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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운문삼구, 한 개의 화살로 삼관을 모두 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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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5 년 4 월 [통권 제144호]  /     /  작성일25-04-04 10:17  /   조회2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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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49_ 운문종

 

운문종을 창립한 문언은 이미 조사선에서 철저하게 논증된 당하즉시當下卽是와 본래현성本來現成의 입장에서 선사상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을 앞에서 언급하였다. 그리고 문언의 선사상은 청원계의 전통이 아니라 오히려 남악계의 전통에 가깝다고 하였는데, 이는 문언이 황벽의 제자인 목주도종睦州道踪에게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연유로 문언은 황벽의 제자인 임제의현臨濟義玄의 선사상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음이 그의 어록 행간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한편으로는 문언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임제종이 천하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제의 선사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문언 선사의 임제삼구 원용

 

앞에서 문언이 황벽과 임제의 선사상 가운데 ‘무사無事’라든가 ‘무심無心’, ‘의심즉차擬心即差’ 등의 사상을 원용하고 있음을 언급했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에서도 임제의 흔적이 나타난다.

 

세존이 태어나자마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일곱 걸음을 걷고는 사방을 둘러보며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라고 한 것을 들고[擧], 선사가 말하였다. “내가 그때 만약 보았다면, 한 몽둥이에 그를 때려죽여 개에게 먹이로 던져, 천하의 태평을 기도했을 것이다.”(주1)

 

사진 1. 운문산 산문 전경(광동성 소관시).

 

이는 조사선의 가불매조呵佛罵祖, 즉 부처를 욕하고 조사를 헐뜯는 풍조에서 나온 말이지만 명확하게 임제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가 권속을 만나면 친가 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 자재自在하게 된다.”(주2)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외에도 문언의 어록에서 임제의 사상적 흔적을 찾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언이 특히 관심을 보였던 것은 바로 임제삼구臨濟三句라고 추정된다. 『운문광록』 권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임제삼구’를 들어 탑주塔主에게 물었다. “그러면 탑 안의 화상은 (이 삼구 가운데) 몇 번째 ‘구’를 얻었는가?” 탑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사는 “네가 나에게 물어보아라.”라고 하자 탑주가 곧 물었다. 선사는 “빨리 말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말하겠다!”라고 하자 탑주가 “어떻게 하는 것이 ‘빨리 말하지 않으면, 먼저 말하겠다’라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선사는 “하나는 이루어질 수 없고[不成], 둘은 아니다[不是].”(주3)

 

이로부터 문언은 ‘임제삼구’를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언이 마지막에 답한 “하나는 이루어질 수 없고, 둘은 아니다[一不成, 二不是].”라는 구절은 상당히 복잡한 논리가 숨어 있다. 사실 이는 반야般若에서 추구하는 유무쌍견有無雙遣의 중도中道로부터 양변에 떨어질 수 없다는 불락양변不落兩邊의 도리를 설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상세히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이러한 문답에서 문언이 임제삼구를 의식하여 언급하고 있는 점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임제가 제창한 다음과 같은 삼구의 문구를 살펴본다면 더욱 명확하다. 

 

만약 제일구第一句 가운데 얻음이 있다면, 조사와 부처에게 스승이 될 수 있고, 만약 제이구第二句 가운데 얻음이 있다면, 천인天人에게 스승이 될 수 있으며, 만약 제삼구第三句 가운데 얻음이 있다면, 자신도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주4)

 

사진 2. 운문산 입구의 운문선경. 

 

이에 대한 해석은 임제의 선사상을 논할 때 설명했으므로 상세한 언급은 생략하겠지만, 이른바 ‘제일구’에서 얻는다면 조사와 부처[祖佛]의 스승이 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언은 위의 대화에서 “하나는 이루어질 수 없고, 둘은 아니다.”라는 말은 이를 향상向上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사실상 『운문광록』에는 ‘일구一句’를 언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나타나는데, 상권에는 22차례, 중권에는 63차례, 하권에는 8차례가 보인다. 이 ‘일구’는 분명히 임제의 ‘제일구’를 겨냥하거나 그를 축약한 것으로, 오가五家를 창립한 선사들의 어록 가운데 이렇게 대량으로 언급하는 사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구’를 통한 시설施設

 

『운문광록』 권상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보인다. 

