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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불교의례 ]
조왕신 ❶ 부뚜막에 자리한 치병治病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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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  /  2025 년 1 월 [통권 제141호]  /     /  작성일25-01-05 13:16  /   조회18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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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신竈王神은 공양간의 부뚜막 위에 작은 모습으로 자리한다. 따라서 눈에 잘 띄지 않고 소홀하기 쉬운 신중神衆의 한 분이다. 그러나 새벽에 후원 소임이 공양간에 나오면 맨 먼저 조왕단에 불을 밝히고 청수를 갈아주며, 모든 음식이 무탈하게 수행의 밑거름이 되길 합장배례로 기도한다. 섣달그믐이면 공양물을 차려놓고, 대중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에게 조왕기도를 올리고 있어 감동을 준다.

 

화엄신중으로 자리한 조왕신

 

우리나라 사찰의 공양간에는 조왕신을 모시지 않은 곳이 드물다. 조왕신은 동북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섬기는 신으로, 불을 다루며 부엌을 지킨다고 여겨 주로 부뚜막 근처에 모신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삼한 사람들은 집의 서쪽인 부엌에 조신竈神을 모신다.” 하여 우리나라에 이른 시기부터 조왕신앙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1. 봉은사 공양간에 모신 조왕신.

 

그렇다면 민간의 조왕신이 어떠한 근거로 사찰 공양간에 좌정하게 되었는지,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부터 그 내력을 추적해 보자. 『화엄경』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 보리수 아래 머물며 지상과 천상의 일곱 장소에서 아홉 차례 『화엄경』을 설한 7처 9회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당시 법석에는 수많은 보살과 함께, 39위의 인도 신들이 운집해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아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불법을 수호하리라 서원을 세운 이들 토속신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39위 화엄신중’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중생의 마음을 껴안아, 그들이 신앙하는 토속신을 배척하지 않고 호법선신으로 포용한 데서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를 읽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중신앙이 성행하여, 18세기 무렵이면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을 따라 중국·한국의 토속신을 수용해 39위에서 104위 화엄신중으로 확장되었다. 이때 부엌을 맡은 조왕신을 비롯해, 집안의 으뜸인 성주신城主神, 우물을 다루는 정신井神, 방아 일을 다루는 대애신碓磑神, 변소를 맡은 측신廁神 등 집의 곳곳을 지키는 가신家神이 대거 유입된 것이다.

 

특히 조왕신은 집의 각 영역을 지키는 다른 가신에 비해 특별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나라에서 백성을 위해 지내는 칠사七祀의 대상이었는가 하면 유학자들도 특별한 때에 조왕에게 제를 지냈고, 1635년에 소요태능·벽암각성 등 대선사들이 『불설조왕경』·『불설환희조왕경』을 간행한 점으로 보아 불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조왕신이 불을 다루고 부엌을 지키며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상징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진 2. 해인사 대적광전의 104위 신중도. 사진: 성보문화재연구원.

 

그뿐 아니라 4세기 도교의 『포박자抱朴子』 등에 “매달 그믐밤 조왕신이 상제上帝에게 죄를 고해, 죄가 큰 자는 3백 일의 수명을 감하고 가벼운 자는 3일을 감한다.”고 하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인간을 지켜보다가, 주기적으로 하늘에 선악을 아뢰어 권선징악 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조왕신은 104위 화엄신중의 한 분이자 특별한 위상을 지녀, 독립된 신앙대상으로 자리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공양간을 수호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선악의 감시자로서 이중의 소임을 지닌 채 전승된 점은 화엄신중이 지닌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다. 외부의 삿됨으로부터 지켜주는 한편, 스스로 내면의 삼독도 끊임없이 점검할 것을 깨우치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과 치병을 위한 기도

 

부엌에 머물며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특성으로 인해 조왕신은 점차 치병治病의 능력까지 지니게 된다. 병 없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데서 출발하여, 병이 생겼을 때 이를 낫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담게 된 것이다. 이는 ‘음식이 곧 약’이라 하여, 병의 원인도 치료도 음식에 있다고 보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의 관점이 작용한 것이라 하겠다.

 

가정에서 신을 섬기는 건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가 고작이어서, 이것이 무속이 성행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토지신과 조왕신을 섬기는 일이 예서禮書에 수록돼 있어 옛 선비들도 이를 행했으니, 만약 정성을 다해 이를 행한다면 무속을 금할 수도 있을 법하다. 따라서 질병이나 우환이 있을 때 사당에서 기도드리거나 이들 두 신에게 빌어도 좋을 것이다.

