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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성을 실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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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5 년 6 월 [통권 제146호]  /     /  작성일25-06-04 14:28  /   조회44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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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약동하는 봄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음력 2월 19일은 성철 종정예하의 탄신일입니다. 큰스님께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시고 난 다음 해, 큰스님 탄신일을 맞이하여 자리를 함께한 사형사제 스님들은 “은사스님께서는 생전에 생신상을 마다하시고 평생을 사셨습니다. 그렇다고 스님 떠나시고 난 이제 와서 생신상을 차릴 수는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참선 잘 하그래이’라고 당부하고 떠나신 유훈遺訓에 따라 탄신일을 기해 대중과 함께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을 함으로써 우리의 신심을 보여드리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여 지금까지 ‘성철스님 탄신일 칠일칠야 용맨정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탄신일이 양력으로 3월 18일이어서 3월 11일 입재를 하고 18일 회향을 하였는데, 백련암 감원인 일봉스님이 입승이 되어 45명이 모여서 참선법회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생동하는 봄기운을 제압한 산불

 

참선법회를 마치고 소납은 매년 해 온 ‘성철스님문도회 전국방생법회’(양력 4월 3일, 음력 3월 6일)의 일정이 있어서 지난가을 수술한 무릎 재활운동도 할 겸 3월 20일부터 겁외사劫外寺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한적한 성철공원 일대를 산책하니, 경호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차갑긴 해도 마음도 상쾌하고 걸음걸이도 힘이 들지 않고 봄기운이 몸에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진 1. 4월 아비라기도가 한창인 백련암에 신록은 푸르름으로 화답을 하고 있다.

 

그런데 21일 오후쯤 산청군 시천면에서 큰 산불이 났다는 뉴스가 텔레비젼 화면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뉴스를 접한 전국 각지의 문도 사찰과 불자님들로부터 “겁외사는 산불에 피해가 없습니까?”라는 전화가 귀가 따갑도록 걸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11시 25분경, 이번 산불은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묘소에서 성묘객의 사소한 실화로 일어났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실화로 발생하였으니 금방 진화가 이루어지겠거니 했는데, 겨우내 건조했던 날씨와 강한 바람을 타고 불덩이가 휙휙 날아 산불이 급속히 확산되어 불길을 잡을 수 없다는 긴급한 뉴스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이전에도 강원도에서 산불이 나서 며칠씩 불길이 번져 간다는 뉴스는 더러 들었지만 이번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은 채 시속 40km 속도로 의성→안동→영양→청송→영덕 쪽으로 점점 더 크게 번져 간다는 뉴스는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습니다. 게다가 3월 25일 오후 5시쯤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주요 전각이 전소됐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진 2. 4월 아비라기도에 동참하여 장궤합장을 하고 법신진언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합송하고 있는 보살님들.

 

산청 산불과 의성 쪽 산불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저는 저대로 속이 타들어 갔습니다. “4월 3일이 전국에 있는 성철스님 문도 방생법회 날인데 그때까지 산불이 진화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강박감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마침 3월 28일 오후 5시쯤 의성 산불의 주불이 잡혔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31일 오후에 산청 천왕봉 주불이 확실히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새까맣게 탄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제 겁외사 방생법회를 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잿더미로 변한 고운사에서

 

4월 3일 방생법회를 무사히 마치고 문도스님들이 모아주신 성금으로 산청군에 ‘산청산불피해이재민돕기’ 성금을 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문도스님들이 뜻을 모아 고운사 재건 불사 비용으로 마련해 주신 보시금을 4월 22일 2시에 소납과 원타스님 그리고 백련암 감원 일봉스님과 함께 고운사 주지 등운스님에게 전달해 드렸습니다. 

 

산청군의 산불은 좁은 지역을 돌고 돌아서인지 그나마 피해가 적었던 듯한데, 의성 고운사를 에두르고 있는 기나긴 산줄기는 온통 새까맣게 타서 산등성이가 길게 길게 이어져 있으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고운사 경내를 둘러보니, 산과의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대웅전과 템플스테이 건물은 건재해서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물로 지정되어 고운사를 대표하던 가운루와 우화루와 종각이 모두 불에 타 버려서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잿더미로 변해 버린 전각 앞에서 사방으로 붉은 불길이 고운사 경내를 휘감아 돌았을 때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1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해 온 고운사가 화마를 피해 주요 유형무형문화유산을 피신시키고 스님들도 서둘러 대피를 하고, 마치 용광로처럼 치솟는 뜨거운 불길 속에 타들어 가는 전각들을 보면서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을까를 상상하니 숨이 저절로 턱 막혀 왔습니다. 소납은 무엇보다 그 뜨겁고 매캐한 불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삶의 터전이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분들을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지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포와 두려움, 참혹함은 상상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진 3. 고운사 산불피해 복원 불사 성금을 주지 등운스님에게 전달하고 있는 필자와 원타스님(왼쪽).

 

이번 산불은 누군가의 사소한 부주의로 시작해서 인간과 자연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겨울 가뭄이 지속되면서 더욱 피해가 커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자연재해에 대해서도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은 듯합니다.

 

외통수길에 길을 만들다 

 

지난 4월 26일은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연등회가 열린 날입니다. 소납은 1999년 1월 초에 제29대 대한불교조계종 고산 총무원장님의 은혜로 총무부장의 소임을 맡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총무부장의 여러 책임 중 첫 번째 임무는 무엇보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안전하게 잘 치르는 것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예전에 여의도에서 열리는 봉축행사에 몇 번 참가하면서 느낀 점도 있고 해서 담당자들과 모여 이런저런 의논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진 4. 성철스님 친필 경봉 큰스님 조사.

