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조동종 지방 교화의 반석 메이호 소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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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5 년 7 월 [통권 제147호] / / 작성일25-07-05 11:01 / 조회11회 / 댓글0건본문
일본선 이야기 19
조동종 최대파인 총지사파總持寺派의 파조派祖인 케이잔 조킨의 4철 중 한 명인 메이호 소테츠[明峰素哲, 1277∼1350]는 가산 조세키[峨山紹碩]와 더불어 이감로문二甘露門으로 부른다. 두 사람은 초기교단에 있어 혁혁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임제종이 교토와 가마쿠라를 무대로 5산10찰을 독차지하면서 교선을 넓혀간 것에 반해 조동종은 향촌을 발판으로 전국화의 길을 걸었다. 그 도약의 핵심에는 철저한 수행과 인재 양성을 통한 내실에 있었다.

케이잔이 만년에 개창한 이시카와현 노토[能登]의 총지사総持寺를 거점으로 조직적 운영을 한 가산파가 메이호파를 압도하여 도겐, 케이잔을 이어 조동종 3대 조사로 위치 지어지는 결과를 낳았지만 메이호파는 후대에 다시 부활한다. 근세에 이르러 만잔 도하쿠[卍山道白], 도쿠오 료코[德翁良高], 자쿠안 도코[寂庵道光] 등 뛰어난 교학자를 배출하며 근대 조동종을 견인한다. 메이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어록이 소실되고, 가나문[仮名文, 표음문자인 가나로 쓰여진 것]의 법어만이 존재해서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는 불문명하다.
철저한 수행 관문
메이호가 어릴 때, 두 차례에 걸친 몽고의 일본 침략이 있었다. 세상은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태풍의 도움으로 몽고는 퇴각했다. 그는 사바의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히에이산의 천태종에 출가했다. 그곳에서 지관과 태밀을 공부했으며, 17세에는 대승의 원돈보살계를 받았다. 그러나 천태 관법에 한계를 느끼고, 실천수행을 위해 천태종을 떠나 선문에 입참한다. 에사이가 창건한 건인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비로소 선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송원파의 난계도륭에 의한 선풍이 유행하던 때였다. 본격적인 송조선宋朝禪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난계를 사사한 무인 엔판[無隱圓範] 문하에서 수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1294년 조동종의 기카이[義介]가 개산조인 대승사大乘寺의 케이잔 문하에 입참했다.

케이잔이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조젠[常禪]입니다.”라고 답했다. “나를 대하는 자 누구인가?”라고 묻자 침묵했다. 케이잔은 메이호가 법기임을 알아보고 바로 시자로 삼았다. 법명을 소테츠[素哲]로 바꾸어 주었다. 8년 동안 시좌로 있으면서 “테츠시자!”라고 부르면 “예!”라고 대답하는 순간 틈을 주지 않고,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밀어붙이듯 물었다. 마침내 케이잔의 지도로 24세 때인 1301년 심신탈락의 경험을 하게 된다.
하루는 케이잔이 “한 사람이 능히 만물을 변작變作한다. 너는 또한 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메이호는 “안 지 오래되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피부가 완전히 탈락하여 단지 일진실만이 있다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본래부터 탈락할 것 없는데 무슨 진실이 있겠습니까?”라고 답하자, 케이잔은 “탈락, 탈락, 너는 향림원香林遠 시자와 동철同轍이다. 나의 시자가 된 것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일생 참학의 대사가 끝났다.”며 인가했다.(『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

피부 탈락은 『대반열반경』 35권에 나온다. 한 비구가 세존에게 마을 앞 사라나무숲에 백 년 묵은 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숲 주인이 물을 주면서 철을 따라 가꾸었는데, “그 나무가 오래되어서 껍질과 가지와 잎은 다 떨어지고 굳은 고갱이만 남아 있습니다[皮膚枝葉悉皆脫落 唯在眞實]. 여래께서도 그와 같아서 낡은 것은 모두 제하여 없어지고, 온갖 진실한 법만 남았습니다.”라고 하며, 출가 수도하기를 원한다. 마침내 그 출가자는 번뇌가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한다. 피부나 지엽은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듯이 모든 분별 망상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진여만이 남아 있게 된다. 향림원은 운문문언을 18년 동안 모시고 법을 이은 향림징원香林澄遠을 말한다. 동철은 오랜 기간 같은 수행의 궤적을 그리며 마침내 향림처럼 불도를 성취해 냈다는 것이다.
사자상승師資相承
바로 대승사 총림의 전좌를 맡겼지만 얼마 후 대승사를 떠나 선지식들을 만나러 동서로 역방한다. 교토와 가마쿠라의 선종 사찰에서 임제종과 조동종의 승려들은 물론 원나라로부터 온 중국 승들과도 대면했다. 당시 임제종 조원파의 일산일녕과 조동종 굉지파의 동명혜일이 활동하고 있어 이들과도 조우했을 것으로 본다. 다시 교토의 건인사로 돌아가 에사이가 묻힌 흥선호국원의 탑주塔主(일종의 주지)가 되었다.

