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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불교의례 ]
당번幢幡 ❷ 부처님 설법에 감동한 천상의 ‘산화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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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20:51  /   조회3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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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꽃비’는 불법의 환희로움을 찬탄하는 상징물이다. 의례에서 불보살의 강림을 노래할 때면 꽃잎과 색종이를 뿌리며 ‘산화락散華落’을 외운다. 그림과 조각으로 법당 가득히 상서로운 꽃비를 표현하는가 하면, 종이 번에도 곱게 꽃비 문양을 새긴다. 꽃[華]이 비처럼 흩날려[散] 내림을 상징하는 이 번幡을 ‘산화락번’이라 부른다.

 

설법의 환희로움을 담은 산화락번

 

산화락번은 부처님 당시의 매우 인상적이고 환희로운 순간을 담은 종이 번이다. 『법화경』 「서품」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사성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의 상황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날의 법회는 영축산의 설법 모임이라는 뜻에서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다. 

당시 8만의 보살과 1만 2천의 비구, 여러 천왕·용왕 등 한량없는 중생이 자리한 가운데, 먼저 『법화경』의 서설·개경開經에 해당하는 『무량의경無量義經』을 설하고 잠시 부처님이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의 경지에 들게 된다. 이때 하늘에서 만다라화·마하만다라화·만수사화·마하만수사화의 꽃비가 내려 부처님과 대중들에게 흩뿌려졌다는 것이다.

 

사진 1. 청련사의 산화락번.

 

만다라화는 흰 연꽃, 만수사화는 붉은 연꽃을 말한다. 상서로움[瑞]을 알리는 꽃비[雨華]라는 뜻으로 이를 ‘우화서雨華瑞’라 하고, 꽃이 휘날리며 떨어지니 ‘산화락’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늘에서 연꽃이 비처럼 내린 것은 부처님의 설법에 감동한 천상계가 ‘꽃 공양’을 한 것이니, 이보다 장엄하고 환희로운 공양이 없을 듯하다. 

 

이에 꽃비는 불법을 찬탄하는 핵심 상징물로 자리하게 된다. 불화와 법당의 천장을 가득 채운 연꽃 문양은 설법 후에 나타난 우화의 상서로움을 구현한 상징물이다. 의례에서는 ‘산화락’을 염송하며 꽃잎을 흩뿌리고, 종이꽃 지화紙花로 만다라화·만수사화 등을 접어 부처님의 세계를 찬탄하였다.

 

사진 2. 통도사 개산대재의 괘불이운에서 꽃잎을 뿌리는 신도들.

 

특히 번으로 만든 산화락은 허공에 걸어 휘날리게 함으로써 성현의 현현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산화락번은 정釘으로 문양을 새기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전승되어 왔다. 정으로 새기는 방식은 번의 몸체 아래위에 구멍을 만들어 긴 줄로 이어지게 한 뒤, 양쪽에 꽃을 새겨 꽃비가 내리는 모습 등으로 형상화하게 된다. 몸체에 문양을 만들려면 가위로 오리기 힘들고 정으로 새겨야 하니, 번거로움으로 인해 언제부턴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근래 양주 청련사에서 정으로 새긴 산화락번을 보았다. 45년 전 청련사로 출가하여 지금까지 전통 장엄을 전승해 온 지홍스님의 작품이다. 아래위의 구멍은 지전을 만들 때 쓰는 돈정을 사용하고, 양쪽의 작은 꽃잎은 지화를 만들 때 쓰는 각화정刻花釘을 사용했다고 한다. 만드는 데 공이 많이 드니, 비닐을 씌워두고 실제 의례에는 쓰지 않는 보관용 번이었다. 그런가 하면 삼척 안정사에서는 정으로 새기지 않고 가위로 오려서 산화락을 표현해 왔다. 몸체라 해도 섬세하게 접어 오리는 방식으로 다양한 꽃비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3. 삼화사 수륙재의 괘불·불패 이운에서 꽃잎을 뿌리는 동자·동녀.

