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순교를 결심한 육비구의 할복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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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적(최동순)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4 17:01 / 조회120회 / 댓글0건본문
월탄스님 ❸
▶ 스님께서는 정화운동과 인연이 깊으신데 그 부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정부가 유시諭示를 8차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문교부 장관하고 치안국장하고 불러다 놓고 이승만 대통령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한국 고유의 전통불교를 살려라!” 이렇게 유시를 내린 것입니다.
갈등 해소를 위한 8대 원칙
대처승과 비구승 각각 5인씩 해 가지고 10인 대표를 만드는 거요. 그래서 승려 8대 원칙이라는 것을 만들어요. 그때 비구승은 250계를 지키고 비구니는 348계를 지키고 사미승은 십계를 지키는 것인데, 이미 대처가 됐는데 그래도 최소한 승려라면 8가지만큼은 지켜야 된다고 비구와 대처 대표가 8대 원칙을 만들어요.
그 8대 원칙이 뭐냐? 첫째 승려는 독신이어야 한다. 둘째는 삭발염의를 해야 한다. 셋째는 사찰에서 상주하며 수행해야 한다. 넷째는 살도음망殺盜淫妄 불범사바라이不犯四波羅夷라고, 살생을 안 해야 되고, 도둑질을 안 해야 되고, 장가를 안 가야 되고, 음행을 안 해야 되고, 술을 안 먹어야 한다. 그리고 3년 이상 승려생활을 한 사람을 인정한다.
대처승도 8대 원칙을 지키는 사람만 중이다. 대처승이라도 이 원칙으로 해서 이혼하고 들어오면은 다 기득권을 인정해 준다. 그렇게 합의를 하자고 해도 안 해요. 비구승은 좋다고 하는데 대처승은 안 해요. 그런데 문교부에서 또 치안국장이 빨리 그것을 만들라고 해도 대처승들이 안 해요.
8대 원칙에 준하는 사람은 절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다 마을로 돌아가거라. 이렇게 유시를 내렸어요. 그래서 비구승이 싹 치고 들어간 거요. 그래서 대처승들이 재판을 걸었어요. “이것은 관의 강압에 의해서 한 것이지 우리 자의가 아니다.” 초심에서는 대처승이 이겼어요. 그런데 고등법원에서는 비구승이 이겼어요. 그때 1960년도 3·15 부정선거가 있었고, 4·19가 터졌어요. 대법원에 계류 중인 것들인데 11월 24일 대법원에서 재판을 한다는 거요. 그런데 여론이 “이승만 독재에 의해서 한 것이다.” 해 가지고 4·19 의거가 터짐과 동시에 대처승들이 세를 얻었어요. 이승만 씨가 한 것은 무조건 다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돌아간 거요.
▶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갔군요?
그렇죠. 여론이 벌써 비구 측이 패소한다는 것이 소문났어요. 그러니까 전국승려대표자대회를 개최한 거요. 내가 그때 해인사 대표로 거기 참여하게 된 겁니다. 그때 숫자가 적으니까 해인사 스님들을 많이 보내라고 해요. 그러니까 나는 그냥 해인사 대표인 겁니다. 5명이 간 걸로는 아는데 거기에 하나도 없더라고요. 갈 때 혼자 갔거든요. 영암스님이 차비를 많이 줘서 내가 기분 좋게 서울로 갔다 그 말이요.
정화하면 정금오 우리 스님 또 정금오 상좌하면 유월탄이라고 알려졌어요. 그때 대처승이 밀고 들어가고 왔다 갔다 이런 분쟁이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나 유월탄을 불러가는 거요. 나만 가면 대처승들이 슬슬 피해 가요. 근데 사실 나는 사람을 때려보고 그런 것도 없어요. 해인사도 4·19 때 스님들이 쫓겨났어요. 그래서 불안하니까 내가 자운스님을 모시고 들어가는데 나만 나타났다 하면 대처승들이 피해요. 내가 전생에 신장神將이었는가 봐요.
그때 숭산스님과 원담스님 등 몇 분이 우리를 세뇌시켰어요. 원담스님이 강의하면서 대각국사가 이차돈 성사의 순교를 시로 썼는데, 그것을 일러주시더라고요.
천릿길을 달려와 성사님을 문안하노니
청산은 고요한데 봄은 몇 번이나 지나갔던고?
만약 말세에 어지러운 일을 만나게 된다면
나도 성사님과 같이 목숨을 아끼지 않으리라.
