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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불교]
존재가 공간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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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5 년 1 월 [통권 제141호]  /     /  작성일25-01-05 12:29  /   조회19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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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의 세계 ❸   

 

동력학에 관한 세 법칙과 만유인력(universal gravitation)의 법칙으로 이뤄진 뉴턴역학은 태양계 행성의 운동을 완벽하게 설명했다. 미분과 적분을 만들어 낸 뉴턴(Issac Newton, 1642~1726)은 지구와 달이 구형이라면 이 둘을 각각 한 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적분을 사용하여 증명했다.

 

대단히 성공적이었던 뉴턴역학도 완벽하지 않다

 

뉴턴역학은 행성의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작용하는 만유인력에 의해 행성의 원 궤도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했고, 행성이 타원 궤도로 공전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혜성이 태양에 가까워졌을 때 속도가 빨라지고 멀어졌을 때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설명했다. 행성의 궤도 반경과 공전 주기 사이의 관계도 인상적으로 설명했다. 

 

사진 1.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

 

뉴턴의 고전역학이 완성되면서, 근대물리학은 지상과 천상의 모든 물체의 운동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했다. 뉴턴 이전에는 천상과 지상이 서로 다른 두 세계였다. 우주는 조화로운(harmonious) 천상과 혼란스러운(chaotic) 지상으로 분리돼 있었다. 그러나 만유인력은 분리된 두 세계에 존재했던 사과와 달을 하나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포괄적 이해의 틀을 제공했다.

 

대단히 성공적임에도 불구하고 뉴턴역학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었고, 수긍할 수 없는 문제도 하나 있었다. 수긍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설명할 수 없는 문제는 수성의 공전 궤도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옳다면 행성의 궤도는 타원이어야 한다. 타원 궤도라는 것은 그 궤도의 근일점(타원 궤도 위에서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과 원일점(타원 궤도 위에서 태양에서 가장 먼 지점)이 움직이지 않고 한 지점에 고정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성 궤도의 원일점은 계속 이동한다는 것이 관찰됐다. 이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점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이 나온 다음에야 해결됐다. 

 

중력과 가속도의 등가원리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은 중력이 아주 작아서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 관한 상대론이다. 중력의 영향을 고려한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상대론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출발점은 중력과 가속도의 효과가 같다는 것이다. 우주선 객실에 탄 물리학자를 상상해 보자. 자기 몸이 뒤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을 때, 이는 우주선이 갑자기 가속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갑자기 뒤에 나타난 커다란 천체의 중력 때문일 수도 있다. 객실 밖의 상황을 알 수 없다면, 둘 중의 어떤 상황 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물리 실험은 없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다.(주1) 가속으로 나타나는 물리적 효과와 중력으로 나타나는 물리적 효과는 완벽하게 같다는 것이다. 이를 중력과 가속도의 등가원리(equivalence principle)라고 한다.

 

사진 2.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태양계. 사진: NASA.  

 

중력에 의해 빛이 휜다

 

중력과 가속도의 효과가 같다면 중력의 효과를 가속도의 효과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대체하여 생각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그림과 같이 조그마한 구멍으로 한 줄기의 빛이 들어오는 승강기를 생각해 보자. 승강기가 정지해 있다면 승강기 안의 관찰자는 그림(0)과 같이 빛이 수평하게 직진하는 것으로 관찰한다. 그림(1)에서처럼 일정한 속도 v1으로 위로 움직이면, 관찰자는 비스듬하게 직진하는 빛을 본다. 위로 움직이는 속도가 그림(2)의 v2, 그림(3)의 v3, 그림(4)의 v4처럼 점점 커질수록 빛의 경로는 더 기울어진다. 정지한 상태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빛은 승강기의 속도에 따라 기울기는 달라지지만 모두 직진한다. 이제 정지해 있다가 속도를 v1, v2, v3, v4로 가속한다면, 그림(5)에서 보는 것처럼 빛은 그림(1), 그림(2), 그림(3), 그림(4)의 단계를 거치면서 휘게 된다. 이처럼 승강기가 가속하면 빛이 휘게 된다. 가속도에 의해 빛이 휘고 아인슈타인의 중력과 가속도의 등가원리가 맞다면, 중력에 의해서도 빛이 휘어야 한다.

 

 


 

빛이 휘어지는 효과가 나타나려면 상당히 큰 중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큰 중력을 제공할 수 있는 천체는 우리 주변에는 태양밖에 없으므로, 태양 근처에서 별빛이 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별빛에 비해 태양 빛이 너무 강해서 평상시엔 관측할 수 없으므로, 개기일식이 태양 빛을 가릴 때만 이를 관측할 수 있다. 개기일식이 있었던 1919년 5월 29일에 태양 근처를 지나는 빛이 1.75″휜다는 것을 관측하면서(주2)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확증(confirmation)됐다.(주3)

 

태양 근처에서 이처럼 빛이 휜다는 것은 가속하는 승강기에서 빛이 휘는 것처럼 태양의 만유인력에 의해 빛이 휜다는 것이다. 이는 태양의 만유인력에 의해 공간이 휜다는 것이며, 이는 존재에 의해 공간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간이 휘어지게 되면, 이 공간은 뉴턴역학이 가정하는 3차원 공간이 아니다. 전자기학의 쿨롱의 법칙이나 뉴턴역학의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상호작용의 세기가 모두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은 우리 우주가 3차원 공간일 때 정당화될 수 있다. 우리 우주가 3차원 공간이 아니라면 만유인력의 역제곱 법칙은 수정돼야 한다. 행성의 타원 궤도는 만유인력이 역제곱 법칙일 때 성립하는 것이므로, 일반상대성이론은 뉴턴역학이 설명하지 못했던 수성 등 태양계 행성의 근일점 이동을 설명한다.

