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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신플라톤주의 창시자 플로티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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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5 년 1 월 [통권 제141호]  /     /  작성일25-01-05 13:22  /   조회25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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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종교의 길을 밝혀준 사람들 1   

 

『고경』의 제안으로 이번 한 해 동안 세계종교에서 심층 종교의 길을 밝혀준 영적 지도자들을 선별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붓다, 예수, 무함마드 같은 창시자를 제외하고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종교사적으로 중요한 이들을 알아보기로 합니다. 그 첫 번째 인물이 신플라톤주의 창시자 플로티노스입니다.

 

플로티노스는 누구?

 

오늘은 서양 영성 전통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205~270)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플로티노스는 일반적으로 플라톤 사상의 계승자로서 이른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창시자라 불립니다. 사실 그는 플라톤의 사상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스토아학파의 사상에서도 영향을 받고 이런 사상들을 자기의 종교적 통찰을 통해 종합하려고 노력한 사상가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 1. 플로티노스(205~270).

 

학자들은 플로티노스가 이집트 북쪽에서 그리스인(희랍인)이라기보다 그리스화한 이집트 사람으로 태어났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조상이나 어린 시절, 태어난 장소, 날짜 등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가 그리스어를 구사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그리스어 어법에 맞게 플로티노스Plotinos라 할 수도 있고, 나중에는 로마에 가서 가르쳤기 때문에 라틴어 어법에 맞게 플로티누스Plotinus라 하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라틴어식을 채택해서 ‘플로타이너스’라 발음하지만 여기서는 관례에 따라 그리스 이름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플로티노스는 28세에 그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플라톤 철학을 가르치던 스승으로부터 11년간 플라톤 사상에 몰두했습니다. 플로티노스는 스승으로부터 배운 페르시아와 인도의 지혜에 대해 직접 알아보기 위해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원정군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원정이 실패하고 황제마저 살해되자 그는 패잔병 신세로 안티옥에 갔다가 이어서 로마로 갔습니다. 39세 때였습니다.

 

사진 2.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소재 로마시대의 극장 유적. 사진: 나무위키.

 

로마에서 철학학교를 설립하여 고관대작들을 포함하여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10여 년 후부터 단편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Porphyryos가 이 글들을 모아 6부작의 책으로 펴냈는데, 각 부가 9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9편’이라는 뜻의 『엔네아데스Enneades』라는 이름의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한국어로는 『구론집』이라고 합니다. 말년에는 시실리에 가서 66세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서양 신비주의 전통에서 플로티노스의 위치는 실로 괄목할 만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건설한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와 6세기 위僞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에게 크게 영향을 주어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영성 전통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지 않은 인물 중에서 플로티노스만큼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6세기에 이르러 고전 그리스 사상이 부흥하면서 그의 생각은 개신교 신비주의자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주었고, 나아가 이슬람의 수피 신비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므로, 플로티노스는 가히 서양 신비주의 사상의 원조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아일랜드의 예이츠, 미국의 에머슨을 포함한 많은 시인, 사상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출론과 세 가지 실체들

 

플로티노스 사상의 근간은 이른바 유출론流出論(emanation theory)입니다. 그는 모든 것의 통합체로서의 절대적 실재가 있고, 그 속에 서로 독특하면서도 분리되지 않은 세 가지 신적 실재들Hypostases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세 가지를 그리스어로 각각 헨to Hen, 누스Nous, 프시케Psyche라 합니다.

 

절대, 최고, 근원으로서의 궁극 실재 내에서 제1의 위치에 해당하는 ‘헨’을 영어로는 ‘the One’이라 옮기고, 한국에서는 보통 일자一者라고 하는데, 순수 우리말로 옮기면 물론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자’는 모든 존재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있다’, ‘없다’ 혹은 ‘크다’, ‘작다’라고 하는 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일체의 범주나 개념, 생각이나 이론 등에서 벗어난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일체의 분별지分別智를 거부하는 불교의 공空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는 노자의 도道를 연상케 합니다. 이 일자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실재로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흘러나오는 시원이기도 하고 또 모든 존재들이 결국에는 다시 되돌아가야 할 최종 목표이기도 합니다.

 

사진 3. 플로티노스의 책 『플로티노스 엔네아데스 입문』(탐구사, 2009년).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렇게 모든 존재의 초월적 근원이라고 하여 모든 존재 밖에 따로 독립되거나 분리된 실재라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일자는 만물을 초월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만물 중에 내재하기도 합니다. 절대자를 초월이냐 내재냐로 구분하여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초월이면서 동시에 내재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자를 초월도 되고 내재도 된다고 보는 입장을 일반적으로 ‘범재신론’이라 합니다.