천리만래문사인千里萬來問舍人
청산적적기경춘靑山寂寂幾經春
약봉말세난행법若逢末世難行法
아역여군불석신我亦如君不惜身
그 시를 들으니 어허 이상하게 눈물이 싹 나더라고요. “히야~ 내가 죽을 데가 바로 여긴가 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때 순교할 사람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이때 여섯 명 즉 6비구가 나온 겁니다.
▶ 순교를 결심한 그 여섯 분을 지금도 기억하시는지요?
나는 정금오 큰스님 상좌고, 도현이라는 스님은 최진여라고 하는 스님의 상좌고, 정성우 스님은 윤고암 종정스님 상좌고, 권진정은 마곡사에 김일현 염불 잘 하시는 스님의 상좌고, 이도명은 동원스님 상좌였어요. 문성각 스님은 고암스님 상좌입니다. 나에게 모두 초면이요.
그때 청담스님이 오시더니 “야, 우리 1600년의 전통불교를 살리지 않고 부처님의 정법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은들 무슨 보람이 있겠느냐? 임진왜란 때도 구국을 했는데, 오늘 정법불교를 이렇게 말살하는 이것을 우리가 정화하지 않으면 이 시대에 사는 보람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니 생명을 아끼지 말고 정법을 위해서 우리 한번 큰 발심을 하자.”고 하시며 설득하시더라고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대법원장실로 가다
우리가 화신백화점 앞에 가서 일본도 30cm짜리 일곱 자루를 사 왔어요. 청담스님도 같이 가신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기마대가 조계사 옆 중동중학교 옆에 본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고 대법원장한테 가서 죽음으로써 우리가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의논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우리가 쳐들어간다는 소리가 있어서 경비가 삼엄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승복을 입고는 못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검은 작업복을 여섯 벌을 샀어요. 청담스님 꺼는 안 샀어요. 그리고 털모자, 즉 빵모자라고 하죠. 그 실로 짠 거 말입니다. 그걸 또 여섯 개를 사 왔어요. 그러니까 딱 갈아입고 대법원을 향해 걸어갔어요.
청담스님은 “내가 여기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잠깐 얘기를 조금하고 갈 테니 먼저 가라.”고 하셔서 우리가 먼저 떠났지요. 대법원이 덕수궁 쪽인데 거기까지 가는데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대법원장실이 2층인지 3층이었는지 확실히 모르겠는데,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어요. 대법원장실이라고 간판이 문에 써 있더라고요. 거길 들어갔어요. 들어가니까 대법원장이라는 분이 떡하니 당신 자리에 앉아 있어요. 우리가 갔는데도 놀라지도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빵모자를 벗고 “우리는 비구승입니다. 어떻게 세상법으로 불법을 재판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불법에는 대처승이라는 게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죽음으로써 옳다고 하는 것으로 믿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죽음으로써 호소합니다.”라고 했어요.
그러고 할복을 한 겁니다. 그래도 나는 견성을 해서, 거기서(상무주암) 3일 낮밤을 내 본래 생명은 육체가 아니고 마음이라는 걸 알았고, 또 생사가 없는 줄을 알았는데도 야~ 그래도 애착이 있더라고요. 한 번 탁 쑤시니까 피는 나왔어요. 그런데 강하게 긁어야 하는데 살짝 긁더라고요. “이래서는 안 되지!” 또 독한 마음을 먹고 또 하니까 또 안 돼요. 그래서 눈을 탁 감고 “내 신심은 죽은 거다.” 하고 세 번째 하니까 한 40cm 됐을 겁니다. 그 후에 내가 서너 번 수술했는데,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어요.
경찰봉을 맞고 의식을 잃다
내가 봐도 창자가 나와서 피가 낭자해요. 다른 스님들도 할복해 가지고요. 그 대법원장실에 피가 낭자한 거예요. 그때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곤봉을 들고 왔어요. 여기를 탁~ 쎄리더라고요. 지금도 안 잊어요. 탁 쎄리는데 죽는 거 아무것도 아니요.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분이 좋습디다. 아주 그 묘하고 뭐 아프다는 생각, 죽는다 뭐 어쩐다 그런 생각 없어요. 아주 몽롱해져 가지고 기분이 좋게 나도 모르게 쓰러지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의식불명이 돼 가지고 눈 뜨고 보니까 병원이에요. 그러니까 3일 동안 내가 무의식으로 있었던 거요.
▶ 스님들이 대법원장실에서 할복했다는 소식이 밖으로 전해진 거군요?