 

묻기를, “예로부터 고덕古德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했는데, 오늘 선사는 어떻게 시설施設하겠습니까?”라고 하자 선사는 “묻는 이가 있고, 답하는 이가 있다.”라고 하였다. 다시 “그렇다면, 이 시설이 헛된 것은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묻자, 선사는 “묻는 이도 없고, 대답하는 이도 없다.”라고 하였다. 묻기를, “무릇 언구言句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면, 무엇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자 선사는 “바람결의 일구一句는 어디에서 일어나 오는가?”라고 하였다. 다시 “그렇다면 바로 이 말이 그것입니까? 아닙니까?”라고 하자 선사는 “착각하지 마라!”라고 하였다.(주5)

 

여기에서 운문은 학인들을 깨우치는 선리禪理의 시설에 ‘일구’를 제창하고 있음을 말하면서도 그에 대한 천착을 경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운문의 한결같은 입장은 제시하면서도 그에 대한 천착을 몹시 경계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너희들에게 아무 일이 없음[無事]을 말하는 것은 이미 서로를 매몰埋沒시키는 것이다. 반드시 이 경지[田地]에 도달해야 비로소 얻을 것이다.”라고 하는 방식으로, 문언은 ‘무사’를 극도로 중시하면서도 그를 언급하는 것은 서로 매몰시키는 것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방식은 ‘구’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논하고 있다. 『운문광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보인다. 

 

사진 3. 운문산 광태사.

 

만약 납승의 문하에서 구句 속에 기틀[機]을 드러낸다면, 부질없이 사량思量에 매몰될 것이다. 바로 넉넉한 일구一句 아래에서 받아들여 얻을 수 있으나, 오히려 이것은 졸고 있는 놈이다.(주6)

 

일칙一則의 말을 들어, 너희들을 바로 받아들이도록 가르치지만, 이미 네 머리 위에 똥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 설령 네가 털끝 하나를 집어 들어 그걸로 온 대지大地를 한순간에 밝힌다 해도, 그것은 또한 자기 살을 도려내어 상처를 내는 짓일 뿐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너 스스로) 그 경지[田地]까지 참답게 도달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주7)

 

여기에서 문언의 고민을 여실하게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선리禪理와 그를 표현하는 언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임제삼구와 같이 명확하게 ‘제일구’를 제시하여 그에서 얻는다면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해도 그에 천착한다면 그것은 “네 머리 위에 똥물을 끼얹는 것”이고, 그렇다고 ‘일구’를 시설하지 않는다면 선리를 깨우치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운문광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고인古人들이 한때 너희들에게 어쩌지 못했던 까닭에 일언반구一言半句를 드리워 너희들이 들어가는 길을 통하게 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한 변邊을 잡거나 놓아주며 약간의 뼈와 살을 붙였으니, 어찌 조금이나마 친해질 여지를 허락함이 아니겠는가! 빨리 붙잡으라! 빨리 붙잡으라!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며, 내쉰 숨이 다시 들어오는 것도 보장할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몸과 마음을 한가하게 딴 데 쓰고 있을 겨를이 어디 있겠느냐? 부디 깊이 새겨 두어라.(주8)

 

사진 4. 운문산 석굴.

 

이 구절에서 엄격하고 고고한 문언의 자상함이 느껴진다. 선지식들이 어떤 ‘구’를 제시함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고, 그 때문에 그를 빨리 붙잡아서 조금이라도 선리와 친해질 것을 권하고 있다. 사실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겠다. 그 때문에 문언은 다양한 ‘구’에 대한 문답이나 ‘일구’를 강조한 것이라 하겠고, 이를 정형화한 것이 바로 ‘운문삼구’라고 볼 수 있다.

