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갈등 해결과 전쟁 방지를 위한 불교적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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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5 년 6 월 [통권 제146호] / / 작성일25-06-04 11:14 / 조회260회 / 댓글0건본문
이 순간에도 세상의 어디에선가는 크고 작은 다툼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반인륜적인 잔학행위와 문명파괴 행위가 끊임없이 자행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불살생계不殺生戒를 강조하는 생명 중심 평화 이미지의 불교가 보일 반응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불교도 종교적 ‘이상’과 세속적 ‘현실’ 사이에서 교학적 균형감각을 갖춘 고유의 입장 표명이 말처럼 쉽지 않은 문제일 것 같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 국가들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무수한 살상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전쟁의 발생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었다.
폭력에 대한 불교의 기본적 인식
마이클 제리슨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불교 국가들은 종교적 반대자들이나 이웃 나라의 불교도들 및 같은 나라 안에서도 자신이 속한 종파 외의 다른 불교 종파와는 공존보다 충돌을 선택했다. 그는 특히 초기불교 경전들이 불교의 원칙과 국가의 주권 사이에서 다소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붓다가 당시 북인도의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의 군주들로부터 교단의 존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정치적, 재정적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종교적 보상으로 불교 교단은 왕과 통치자들에게 전륜성왕(Cakravartin; 보편적 통치자), 담마라자(Dhammarāja; 불교의 가르침을 받드는 군왕) 또는 몽골과 티베트의 경우 달라이 라마(Dalai Lama; 지혜의 바다)와 같은 종교·정치적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통치행위를 정당화해 주는 한편, 불교의 종교적 권력과 국가의 세속적 권력이 양립할 수 있는 상호 유대관계를 구축해 왔다.(주1) 이른바 호국불교(護國佛敎)라는 개념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불교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불교적 가치 추구와 연관성이 있는 전쟁들은 대체로 승가와 권력 사이의 긴밀한 관계나 천년 왕국설의 요소를 포함한 어떤 운동(a movement that contains millenarian elements)의 결과이기도 했다.(주2) 불교도들은 훗날 전륜성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기원전 3세기의 아쇼카(Aśoka) 왕 시대부터 이미 이웃 나라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깝다.
아쇼카 왕은 재위 13년째에 있었던 칼링가(Kalinga) 전투 이후 폭력을 포기하고 붓다의 가르침인 다르마에 의한 자비로운 통치를 대내외에 천명했다고 전해진다.(주3) 그가 인도 전역에 세운 석주와 거기에 새겨진 칙령에는 힘이나 강제에 의한 정복보다는 다르마에 의한 정복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군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이웃 왕국을 여행할 때는 언제나 강력한 군대의 호위를 받고 다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주4)
불교에 귀의한 이후에도 아쇼카 왕은 18,000명 이상의 자이나 교도들을 무참히 죽이는가 하면 다른 잔학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주5) 어쩌면 아쇼카 왕은 불교적 이념과는 별개로 현실적인 통치행위에 있어서는 무력의 사용이 불가피함을 알고 있었던 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제리슨과 다미엔 키온 등은 불교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비폭력적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국가의 목적에 동원된 폭력의 사용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증거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붓다 자신의 맥락 의존적인 입장도 한몫했던 것으로 평가했다. 예컨대, 붓다는 아자타사투(Ajātasattu) 왕이 밧지(Vajjis) 족을 공격하려고 자신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DN.ii.72ff)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는 대신 밧지족 사회의 일곱 가지 긍정적인 특징들을 언급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한 바 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붓다와 고전 자료들은 전쟁을 포함한 폭력 일반의 윤리적 매개변수를 세 가지 정도로 정립하고 나아가 이를 공유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① 폭력을 저지른 사람의 의도(예: 우발적인가, 아니면 의도적인가? 의도적이라면 마음속에 증오와 탐욕은 없었는가?)
② 희생자의 속성(예: 인간인가, 동물인가, 아니면 초자연적인 것인가?)
③ 폭력을 행사하는 자의 지위(예: 그 사람은 왕인가, 군인인가, 아니면 도살업자인가?)(주6)
문제는 이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 의외로 해석의 여지가 넓고 어떤 행위자의 폭력행위를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근거로도 얼마든지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주7) 그러나 이 세 가지 기준은 불교 고유의 사상적 관점을 잘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음을 종합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실천윤리적 기준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갈등 해결과 전쟁 방지를 위한 불교적 해법들
불교의 역사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흔한 이유들로 인해 다른 종교문화권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역사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 다만 불교 안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오히려 불교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수단들을 풍부하게 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 불교는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일반 민중을 교화하는 종교적 효과를 거두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불교는 통치자의 호전적 폭력성을 누그러뜨리고 중국과 같은 거대한 제국이 큰 내부적 갈등 없이 존속하는 데도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윤리학자인 피터 하비는 갈등의 원인에 대한 불교적 분석과 함께 그 해결책도 진지하게 고민한 바 있다.(주8) 그는 풍부한 경전적 사례들을 적절하게 인용하는 한편, 최근의 연구 결과들도 치밀하게 분석하고 폭력의 사용과 관련된 불교의 입장을 다음과 정리했다.
