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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쓴 선문정로]
의상조사 법성게 강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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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5 년 2 월 [통권 제142호]  /     /  작성일25-02-04 11:47  /   조회9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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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하나가 전체고, 전체가 하나로 제법이 융통무애하기 때문에 무량한 원겁이 즉 일념이고 일념 이대로가 무량원겁이다 말이야. 이것은 우리가 말짱 얘기한 소리지? 그렇다면 여기 가서는 시간 공간이 절대로 설 수 없는 것이거든. 앞에서 일미진중함시방하는 것은 공간적으로 얘기한 소리야.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해소되고,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융통한 것이야. 결국은 요새 우리 불교의 좋은 점을 가져다가 과학사상 같은 데 비교하는 일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현대 과학사상에 좀 비슷한 게 나오기 때문이거든. 다음에 나도 조금 비교해 볼 거야. 이것도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소멸된 데서, 시간 공간이 완전히 융합한 걸 지금 얘기하는 것입니다. 

 

사진 1. 문경 운달산 김용사 전경. 성철스님은 1966년 이곳에서 법성게를 강의하셨다. 사진: 서재영.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무량원겁이 일념이 되고 일념一念이 즉시卽是 무량원겁無量遠劫이 되면 자연히 구세십세九世十世가 호상즉互相卽이야. 구세라 하는 것은 삼세 가운데 또 전부 삼세가 다 있으니까 삼삼三三은 구九거든. 차별적인 면 전체를 다 포함한 것입니다.

 

십세라 하는 것은 전부 포괄하는 측면을 말합니다. 구세까지 전체를 포괄해서 다시 십세라 이렇게 하는 거야. 구세를 가지고 차별적인 면을 표현하고, 포괄적인 면을 십세라 표현하거든. 그런데 그 차별과 전체가 다르지 않다 이것이야. 그래서 차별적 구세와 전체적인 십세, 이것은 호상즉이야. 서로서로 호상을 쳤다 말이야. 구세가 즉 십세이고 십세가 즉 구세이고, 차별이 즉 평등이고 평등이 즉 차별이야. 평등과 차별이 항상 한 덩어리라 얘기하지 않았어요? 

 

잉불잡난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그렇지만 너무 말짱한 덩어리가 되어 있으면 구분할 수 없어요. 안 그렇겠어요? 사람과 무슨 짐승들을 한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면 짐승이고 사람이고 구분할 수 없거든. 그렇지만 법성은 또 각각 다 다르다 이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짐승은 짐승입니다. 화엄에서 집을 예로 들어 아까 말 안 했어요? 총總으로 볼 때는 집이라 하지만, 문 앞에 가서 각각 나누어 말하면 집이 아니거든. 총은 총대로, 그리고 그 가운데에 별은 별대로 그대로 있습니다. 또 총이 즉 별이고 별이 즉 총인데. 이것이 잉불잡란격별성입니다.

 

아까는 자꾸 한덩어리만 얘기했거든. 한덩어리라 자꾸 얘기한다고 밥 먹는 사람이 콧구멍으로 밥 넣으면 안 된다 말이라. 코는 코대로 따로 있고, 또 입은 입대로 따로 있습니다. 밥 먹을 때 코로 밥 집어넣는 사람은 없어. 그것이 격별성隔別性이야. 각각 따로따로, 밥 먹는 입은 입대로, 코는 코대로 따로 있습니다. 일즉일체다즉일, 무량원겁즉일념은 말짱 다 한덩어리라 말하고 차별이 없다고 말해. 그러나 이것은 차별 이대로가 절대평등이지만, 또 평등 이대로가 차별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 소리예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첫 번째 발심할 이때가 누구든지 정각正覺이에요. 초발심시변정각이라는 것은 일체 중생이 최상승 근기라면 바로 막 밀고 나가도 괜찮은데, 많은 중생은 이해하기 곤란하거든.

여기서 말하는 발심이라 하는 것은 정각을 이루는 저 꼭대기, 거기서 말하는 발심인가 아니면 저 밑에서 하는 발심인가 이렇게 나눠서 봐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발심 이것은 전체를 통한 발심이야.

