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음악 속의 불교 ]
국악은 잘 모른다는 당신, 영산회상만 알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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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정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20:39 / 조회39회 / 댓글0건본문
태정태세문단세… 한국인이면 누구나 외우는 조선 왕들의 계보인데, 요즘은 이걸 외국인들이 외우고 있단다. 그냥 순서만 외는 것이 아니라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이 정종, 다섯째 아들이 태종, 태종의 셋째 아들 이도가 세종대왕… 이런 식으로 왕도표로 그려서 서로서로 공유해 가며 외고 있다는 거다. 왜? 한국 사극을 보기 위해서.
한류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물론 아직은 그 수가 많지 않으니까 화제도 되는 거겠지만, 우리가 “한국 음식에는 비빔밥도 있고, 불고기도 있고…” 하면서 돈까지 써가며 광고를 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이제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한 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템플스테이를 하다가 “저기요, 저 사천왕상 손에 있는 저 악기는 이름이 뭔가요? 어떤 소리가 나나요?”, “근데 한국불교에는 스님 염불 말고는 전통 음악이 없나요?” 이런 걸 묻기 시작한다면, “저 악기는 비파인데요, 비파에는 향비파가 있고 당비파가 있는데, 저건 당비파구요, 기타처럼 생겼잖아요? 소리도 기타랑 비슷해요.”라거나 “범패라는 게 있는데, 절에서 큰 의식을 할 때는 범패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스님들이 노래해요. 무척 장중하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노래인데, 글쎄 역사가 1000년도 넘었대요.” 뭐 이런 얘기를 술술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국악프로그램 작가로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보면, 국악 전공자와 소수의 애호가를 제외하면, 가야금, 거문고조차도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마도 다들 “거 봐, 나만 모르는 게 아니잖아.” 하고 있는 듯하다.
뒤늦게 국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분들이 하는 자주 말이 “나도 이제 나이가 드나 봐, 국악이 좋아지네.”인데, “어? 이거 좋네.” 했다가도 금방 다시 뒷전에 두게 되는 건, 국악도 나름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불교가 좋아져서 책을 펼친 사람이 낯설고 어려운 용어가 나올 때마다 좌절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불교에 이미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음악 가운데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100개 가운데 하나도 모르면 시작점도 못 찾지만, 그중 하나라도 아는 것이 있다면, 이미 반쯤은 다 아는 마음이 돼서 기고만장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오늘은 일단 영산회상 이야기부터 해 보자.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 가운데서 큰 비구 대중 1만 2천 인과 함께 계셨다.
『법화경』은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경전을 좀 더 보면 1만 2천 명은 모두 아라한만을 가리킨 것이고, 그 외에도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는 이, 보살마하살 등등 수만의 존재가 더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산중에 얼마나 넓은 광장이 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나 싶지만, 실제 가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사굴산은 그리 큰 산은 아니라고 한다.
성지순례 다녀와서 인터넷에 올린 사진들만 봐도, 실제 부처님이 설법했던 장소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봐야 100명도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경전에서 얘기한 저 수만 명의 대중이란 그저 부처님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허풍일까. 그럴 리가. 기사굴산에서 설해진 부처님의 말씀은 집대성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경전에서 얘기한 수만의 대중이란 바로 지금 『법화경』을 읽는 ‘당신’까지도 포함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사굴산은 영취산靈鷲山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때 부처님과 여러 대중들의 모임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바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다. 주로 대웅전 석가모니 뒤편에 모셔지거나 괘불로 제작되어 절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마당에 걸린다.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저마다의 역량에 따라 크고 작은 존재들이 구석구석 빼곡히 화면을 채우고 있는데, 저기 저 구름 속에 있는 저 사람이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음악에도 영산회상이 있다
우리 전통 음악 중에도 영산회상이 있다. 사실은 참 많은 영산회상이 있다. 영산회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전통음악의 갈래를 대충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음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구분한다. 바를 정正 자를 쓰는 정악正樂은 왕실과 양반들을 위한 음악이다. 여기에는 종묘제례악처럼 궁중 의식에서 연주하던 음악에서부터 수제천이나 여민락처럼 궁중 행사에서 연주하던 음악, 그리고 선비들이 한가롭게 즐기던 풍류음악 등이 포함된다. 어쩌다 들은 전통음악이 ‘역시 느리고 지루하다’라고 느껴졌다면, 아마도 정악을 들었을 확률이 높다. 정악은 ‘낙이불류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를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즐겁지만 난잡하지는 않고, 슬퍼도 비통하지는 않다는 거다. 그래서 늘 평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음악도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국악을 들으면서 “역시 우리는 흥의 민족이야.” 또는 “한이 느껴져!”라고 한다면, 그건 민속악일 확률이 높다. 민속악은 짐작하는 것처럼 백성들의 음악이다.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던 백성들은 양반들처럼 느리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그 속에 담긴 깊은 맛을 찾을 여유가 없다. 명절이나 생일 잔치처럼 어쩌다 하루 마음껏 놀 수 있을 때, 속에 담긴 흥과 한을 다 발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속악은 대체로 슬픈 건 더 슬프게, 즐거운 건 더 흥이 나도록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영산회상은 정악에 속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 성종 대에 편찬된, 당대 음악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악학궤범』이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이라는 궁중무용을 정리한 항목인데,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은 현재는 학춤을 추다가 학이 무대에 설치된 연꽃봉오리를 쪼면 봉오리 안에서 무용수가 나와서 춤을 추는 연화대무蓮花臺舞가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통일신리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처용무가 어우러지는, 매우 규모가 크고 화려한 춤이다.