 

이외에도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을 이해하게 하는 현대천문학의 기본 틀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표준적인 빅뱅 모형을 구성하는 중요한 틀이기도 하다. 또한 중력렌즈(gravitational lens), 중력적색편이(gravitational red shift), 중력파(gravitational wave) 등의 현상을 예측했고, 이는 모두 관측으로 확인됐다.

 

마흐의 원리: 존재가 공간을 바꾼다

 

직진하던 빛이 천체에 의해 휜다는 것은 천체에 의해 공간이 변한다는 것이다. 존재에 의해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시공간의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물이 들어 있는 양동이를 회전시키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양동이를 회전시키면 원심력이 발생한다. 이 힘이 물을 밖으로 밀어내어, 물 가운데가 들어가고 가장자리가 올라간다. 원심력은 회전하는 물체에 생기는 관성력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에 대한 회전인가이다. 공간에 대한 회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뉴턴역학에서의 회전이다. 뉴턴은 회전을 절대공간에 대한 회전이라고 생각했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시간과 공간은 우주를 구성하는 존재와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우주의 배경이다. 이런 시간과 공간을 절대(absolute)시간과 절대공간이라고 한다. 뉴턴역학에서 물이 들어 있는 양동이의 회전은 이 절대공간에 대한 회전이다.

 

사진 3.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1838〜1916).

 

마흐(Ernst Mach, 1838〜1916)는 뉴턴과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절대공간에 대한 회전이 아니라 전체 우주에 대한 회전이라고 보았다. 얼핏 보면 둘 사이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다르다. 우주에 아무 물체도 없을 때와 우주 전체가 회전하는 상황에서 그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뉴턴의 양동이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에서 돌리더라도 물이 움푹하게 들어가야 한다. 아무것도 없더라도 절대공간은 펼쳐져 있고, 회전은 절대공간에 대한 것이므로 원심력이 생겨야 한다. 이와 달리 마흐의 양동이는 빈 우주에서 돌리면 원심력이 생기지 않는다. 원심력은 우주 전체에 대한 상대적 회전으로 발생하는 것이므로, 빈 우주에서는 물체를 회전시키더라도 물은 평편한 상태를 유지한다. 회전시키지 않는 것과 같다. 

 

양동이를 정지시켜 놓고 우주 전체를 회전시키면 어떻게 될까? 우주 전체를 돌리더라도 양동이는 절대공간에 대해 회전하는 것이 아니므로, 뉴턴의 양동이에서는 원심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우주를 돌리지 않았을 때와 같이 물은 평편한 상태를 유지한다. 마흐의 경우엔, 우주를 회전시키고 양동이를 정지시키는 것은 양동이를 회전시키고 우주를 정지시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주 전체를 회전시킬 수만 있다면, 양동이를 돌리지 않더라도 마흐의 양동이에서는 원심력이 나타난다.

 

빈 우주를 만들거나 우주 전체를 돌릴 수 없으므로 마흐의 생각을 직접 검증할 수는 없었지만, 이에 관한 마흐와 아인슈타인의 논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인도했던 중요한 요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흐와 의견을 교환했던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이런 논의를 마흐의 원리(Mach principle)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이에 의하면 회전운동은 절대공간에 대한 절대 회전(absolute rotation)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대한 상대적인 회전이다. 원심력은 물체가 우주 전체와 어떤 관계를 맺는 운동을 하느냐에 의해서 생기는 힘이 된다.

 

이는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성질과 분포가 우주의 시공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존재자가 시공간을 형성한다. 중력이 있는 공간에서 빛이 휘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지는 공간이고, 존재자에 의해 그 성질이 달라지는 공간이다.

 

한 송이 꽃이 우주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의 우주는 존재자와 분리된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 아니라, 존재자에 의해 형성되는 상대적 시공간(relative space-time)으로 펼쳐진다. 그 시공간 안에 있는 마흐의 양동이에는 전 우주가 다 들어와 있다. 화엄의 3조 현수법장은 서까래가 집이라고 했다. 서까래 안에 집의 모든 것이 다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홀로 떨어져 있으면 그건 하나의 나무토막일 뿐이다. 집의 모든 것이 다 들어와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을 때, 그 나무토막은 서까래가 되고 우리는 그것을 서까래라고 부른다.

 

이는 심장도 마찬가지다. 홀로 따로 떨어져 있다면 그건 심장이 아니라 근육 덩어리일 뿐이다. 우리 몸의 다른 모든 장기와 어우러지면서 바로 그 자리에 있을 때, 그 근육 덩어리는 심장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심장이라고 부른다. 이는 숫자 123에서도 그렇다. 1은 3보다 작은 수지만 123의 1은 3보다 큰 100이다. 2와 3이 모두 1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2와 3이 모두 1에 들어오면서, 그 1은 100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백이라고 부른다. 양동이의 물에 온 우주가 들어와 있고, 한 송이의 국화꽃이 피려면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야 한다. 그 한 송이 꽃이 우주다. 

 

<각주>

1) 자유낙하하는 우주선 안에서는 지구중력이 사라진다든가, 다른 천체의 중력을 무시할 수 있는 우주 공간에서 9.8m/s2으로 가속한다면 지구중력과 같은 중력이 생기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2) 1°(도)의 60분의 1을 1′(분)이라고 하고, 1′의 60분의 1을 1″(초)라고 한다. 1″는 1/3600°다.

3) 경험과학(empirical science)에서는 이론적 예측을 경험적으로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이 검증이 이론을 부정하는 관측이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수학에서 사용하는 증명(proof) 대신에 확증(confirm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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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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