 

『인천안목』에서 논하는 운문삼구 

 

후대에 오가의 종지와 종풍을 논한 『인천안목人天眼目』에서는 ‘운문삼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문언) 선사가 시중示衆하여 설하였다. “하늘과 땅을 덮어 포용함[函蓋乾坤]이고, 한눈에 기틀의 무게를 분별하며[目機銖兩], 모든 인연을 간섭하지 않음[不涉萬緣]이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스스로 대신하여 말하였다. “한 개의 화살촉으로 삼관三關을 뚫는다.” 후에 덕산德山 원명연밀圓明緣密 선사가 마침내 (운문 선사의) 그 말을 분리해서 삼구三句로 하였으니, 함개건곤구函蓋乾坤句, 절단중류구截斷衆流句, 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이다.(주9)

 

이로부터 운문종의 대표적인 운문삼구로 알려진 ‘함개건곤函蓋乾坤·절단중류截斷衆流·수파축랑隨波逐浪’은 후대에 연밀에 의하여 정리된 것이고, 문언이 제창한 삼구는 바로 ‘함개건곤函蓋乾坤·목기수량目機銖兩·불섭만연不涉萬緣’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운문광록』 권중에는 “시중하여 말하기를, ‘하늘 가운데 ‘함개건곤’이요, ‘목기수량’, ‘불섭만연’이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대신하여 말하기를, ‘한 개의 화살촉으로 삼관三關을 뚫는다.’라고 하였다.”(주10)라는 구절이 보인다. 따라서 운문삼구를 논함에 있어서는 문언과 연밀의 삼구를 모두 논해야 할 것이다. 그에 따라 이에 이어서 운문삼구의 각 구를 고찰하고자 한다. 

 

<각주>

(주1) [宋]守堅集, 『雲門匡眞禪師廣錄』 卷中(大正藏47, 560b), “舉世尊初生下, 一手指天一手指地, 周行七步目顧四方云: 天上天下唯我獨尊.師云: 我當時若見, 一棒打殺與狗子喫却, 貴圖天下太平.”

(주2) [唐]慧然集, 『鎮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500b), “逢佛殺佛, 逢祖殺祖, 逢羅漢殺羅漢, 逢父母殺父母, 逢親眷殺親眷, 始得解脫. 不與物拘, 透脫自在.”

(주3) [宋]守堅集, 『雲門匡眞禪師廣錄』 卷下(大正藏47, 573a), “舉臨濟三句語問塔主: 秪如塔中和尙得第幾句? 塔主無語. 師云: 你問我. 塔主便問. 師云: 不快卽道. 塔主云: 作麼生是不快卽道? 師云: 一不成二不是.”

(주4) [唐]慧然集, 『鎮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501c),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주5) [宋]守堅集, 『雲門匡眞禪師廣錄』 卷下(大正藏47, 545b), “問: 從上古德以心傳心, 今日請師, 將何施設? 師云: 有問有答. 進云: 與麼則不虗施設也? 師云: 不問不答. 問: 凡有言句皆是錯, 如何是不錯? 師云: 當風一句, 起自何來. 進云: 莫祇者便是也無? 師云: 莫錯.”

(주6) [宋]守堅集, 『雲門匡眞禪師廣錄』 卷上(大正藏47, 546a), “若約衲僧門下句裏呈機, 徒勞佇思. 直饒一句下承當得, 猶是瞌睡漢.”

(주7) [宋]守堅集, 『雲門匡眞禪師廣錄』 卷上(大正藏47, 546b), “舉一則語, 教汝直下承當, 早是撒屎著爾頭上也. 直饒拈一毛頭, 盡大地一時明得, 也是剜肉作瘡. 雖然如此, 也須是實到者箇田地始得.”

(주8) [宋]守堅集, 『雲門匡眞禪師廣錄』 卷上(大正藏47, 546c), “古人一期爲汝諸人不柰何, 所以垂一言半句, 通你入路. 知是般事, 拈放一邊, 自著些子筋骨, 豈不是有少許相親處. 快與! 快與! 時不待人, 出息不保入息. 更有什麼身心閑別處用. 切須在意.”

(주9) [宋]智昭集, 『人天眼目』 卷2(大正藏48, 312a), “師示衆云: 函蓋乾坤, 目機銖兩, 不涉萬緣, 作麼生承當. 衆無對. 自代云: 一鏃破三關. 後來德山圓明密禪師, 遂離其語為三句, 曰: 函蓋乾坤句, 截斷衆流句, 隨波逐浪句.”

(주10) [宋]守堅集, 『雲門匡眞禪師廣錄』 卷中(大正藏47, 563a), “示衆云: 天中函蓋乾坤, 目機銖兩, 不涉春緣. 作麼生承當? 代云: 一鏃破三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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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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