시용향악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영산회상만靈山會相慢을 연주하면, 여기와 악공들이 다 함께 소리를 맞추어 ‘영산회상불보살’을 노래하면서 들어와 왼쪽으로 세 번 돌고 아래 사진 6번과 같이 선다. 박拍과 대고大鼓를 치면 영산회상령靈山會相令을 연주하는데, 음악이 점차 빨라지면서 오방五方 처용 處容이 신명나게 춤을 추면 여기와 악공, 의물을 든 사람들, 가면 무동까지 모두 몸을 흔들며 즐겁게 노닌 뒤 음악을 그친다.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에는 악기를 든 악사들까지 둥그렇게 서서 춤을 추었던 것 같다. 이때 연주하던 음악이 바로 영산회상인데, ‘영산회상만’은 대체로 느린 음악, ‘영산회상령’은 매우 빠른 음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궁중무용을 정재呈才라고 하는데, 정재에는 ‘창사唱詞’라고 하는 노래가 포함되는 것이 기본이다. 보통은 국가와 왕실의 안녕,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내용을 노래하는데,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을 출 때만큼은 숭유억불을 주장하던 조선의 궁중에서 ‘영산회상불보살’을 노래했다는 것이 신기하게도 느껴진다.
천변만화하는 영산회상
현재 연주되는 영산회상은 하나의 악곡이 아니라 9개의 작은 악곡들로 구성된 모음곡이다.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덜이〉,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인데, 이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음악은 상령산이다. 『악학궤범』 당시 연주되던 영산회상을 모체로 다양한 변주곡이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원래의 영산회상은 상령산이 되고, 중령산, 세령산, 그리고 상령산 가락을 덜어냈다는 뜻의 가락덜이로 이어지며 민간에서 연주되던 악곡들까지 받아들이면서 각각의 곡마다 나름의 특징을 가진 모음곡이 된 것이다. 첫 곡인 상령산은 느리고 장중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차 속도도 빨라지고 흥청거리는 느낌이 된다.

영산회상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피리, 장구 등이 각각 하나씩 구성돼서 연주한다. 사랑방 같은, 좁은 공간에서 연주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소규모 실내 음악을 풍류음악이라 하는데, 여유가 된다면 단소나 양금 같은 악기를 더하기도 하고, 좁으면 하나나 둘만 모여서 연주해도 된다. 서양음악은 작곡의 순간부터 악기 구성이 정해져 있지만, 우리 풍류 음악은 악기 구성이 자유롭고, 구성에 따라 색다른 음색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에서 영산회상이 참 많다고 했는데, 이 풍류음악으로 연주하는 영산회상이 기본이다. 거문고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거문고회상〉이라고도 하고, 〈현악 영산회상〉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몇 곡을 덜어내거나 〈도드리〉나 〈천년만세〉를 같은 곡을 더해서 연주하기도 하는데, 이런 음악은 별스러운 영산회상이라고 해서 〈별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역마다 말이 다르고 노래가 다른 것처럼 영산회상의 가락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지방에서 연주하는 영산회상은 〈향제 줄풍류〉라고 한다.
현악 영산회상을 궁궐 마당처럼 넓은 야외 공간에서 연주하도록 대규모 합주곡으로 편곡한 음악도 있다. 각각의 악기들이 여러 명씩 구성되고, 풍류음악에서는 현악기를 보좌하기 위해 소리를 죽여내야 했던 피리는 악기까지 바꿔 웅장한 소리를 내고, 북 같은 것도 추가된다. 이런 음악을 〈유초신지곡〉이라고 한다. 이렇게 편곡된 음악을 다시 실내악으로 연주할 때는 〈취태평지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관악 영산회상〉도 있다. 〈표정만방지곡〉이라고도 하는데, 현악기는 아예 빼버리고, 대규모로 연주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피리 둘에 대금, 해금, 장구, 북, 이렇게 여섯 명이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악기 구성을 삼현육각이라고 한다. 해금이나 아쟁은 현악기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해금, 아쟁처럼 줄을 문질러 소리 내는 악기는 관악기로 취급했다.
관악 영산회상은 무용 반주 음악으로 많이 연주된다. 특히 궁중 무용에서 관악 영산회상 중 상령산을 연주할 때는 〈향당교주〉라고 하고 삼현도드리부터 뒷부분을 연주할 때는 〈함령지곡〉이라고도 한다. 춤의 흐름에 따라 가락이나 박자가 자유로워지는 특징이 있다.
대체적으로 구분한 것인데,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영산에 모인 수많은 불보살처럼 다양한 가락과 장단, 분위기를 가진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전통음악 영산회상이다. 그래서 국악인들도 영산회상으로 음악을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평생 영산회상을 갈고 닦는 경우가 많다.
“국악에 관심 좀 가져볼까 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 모든 음악을 다 듣고 다 알아야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을 모르면 좀 알아보려 하다가도 “아, 국악은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어.” 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저 “영산회상은 종류가 참 많다”라는 정도만 알아 두었다가 가끔 인터넷으로 영산회상을 검색해 들어보면서, 그날그날 나의 컨디션과 어울리는 영산회상을 찾아보는 것도 우리 음악을 즐기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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