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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진각혜심 ❶ 무자 화두를 실참하는 수행자를 위한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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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룡  /  2025 년 6 월 [통권 제146호]  /     /  작성일25-06-04 10:26  /   조회22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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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이야기 18

 

최충헌에 이어 최씨 무신정권을 확고히 한 인물은 최우崔瑀(?~1249)이다. 그리고 보조지눌에 이어 수선사修禪社를 반석 위에 올린 승려는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이다. 최충헌은 기존의 불교계에 대대적인 개편 작업을 통하여 선종 중심의 교단 체계를 구축하려 하였다. 그는 지겸志謙을 왕사로 책봉하여 오교 양종을 주관케 하고 자신의 아들을 지겸에게 출가시켰다. 1219년 최충헌이 죽고 권력의 정점에 오른 최우는 수선사를 중심으로 하여 불교계를 재정비하였다. 최우는 자신과 그의 핵심 참모들을 수선사의 단월로 참여케 하고, 자신의 두 아들인 만종萬宗과 만전萬全(沆)을 혜심의 문하에 출가시켰다. 최우와 혜심의 조우는 광종과 균여의 관계에 비견할 수 있다.

 

지눌과 혜심 간의 전법傳法

 

지겸의 비문과 더불어 혜심의 비문을 찬술한 이는 이규보李奎報이다. 그는 당나라 선종사에 큰 영향을 끼친 유학자인 배휴裴休에 견줄 수 있다. 지눌이 혜심에게 법을 전하는 모습을 이규보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진 1. 백운거사 이규보.

 

하루는 혜심이 지눌을 따라가는데, 지눌이 한 떨어진 신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신은 저기 있는데 사람은 어느 곳에 있는가?” 하고 물었다. 혜심이 “어찌 그때에 서로 보지 않았을까요?”라고 대답하자 지눌은 크게 기뻐하였다. 또 지눌이 ‘조주구자무불성趙州狗子無佛性’이라는 화두를 들고, 이어 대혜종고 선사의 십종병十種病을 들어 물으니, 여러 스님들은 대답이 없었다. 혜심만이 “삼종병인三種病人이라야 바야흐로 그 뜻을 해득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지눌이 “삼종병인은 어떤 곳을 향하여 기운을 내느냐?”라고 말하자 혜심이 손으로 창문을 한 번 내리치니, 지눌이 크게 껄껄 웃었다.

방장에 돌아온 뒤에 지눌이 다시 은밀히 혜심을 불러서 함께 이야기하고 곧 기뻐하여 말하기를, “내 이미 너를 얻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겠다. 너는 마땅히 불법을 펼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고 본원本願을 폐하지 말라.”라고 하였다.(주1)

 

위의 인용문은 마치 홍인이 혜능에게 법을 전하는 모습과도 같이 생생하게 우리의 눈에 아른거린다. 무사자오無師自悟한 지눌이지만 법거량을 통하여 혜심에게 법을 전한 것이며, 1208년의 일이다. 이때 지눌이 혜심에게 수선사의 사주직을 넘겨주려 하였으나, 혜심은 이를 사양하고 지리산으로 몸을 숨긴다. 1210년 지눌이 입적하자 왕명에 의하여 혜심은 수선사 2세 사주로 부임하였고, 이듬해에 지눌의 행장을 갖추어 김군수에게 지눌의 비문을 짓게 한 것이다.

 

무의자 혜심의 생애와 시대적 과제

 

혜심의 속성은 최崔씨이고 이름은 식寔으로 전남 화순 출신이다. 자는 ‘영을永乙’이고, 자호를 ‘무의자無衣子’라 했으며, 시호가 ‘진각국사’이다. 지눌보다 20년 후에 태어난 혜심은 본래 유학자로서 1201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태학에 들어갔다.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조계산 수선사(현 송광사)에서 어머니의 재를 지내고서, 지눌을 은사로 하여 출가하였다. 지눌이 송광사에서 수선사를 이끈 10년의 기간 대부분을 혜심이 함께한 것이다. 혜심에 대하여 이규보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사진 2. 진각국사 혜심의 진영.

