 불교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950, 6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양상의 불교가 주류 사회에 퍼지게 된다. 이들은 주로 교육 수준이 높은 백인들로, 책을 통해 불교를 처음 접했다. 그들은 불교가 깨달음을 얻는 종교이며, 그곳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기도나 의례 같은 아시아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 중) 명상을 대표적 수행법으로 삼는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1950년대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소위 비트 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불교가 꽃피우게 된다. 

 

 

 

 

당시 미국 제도권 사회의 종교와 정치에 대한 반감과 맞물려 외래 종교인 불교에 관심을 돌린 것이다. 스즈키(1870~1966), 앨런 와츠(Alan Watts, 1915~1973), 잭 케루악(Jack Kerouac, 1922~1969),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1926~1997) 등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학자들은 이들의 불교를 백인불교(White Buddhism) 또는 개종불교(Convert Buddhism)라고 부르고, 앞서 말한 아시아인들의 불교를 민족불교(Ethnic Buddhism)로 불러 구별했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 전체를 ‘미국 불교(American Buddhism)’라고 부르면서, 학자들은 불교가 서구 사회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현상에 주목했다.

 

개인적 경험

 

필자는 2010년에 서구의 불교에 대한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도 간간이 인용되고 있다. 인류학자나 종교학자도 아닌 내가 그런 주제의 글을 쓰게 된 것은 당시 나의 삶과 관계가 있다. 1977년 대학에 자연계로 입학한 후 불교철학을 전공하겠다고 대학원을 철학과로 진학한 나에게, ‘불교’란 천 년을 넘긴 고전어로 쓰인 문헌 속에 꼭꼭 감춰진 심오한 비전秘傳과도 같은 것이었다.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어렵게 석사학위 논문을 원효에 대한 주제로 마친 후, 나는 박사 과정 중에 인도불교철학으로 공부의 시각을 넓혀보겠다고 마음먹고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버클리 대학의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각종 고대 언어로 쓰인 불교 문헌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 밖을 나가면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사진 3. 필자가 공부했던 UC버클리대 도서관. 사진: Thomas Guignard.

 

세계의 종교와 각종 불교 전통의 현장이 그곳에 있었다. 길에 늘어앉아 있는 히피들과 공을 두드리며 ‘하리 크리슈나’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로, 멀리 뒷산에는 마니차와 울긋불긋한 깃발이 펄럭이는 티베트불교 닝마파 사원이 보였다. 캠퍼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스리랑카와 태국, 일본 사찰이 있었고, 각종 색깔의 법복을 입은 스님들이 서구 학문을 배우러, 또는 포교를 위해 버클리 캠퍼스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 후 박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 대학에서 불교사상을 가르치다가 2004년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자연스럽게 양쪽 문화의 불교를 비교하고 관찰하게 되었다. 미국 불교의 국외자 입장에서 신기하고도 특이한 현상들을 틈틈이 적어 모아둔 관찰 노트에서 앞의 그 논문이 나왔다. 이후 틈틈이 서구 불교계의 수행 트렌드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사진 4. 인류학자 소질을 칭찬해 주신 전경수 선생님 내외분.

 

그리고 2023년 정년퇴직 후 바로 미국 대학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어 출국하게 되었다. 미국 동부의 한 대학에서 1년간 체류하는 동안, 인류학자를 방불케 하는 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미국 내 불교 지도자들과 학자들을 인터뷰하고 사찰을 방문했다. (예일에서 만난 존경하는 선배 교수님이신 인류학자 전경수 선생님께서는 내가 인류학자로서 아주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15년 후의 관찰

 

