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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세밀하고 언행이 상응하는 조동종의 가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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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2:24  /   조회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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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45_ 조동종의 선사상 ⓫    

 

동산양개가 창립하고 조산본적이 계승하여 전개된 조동종의 선사상은 상당히 다채롭다. 이는 양개가 구족계를 받고 유행하면서 남전보원南泉普願을 만난 인연으로 작가作家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이후 운암담성雲巖曇晟을 참알한 후에 깨달음을 얻고 최소한 20년 이상을 제방을 유행하면서 수많은 선사를 만나 다양한 선기禪機를 접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조동종은 청원계靑原系에 속하는데, 청원계의 태두인 석두희천石頭希遷은 승조僧肇의 『조론肇論』을 읽고 「참동계參同契」를 찬술하였고, 여기에서 희천은 회호回互와 불회호不回互를 통하여 촉목회도觸目會道를 제창하고 있다. 이러한 회호와 불회호는 양개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회호와 불회호는 결국 이사원융理事圓融으로 전개되었고, 나아가 조동종의 대표적인 정편오위正偏五位로부터 공훈오위功勳五位, 왕자오위王子五位, 군신오위君臣五位 등 다양한 오위설이 나타나게 하였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제접법과 그에 따른 선사상을 제시하였다.

 

『인천안목』에 나타난 조동종의 종풍宗風

 

후대에 오가五家의 종지와 종풍을 논한 『인천안목』 권3에서는 조동종의 특징을 정편오위 등의 오위설과 관련하여 논하고 있고, 끝부분에 「조동문정曹洞門庭」의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조동종은 가풍이 세밀하고, 언행言行이 상응하며, 기연機緣에 따라 사물을 이롭게 하고, 언구言句에 따라 학인을 제접한다. 그들(학인들)이 온 곳을 살피면, 때로는 편偏 가운데 정正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때로는 ‘정’ 가운데 ‘편’을 인식하는 자가 있으며, 때로는 두 가지를 함께 지닌[兼帶] 자도 있고, 때로는 같음과 다름이 있다. 그에 따라 그들에게 편정오위偏正五位, 사빈주四賓主, 공훈오위, 군신오위, 왕자오위, 내외소內外紹 등을 제시한다. … 대체로 조동종의 가풍은 체體와 용用, 편偏과 정正, 빈賓과 주主를 통하여 향상일로向上一路를 밝힘에 지나지 않는다. 조동종을 이해하려는가? 부처와 조사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공겁空劫 밖에서는 정편正偏이 유무有無의 기機에 떨어지지 않는다.(주1)

 

이로부터 여실하게 조동종의 핵심적인 선사상과 제접법을 정편오위 등의 오위설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가종지찬요』의 「조동종지송」 

 

그런데 청대淸代 성통性統이 찬술한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 권2에서는 조동종을 다음과 같이 논한다.

 

조동의 가풍家風은 군신君臣의 도가 하나로 합해지며, 정편正偏이 서로 의지하고, 조도鳥道의 그윽한 길이 있으며, 금침金針과 옥실[玉線]이며, 내외內外가 회호回互하고, 이사理事가 혼융混融하니, 하나의 법도 세우지 않으며, 공겁空劫 이전의 자기自己를 종지宗旨로 삼아 양구처良久處에서 그를 밝힌다.(주2)

 

사진 1. 굉지정각宏智正覺 선사.

 

이로부터 성통이 파악하는 조동종의 종지는 기본적으로 『인천안목』에서 논하는 바와 같지만, ‘이사원융’과 ‘공겁 이전의 자기’를 종지로 추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이사원융’은 양개가 찬술한 「현중명玄中銘」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앞에서 논술한 바와 같다. 그리고 ‘공겁 이전의 자기’ 역시 양개의 어록에 그 실마리가 보인다. 일본의 혜인이 교정한 『균주동산오본선사어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실려 있다.

 

(양개) 선사가 소산疎山에게 묻기를, “공겁空劫에는 인가人家가 없다고 하니, 이는 어떤 사람이 머무는 곳이겠는가?”라고 하자 소산은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선사는 “그 사람들에게도 의지意旨가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소산은 “화상은 어찌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선사는 “지금 묻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어 소산이 “이는 어떤 의지입니까?”라고 물었지만, 선사는 답하지 않았다.(주3)

 

이로부터 양개는 ‘공겁’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의 어록에 실린 「공훈오위송功勳五位頌」의 마지막 게송에는 “머리에 뿔이 겨우 생겼는데도 이미 감당하지 못하며, 헤아리는 마음으로 부처를 구함이 부끄럽구나. 까마득한 공겁空劫을 아는 사람 없는데, 어찌 남쪽의 오십삼 선지식에게 물으려 하겠는가?”(주4)라고 하여 역시 ‘공겁’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양개나 조산의 어록에서는 이른바 ‘공겁 이전의 자기’를 도출할 직접적인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오가종지찬요』의 조동종을 논한 마지막에 실린 「조동종지송曹洞宗旨頌」에서는 다음과 같이 논술하고 있다.