 

몸체에 문양을 새기는 산화락이 주로 수도권 사찰에 전승되는 방식이라면, 번에 직접 꽃을 그려서 조성하는 ‘화괘華掛’ 형태의 산화락은 전국적 분포를 지녔다. 그러나 큼지막한 꽃송이를 그리는 산화락번을 쓴 지는 오래되었고, 인쇄한 번으로 거는 사찰을 드물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어떠한 방식이든 여법하게 조성한 산화락번은 수십 년 전부터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태생적으로 종이 번은 의례를 마치면 불태우는 일회용인 데다, 영산회상의 꽃비가 지닌 상서로움의 의미는 잊히고 단순히 ‘꽃 번’이라는 장식적 요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삼천대천세계에 꽃비가 내리면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한다”라고 했으니, 의례에서 사라져간 ‘우화서’의 상징성이 아쉽다.

 

사진 4. 꽃비를 상징하는 통도사 영산전 천장의 연꽃들.

 

극락정토의 길로 이끄는 인로왕보살번

 

‘길[路]을 인도하는[引]’ 인로왕보살은 번과 떼어놓을 수 없는 보살이다. 수륙재·영산재 등에서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기에, 인로왕보살번은 처음 일주문 밖에서 영가를 만나기 위해 오가는 시련侍輦 행렬의 맨 앞에서 대중을 이끈다. 취타대의 악사들이 태평소 가락을 연주하는 가운데, 어산단과 사부대중이 따르는 긴 행렬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영가를 태운 연輦을 중심으로 오방불번을 비롯해 사명기·영기·청도기·순시기·청룡기·현무기 등이 앞뒤 좌우에서 옹호하는 행렬이다. 낯선 곳을 헤매다 인로왕보살의 인도로 부처님의 세계에 드는 영가와 고혼은 더없이 든든할 듯하다. 이제 그들은 업을 깨끗이 정화하고 불단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손에 천층千層의 보개를 받들고 몸에 온갖 꽃목걸이 걸치시고,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시며 망령을 이끌어 벽련대반碧蓮坮畔으로 향하게 하는 대성 인로왕보살이여. 원하옵건대 자비로 강림하시어 증명의 공덕을 베푸소서.

 

영단에 주인공들을 모시고 시식施食을 베푸는 단계에서 외우는 증명청證明請의 일부이다. 이때의 ‘벽련대반’은 푸른 연꽃대좌가 있는 물가를 뜻하니, 곧 극락의 연못에 연화화생蓮華化生하도록 이끈다는 의미이다. 부처님의 세계로 가기 위해선 신묘하고 여법한 힘으로 인도하는 존재가 필요하니, 인로왕보살을 증명으로 모시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사진 7. 남장사 감로탱(상단 서쪽에 번을 든 인로왕보살).

 

이처럼 인로왕보살번은 중생을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한 강력한 의지가 담긴 번이다. 따라서 규모 있는 사찰마다 비단에 수놓은 인로왕보살번을 갖추고, 여러 재회齋會와 다비茶毘 의식에서 영가를 인도하는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대개 적색의 번신幡身에 ‘나무대성인로왕보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이라 쓰고, 흑색의 삼각 번두幡頭에 번수幡手는 청색, 번족幡足은 몸체와 다른 색에 연화문 등을 수놓는 경우가 많다. 양쪽 번수에 긴 매듭과 술을 늘어뜨리고, 번두에는 시주자와 발원 내용을 넣은 복장낭腹藏囊을 매달아 화려함을 더하기도 한다. 

 

감로도甘露圖에는 인로왕보살이 직접 번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색 번을 들고 서방정토를 상징하는 화면 서쪽의 상단에서, 옷깃을 휘날리며 하강하는 율동적인 자태를 지녔다. 하단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상단의 천상계로 인도하는 매개자의 구실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낯선 여행객들을 인솔하려면 깃발이 필요하듯이, 의례 행렬에 앞장서는 인로왕보살번은 도상 속 ‘번을 든 인로왕보살’과 그대로 겹쳐진다.

 

사진 8. 통도사 극락보전 반야용선도(뱃머리에 선 인로왕보살).

 

인로왕보살은 번뇌의 바다를 건너 정토로 향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에서도 유감없이 역할을 발휘한다. 반야용선도는 인로왕보살이 뱃머리에서 용선을 이끌고 지장보살이 후미를 지키는 가운데, 아미타삼존이 중생과 함께하며 바닷길을 헤쳐 가는 모습으로 즐겨 표현된다. 이처럼 중생을 극락으로 맞이하는 모티브를 ‘극락내영極樂來迎’이라 하여, 깃발을 들고 이끄는 인로왕보살을 ‘극락내영의 보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진 9 신륵사 반야용선도(뱃머리에서 노를 젓는 인로왕보살).

