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는 지금]
인도 현대 인도불교의 부활과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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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2025 년 4 월 [통권 제144호] / / 작성일25-04-04 15:35 / 조회168회 / 댓글0건본문
심재관(상지대 교수)
많은 한국의 불교인들은 “어찌하여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 불교가 이토록 처참히 위축되었는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식자들은, 이슬람의 인도 정복이나 힌두교와 불교의 혼성문제를 들면서 인도불교의 쇠망에 대한 흔한 답을 열거하곤 한다.
현대 인도불교의 지형
그러나 인도불교의 쇠망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자이나교를 포함한 사문의 종교들과 같이, 기생적parasitic 종교가 생래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위대한 숙명적 한계에서 온다는 점을 먼저 통렬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현대 인도불교의 부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에 대한 해답을 논하는 대신, 먼저 당면한 현대 인도불교의 현재 상황과 이에 따른 한두 가지의 문제를 살펴보자.
현재 인도의 불교도들은 대략 8백만으로, 14억 인구 가운데 0.6% 가량의 신앙인을 갖는 소수 종교로 자리매김한다. 이 대부분의 불교인들이 현재 인도 어느 지역에 주로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대략 인도불교의 현대 역사가 보일 것이다.
첫째는 나그뿌르Nagpur 시를 중심으로 한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의 불교도들이다. 이들이 가장 큰 현대 인도불교의 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50년대 암베드까르의 불교운동으로 인해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많은 하층민들이 불교로 개종한데서 기인한다.

두 번째는 잠무카슈미르와 히마짤뿌라데쉬 주의 불교도들이다. 한국에서도 많이 방문하는 지역인, 레Leh에서 다람살라Dharamshala로 이어지는 지역의 불교도들이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히말라야 산맥에서 티베트 불교전통을 유지하면서 살아오던 소수의 불교도들이었고, 여기에 20세기에 티베트에서 유입된 불교도들이 포함된다. 인도 전체의 불교도들로 볼 때 ‘비교적’ 큰 불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시킴Sikkim, 아쌈Assam, 미조람Mizoram 등지의 북동부 지역들이다. 이 지역의 불교는 다소 혼종적이다. 즉, 티베트 불교의 영향 하에 있었던 시킴지역과 상좌부 전통의 미조람 등을 다시 구분해볼 수 있다. 또한 동파키스탄 이전부터 존재했던 상좌부 전통의 불교도들이 동파키스탄에서 인도로 유입되거나, 또는 20세기 전반 영국-미얀마 전쟁으로 영국령 인도로 편입된 불교도들이 있는데, 당연히 상좌부 불교전통 속에서 살던 불교도들이다.

다른 소소한 지역들도 고려해볼 수 있겠으나, 현재 인도 불교도들의 인구를 고려할 때 이러한 큰 범위를 나누어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현대 인도불교의 이러한 지형도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형성된 것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20세기 초만 해도 소수 잔존했던 불교도들은(히말라야가 아닌 평야 지대에 거주하는) 대부분 벵골지역에 살고 있었다. 이것은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와서야 인도불교 신앙의 지형이 매우 강하게 변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의문의 여지 없이 이 변화의 계기들은 티베트 망명정부의 성립과 암베드까르와 같은 재가신자들의 불교혁신운동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 인도불교의 두 원천: 승원의 티베트 불교, 재가자의 상좌불교
인도불교는 13세기에서 14세기에 거의 종말을 고하며 인도 후기 중세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 이후, 불교가 다시 인도 땅에서 부활한 것은, 18세기 말 벵골 르네상스에서 그 시작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영국식 교육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벵골의 중심 콜카타는 람 모한 로이 등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인도의 전통사상을 서양 사조들과 비교, 부각시키면서 힌두교와 불교 등을 근대화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근대화 경향에 스리랑카의 대각회(마하보디 소사이어티Maha