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 속 세상, 세상 속 화엄 ]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마음을 비출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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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스님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21:10 / 조회52회 / 댓글0건본문
비로자나품
2022년 여름, 지구를 떠나 심우주로 날아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지구로 보낸 첫 이미지가 공개되었을 때,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46억 광년 밖의 거대한 중력 렌즈인 ‘스막스(SMACS 0723)’ 은하단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바늘구멍만 한 하늘의 틈새에 수천 개의 은하가 보석처럼 박혀 있었고, 그 너머에는 무려 130억 년 전, 우주 태초의 빛이 휘어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구에서 7,600광년 떨어진 ‘용골자리 성운(Carina Nebula)’의 이미지는 마치 신이 빚어놓은 거대한 산수화 같았다.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우주 절벽’ 사이로 아기 별들이 탄생하는 모습은 ‘별들의 요람’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했다. 형형색색의 성간 물질과 갓 태어난 별빛이 어우러진 그 광경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인류 우주 개발 역사상, 달 착륙 이후 최대의 쾌거”라고 평가했다.

제임스 웹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적외선 영역을 포착하고, 허블 망원경보다 100배나 높은 해상도를 자랑한다. 나사(NASA)와 유럽우주국(ESA), 캐나다우주국(CSA)이 합작하여 한화 약 13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분명하다. 우주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하여 최초의 별과 은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나아가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제 우주의 나이 138억 년 중 초기 10억 년의 비밀, 즉 ‘빅뱅(Big Bang)’ 직후의 순간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바야흐로 물리적 우주의 시원에 가장 근접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화엄 행자는 『화엄경』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망원경을 꺼내 든다. 과학이 최첨단 렌즈를 통해 138억 년 전의 과거와 물질의 기원을 추적한다면, 『화엄경』은 지혜의 눈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본질과 존재의 기원을 통찰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웹이 포착한 빛이 과거에서 출발해 지금 우리에게 도착한 물리적 광자라면, 화엄이 포착하고자 하는 빛은 생명과 우주를 가능하게 한 근원적인 서원의 빛이다.
빛의 근원을 향한 여정, 대위광 태자의 위대한 서원
제임스 웹이 포착한 태초의 빛이 우주의 물리적 기원을 보여주었다면, 「비로자나품」은 그 우주를 지탱하는 정신적 기원을 추적한다. 이 품은 마치 제임스 웹 망원경이 어둠 속에서 빛을 길어 올리듯, 광활한 화엄의 우주를 존재하게 한 중심, 비로자나불의 정체를 밝히는 장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바이로차나(Vairocana)’, 즉 ‘두루 비추는 빛’이라는 뜻을 가진 비로자나불은 특정한 형상이 있는 신이 아니다. 온 우주에 가득 차 있으며, 모든 존재를 비추고, 어둠을 몰아내는 지혜와 자비의 광명 그 자체이다.
이 장엄한 드라마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비로자나불의 전생, ‘대위광大威光 태자’다. 경전은 우리를 아득한 과거 ‘승음勝音’이라는 세계로 안내한다. 그곳의 ‘법계당法界幢’이라는 왕의 아들로 태어난 대위광 태자는 태생적으로 총명하고 자비로운 존재였다. 그는 화려한 왕궁에 안주하는 대신, 생로병사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의 적나라한 현실을 직시한다. 이 지점에서 화엄의 서사는 결정적인 전환을 맞는다. 태자는 고통을 외면하거나 홀로 초월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내가 마땅히 모든 중생을 고통의 바다에서 구제하리라”라는 거대한 서원을 세운다. 이것은 단순한 연민을 넘어선 혁명적인 결심이다. 자신의 모든 공덕을 회향하여,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사바세계를 가장 청정하고 아름다운 연꽃의 세계로 장엄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비로자나품」이 전하는 핵심 교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연이나 무심한 물리 법칙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의 진정한 창조 동력은 바로 자비로운 마음과 이타적인 서원이다. 현대 과학이 우주의 시작을 ‘빅뱅’이라 부른다면, 『화엄경』은 그것을 ‘보살의 서원’이라고 부른다. 대위광 태자가 닦은 오랜 수행과 보살행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펼쳐진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앞서 본 ‘화장장엄세계해’이며, 그 세계의 교주가 바로 비로자나불인 것이다.

나아가 「비로자나품」은 비로자나불의 존재 방식을 ‘십신十身’이라는 독특한 교리로 확장한다. 비로자나불은 법당의 불상 속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중생의 모습(중생신), 산하대지의 모습(국토신), 우리가 지은 업의 결과(업보신), 그리고 허공(허공신)에 이르기까지 열 가지의 다양한 모습으로 법계에 가득 차 있다. 이는 내 옆의 도반, 길 위의 풀 한 포기, 심지어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 전체가 곧 비로자나불의 몸이라는 파격적인 선언이다.