 

이 발심이라는 것이 어디에 적용이 되느냐 하면 고양이가 쥐 잡을 그때와 같은 것이 초발심이야. 거기에서 초발심을 봐야 된다 말이야. 또, 강도가 사람을 죽이려고 사람 목을 칠 그때 초발심시변정각을 봐야 이것이 참말로 원융무애한 도리지, 그렇지 않으면 지옥은 명백히 지옥이고 천당은 명백히 천당이라서 서로서로 차별이 되어서 융통이 안 되거든. 이 발심이라는 것이 그렇게 참으로 원융무애한 것이라 그 말이야.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라는 것은 중생의 고苦의 세계이고, 열반이라는 것은 해탈의 세계이거든. 그런데, 고苦 이대로가 즉 해탈이고, 해탈의 세계 이대로가 고苦이고, 이것이 전체가 서로 화和하여 둘이 아니라 말이야. 한데 뭉쳐서 고苦가 낙樂이고 낙樂이 고苦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자연히 초발심이라는 이 발심이 일체에 해당해야지, 국한된 발심이 되어서는 절대로 생사열반 상공화가 안 됩니다. 지옥 중생이 곧 부처님 세계라, 말짱 합쳐 가지고 뭉쳐서 하는 소리야. 그러니 이것은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세계에서 하는 소리고, 육상원융六相圓融에서 하는 소리라 말이야. 초발심을 국한된 것으로 잘못 해석할까 염려해서 하는 소리야.

 

사진 2. 성철스님이 김용사 조실로 계실 때, 1966년 1월 8일(토, 음 12월 17일)부터 2월 20일(일, 음 2월 1일)까지 50일 간의 안거정진에 참가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구도부 학생들과 김용사 대중스님들.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이理와 사事가 명연冥然해서 분별이 없어. 이理와 사事는 전에 이미 말했듯이, 이理라 하는 것은 공계空界이고, 사事라 하는 것은 색계色界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이理라는 것은 진眞이고 사事라는 것은 속俗인데, 진을 떠나서 속이 따로 없고, 속을 떠나서 진이 따로 없다 말이야. 진이 즉 속이고, 속이 즉 진이라고 얘기했거든. 그러니 명연冥然해서 무분별이야. 어떤 것이 이理고, 어떤 것이 사事인지 분별하는 사람,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理와 사事가 없느냐? 이理와 사事는 분명히 있는 가운데 분명히 없고, 분명히 없는 가운데서 분명히 있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거든.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이것은 어떤 사람의 경계냐면 십불, 부처님의 경계이고 보현보살의 경계라 말입니다. 이사명연한 무분별한 경계를 완전히 안 것이라는 말이에요.

십불十佛이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주해가 있는데 말이지, 하나의 분석만 알아 놓을까?

 

첫째는 ‘정각불正覺佛’이요, 바로 깨친 불佛이라 말이야. 둘째는 ‘원불願佛’이요, 셋째는 ‘업보불業報佛’이요, 넷째는 ‘주지불住持佛’이요, 다섯째는 ‘화불化佛’이요, 여섯째는 ‘법계불法界佛’이요, 일곱째는 ‘심불心佛’이요, 여덟째는 ‘삼매불三昧佛’이요, 아홉째는 ‘성불成佛’이요, 열째는 ‘여의불如意佛’이야.

사실 이게 모두 같은 소리야.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짜고 저렇게도 짜는데,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어.

 

사진 3. 운달산 법회 당시 등사기로 인쇄한 성철스님의 법문 자료(사진: 『시월록』).

 

능인해인삼매중能仁[人]海印三昧中

 

여기 ‘능인’을 어질 ‘인仁’ 자를 갖다가 써놨네? 사람 ‘인人’ 자예요. 어질 ‘인’ 자는 잘못됐어요. 능인能人이라 하는 거는 능화인能化人입니다. 즉 부처를 말할 때 씁니다. 능화불能化佛 즉 중생을 교화시킬 수 있는 부처님이라 해서 능인이거든. 부처님이 어질어서 어질 인仁 자를 쓴 모양인데 사람 인人이라야 됩니다. 일체 누구든지 말이지 자성을 깨치고 법성을 깨친 사람은 전부 다 능인能人이야. 능한 사람이다 그 말이야.

 

해인삼매중이라 했는데, 일체중생을 능히 교화시킬 수 있는 능인은 곧 능화인은 해인삼매중에 살아. 광대무변한 것을 해海라고 하는 것이거든. 그리고 제불심인諸佛心印을 갖다가 인印이라 합니다. 능인이 해인삼매라는 광대무변한 제불심인의 그 삼매 가운데에서 이런 법문을 한다 말이라. 능인해인삼매중에 십불보현대인경을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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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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