 

겁호劫壺의 공처空處는 그 묘한 이치는 통하기 어렵고, 

공功이 없음을 이루려 하면 이미 공에 빠진 것이네. 

편정偏正은 본래 자리에서 떠난 적 없는데, 

군신君臣이 어찌 깊은 궁궐에서 달라질 수 있겠는가?

옥기玉機(북두칠성의 별자리)가 옆으로 돌면 모나고 둥근 것이 갖추어지고, 

보배 거울이 맑고 밝으면 이사理事가 같아지네.

월아月娥[상아嫦娥]는 구름 수레[雲輦]를 타고 밤중에 돌아가지만, 

새벽이 와도 안개가 아직 몽롱하네.(주5)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하는 ‘겁호의 공처’는 굉지정각의 어록에서 언급하는 구절이다. 『굉지선사광록宏智禪師廣錄』 권2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어떤 승려가 동산洞山에게 묻기를, “삼신三身 가운데 어떤 신身이 제수諸數에 떨어지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동산은 “나는 항상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게송에 이르기를, “세상에 들어가지 않고 인연을 따르지 않으며, 겁호劫壺의 공처空處에 가문의 전함이 있다. 흰 마름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가을 강에 저녁이 찾아오니, 옛 강둑에 배가 돌아오고 한 줄기 안개가 피어오르네.”라고 하였다.(주6)

 

인용문에서 게송은 정각이 찬술한 것으로 추정되고, 이로부터 ‘겁호의 공처’는 굉지정각의 어록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굉지정각은 송대에 조동종을 부흥시킨 중요한 선사이다. 따라서 『오가종지찬요』의 「조동종지송」은 송대 이후 유행한 조동종의 선사상을 포괄한 것이라 하겠다. 송대에 찬술된 『인천안목』에서 논하는 조동종의 항목에는 다만 “부처와 조사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공겁 밖에서는 정편이 유무의 기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언급하였지만, 더욱 향상된 사상적 취지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제수에 떨어지지 않음[不墮諸數]’은 『유마경維摩經』에서 나오는 구절이고,(주7) 승조僧肇의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에서는 “법신은 함이 없음[無爲]이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無不爲]이다. 무불위인 까닭에 현현한 몸에 병이 있음이요, 무위인 까닭에 제수諸數에 떨어지지 않음이다.”(주8)라고 주석하고 있다. 승조를 극도로 존중하는 청원계의 전통으로 볼 때, 아마도 이 주석을 염두에 두고 동산에게 질문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처럼 『인천안목』과 『오가종지찬요』에서 조동종의 종지에 대한 기본적인 틀은 같지만 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겠다. 이로부터 『오가종지찬요』에서 논하는 조동종의 종지는 오대를 거쳐 송·원·명·청대에 이르는 사상적 변화를 포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조동종의 법맥

 

조동종의 개산조사인 동산양개는 육조혜능의 사법 제자인 청원행사靑原行思-석두희천石頭希遷-약산유엄藥山惟儼-운암담성雲巖曇晟의 법맥을 계승하였고, 그의 제자인 조산본적이 선문을 크게 일으켜 조동종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본적의 문하에서는 동산도연洞山道延, 금봉종지金峰從志, 녹문처진鹿門處眞, 조산혜하曺山慧霞 등의 뛰어난 제자들이 출현하였지만, 이후 그 법계는 단절되었다. 그렇지만 조동종의 법맥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양개의 또 다른 걸출한 제자인 도응道膺 계통이다. 

 

도응은 양개를 참알하여 인가를 받은 후에 홍주洪州 운거산雲居山에서 개법開法하자 대중이 천여 명에 달하였고, 그에 따라 세상에서 운거도응雲居道膺이라 칭하였다. 도응은 당唐 소종昭宗 천복天復 2년(902)에 입적하였으며, 그의 시호는 홍각대사弘覺大師라고 하였다. (주9)그로부터 4년 후에 당조唐朝는 망하였고 중국은 오대五代·십국十國의 분열기에 진입하였다.

 

사진 2. 운거도응雲居道膺 선사.

 

 『경덕전등록』에 따르면, 도응의 사법 제자는 28인이라고 하지만,(주10) 대부분 행적이 명확하지 않고, 한두 세대를 지난 후 단절되었다. 도응의 법맥은 동안도비同安道丕에 의하여 전승되었는데, 바로 이 일맥이 조동종을 끊어지지 않게 전승하였다. 동안도비의 법은 동안관지同安觀志-양산연관梁山緣觀으로 계승되고, 연관의 문하에서 대양경현大陽警玄, 즉 명안明安이 법을 계승하는데,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가 있다. 명안의 시기에 송대宋代에 진입하게 된다.

 

 

사진 3. 만송행수萬松行秀 선사.