 

스님(혜심)의 천성은 깊고 온화하며 크고 넓어 독실하였다. 이미 유교로부터 불교에 이르기까지 내외의 모든 경서에 두루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심지어 불교를 천양闡揚할 때나 저술과 게송 등을 지을 때 그 모두가 크고 힘이 있었으며[恢恢] 백정이 칼을 살과 뼈 사이에서 자유롭게 쓰는 것[游刃有餘]과 같았다. 만약 이와 같지 않았다면 어찌 자취가 경도(개성)를 밟지 않고서 시골 산중에 앉아서 한 나라의 상하 모두가 숭앙함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감탄스럽다. 참으로 선문의 정안正眼이며 육신보살의 화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205년 지눌의 정혜결사는 ‘수선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혜심 대에 이르면 고려불교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무신정권과 거리를 두었던 지눌과 달리 혜심은 최우 정권의 절대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최우가 혜심을 존경하는 마음은 극진했다. 최우는 혜심에게 사찰 운영에 필요한 여러 도구와 다향·약품·차·법복 등을 꾸준히 제공하였다. 비문에는 혜심의 신이함에 대해 “거북이가 계戒를 받고, 두꺼비가 법法을 듣고, 까마귀가 산가지[籌]를 머금고, 황소가 길에 꿇어앉는 등의 일이 있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지눌이 제시한 수행법인 삼문三門, 즉 성적등지문·원돈신해문·간화경절문 가운데 혜심에 이르러 간화 1문만을 강조하였다.”라고 말해지곤 하는데, 이는 지눌과 혜심의 선사상 혹은 선풍에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지눌과 혜심은 서로 시대적 과제가 달랐던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눌에게 부여된 과제가 수선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면, 혜심에게 부여된 과제는 내우외환의 혼란 속에서 고려 불교계 전체를 통솔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진 3. 『조계진각국사어록』.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현재 남아 있는 혜심의 대표적인 저술은 5종이다. 『선문염송禪門拈頌』 30권,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1권,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 1권,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2권, 『금강반야바라밀경찬金剛般若波羅蜜經贊』 1권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선문강요禪門綱要』 1권이 있었으나 현재 유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이러한 저술들은 혜심 당시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와 함께 그에 대한 혜심의 탁월한 대응 능력을 살필 수 있다. 

 

『구자무불성화간병론』을 통한 간화선 수행법 제시 

 

‘구자무불성화간병론’이란 제목을 풀이하면, ‘조주 무자 화두의 병통을 다스리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혜심이 38세 되던 해인 1215년(고종 2)에 지눌의 『원돈성불론』 및 『간화결의론』과 함께 간행한 책으로, ‘무자화두’를 구체적으로 실참實參하는 선수행자를 위한 간화선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지눌의 『간화결의론』이 간화선 수행의 필요성과 장점을 밝히고 있다면, 혜심의 간병론은 ‘무자 화두’를 참구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론적으로 제시한 글이다.

 

혜심에게 있어서 ‘무자 화두’ 참구법은 그가 깨달음을 인가받은 계기이자 수선사의 2세 사주로서 수선사의 선풍을 새롭게 하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간화 십종병’이란 대혜가 제시한 무자 화두를 드는 데 있어서 발생하는 8가지 병통에다 지눌이 전체의 뜻을 파악하여 2가지를 덧붙여서 간화 참구시 발생하는 병통 10가지를 명명한 것이다.

 

사진 4.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사진: 위키백과.

 