이제 우리는 제임스 웹보다 더 깊고 투명한 렌즈를 통해, 우주라는 거대한 몸을 이루고 있는 비로자나의 빛, 그리고 그 빛이 시작된 태초의 서원을 찾아 떠나보고자 한다. 그곳에는 130억 년 전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우주를 새롭게 창조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본래 면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면을 향한 거대 망원경, ‘조견照見’
여기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렌즈를 180도 돌려, 우주의 끝이 아닌 우리 마음의 심연을 비추어 본다면 과연 무엇이 보일까. 아마도 그곳에는 수백억 광년 떨어진 은하단보다 더 복잡하고, 블랙홀보다 더 깊은 감정과 욕망의 소용돌이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독송하는 『반야심경』에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관자재보살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없이 서로 의존하여 비어 있음[空]을 ‘비추어 보고[照見]’, 그 통찰을 통해 모든 괴로움을 건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핵심은 ‘비추어 봄’, 즉 ‘조견’이다. 이는 단순히 눈으로 대상을 보는 시각적 행위가 아니다. 마치 대구경 망원경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세한 빛을 포착해 내듯,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감정의 기미와 번뇌의 뿌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고도의 정신적 관측이다. 괴로움은 대개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함과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고성능 망원경이 뿌연 성간 먼지를 뚫고 별의 탄생을 목격하듯, 화엄의 지혜로 내면을 ‘조견’할 때, 우리는 감정과 욕망에 휘둘리기 이전의 청정한 본성을 포착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우주 만물과 연기로 얽혀 있는 ‘공’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이 통찰이야말로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가장 견고한 배이다. 『화엄경』은 이 내면의 관측을 위해 우리에게 더없이 훌륭한 렌즈를 제공한다. 아무리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성능이 뛰어나다고 한들, 그것은 결국 물질로 이루어진 과거의 빛을 관측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138억 년 전의 우주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지금, 이 순간 생동하는 내면의 우주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화엄경』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안에 내재한 불성佛性과 그 불성이 뿜어내는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를 직관하게 해준다. 지구 밖의 우주를 보는 데는 과학의 망원경이 최고일지 모르나, 마음 안의 우주를 탐사하는 데 있어 『화엄경』의 지혜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경전은 비로자나불의 광명을 묘사하며 이렇게 노래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천 개의 태양이 떠올라[譬如千日出], 온 허공계를 널리 비추는 듯하도다[普照虛空界].” 상상해 보자. 한 개의 태양만으로도 우리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신데, 천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라 온 우주를 비춘다면 그 광명은 얼마나 장엄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화엄華嚴’이라는 망원경을 통해 마주하게 될 내면의 실상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번뇌라는 구름에 가려져 있을 뿐, 본래부터 천 개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비로자나 광명’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한 해가 다시 저물고 있다. 오늘 밤, 숨 가쁜 일상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머리 위로 펼쳐진 심연의 밤하늘을 마주해 보는 건 어떨까. 도시의 인공광에 가려 희미할지라도, 혹은 적막한 어둠 속일지라도 그 너머에는 수십억 년의 시공을 건너온 별빛이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그것은 우주의 역사이자 비로자나불이 온몸으로 설파하는 침묵의 법문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켜켜이 쌓인 우주 먼지와 가스층을 투과하여 별이 탄생하는 시원의 빛을 포착하듯, 이제 우리도 자신만의 렌즈를 닦아야 한다.
과학이 우주의 겉모습인 물질의 탄생을 추적한다면, 우리는 그 우주를 지탱하는 내면의 원리를 꿰뚫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렌즈를 통해 오랜 세월 묵혀온 번뇌와 두터운 업장의 성운星雲을 뚫고,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태초의 빅뱅처럼 박동하고 있는 ‘서원의 빛’을 직시해야 한다. 외부의 별이 중력으로 빛난다면, 내면의 별은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간절한 원력으로 타오르는 까닭이다.
그 빛을 발견하는 순간 명확해질 것이다. 저 밤하늘의 별들이 우주가 빚어낸 물질의 파동이라면, 내 안의 빛은 그 별들을 비로소 의미 있게 존재하도록 만드는 생명의 춤임을 말이다. 그리하여 천 개의 해가 뜨는 그 깨달음의 자리에서, 우리는 더 이상 우주의 주변을 맴도는 구경꾼이 아니라 이 세계를 장엄하는 당당한 ‘세주世主’로 바로 서게 된다. 다가오는 새해, 밤하늘의 별빛과 우리 내면의 빛이 서로 공명하며 화엄이라는 거대한 꽃으로 장엄하게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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