 

양송兩宋 시기에 조동종 계통에 가장 유명한 이는 바로 굉지정각宏智正覺이다. 송대에는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하고 과거를 통해 관직에 등용된 문인사대부가 주류를 이룬 시대이다. 그에 따라 문인사대부를 조사선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른바 문자선文字禪이 출현하게 되는데, 임제종의 분양선소汾陽善昭가 ‘공안公案’에 주석을 달아 『송고백칙頌古百則』을 찬술했는데, 굉지정각도 『송고백칙』에 주석을 달아 출판하였다. 그러나 정각은 문자선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묵조선黙照禪을 창시했는데, 이는 임제종 계통인 대혜종고大慧宗杲가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한 것과 대비된다고 하겠다. 

 

사진 4. 중화민국 시기 1927년에 엽공작曄恭綽 등이 북경北京에 세운 만송정사萬松精舍. 안에 만송노인탑萬松老人塔이 있다.

 

원대元代에 이르러 조동종을 흥성시킨 이는 바로 만송행수萬松行秀(1266~1246)이다. 특히 행수는 원의 공신으로 유명한 야율초재耶律楚材, 즉 담연거사湛然居士를 재가 제자로 삼았는데, 야율초재가 징기스칸을 따라 10여 년간 서역 정벌에 참여한 시기에도 계속 법을 물어서 서신을 통하여 지도하였다. 야율초재가 행수에게 서신을 통하여 굉지정각宏智正覺이 찬술한 『송고백칙』에 평창評唱을 청하였고, 행수는 시자 이지離知에게 필사시켜 태조 18년(1223) 서역에 있는 거사에게 보냈으며, 다음해 야율초재는 서문을 썼다. 이렇게 이루어진 책이 바로 『만송노인평창천동화상송고종용암록萬松老人評唱天童和尙頌古從容庵錄』 혹은 『천동각화상송고종용암록天童覺和尙頌古從容庵錄』이며 흔히 『종용록從容錄』이라고 칭한다. 이는 원오극근圓悟克勤의 『벽암록碧巖錄』과 함께 선종의 2대 보전寶典으로 중시된다. 『벽암록』이 임제종의 선풍을 밝혔다면, 『종용록』은 바로 조동종의 선풍을 드러냈다고 하겠다.

 

역대로 ‘임천하臨天下 조일각曹一角’으로 칭하는데, 이는 오가 가운데 임제종과 조동종이 가장 커다란 세력을 얻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종동종은 이처럼 역사 속에서 면면히 그 법맥을 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겠다. 

 

<각주>

1) [宋]智昭集, 『人天眼目』 卷3(大正藏48, 320c), “曹洞宗者, 家風細密, 言行相應, 隨機利物, 就語接人. 看他來處, 忽有偏中認正者, 忽有正中認偏者, 忽有兼帶, 忽同忽異, 示以偏正五位、 四賓主、 功勳五位、 君臣五位、 王子五位、 內外紹等事. …… 大約曹洞家風, 不過體用偏正賓主, 以明向上一路. 要見曹洞麼? 佛祖未生空劫外, 正偏不落有無機.”

2) [淸]性統編, 『五家宗旨纂要』 卷中(卍續藏65, 266b), “曹洞家風, 君臣道合, 正偏相資, 鳥道玄途, 金針玉線, 內外回互, 理事混融, 不立一法, 空劫以前自己爲宗, 良久處明之.”

3) [日本]慧印校訂, 『筠州洞山悟本禪師語錄』(大正藏47, 514b), “師問疎山: 空劫無人家是甚麼人住處? 疎云: 不識. 師曰: 人還有意旨也無? 云: 和尚何不問他? 師曰: 現問. 次云: 是何意旨? 師不對.”

4) 앞의 책(大正藏47, 516a), “頭角纔生已不堪, 擬心求佛好羞慚. 沼沼空劫無人識, 肯向南詢五十三.”

5) [淸]性統編, 『五家宗旨纂要』 卷中(卍續藏65, 276b). “劫壺空處妙難通, 擬欲無功已墮功. 偏正不曾離本位, 君臣那更異深宮. 玉機轉側方圓備, 寶鑑澄明理事同. 雲輦月娥歸半夜, 曉來烟霧尚朦朧.”

6) [宋]集成等編, 『宏智禪師廣錄』 卷2(大正藏48, 27b). “僧問洞山: 三身中那身不墮諸數? 山云: 吾常於此切. 頌曰: 不入世未循緣, 劫壺空處有家傳. 白蘋風細秋江暮, 古岸舡歸一帶煙.”

7) [姚秦]鳩摩羅什譯, 『維摩詰所說經』(大正藏14, 542a), “佛身無漏, 諸漏已盡; 佛身無爲, 不墮諸數.”

8) [後秦]僧肇撰, 『注維摩詰經』(大正藏38, 360a), “法身無爲, 而無不爲. 無不爲故, 現身有病; 無爲故, 不墮有數.

9)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7(大正藏51, 335c), “唐天復元年秋示微疾. 十二月二十八日爲大眾開最後方便, 敘出世始卒之意, 衆皆愴然. 越明年正月三日跏趺長往. 今本山影堂存焉. 勅諡弘覺大師, 塔曰圓寂.”

10) [宋]道原纂, 『景德傳燈錄』(大正藏51, 360b), “洪州雲居山道膺禪師法嗣二十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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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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