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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무념이 바른 종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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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5 년 2 월 [통권 제142호]  /     /  작성일25-02-04 11:50  /   조회5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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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을 요오了悟한 자는 즉시 무념이니 억념憶念과 집착이 없어서 광망誑妄이 일어나지 않고, 자기의 진여본성을 사용하여 지혜로써 관조하여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견성이며 불도를 성취함이니라.” - 『단경』 

 

망념이 모두 사라진 것이 무념

 

이 내용은 『종경록』에서 육조스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육조스님께서 전하신 ‘이 법’이란 견성법을 말하며, 일체 망념이 다 떨어진 무심을 곧 무념이라 한다.

 

“무념법을 요오了悟한 자는 만법에 다 통달하며 제불의 경계를 본다 하였으니, 만약에 무념법문에 정입正入하면 성불이 찰나경刹那頃에 있음을 알겠다. 금강 즉 등각 이하로부터의 일체중생은 개실皆悉 유념有念이므로 중생이라 하고, 일체 제불은 전부 무념을 증득하였으므로 불타라 호명呼名한다. - 『종경록』 

 

“오직 견성하는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출현하여 사종邪宗을 파쇄破碎하노라.” - 『단경』

 

사진 1. 1970년 초 백련암 좌선실 앞에서 대중스님들과 함께.

 

육조스님께서 분명히 밝히시기를 “견성법만이 올바른 가르침이므로 다른 것은 파괴해 물리친다.” 하였으니, 견성법만이 정설이고 다른 것은 수시방편설隨時方便說이다. 이 말은 허튼 말씀이 아니다. 불법이란 이름으로 추구했던 수많은 배움과 수행들이 견성하고 보니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고 토로한 선사들이 허다하다. 견성법을 바로 알고 나서 다른 교법을 보면 다른 것은 불법이 아니다. 지혜도 자비도 아니고 말짱 번뇌망상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실법이라 할 것은 견성법 하나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견성법만이 실법이다.” 하는 이런 말도 실제로 눈을 바로 떠 견성하고 나서 할 소리이지 견성하지도 못하고 함부로 떠들 소리는 아니다. 

 

“무無라 함은 하사何事가 없음이며, 염念이라 함은 하물何物을 염念하는고. 무라 함은 상대相對의 이상二相이 없으며 진로塵勞의 망심이 없는 것이요, 염이라 함은 진여의 본성을 염念함이니, 진여는 즉시 염念의 본체요 염念은 즉시 진여의 대용大用이니라.” - 『단경』

 

무념이라고 하면 흔히 텅 비어 아무 생각도 없는 허무를 연상하는데 그런 편공偏空, 악취공惡取空에 떨어져선 안 된다. 무無라 함은 일체 망념이 완전히 떨어진 것을 말하고, 염念이라 함은 진연자성의 본체가 나타남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무는 구름이 걷힌 것을 말하고, 염은 해가 환히 비추는 것을 말한다. 구름이 걷히듯 일체 망념이 완전히 제거되면 태양이 밝게 비추듯 자기의 본래 성품인 진여가 저절로 환히 드러난다. 따라서 진여의 정념正念이 무념이지 목석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알라.

 

돈오는 일체 망념을 단박에 끊는 것

 

“어떤 것을 돈오라 하는고. 대답하되 돈頓이라 함은 일체 망념을 단제斷除함이요, 오悟라 함은 오悟에 소득所得이 없음이니라.” 

- 『돈오요문』 

 

“무념으로 종宗을 삼고, 망념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지旨를 삼으며, 청정으로 체體를 삼고, 지혜로 용用을 삼는다.” - 『돈오요문』

 

망념이 일어나지 않아야 무념이니 망념이 있으면 무념이랄 수 없다. 또 망념이 여전히 일어난다면 어떻게 청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표현은 달리했지만 그 내용은 같은 것이다. 일체 망념이 다 떨어져 청정해지면 지혜는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뽀얗게 앉은 먼지를 말끔히 닦아내면 거울의 밝고 투명한 빛이 환히 드러나는 것과 같다.

 

“무념이라 함은 일체처一切處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으며 사려思慮, 희구希求가 없다.

모든 경계와 색상色相을 대하여도 영원히 기멸起滅과 동요가 없는 것이 무념이니, 무념은 즉 진여정념眞如正念이다. 만약에 무념인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을 떠나서, 보리해탈과 열반적멸涅槃寂滅과 선정견성禪定見性을 체득하려면 될 수 없다.” - 『돈오요문』 

 

망념이 생기지 않음이 선이요, 본성을 봄이 정이다

 

“망념이 생기지 않음이 선禪이요 정좌正坐하여 본성을 명견明見함이 정定이니, 본성은 여등汝等의 무생심이요, 정定이라 함은 외경外境을 대하여도 무심하여 팔풍八風이 능히 요동하지 못하나니, 이러한 정定을 체득하면 비록 범부이지만은 즉시에 불위佛位에 돈입頓入하느니라.” - 『돈오요문』

 

사진 2. 해인사 설경. 사진: 현봉 박우현.

 

참다운 선정이란 무심 무념으로써 이익과 손해 등 갖가지 경계에 동요되지 않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일체망념을 떨쳐 온갖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성불하지 않으려 해도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여래선이다.

 

“만약에 마음이 일체처에 주착住著하지 않음을 명명료료明明了了하게 알면, 곧 본심을 요료了了하게 본 것이며 또한 본성을 요료하게 본 것이라고 이름한다. 이 일체처에 주착住著하지 않는 심心은 즉시卽是 불심佛心이며 또한 해탈심이요, 보리심 무생심이라고 하나니, 경에 말씀하시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하였다 함이니라.” - 『돈오요문』

 

보통 사람들은 꽃을 보면 꽃에 마음이 머물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에 마음이 머문다. 이처럼 부딪치는 외경에 마음이 따라가 본래 마음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견성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떤 경계를 대하더라도 그 경계에 마음이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본성을 분명하게 본 사람은 경계에 동요하지 않고, 또 경계에 동요하지 않아야 성품을 바로 본 것이니, 이를 무생법인을 증득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앞서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신 “성품을 보아 무생법인을 증득한다.” 함은 곧 불지를 증득하는 것이지 보살의 지혜를 얻는 것은 아니다.

 

만일 제8아뢰야식의 미세망상은 고사하고 제6식의 추중망상도 벗어나지 못한 해오解悟를 견성이라 한다면 이는 부처와 조사의 혜명을 단절하고 중생의 바른 길을 파괴하는 정법의 대역죄인이다. 혹자는 대역죄인이라 하면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하겠지만 결코 심한 표현이 아니다. 이단의 사견에 빠져 망견을 불법이라 여기고 남에게 가르친다면 자신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짓이다. 더불어 정법을 파괴해 부처님의 바른 법이 전해질 수 없게 만드는 죄인이 되는 것이니, 어찌 대역죄인이 아니라 하겠는가? 고불고조를 표방으로 삼아 정법을 바로 이어야지, 이단의 잘못된 견해에 떨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니 잡다한 이론에 휩싸여 구구한 입씨름하지 말고, 견성은 성불을 말하고 성불은 곧 견성이라는 고불고조의 확고한 말씀에 의지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 『성철스님 평석 선문정로』(장경각, 2015)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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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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