우리가 대법원에서 할복한 그 뒤로 난리가 났다는 거예요. 5,600명이 그냥 유리창을 깨고 대법원에 맨발로 뛰어들어가 온통 거시기를 했다는 것 아닙니까? 법원 유리창이 깨지고 기물이 상당히 파괴던 것 같습디다. 우리는 모르지요. 이미 병원으로 이송돼 버렸으니까요. 뭘 하는지도 우리는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래요. 우리 모두 법원 난입죄에 걸렸어요. 그래서 교도소에서 4개월인가 살았습니다. 체포된 사람들 다 나가고 24명이 남았어요. 주도자들이라서.
재판을 하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때 대법원장이 배정현이라는 분이 대법원장 직무대행이셨대요. 그리고 고재호 대법관이 대법원 사무처장인가 그랬어요. 내가 나중에 들은 얘긴데 배정현 대법원장은 비구승들이 쳐들어 온다니까 수통을 타고 내려가 피신했답니다. 그런데 고재호 대법관이라는 분이 우리들 재판 때 와서 증인을 섰어요. 내가 그분 이름도 안 잊어버려요. 주심 판사가 유형석이라는 분입니다.
그 고재호 대법관이 오셔서 증언을 참 잘해 주셨어요. “할복한 사람들 여섯 스님들이 와서 공갈을 치거나 협박을 하거나 위협을 한 바가 하나도 없다. 오직 자기네 주장만 생명을 바쳐서 외쳤다. 전혀 위협하거나 이런 것이 없었다.” 그런 증언을 듣고 나니 나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주신 거요. 그렇게 해서 대법원 난입이 일어나고 기물이 파손되고 그런지 몰라도 주도자는 할복한 비구들이니까 1년 6개월 실형을 받았어요.
그리고 집행유예 3년으로 나왔는데, 24명이 그렇게 마지막까지 재판받고 나왔습니다. 그 기간이 3개월이나 4개월 됐을 겁니다. 그때 일간신문이 12개인가 됐을 겁니다. 그 신문들이 국민들의 여론은 온통 비구승 측이 옳다고 했어요. 그래서 대처승 쪽의 사기가 많이 꺾여 버렸어요.
통합종단의 출범
그것이 결정적이었지요. 대처승들이 그 기세에 질려 버렸어요. 우리들이 생명을 걸고 나오는데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요. 자기들은 그렇게 못하잖아요. 아들딸 가족 때문에 그러지 못하지요. 그래서 그 건을 대법원 파기환송시켰어요. 즉 ‘고등법원에서 재판한 것이 잘못됐다. 그쪽이 이긴 것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도 저것도 다 없어졌는데, 그러자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어요. 그때 재판할 것들이 한 136건인가 있었어요. 그것들이 사회를 분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군사정부에서 모두 다 종식시켜 버렸어요.
이후에 비구승과 대처승의 통합종단으로 되는 과정이 있었어요. 비록 과거에 대처승을 했더라도 이혼하고 다시 들어오면 기득권을 인정해 준다는 조건으로 10:5로 가결이 됐어요. 8대 원칙을 지키는 사람만 중이다. 그렇게 해 가지고 통합종단이 돼요. 통합종단이 되는데 한 2년이 걸렸습니다. 그 통합종단은 비구승 측 최고 어른을 종정으로 모시고, 대처승 측 최고 어른을 총무원장을 했거든요. 총무부, 교무부, 재무부, 사회부 부서가 있는데, 총무부장은 우리 비구승 측 대표로, 교무부장은 대처승 측 대표로 정했습니다. 또 재무부장과 사회부장은 저쪽 대처승 측에서 이쪽 비구승 측으로 귀순해 온 스님들이었어요.
이혼하고 귀순해 온 스님이 저 쌍계사 주지를 했던 윤기원 스님이라는 분하고, 신륵사 주지를 했던 최원종이라는 분은 비구승도 되고 대처승도 돼요. 그러나 이미 귀화했기 때문에 비구승 쪽에 가까워요. 그렇게 사는데, 총무원장 임석진이라는 스님은 맨날 머리도 안 깎고 양복을 그대로 입고 와요. 그러고 이남채라고 하는 교무부장도 수원에서 오시는 스님인데, 그분도 그냥 그대로 오는 거요. 그래서 월하스님이 총무부장으로 계시면서 “아이, 8대 원칙대로 살으셔야지요. 승복을 입어야 하고 또 어떻게 머리를 왜 안 깎으시오? 그리고 왜 출퇴근을 하십니까? 절에 상주해 있기로 했는데…” 그렇게 해서 한 3년간 싸움 났어요. 이것을 견디다 못하니까 대처승들이 그만 손을 들고 말았어요. 대처승 측은 “통합종단은 인정하겠다. 그런데 우리가 새로 종파를 만들고 모두 다 내주고 할 테니까 종단설립을 인정해 주시오.” 해서 1970년 문체부에서 태고종 등록을 허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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