 

사후의례와 인로왕보살의 결합은 당나라 때부터 성행하였고, 신라에서 이를 수용한 뒤 고려 때 인로왕보살 신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조선 중후기부터 조성된 감로도를 중심으로 극락내영이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내영의 주축으로 아미타불과 인로왕보살·지장보살 등이 구성을 이룬다. 인로왕보살은 영가를 위한 하단불화에 빠짐없이 등장하지만, 독자적인 극락내영도로 조성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대신 한국불교에서는 인로왕보살번을 들고 행렬하는 내영 의식이 크게 발달했음을 살필 수 있다.

 

온 세상에 존재하는 부처님의 상징, 오방불번

 

규모 있는 의례를 봉행할 때면 오방불번五方佛幡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오방불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머물고 계심을 상징하는 방위불 개념으로, 본래 사방불에서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더한 오방불 체계로 발전하였다. ‘사방四方’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인식하는 개념이자, 특정 방위를 넘어 온 세상에 부처님이 두루 존재한다는 불교 세계관이 담긴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사진 10. 진관사 수륙재 시련 의식의 오방불번.

 

초기 대승 경전에서는 사방을 넘어, 팔방에 상하를 더한 시방十方의 부처님에 대한 기록을 살필 수 있다. 5세기 무렵부터 각 방위에 대응하는 부처님의 명호가 명시되기 시작하여, 『금광명경金光明經』 등에는 동방 아촉불阿閦佛, 서방 아미타불, 남방 보상불寶相佛, 북방 미묘성불微妙聲佛의 구성으로 등장한다.

 

그 뒤 8세기경 밀교에서 사방불의 중앙에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더하여 오방불 체계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처럼 오행五行 사상과 무관하게 오방불이 형성되었는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사방불은 경전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신라 불상들부터 동방에 약사여래를 두고 서방에 아미타불을 대응시켜, 동서축을 중심으로 한 신앙체계가 형성되었다. 특히 동방에 아촉불을 두는 중국불교와 달리 대부분 약사불을 조성하며, 남북축의 경우 또한 밀교 경전을 따르지 않고 시대와 신앙 환경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유연하게 구성하였다.

 

이러한 한국의 사방불 개념을 각 사찰에 전승되는 전통 오방불번에서 살펴볼 수 있다. 범어사·진관사 등의 경우 아래 표와 같이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동방에 약사여래불, 서방에 아미타불, 남방에 보승여래불, 북방에 부동존불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삼화사의 번은 북방의 부동존불 대신 ‘불공성취여래불不空成就如來佛’을 배치하였다. 

 

 


이들 번은 몸체의 색상을 방위에 따른 청·적·황·백·흑의 오색으로 구성하여, 멀리서도 각 방위불을 구분할 수 있다. 오방불번 또한 행렬 번으로 즐겨 등장하며, 시련 행렬에서 시방에 가득한 부처님의 현현을 드러내는 가운데 화려하고 장엄한 위용을 자랑한다. 재회에서는 불보살의 위의를 드러내는 행렬에 주로 쓰이고, 오방불을 대상으로 한 의식은 별도로 따르지 않는다.

 

 

이에 비해 전통 불교 장례나 다비 의식에서는 오방불번에 대한 의식을 갖추고 있다. 불자들의 장례에서 빈소에 오방번을 장엄하는 경우 오방례五方禮 예불을 올리며, 스님이 동참하지 않았을 때는 삼배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특히 다비를 봉행할 때 오방불번과 관련된 내용이 『작법귀감作法龜鑑』에 기록되어 있다. 

 

사진 13. 범어사 오방불번.

 

이에 따르면, 고인의 시신을 모신 감龕을 들고 화장장으로 떠나는 행렬에서, 다섯 명의 오방법사五方法師가 종이로 조성한 오방불번을 각각 들고 따르도록 하였다. 화장장에 도착하면 오방법사는 방위에 따라 번을 들고 서며, 장작을 쌓은 연화대 위에 감을 올리고 불을 붙인 다음 오방불청五方佛請으로 한 분 한 분을 청한다. 이윽고 번 또한 불 속에 넣어 태우도록 했으니, 실체 없는 무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불생불멸의 세계로 들어감을 일깨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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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박사(불교민속 전공).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 주요 저서로 『공양간의 수행자들: 사찰 후원의 문화사』,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삼화사 수륙재』,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등이 있다.

futuren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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