 

사진 3. 운문사 공양간에 모신 조왕신(좌). 사진 4. 통도사 공양간에 모신 조왕신(우).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식李植의 문집에 수록된 글이다. 예로부터 유가儒家에서 토지신과 조왕신을 섬겼으니, 가정의 질병이나 우환에 이들 신에게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질병과 우환이 있을 때 안택굿·치병굿 등이 성행하니, 이러한 무속의 처방을 막고 두 신을 섬기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민간에 거의 사라져 간 부엌신·부뚜막신이 지닌 당시의 신격을 가늠해 보게 한다. 

 

이러한 치병의 기능은 사찰에서도 적용되었다. 홍원사 동주원명 스님은, “예전에는 신도들이 아프면 조왕불공을 많이 올렸다. 구병시식救病施食 때도 신중님은 물론, 조왕님께 기도하고 나서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였다. 병이 났을 때 신도들은 병원 치료와 함께 조왕신에게 치병기도를 올렸고, 본격적인 의례로 구병시식을 치를 때도 조왕기도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구병시식은 원인 모를 병으로 고통받는 이가 있을 때, 그 까닭이 이승을 떠도는 영가에 있다고 보아 불교의 가르침으로 영가를 천도하는 의례를 말한다. 청룡사 진홍스님은 불교의례에 밝은 윤호스님의 제자로, 출가 당시인 1960년대부터 구병시식을 할 때 반드시 관음기도와 조왕기도를 먼저 올렸던 은사의 법식을 이어가고 있다.

 

늦은 오후에 두 스님이 법당과 공양간에서 각각 관음기도·조왕기도를 동시에 올리고, 이어 모든 대중이 공양간에 모여 재자齋者 축원에 동참하였다. 기도를 마치면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강당에서 구병시식을 하는 것이다. 신촌 봉원사 구해스님도 “예전엔 구병시식 때 관음보살께 축원하고 조왕불공을 올리기도 했다.”고 회상하였다.

 

이처럼 관음보살과 조왕신이 조합을 이룬 점 또한 합리적이다. 관음보살은 천수천안千手千眼을 지녀 중생의 고통을 낱낱이 살피고 아픔을 치유해 주는 대자비의 상징으로, 구병시식에서도 증명보살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관음보살의 대자비’와 ‘조왕신의 생명력’이 함께한 기도의 힘은 참으로 컸을 듯하다.

 

그런가 하면 백양사·선암사 등 호남지역 사찰에서는 공양간의 부뚜막 위로 천을 기다랗게 쳐 두는 풍습이 있었다. 천장은 그을음과 먼지가 많이 붙고 청소가 힘드니, 부처님의 마지와 음식에 그을음이 떨어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광목으로 막을 쳐 두었다가 주기적으로 갈아주었는데, 신도들은 이 천을 ‘조왕보竈王褓’라 불렀다. 부뚜막을 보호하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니 조왕신도 흡족해할 명칭일 듯하다.

 

조왕보는 일 년에 한 번, 조왕불공을 올리는 연말이나 초파일에 새 광목으로 교체하곤 하였다. 이처럼 청결과 위생을 목적으로 한 광목에 ‘조왕’의 명칭이 붙으면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민간에 ‘보를 쓰고 나오면 보를 해 준다’는 속신俗信이 있어, 아기가 태어날 때 머리에 막을 쓰고 나왔으니 조왕보를 갈아주고 불공을 올리면 자식이 병 없이 무탈하게 큰다고 여겼다. 아기를 보호하는 양수의 막을 ‘보를 쓰고 나온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아기의 병치레가 잦으면 섣달그믐·초파일 등에 자식의 이름으로 불공을 올리며 조왕보를 갈아주었다. 가정에서 주부가 조왕신을 섬기며 아이들과 가족의 평안을 빌었듯이, 조왕신이 질병과 재액으로부터 자식을 보호해 주는 존재라 여겨 생겨난 민속이다.

 

그림과 의식문에 담긴 조왕신의 치유력

 

민가에서는 대개 물을 담은 작은 종발로 조왕신을 나타내는 데 비해, 사찰 공양간에 모신 조왕신은 사실적인 탱화로 그려진다. 그림 속에 표현된 모습은 조왕신에 대한 인식과 바람을 담게 마련이다. 이에 왕이나 관리·무장으로 그려 조왕신의 위엄을 나타내는 한편, 문서나 독특한 지물持物을 든 모습이 특징으로 드러난다.