① 첫번째 계율, 즉 모든 유정적 존재를 직접적으로든 다른 사람을 내세워서든 의도적으로 해치거나 살생하지 않겠다는 다짐
② 자비와 연민의 정신 강조
③ ‘정명正命’의 삶은 다른 존재들에게 고통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만큼 직접 살생을 하거나 살상무기를 거래하는 그릇된 생계수단을 피함(주9)
이러한 입장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에서 전쟁과 폭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불교도의 수행이 목표로 삼는 것은 명상 속의 고요한 마음에 뿌리내린 내적인 힘과 통찰력 위에 바탕을 둔 완벽한 비폭력의 마음 상태다. 하지만 자기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려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공격적으로 대할 경우, 평범한 불교도가 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폭력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불교도는 다른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폭력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나 가족 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폭력의 행사에 기꺼이 동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다양한 가치에 집착하고 있고, 때로는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의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붓다의 조용하지만 그러나 힘이 실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승리는 증오를 낳고, 패자는 고통 속에 산다. 고요한 자의 행복한 삶은 승리와 패배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SN.Ⅰ.83;Dhp.201)(주10)
붓다는 아자타사투 왕이 자신의 삼촌이자 붓다의 추종자이기도 한 파세나디(Pasenadi) 왕의 영토를 침범했을 때 이렇게 말하면서 “정복은 패자에게 비극을 낳고, 이러한 비극은 다시 언젠가 정복자를 굴복시키겠다는 욕망과 증오를 키운다.”고 타일렀던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도 이런 붓다의 평화주의적 가르침을 심각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겠다는 인식의 공유를 제안한다. 날이 갈수록 폭력의 일반성과 평범성이 우리들의 일상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하다.
불교적 ‘이상’과 세속적 ‘현실’의 사이에서
전쟁과 폭력이라는 쟁점에 직면했을 때 불교도들은 두 가지 다른 방향의 입장 사이에서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엄격한 비폭력 평화주의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종교적 서원과 함께 불교 국가들도 무력의 사용에 반대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종교를 군사행동의 정당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의 인정 사이에서 도덕적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가령, 정당한 자기 방어에서조차도 폭력의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직관이나 일반적 상식과 분명히 어긋난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불살생계를 수지독송하는 불교도들로서 가능하면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면서 반대자들에게도 자비와 연민을 보여주려고 할 것, 그리고 폭력적인 수단 대신 평화적인 수단에 의한 갈등 해소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 등의 행동지침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편, 평화주의가 반드시 수동성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님을 유념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부정의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화와 갈등의 원인이 폭력적인 사태로 분출되기 전에 불교도가 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다는 점도 항상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주>
(주1) 이 부분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는 Michael Jerryson, “Buddhism, War, And Violence”, in Daniel Cozort, James Mark Shields eds., The Oxford Handbook of Buddhist Ethics(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pp.453∼478을 참조할 것.
(주2) Michael Jerryson(2018), p.455.
(주3) Michael Jerryson(2018), p.466.
(주4) 다미엔 키온 지음, 허남결 옮김, 『불교 응용 윤리학 입문(Buddhist Ethics; A Very Short Introduction)』(서울:한국불교연구원, 2007), pp.105∼106.
(주5) Michael Jerryson(2018), p.466.
(주6) Michael Jerryson(2018), p.459.
(주7) 마이클 제리슨은 이 세 가지 기준을 각각 상좌부 교리와 대승불교 교리 및 금강승(밀교)의 교리에 적용하고,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의 불교윤리적 성격을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불교의 역사는 어떤 경우에도 전쟁과 같은 폭력을 철저하게 부정했다기보다는 역사적 맥락에 따르거나 각각의 사례가 갖는 특수성을 폭넓게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삼국시대와 임진왜란 당시의 승군僧軍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Michael Jerryson(2018), pp.459∼468 참조.
(주8) 피터 하비(Peter Harvey) 저, 허남결 역, 『불교윤리학 입문(An Introduction to Buddhist EthicsFoundations, Values and Issues)』(서울:씨아이알, 2010), pp.440∼468 참조.
(주9) 같은 책, pp.457∼458.
(주10) 같은 책, p.45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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