Bodhi Society)가 인도불교의 부활에 다시 힘을 싣게 되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이 불교의 고전과 사상들을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민족주의적 사유도 함께 발흥하게 된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말한 바대로 현대 인도에서 불교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실질적으로 인도 밖에 있었던 티베트 불교와 동남아불교 두 전통이 20세기 중반에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9년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티베트 불교도들이 대거 인도와 네팔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인도 내에서 불교의 지형은 크게 달라진다. 여기에는 티베트 승려들의 훈련된 학습과 수행 체계가 잘 보존된 채로 인도 땅에 다시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달라이 라마라는 상징적 존재를 통해, 불교의 종교적이고 정치적 영향력도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인도 땅에 10만여 명의 티베트 난민이 거주하게 되면서, 다행히 티베트 불교 고유의 수행법과 철학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이것은 인도 땅에서 불교가 부활하는 징조인 동시에, 후기 중세 이후로 소멸되었던 인도의 금강승金剛乘(vajrayāna)의 전통이 티베트 불교를 통해 다시 부활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일 티베트 불교가 중공의 침략으로 인해 20세기에 인도와 세계속으로 널리 전파될 계기가 없었더라면, 이 전통은 영영 잊혀졌거나 샹그릴라의 신비로 묻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1956년 불가촉천민 출신의 지식인 암베드까르가 나그뿌르에서 50여만 명의 하층민들을 일시에 불교도로 개종시키면서 현재까지 가장 중요한 불교운동이 탄생하게 된다. 그동안 힌두사회의 억압과 차별 속에서 고통받았던 하층민들이 불교로 개종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개종운동은 불교의 내적인 혁신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혁신운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의도가 어떠하든, 외적으로 불교는 충분히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다.
우연히도 뒤이어 인도에서 상좌부 불교가 유행한다. 이는 주로 스리랑카와 태국, 미얀마에서 수입된 상좌부 전통의 불교였다. 1970년대에 고엔카(Goenka)가 주도하는 위파사나 명상 운동이 인도에서 일어난다. 위파사나 명상 운동은 미얀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나, 사띠야 나라야나 고엔카(S. N. Goenka)에 의해서 위파사나 명상은 미얀마나 인도를 넘어서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고엔카는 그가 본래 인도 바라문의 사업가 가문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삶 초기에 미얀마에서 위파사나 수행을 배운 뒤 인도에서 명상센터를 세워 불교 명상 운동을 대중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고엔카가 10일간의 집중 명상 훈련을 실시하는 수행법은 현재 50여 개가 넘는 지부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위파사나 명상이 재가자인 고엔카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있다. 현대 인도불교의 부활에 기억할만한 또 하나는 재가불교도들의 움직임이다. 그 중심의 또 다른 인물이 상가락쉬따이다. 그는 영국인이지만 20여 년을 인도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면서 위의 두 전통, 즉 20세기 전후 상좌부 전통과 티베트 전통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그가 창립한 삼보불교공동체(Triratna Buddhist Community)는 여전히 현대 인도불교의 중심에 있다. 암베드까르와 고엔카, 그리고 상가락쉬따 등의 재가인들이 주도한 불교운동은 현재 아마도 가장 강력하게 불교가 현대 인도사회에 재생하게 된 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제: 승려교육, 힌두뜨바(Hindutva), 그리고 중국
이러한 근현대 인도불교의 배경을 살펴보면, 인도불교의 목전 과제가 나타나는 듯 보인다.
첫 번째는, 재가자 중심으로 일어난 불교운동에서 승려의 교육체계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 운동 속에는 비구 또는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독신과 대처라는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전통적인 승원의 출가수행자 교육이 없는 것이다.