 

아무튼 이 제1의 실재인 일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제2의 실재인 ‘누스’입니다. 영어로는 보통 ‘Intelect’, ‘Intelligence’, ‘Mind’, ‘Spirit’ 혹은 ‘Intellectual Principle’이라고 번역합니다. 우리말로는 보통 ‘정신’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 쓰는 용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일심一心’ 혹은 ‘한마음’이라 해서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흘러나왔다’고 하여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일자가 독자적으로 어디에 먼저 있었고, 그다음에 이것이 생겨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치 불과 열, 태양과 빛, 향수와 향기의 관계처럼 둘은 하나도 아니지만 또 완전히 둘도 아닌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유학에서 이理와 기氣를 두고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그 선후先後를 따질 수 없다고 하는 주장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누스는 ‘존재의 위계(the hierarchy of being)’라는 관점에서 볼 때 비존재인 하나의 영역에 속하지만 모든 것이 그것을 통해서 생겨난다는 의미에서 존재의 영역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한편으로는 절대적인 하나와 동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물 중 최고의 실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성서 중 『요한복음』 1장 서두에 “태초에 ‘로고스Logos(理法)’가 있었다. … 모든 것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것이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때 그 로고스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누스로부터 흘러나오는 제3의 실재를 프시케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영어로는 ‘Soul’, 우리말로는 ‘영혼’이라 번역합니다. 누스와 현상세계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이 영혼에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영혼과 개인적인 영혼이 있다고 합니다. 보편적인 영혼은 모든 것에 분산되어 사람을 비롯하여 동식물 등 물질세계의 모양을 형성하고 그 활동을 관장합니다.

 

개인적 영혼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최하의 형태는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우리의 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중간 형태의 영혼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특히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 지어주는 것이며, 가장 높은 형태의 영혼은 자기의 개체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누스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간적 형태의 영혼입니다. 이런 최고 형태의 초개인적 영혼은 우주적 한마음과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플로티노스 자신의 말을 빌리면, “이 둘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라고 합니다.

 

유출의 역류

 

플로티노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출流出을 반대 반향으로 역류逆流시키는 것입니다. 인간 속에 있는 최하질의 영혼에 얽매이지 않고 제2의 이성적 영혼을 정화하므로, 최고 형태의 영혼이 우리를 관장하게 하여 영혼이 다시 누스로 돌아가고, 거기서 다시 더 나아가 일자 혹은 하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다시 최초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歸鄕입니다. 나의 근원, 나의 참나를 찾는 것, 반본환원返本還源인 셈입니다.

 

플로티노스는 제2의 영혼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예술(음악)과 사랑과 깨침을 강조합니다. 음악이나 사랑을 통해 영혼이 일자와 하나로 녹아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길은 깨침 혹은 철학의 길을 통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따라 나의 근원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방법을 통해 영혼이 다양성의 세계에서 초월의 세계로 심화深化될 때 자의식自意識은 사라지고 신의 의식에 몰입되어 ‘하나됨henesis’의 ‘황홀경ecstasy’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플로티노스 자신은 철학 혹은 깨침의 길을 통해 제자가 아는 한 네 번 이런 경지를 맛보았다고 합니다.

 

유출론과 동양사상

 

플로티노스의 유출론과 똑같지는 않지만 『도덕경』에 나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제42장에 “도道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습니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더구나 『도덕경』의 중심사상 중 하나가 만물이 도道로 다시 ‘돌아감’이라 보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제32장에 “세상이 도道로 돌아감은 마치 개천과 계곡의 물이 강이나 바다로 흘러듦과 같다.”고 하고, 또 제40장에서는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4. 나카무라 하지메.

 

플로티노스가 인도사상, 특히 불교사상, 그중에서도 특히 일중다一中多 다중일多中一 혹은 상즉相卽·상입相入의 관계를 강조하는 화엄사상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보는 일본 학자들이 있습니다. 동경대학에서 불교를 가르치던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교수가 1970년대 중반 필자가 재학하던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강사로 초청받았는데 그 당시 버팔로 뉴욕대학에 와있던 그를 필자가 차로 가서 모시고 오는 도중 그 사실을 재확인해 준 적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관련이 있든지 없든지 양쪽 사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 검토하는 작업도 흥미 있고 유익한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비교 연구를 통해 동서양 신비주의적 심층사상의 접촉점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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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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