2023~2024년 1년간 미국 불교를 관찰하면서 두 가지 잠정적 결론을 얻게 되었다. 첫째, 불교가 미국에 전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일반 사회 속에 불교 교의의 기본이나 명상 전통에 대한 지식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불교 전래 초기에 보였던 인구 증가 추세와 비교하면 현재 시점에서는 사찰 수나 신자 수에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1979년 달라이 라마께서 처음 미국을 방문하시고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 당시 미국 사회에서 느낄 수 있던, 넓은 사회적 계층을 아우르는 불교에 대한 호감이나 흥분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이런 생각은 인구 통계에 기반한 판단은 아니다. 다만, 15년 전 위의 논문에서 말했던 “서구에 불교가 알려지게 된 지 약 150년, 서구 사회가 불교를 수용하는 문명사적 의의가 높다. 인구학적으로만 보더라도 20년 전까지 몇만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불교 인구가 현재 30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될 정도이며, 미국 사회와 문화 속에 드러나고 있는 불교의 영향은 괄목할 만하다.”고 했던 주장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생겼다.

 

그 이유를 찾아본다면, 1960년대 미국 불교 확산의 주역이었던 히피 세대가 노령화되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도달했고, 따라서 지도자나 신자들의 수와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의 1세대 불자들은 스승을 찾아 인도로 떠나기도 하고 깨달음의 체험을 찾아 만행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불교에 참여하던 사람들이었다.

 

사진 5. 예일대학 내 불교법당 안에서.

 

반면 요즘 세대는 예전처럼 종교에 진지하지 않다고 한다. 또 사회적으로 종교에 대한 소신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분위기이기에 불교를 홍보하거나 전파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트럼프 정권 집권 이후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기독교 복음주의의 영향이 크다고도 한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아시아 이민 2, 3세대 사이에 미국의 주류 종교(즉, 기독교)와 문화적 경향을 따르고자 하는 성향이 한층 높아졌다고도 한다. 

 

한편, 불교계 내부 신자들의 관심 영역에서 이전과 많은 변화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목적보다는 사회적·개인적 윤리의 문제, 세상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자비의 증진, 또는 이타적 실천 등의 주제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들의 관심에서 질적 변화, 또는 ‘성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질적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변화를 일으킨 동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욱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두 번째 점은, 미국 내에서 불교가 둔화되고 있는 데 반해 유럽 지역, 특히 스페인과 남미 지역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부터 다룰 유럽이나 남미 지역의 명상 센터나 명상 지도자들을 살펴보면서 더욱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다시 정리해 보면, 서구불교에 지난 15년간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 불교의 둔화에 반해 유럽 지역 특히 스페인과 남미 등 스페인어 권 내에서의 불교 성장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불교계의 규모에 있어서 그리고 에너지와 활동의 측면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이 여전히 주도적이고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편 양적 성장이 주춤한 가운데 불교에 대한 이해가 보편화되고 보다 널리 확산되고 있음을 느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소수를 위한 종교라는 관점에서 개인의 내면적 성장을 돕는 오래된 지혜 전통이라는 이해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불교계 내에서는 새로운 불교 해석과 방법론을 계속 시도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와 대응의 양성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겠다. 

 

앞으로의 방향, 글로벌한 시각

 

다음 호부터는 각론으로 들어가, 유럽, 미국, 캐나다, 중남미, 호주, 뉴질랜드 등지의 명상 지도자, 그리고 네팔과 인도의 명상센터나 지도자들을 소개하겠다. 또한 요즘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명상 프로그램 앱도 살펴보고자 한다. 가르침의 특징과 아울러 그 지역 불교와의 관련에 대해서도 다루도록 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티베트불교의 족첸에 기반한 명상 그룹인 ‘Simply Being’을 이끌고 있는 영국의 제임스 로(James Low)에 대해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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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불교철학 전공.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 미국 버클리 대학 박사.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장, 불교학연구회 회장 등 역임. 현재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 석좌교수. 저술로 『Language and Meaning』, 『불교와 근대, 여성의 발견』, 편저 『Korean Buddhist Nuns and Laywomen』, 공저로 『불교 과문집』, 『마음과 철학』, 『21세기의 동양철학』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원효에 있어서 진리의 존재론적 지위」, 「불교의 경전 주해 전통과 그 방법론적 특징」, “Wŏnhyo on Guilt and Moral Responsibility” 등이 있다.
esch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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