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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를 만들어 낸 불교의 바닷길 ]
불교전파와 바다 상인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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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현  /  2025 년 4 월 [통권 제144호]  /     /  작성일25-04-04 15:55  /   조회3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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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00~기원전 1000년경 쓰인 힌두교와 브라만교의 경전 『리그베다(Rig-Veda)』는 숭앙하는 신을 비롯해 당시 사회상, 천지창조, 철학, 전쟁, 풍속, 의학 등을 두루 다룬다. 베다에 등장하는 산스크리트어 사무드라는 해양을 뜻한다. 사무드라라는 용어는 인도문명의 영향을 받은 인도네시아 자바의 유적에도 남아 있으며, 때로는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바다를 상징하는 사무드라

 

해양 실크로드 문명사 관점에서 본다면 물산의 수입과 풍부한 물산의 수출, 위신재威信財의 수입과 수출을 통한 맞교환, 바다를 통한 문화예술의 전래와 종교의 전파 등은 늘 지배자들의 관심 사항이었다. 따라서 그 물산의 교통로를 확보하고 항구를 개발하는 일은 어떤 지배자라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덕목이었다. 

 

고전 시기의 여러 문헌에서 바다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후반 마우리아 왕조의 창시자 찬드라굽타를 보필한 재상 카우틸랴(Kautilya)가 쓴 공공 행정과 경제 정책, 군사 전략에 관한 보고서인 『아르타샤스트라(Arthaśāstra)』에서는 강과 해상 교통, 어부에 대한 관세와 입항세 및 세금 징수, 폭풍으로 인해 난파된 배와 그 선원 관리, 해적을 진압하는 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명시했다. 

 

사진 1. 자카타 설화에 의한 회화. 스리랑카 갈 해양박물관.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등장 이후 인도는 조선사造船史에서 놀랍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도는 비로소 큰 조선소를 갖게 됐고, 많은 배를 상인과 진주잡이꾼에게 빌려주거나 승객과 화물을 운반했다. 기원전 600~기원후 200년경 산스크리트어로 편찬된 힌두 신앙과 임무에 대해 서술한 옛 법전 『다르마샤스트라(Dharmaśāstra)』에도 해양 활동에 대한 규정이 나오는데,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제외하고 배에 대한 선원의 집합적 책임에 대해 기록했다.

 

인도인의 해상활동이 잘 반영된 『본생담』

 

부처의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本生譚(Jataka)』에도 바다가 등장하는데, 해양 활동에 대한 인도인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본생담은 부처가 왕이나 왕자, 수행자, 상인 그리고 원숭이, 앵무새, 코끼리 등 동물로까지 윤회하면서 중생을 구하고 공덕을 쌓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에는 여섯 달이나 지속된 항해, 훈련된 새를 활용해 육지를 찾는 선원, 별을 따라가는 항해, 심지어 눈이 먼 도선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또한 도선사 조합도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언급한다. 돛이 세 개 달린 배 이야기도 있다. 또 선원들이 서쪽의 바빌론과 알렉산드리아, 동쪽의 미얀마와 말레이시아에 이르기까지 항해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를 통해 고대 인도의 뱃사람들이 얼마나 넓은 항해 범위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사진 2. 불교 바닷길 전파의 무대인 인도아대륙과 동남아(영국 1747년 제작).

 

인도인은 바다가 여전히 위험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괴물과 악마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파된 배의 선원을 구해주는 여신도 있다고 생각했다. 『본생담』은 빨리 부를 쌓을 수 있게 해주는 상선의 유혹도 이야기하지만, 한편 바다의 삶에 대한 현실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부처의 화신인 수파라가 보살 

 

초기 인도해양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부처의 화신化身인 ‘수파라가(Supāraga) 보살의 서사’다. 수파라가는 뛰어난 항해가이자 선장이었다. 고대 세계에서 항해는 극도로 위험한 일이었지만 당대의 모든 해양 예술과 과학에 통달한 수파라가 선장은 노련하게 잘 헤쳐 나갔다.

 

수파라가는 주변 환경의 모양, 소리, 느낌으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기에 광활한 항해에서도 길을 잃은 적이 없었다. 그의 천문 지식은 배를 밤새도록 안전하게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됐고 그의 지구력은 온갖 극한 조건과 온도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사진 3. 사르나트에서 발굴된 불교 후원자의 초상(기원전 2∼1세기, 우타르프라데쉬 사르나트). 뉴델리국립박물관.

 

수파라가는 항로의 안전을 보장했던 뛰어난 전통 항해술의 보유자였다. 항해술에 능숙했던 수파라가는 바다 상인을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보석을 찾아 ‘황금의 땅’ 말레이반도로 가려는 미숙한 보석 상인들이 수파라가에게 항해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파라가는 평생 동안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를 항해의 상징적 마스코트로만 보았다. 따라서 그의 탁월한 지도로부터 혜택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의 광범위한 해양 지식을 배울 기회를 허비하고 있었다.