 

회의를 주재하면서 소납은 1993년 11월에 열반에 드신 성철 종정예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성철 종정예하는 평소에는 백련암 문을 닫아걸고 누구든지 3천배를 해야 만나주시는 엄격한 삶을 살고 가신 어른이십니다. 추상 같은 그 위엄에 누구든지 가까이할 수도 없었던 분이셨기에 큰스님을 시봉하는 시자로서는 큰스님을 찾아오는 모든 분들을 따뜻하게 모시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항상 죄송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성철 종정예하보다 10여 년 앞서 통도사 경봉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을 때, 큰스님께서 내주신 조사弔詞를 들고 영결식에 참석하고서 경봉 큰스님이 머무셨던 삼소굴에서 다비장까지 구름처럼 밀리고 밀려오는 문상객들을 바라보면서 ‘자비롭다고 널리널리 소문이 나신 연유가 이런 거로구나!’ 하고 감탄을 마지않았습니다. 그리고 거화를 하고 난 뒤 몇 시간이 흐른 뒤에 소나기가 쏟아져 가뭄으로 바짝 마른 들녘에 숨통이 트였다는 뒷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소납은 속으로 ‘우리 스님은 경봉 큰스님처럼 자비를 세상에 보여주지 않으셨으니 이런 일은 없겠지’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막상 큰스님께서 열반하시고 나니 그 모든 일이 삽시간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특히 다비식 당일의 일이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해인사 다비장은 해인사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고, 외통수 산길을 300m쯤 올라가야 합니다. 일방통행인 그 길로 수많은 인파가 올라가고 내려올 일을 생각하니 아뜩하기만 했습니다. 소납은 장의 진행 위원들과 의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오실지는 모르지만 이 외길로는 안전을 책임질 수 없으니, 저 개울가를 따라 길을 내고 마지막에는 큰 징검다리를 놓아 개울을 건너게 합시다. 그렇게 하면 올라오고 내려가는 길이 서로 부딪치지 않아서 안전하게 다비식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영결식 당일, 이슬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퇴설당에서 운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해인사 마당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다비장으로 향하는데, 언제 어디서 오셨는지 물결치는 만장을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많은 인파가 물 흐르듯 다비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좁은 비탈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던 행렬은 다비장에 마련된 연화대 꽃봉우리 주변으로 사람 산을 만들고, 거화와 함께 울려퍼지던 ‘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는 큰스님과 함께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가 닿는 듯하였습니다. 정말 인산인해의 장관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내려오는 길을 생각해 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몇 해 전 이태원 압사 사고를 보면서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릅니다. 거화를 하고 두어 시간이 흐르고 연화대에서 붉은 불기둥이 솟아오르니 모인 군중들이 한마음이 되어 떠나갈 듯 외치던 염불소리는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합니다. 

 

다양성과 포용의 정신이 빛나는 연등회

 

소납은 잠시 성철 종정예하의 다비식 회상에 젖어서 그때의 많은 군중들이 빚어낸 장엄함의 감격스러움을 얘기하면서 연등회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종로통에 10만 명의 신도님들을 좌우에 세워두고 석가모니불을 합장하면서 연등축제를 진행하면 바로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한 번 노력해 봅시다.”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부장스님, 우리도 연도에 신도님들이 많이 나오셔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큰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들 자기 절의 일이 바빠서 나오지 못한다 하니 저희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라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해 왔습니다.

 

제가 부임한 첫해에 그렇게 바랐지만 연도에는 신도님들이 한 분도 안 계시고 종로 3가 단성사와 피카디리 앞길에 극장 구경 나온 사람들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봉은사에서 처음으로 T자 등을 들고 나온 것이 대환영을 받았고, 그로 인해 연등 행렬이 더 풍성하고 밝게 빛났던 일입니다. 저는 그 후로 매년 연등제 때마다 나오는 T자등을 보면서 제가 총무부장 소임을 맡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봉은사 주지스님과 신도님들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 5. 겁외사 부처님오신날 성철 대종사 동상 주위를 밝힌 연등.

 

올해는 부산 고심정사에 머물며 저녁 7시부터 9시 30분까지 불교텔레비젼(BTN)과 불교방송(BBS)에서 진행하는 연등회 중계를 번갈아 보면서 흐뭇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옛날보다 각 종단에서 더욱 힘을 쏟아 다양한 모양의 연등 불빛이 어둠을 밝혔고, 행렬도 더욱 장엄하게 빛이 났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한국에 와 있는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등 동남아 각국의 불자들이 등만 들고나온 게 아니라 자국의 특색 있는 장엄물을 들고 행렬에 참가하여 연등 행렬을 더욱 힘차고 밝게 만들어 주어서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등회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약 1200년간 이어져 내려온 불교 전통문화 행사입니다. 2012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으며, 2020년에는 그 역사성과 특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당시 유네스코에서는 ‘우리 사회의 경계를 허문 연등회의 포용성과 종교의 벽을 허문 다양성’을 등재 가치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올해 연등회 중계방송을 보면서 소납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철 종정예하께서는 1986년 부처님오신날 다소 충격적인 법어를 내리셨습니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눈을 떠도 부처님, 눈을 감아도 부처님…, 일체가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일체이니 모두가 평등하며 낱낱이 장엄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해 주고 각각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배려심과 존중감이 있을 때 사회도 안정되고 수행도 더욱 힘이 생긴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로 보고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던 큰스님의 말씀이 더욱 그리운 오늘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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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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