이 불교운동이 재가자(암베드까르와 상가락시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출가자 중심의 교단으로 정착하기에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두 운동이 모두 다르마짜리야(Dharmacarya, 法師)를 통해, 마치 기존의 불교 종단에서 승려들이 불법을 가르치거나 의례를 치르는 등의 일을 관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전통 불교 교단의 승려를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계맥戒脈이나 법맥法脈을 정초할 수 없다는 점이다. 티베트 불교나 상좌불교의 율맥이나 법맥을 전수하지 않고, 독자적이고 형식적인 독신생활만으로 교단이 유지될 수 있는가는 아직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자칫 다르마짜리야는 힌두교의 사제들과 같은 역할의 불교인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있다. 인도인들 대부분은 의례와 축제, 기념일 등을 통해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불교의 다르마짜리야들에게도 힌두교 사제와 같은 역할이 요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가락쉬따의 삼보불교공동체의 경우, 그 공동체 안에는 실질적인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이 없는데, 이로 인한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도 의문이 생긴다. 구미의 불교 법사들의 경우에서 종종 나타나듯이, 법사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적인 추문도 전통적인 승원 교육의 필요성을 되짚도록 만든다. 법사들의 독신 여부는 선택의 문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불교와 힌두근본주의자들 즉, 힌두뜨바Hindutva와의 갈등이다. 2천년대에 들어와 지금까지 인도의 힌두교 부활운동이 점차 정치세력화 되면서, 힌두근본주의의 목소리와 불교인들이 점차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모디(Modi)정부 들어 힌두국민국가(Hindu nation)를 건설하고자 하는 의도가 현실화되었고, 슛디(정화)운동이나 암소보호운동, 산스크리트 교육의 강화, 등을 통해 더 노골화되었다. 이에 따라 힌두대중들과의 종교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슬람교도나 불교인들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교로 전향하는 하층민은 이러한 힌두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불교는 힌두인들의 폭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하층민의 귀의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2016년 구자라뜨의 달리뜨 7명은 죽은 소의 가죽을 벗겼다는 이유 때문에 길거리에서 집단적으로 결박된 채 매질을 당하고 촬영된 적이 있었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인도뿐 아니라 전세계인을 경악시킨 바 있다. 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힌두인들은 이 가족들 가운데 4명의 상의를 벗기고 손목을 결박한 채 이들에게 매질을 했으며, 보란 듯이 경찰서까지 거리행진을 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구자라뜨의 달리뜨들을 중심으로 일주일이 넘는 폭동이 일어나고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하층민들은 구자라뜨의 기르 솜나트(Gir Somnath)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폭력적인 사건을 계기로 이 지역민들이 집단적으로 불교로 전향해버렸다.
우연히도 이 지역은 불교의 초기 석굴 사원군으로 유명한 곳인데, 기르 솜나트 지역에는 기원전 이전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는 60여 기의 석굴사원들이 존속하는 곳이다. 여전히 모디 정부가 불교보호와 육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약은 쉽게 던지고 있으나, 이 지역의 보존이나 발굴은 여전히 진전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는, 달라이 라마를 둘러싼 중국과 인도의 정치적 문제다. 지금 중국은 14대 달라이 라마의 승하 후,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 선정에 대한 전략적 논의가 깊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다음 관세음보살의 현신은 중국에서 태어날 것이고, 그에 대한 종교적이고 정치적 인가는 중국 정부에서 하겠다는 생각이다. 당연히 티베트인들은 중국이 달라이 라마나 티베트의 생불生佛들의 선출과정에 대한 불법적佛法的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비단 티베트와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히마짤쁘라데쉬를 포함한 히말라야 주변에 거주하는 많은 인도인들이나 인도 내의 불교도들에 대해서 인도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인도 중국 간의 외교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도 정부의 관점에서 더 신경 쓰이는 문제는,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 등장하게 되면 사전에 중국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중국이 주장하고 있다는 점인데, 인도에서 환생이 나타나거나 인도로 옮겨질 경우, 이는 필시 중국과 인도 간의 큰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인도 내에서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중심으로 티베트불교(도)의 자치 정부나 신행 단체들이 다시 결속하게 될 것이고, 당연히 해외 불교도들의 지지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의 셈법은 이들 정부나 종교집단, 교육단체 등에 침투하여 분열·와해를 시도할 것이다. 그리되면, 인도 내 불교의 문제가 국제분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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