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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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5 11:30 / 조회766회 / 댓글0건본문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갈 일이 없었지만, 마을 입구에 있는 고생이 집(상엿집)을 지날 때면 어쩐지 누가 뒤꼭대기를 당기는 듯이 무서웠습니다. 고생이 집이란 마을 공동의 상여와 부속품을 보관하는 집으로 보통 마을에서 좀 떨어진 산밑에 지어졌습니다.
밤에 화장실에 가거나 고생이 집을 지나갈 때는 무서우니까 노래를 부르면서 갔습니다. 노래를 부르면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행복할 때보다 무섭거나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을 때 더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합니다. 두려움과 절망 때문인지, 아니면 노래를 부름으로써 공포심과 절망감을 잊으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은 잠시 머물렀다 홀연히 가는 것
불가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대신에 관음보살을 염하거나 『반야심경』을 염송합니다. 현장(602~664)이 인도로 가면서 사막에서 악귀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관음보살을 염했으나 도무지 효과가 없어 「반야심경」을 외웠더니 악귀들이 두려워하는 소리를 내면서 쏜살같이 도망가 버렸다(주1)는 고사에 따른 것입니다.
나는 이제 젊었을 때 그렇게 두려워했던 무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무덤에 가도 옛날처럼 음산한 기분이 들지 않고, 무섭지도 않습니다. 부모님 산소에 가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무덤가에 있으면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 옛 시가 생각납니다. 북망산의 묘지를 보고 읊은 시입니다. 이 시는 소명태자(501~531)가 편찬한 『문선』에 실린 「고시 19수」에 실려 있습니다. 「고시 19수」가 후대 문학에 끼친 영향은 『시경』에 못지않을 정도로 컸습니다. 이 시는 작가를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노래입니다.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가고
사람의 목숨은 아침 이슬 같구나
인생은 잠시 머물렀다 홀연히 가는 것
목숨은 쇠나 돌처럼 오래 가지 않는다네(주2)
인생과 죽음을 평이하고 질박한 언어로 노래했습니다. 시의 생명은 비유입니다. 시어는 단순하지만, 아침 이슬, 쇠와 돌 같은 비유는 쉬우면서도 의미는 깊다 하겠습니다. 이런 비유를 통해 평소에는 깨닫기 어려운 이치를 깨닫게 하고 느끼기 어려운 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인생이 짧은 여행이라는 것을, 인생은 꿈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무덤 앞에 서면 실감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묘소 앞에 서면, 마치 잃어버린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듭니다. 부모님 세대는 필사적으로 살았던 시절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뜨거운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정도의 인생도 나쁘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모신 산소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구만리 창공입니다. 맑은 날에는 수백 리 밖 소백산까지 보이는 일망무제의 끝없는 하늘입니다. 문득 돌아보면 한없이 펼쳐지는 하늘, 어디까지가 끝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끝없는 하늘이라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하늘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은 하늘은 보지 않고 작은 구름을 보면서 살아갑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우리가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이 구름이지만, 구름 또한 깨달음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선승들과 교유하면서 진정으로 선의 삼매를 얻었던 당대唐代의 사대부 가운데 특별히 기술할 만한 사람은 이고(772~841)와 배휴(791~870)입니다.
이고가 낭주 자사로 좌천되었을 때, 여러 차례 약산(751~834)을 초청하였으나 약산은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고는 50세 부근, 약산은 71세 부근이었을 것입니다. 나이로 보나 관례로 보나 먼저 찾아가지 않고 부르는 것은 결례입니다. 약산이 초청에 응하지 않자, 이고는 직접 약산을 만나러 산으로 갑니다. 여기서부터는 『조당집』의 기록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상공相公인 이고李翶가 화상을 뵈러 왔는데, 마침 화상이 경을 보고 있던 까닭에 전혀 돌아본 체도 하지 않으니, 상공은 절을 하지 않고 혼잣말처럼 가볍게 말을 하였다.
“만나 보니 천 리 밖에서 소문을 듣는 것만 못하구나.”
이에 선사가 상공을 불렀다.
“상공!”
상공이 대답하니, 선사가 말했다.
“어째서 귀만 소중히 여기고 눈은 천히 여기는가요?”
상공이 얼른 절을 하고 나서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선사가 하늘을 가리켰다가 다시 물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소이다.”
상공이 절을 한 뒤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어 찬탄하였다.(주3)
팽팽한 기 싸움이 느껴지십니까? 이고가 초청할 때 약산은 응하지 않았고, 이고가 찾아왔을 때도 짐짓 못 본 체합니다. 이고 또한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는데 자존심이 상해 인사도 하지 않고 ‘만나 보니 별것 아니네’ 하고 혼잣말처럼 상대를 폄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현장을 보지 않으면 그 만남의 깊이를 알지 못합니다. 『조당집』의 행간에 나타나 있는 손짓, 눈짓, 말투 등 생생한 표현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경우에 따라서 말의 경중과 뉘앙스가 다르고 의미의 폭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 싸움 후에 약산은 ‘상공!’ 하며 이고를 부릅니다. 이고는 그 부드러운 말씨에 응하여 비로소 인사를 하고 ‘어떤 것이 도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처럼 재미있고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매우 빛날 것입니다. 이 장면에는 분명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 문답 장면은 후일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고가 지은 게송은 ‘운재청천수재병雲在靑天水在甁’입니다. 이 게송은 너무나 유명하여 후일 대표적인 공안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수행하신 풍채는 학 같으신데
소나무 아래에 경이 두어 권
도를 물었더니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주4)
하늘에 뜬 구름과 물병 속의 물은 그대로 실상實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구름과 물은 그 자체로 진실한 모습, 즉 실상으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즉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은 것입니다[柳綠花紅]. 사람과는 달리 구름이나 물, 나무나 꽃은 시기하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으며 본래면목本來面目 그대로입니다. 약산은 이고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상공, 사람을 괴롭히는 많은 문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은 데서 생기는 거예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진여眞如로서 바라본다면 인생의 수많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답니다. 그게 바로 도이고 깨달음이에요.”
이고는 약산의 말을 듣자 바로 그 뜻을 알아차리고 마음이 환해져서 게송을 읊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이 본래면목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우리는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본래 진여의 깨끗한 정토淨土에서 살고 있는데, ‘내 몸’, ‘내 마음’이라는 분별에 사로잡혀 정토를 더러운 땅, 곧 예토穢土로 만들어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여에 대해서는 신수(606~706)의 깊은 가르침을 들어보겠습니다.
묻는다, “어떠한 것이 진여입니까?”
대답한다, “마음이 분별의 의식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마음이 진여이며, 대상을 분별하지 않으면 그 대상이 진여일 것이다. 마음이 진여이면 마음이 해방되고, 대상이 진여이면 대상이 해방된다. 마음과 대상이 모두 분별을 떠난다면, 더 실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無一物]이며,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큰 나무인 것[大菩提樹]이다.”(주5)
마음에 분별이 없다면 자기중심적인 감정에 의하여 왜곡되지 않고 ‘아我’가 없어져서 마음의 평온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분별을 없앤다는 것, ‘아’를 없앤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꾸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꾸만 분별하여 진여를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기보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물음표를 던져야 합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각주>
(주1) 弘贊(明代) 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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