 

사진 4. 항해자의 수호신으로도 모셔진 디팡카라(Dipangkara) 보살상. 인도에서 대단히 먼 바다인 술라웨시 서해에서 발견되었다.

 

어쨌든 그는 마침내 동의했다. 이 ‘위대한 존재’는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그들의 배에 타기로 동의했다. 수파라가가 승선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기뻐할 만한 이유가 됐다. 상인들은 ‘이제 우리는 성공적으로 항해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그들은 항해를 시작했다. 다양한 종의 물고기가 출몰하고 계속해서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망망대해(Great Ocean)에 도달했다.

 

갑자기 거센 돌풍이 일어났다. 폭풍과 거친 파도가 며칠 동안 그들을 넓은 바다로 끌고 갔다. 뱀처럼 쉿 소리를 내며 청흑색 구름이 머리 위로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천둥의 굉음과 함께 번개의 불타는 혀가 일어났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바다는 분노한 듯 솟아올랐다. 불쌍한 상인들은 공포에 질려 전율했다. 수파라가가 그들을 위로하였다.

 

고난의 시간들, 화염의 바다로 

 

‘위대한 존재’의 연설에 활력을 얻은 상인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사실 그들은 그를 공경했지만 본심은 아니었다. 며칠 후 해류는 배를 파도에 굴러가는 사파이어가 있는 아름다운 보라색-청색의 바다로 끌어들였다. 폭풍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바다 경치는 그들을 맡은 일에서 산만하게 만들었다. 무섭고도 짜릿한 광경과 소리는 그들의 희망과 두려움, 부에 대한 탐욕, 안전에 대한 망상을 불러일으켰다. 보석 발견을 꿈꾸며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올바르게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닷길을 유지할 만큼 열심히 일하지는 않았다.

 

사진 5. 우유빛 바다에서 힘을 겨루는 수무드라.

 

해류가 다시 배를 다른 바다로 몰고 갔다. 상인들은 바다에서 은 갑옷을 입은 사람들의 형상을 보고 놀랐다. 파도에서 뛰노는 전사인 ‘악마 물고기’가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상인들이 은 갑옷을 입은 사람을 보았다고 수파라가에게 알리자 ‘위대한 존재’는 이들은 사람도 귀신도 아니고 물고기라고 말하며 두려워하지 말라하였다.

 

강풍은 그들을 아름다운 은빛 바다로 몰아넣었다. 수파라가는 그곳이 매우 위험한 ‘우유의 바다’라고 말했다. “지금 배를 돌려라!” 그가 주장했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파도 사이의 놀랍고 기이한 현상에 매료된 상인들은 적극 협력하려 들지 않았다. 저항할 새도 없이 해류는 그들을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가득한 ‘화환의 바다(Sea of Fire Garlands)’로 끌어들였다. 그것은 알려진 세계의 가장자리에 있는 화염을 뜻했다.

 

황금의 땅으로의 여정 

 

이 같은 『본생담』의 항해 이야기 속에서 인도아대륙의 동쪽과 서쪽으로 펼쳐진 국제 항로를 발견할 수 있다. 동쪽으로는 ‘황금의 땅’ 말레이반도로, 서쪽으로는 페르시아만으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상인들은 좌절하고 극복하고 다시 좌절하는 고난을 겪었다. 기원전 4세기에 성립된 『본생담』 이야기는 부처시대 인도의 국제 무역을 잘 설명해준다.

 

사진 6. 인도인이 무역하던 황금반도 지도(1300년경 로마 바티칸).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 당대의 국제항이었던 아라비아해의 보르치와 수파라 항구와 바빌론과의 국제 무역도 반영한다. 어떤 인도 상인이 공작새를 가지고 바빌론을 방문한 이야기도 나온다. 서부인도에서 페르시아만과 강으로 이어진 무역은 드라비다족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비정된다. 수파라가는 별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야간 항해에도 문제가 없었다.

 

수많은 상인과 순례자들이 역경을 겪고 죽음의 길로 가거나 무사히 목적지에 당도했다. 신앙에 의탁해 무조건 기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의 지형과 해양 생물 등을 숙지하고 원해 항해에 나섰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이끌면서 새로운 바다를 발견해 나갔고, 대항해를 계속했다. 아마도 법현, 의정 등 많은 구법승에게도 벵골만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와 중국을 오갈 때 수파라가의 말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수파라가의 행적은 이미 법현의 시대에 중국에서 한역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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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현
해양문명사가. 분과학문의 지적·제도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융·연구를 해왔다. 역사학, 민속학, 인류학, 민족학 등에 기반해 바다문명사를 탐구하고 있다. 제주대 석좌교수,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역사민속학회장,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APOCC) 등을 거쳤다. 『마을로 간 미륵』, 『바다를 건넌 붓다』, 『해양실크로드 문명사』 등 50여 권의 책을 펴냈으며, 2024 뇌허불교학술상을 수상했다.
asiabad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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