 

홍은동 백련사에는 1899년경 제작된 조왕탱竈王幀 2점이 약사전과 공양간에 각각 걸려 있다. 공양간의 조왕탱은 영친왕을 낳은 순헌황귀비 엄씨를 위해 조성한 것으로, 조왕신이 들고 있는 문서에는 ‘소원 지닌 이들이 정성으로 축원하면 병과 재앙 사라지고 많은 복록 내려주네[人間有願來誠祝 除病消災降福多]’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사진 5. 백련사 약사전 조왕탱에서 오행통을 든 조왕신(좌). 사진 6. 백련사 공양간 조왕탱에서 문서를 작성하는 조왕신(우).

 

건강과 장수를 조성 목적으로 밝힌 방기 ‘태평인수무량太平仁壽無量’은 그림 속 문서 글귀의 의미와 일치한다. 두 점의 조왕탱이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과 ‘공양간’에 나란히 모셔진 점도 이러한 치병의 기능을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약사전에 모신 조왕탱은 오방색의 나뭇조각 5개가 담긴 ‘오행통’을 손에 든 모습이다. 오행통은 조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물로, 동양에서는 우주의 다섯 가지 기운인 목·화·토·금·수 오행五行이 조화로우면 삿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한다는 관념이 있다. 이에 오방주머니·오곡·오방기 등 오행을 나타내는 다섯 가지 오방색을 의식주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해 왔다. 따라서 조왕신이 들고 있는 오행통 또한 이러한 상징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사진 7. 진관사 섣달그믐에 올리는 조왕기도.

 

이와 관련해 북한산 진관사에서는 섣달그믐 오후에 커다란 가마솥이 있는 전통 공양간에서 조왕기도를 올린다. 이때 부뚜막에 갖가지 공양물을 차리면서, 쌀·보리·수수·팥·콩·조 등 오곡을 켜켜이 쌓아 시루에 찐 조왕편을 빠뜨리지 않고 올리는 전통이 있다. 부엌의 신에게 오곡을 바쳐 오행의 조화와 풍요를 기원하기 위함이다. 이 떡은 고루 나누고 몸이 아픈 이가 있으면 약으로 챙겨 보내니, 조왕신의 치유력이 떡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는 셈이다.

 

『불설조왕경』·『불설환희조왕경』에는 조왕신이 “경사를 만나게 하고, 악귀와 백 가지 병을 물리치는 신”이라 하였다. 조왕신을 청해 모시는 『작법귀감』 「조왕청竈王請」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 위엄있는 광명이 자재로워 안팎을 길하고 융성하게 하며, 걸림돌을 벗어나 편히 머물게 하며, 온갖 질병을 모두 없애 주며, 선악을 분명히 가려내며, 들고남에 자재하고 한 곳에만 늘 머물며 집안을 보호하는 조왕신….

 

사진 8. 진관사 조왕기도에 올리는 조왕편.

 

온갖 질병을 없애 주는 능력과 함께 ‘공양간에만 머물면서 들고남에 자재’하다 하여, 선악을 가리고자 주기적으로 하늘에 오르내리는 조왕신의 특성을 담았다. 따라서 그림 속에는 한 손에 붓을 잡고 문서에 무언가를 적으려는 조왕신의 모습이 즐겨 표현된다.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스님들은 이러한 ‘선악의 감시’에 대해 출가수행자로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의미로 새긴다.

 

공양간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은 깨달음을 향한 출가자들의 수행에 밑거름으로 작용하니, 부처님께 올릴 마지를 짓고 출가자들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공양간은 더없이 신성한 영역이다. 따라서 눈에 띄지 않는 후원에 작은 모습으로 자리하여 많은 이들이 그 존재조차 모른다 해도, 스님들은 이곳을 지키는 조왕신의 상징성을 소중히 여긴다. 사부대중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는 데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질병을 치유하고 재앙을 막는 적극적 의미까지 수용하여 정성껏 기도 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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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박사(불교민속 전공).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 주요 저서로 『공양간의 수행자들: 사찰 후원의 문화사』,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삼화사 수륙재』,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등이 있다.

futuren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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