화두라는 것은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 스님은 “없다[無].”고 대답하였다. 이 ‘없다’는 한 글자는 바로 저 많은 나쁜 앎과 나쁜 깨달음을 부수는 무기이다. 그러니 ① ‘있다, 없다’로 알려고 하지 말고, ② 어떤 도리로도 알려고 하지 말며, ③ 뜻의 밑뿌리를 향해 생각하거나 헤아리지도 말고, ④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거리는 곳을 향해 숨을 곳을 삼으려고도 하지 말며, ⑤ 말의 길을 향해 살 꾀를 찾지도 말고, ⑥ 일이 없는 갑옷 속에 떠 있지도 말며, ⑦ 화두 드는 곳을 향해 알려고도 하지 말고, ⑧ 문자로 인증引證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12시 중에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이끌고 항상 들되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라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떠나지 않고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목우자는 말한다. 이 법어는 다만 여덟 가지 병만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앞뒤의 말을 검토해 보면 ⑨ ‘진실로 없다는 없음’과 ⑩ ‘미혹으로써 깨닫기를 기다린다’는 두 가지이니, 그러므로 모두 합해 열 가지 병이 되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지눌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 나타난 글이다. ‘간화 십종병’이란 지눌이 당시 이미 수선사의 대중들에게 알려 간화선을 수행하는 지침으로 강조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혜심이 이에 대하여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간화선은 화두 참구를 통하여 우리가 지적인 이해(개념과 논리)를 통하여 앎에 접근하는 방식을 차단하는 데에 수행의 묘미가 있다. 지눌은 대혜가 정립한 간화선의 효능을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최초로 국내에 도입하였다. 1200년(41세) 송광사로 정혜결사의 도량을 옮기고 절을 중창하고 낙성식을 하면서 지눌은 대중들에게 120일간 『대혜어록』을 강의하였다. 

 

사진 5. 진각국사 추모다례제. 사진: 송광사.

 

『간화결의론』의 첫 번째 질문에서 지눌은 ‘간화십종병’을 거론하고 있다. “화엄교학에서 이미 법계法界의 장애가 없는 연기임을 밝혔다. 여기에 의하면, 다시 취하고 버릴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선문에서는 십종병을 가려서[揀] 다시 화두를 참구하는가?”라고 묻고서, “물론 화엄에서 말하는 뜻과 이치는 가장 완전하고 오묘한 것이나 결국은 식정識情에 의해서 듣고 이해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문의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아 들어가는 경절문에서는 불법을 이해하는 언어적인 개념[知解]의 병통이라고 (그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다. 무자 화두는 하나의 불덩어리와 같아 가까이 가면 얼굴을 태워버린다. 그런 까닭에 불법에 관한 지적인 이해[知解]를 둘 곳이 없다. 그래서 (대혜선사는) ‘이 무자는 잘못된 앎과 지적인 이해를 깨뜨리는 무기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혜심의 『구자무불성화간병론』은 4장 분량의 짧은 글로서 조주의 무자 화두를 들고[擧話], 이어 천동정각天童正覺과 오조법연五祖法演(1024~1104) 및 진정극문眞淨克文(1025~1102)의 게송 등을 들어 혜심이 설명을 깃들이고 있다. 다음으로 간화 10종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① ‘있다, 없다’로 알려고 하지 말고[不得作有無]

② 진무의 무로 생각하지 말며[不得作眞無之無卜度]

③ 도리로써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不得作道理會]

④ 뜻의 밑뿌리를 향해 생각하거나 헤아리지도 말며[不得向意根下思量卜度]

⑤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거리는 곳을 향해 캐내려고 하지 말고[不得向眉瞬目處桗根]

⑥ 말의 길을 향해 살 꾀를 찾지도 말며[不得向語路上作活計]

⑦ 일이 없는 갑옷 속에 떠 있지도 말고[不得颺在無事匣裏]

⑧ 화두 드는 곳을 향해 알려고도 하지 말며[不得向擧起處承當]

⑨ 문자로 인증引證하지도 말고[不得向文字引證]

⑩ 미혹으로써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不得將迷待悟]

 

혜심은 이를 다시 유심有心, 무심無心, 언어言語, 적묵寂默의 네 가지로 요약하고, 다시 사의思議와 부사의不思議의 둘로 요약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혜심은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병이 있거나 없거나, 자미滋味가 있거나 없거나, 득력得力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하지 말고 다만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하고 참구에 열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혜심이 이 책을 쓴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수선사의 대중 납자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무자 화두’의 참구시에 나타날 수 있는 병통에 대한 지침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이는 이미 지눌 당시부터 간화선 수행을 지도해 오고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각주>

(주1) 이규보, 「진각국사비명」, 『동국이상국집』 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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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룡
충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전북대 철학과 학부, 석사 졸업, 원광대 박사 졸업. 중국 북경대, 절강대, 연변대 방문학자. 한국선학회장과 보조사상연구원장 역임. 『보조지눌의 사상과 영향』, 『언어, 진실을 전달하는가 왜곡하는가』(공저)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brkim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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