1323년대 무렵에는 노토의 동곡산洞谷山 영광사永光寺로 옮긴 케이잔 문하로 돌아온다. 이때 상량 문답이 오갔다. “학인이 밀실에 들어갈 때는 언제인가?”, “이전에 방외에 처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은신隱身은 아는가?”, “뛰어나도 의지할 바 없습니다.” 불조의 대의를 상승한 자의 자세에 대해 세속을 초월한 경지에도 머물지 않는다고 한다. 은신 즉, 불법에도 걸리지 않음을 아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뛰어난 것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경식구민境識俱泯의 경지에서 진리가 현전하는 상태를 점검하는 법거량을 마치고 수좌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하안거 중 케이잔은 입실한 메이호에게 물었다. “제성諸聖도 흠모하지 않고, 나의 영靈도 중히 여기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야광夜光에 흰 것도 밟지 않아야 합니다. 돌이 아니면 즉 이는 물입니다.”, “청원靑原이 양발을 내린다. 또한 어떤가?” 메이호는 즉시 예배했다. 케이잔은 “옳다, 옳다.”라고 했다. 케이잔은 마침내 도겐으로부터 전수된 가사를 벗어 메이호에게 건넸다. 그리고 “에이헤이[永平]의 부법付法, 전의傳依의 믿음, 적적嫡嫡한 사자師資, 면수面授해 왔구나.”라고 했다.
이에 대해 메이호는 “유령庾嶺, 누가 말했습니까, 들어 올리지 않았다고. 입음을 얻어 화문化門을 열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청원의 양발은 『경덕전등록』 5권에서 제자인 석두희천이 돌부자鈯斧子(무딘 도끼, 즉 개산의 인가)를 요구하였는데, 청원이 수일족垂一足(한 쪽 발을 내밀다)을 한 것처럼 한 회상을 펼 것을 인가한 것이다. 케이잔은 메이호가 면밀한 수행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독탈무의獨脫無依의 경지를 인증한 것이다. 가사 전수 후의 응대는 대유령에서 혜능의 제자가 된 혜명을 연상하게 한다. 메이호는 불조의 가르침을 몸에 두르고 중생 제도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동의 법맥을 잇다
다음 해인 1324년 케이잔의 제자인 다이치[大智]가 오랜 기간 원나라에서 수행한 뒤에 입국했다. 그는 『조산중편5위군신』, 『투자청화상어록』, 『진헐료화상겁외록』 등 조동종의 전적들을 가지고 왔다. 이는 일본 조동종의 사상적 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했다. 같은 해에 케이잔은 총지사総持寺의 2대 주지에 가산 조세키를 임명했다. 또한 영광사를 번영시킬 4문인으로 메이호와 가산을 포함하여 무가이 치코[無涯智洪], 고안 시칸[壺庵至簡]을 정했다. 이들이 바로 케이잔 문하의 4철哲이다. 물론 메이호는 영광사 2대 주지가 되었다.
케이잔은 산내의 오로봉전등원五老峰傳燈院에 머물며 메이호에게 부촉의 게송을 내렸다. “영산의 일회一會, 자리 아직도 따뜻하구나. 메이호에게 분여分與하여 영원히 흥번興繁하도다. 동곡洞谷의 청송, 녹음은 더욱더 짙어지고, 운거雲居의 현기懸記, 물은 가득 차 굽이쳐 흐르는구나.” 석존의 마하가섭 분반좌가 메이호에게 계승되어 불법이 흥륭할 것을 기원한 것이다. 운거의 현기는 동산양개가 운거도응에게 “나의 도, 너에 의해 유전무궁하리라.”라고 전했다는 기록을 말한다. 케이잔은 “철자哲子는 노마老馬가 길을 가는 것 같고, 석자碩子는 기린이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것 같도다.”라고 메이호와 가산을 칭찬했다.

그렇다면 메이호의 인재 육성 방식은 어떠한 것인가. 전적 부족으로 일관된 사상 파악은 어렵지만 임제의현의 4빈주에 관한 법문을 설한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한 승려가 “무엇이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인가?”라고 물었다. “해는 서쪽 고개로 떨어지고, 세상은 어두워진다.”라고 했다.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은 “오후에 그림자는 없고, 만 리가 한 가지 철鐵이로다.”, 인경량구탈人境兩俱奪은 “이二는 일一로 인해 있으며, 일 또한 지키지 말라.”,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은 “태평에 상像은 없으며, 처처에 꽃이 핀다.”라고 응대했다. (『광선개산노화상행업기光禪開山老和尙行業記』)
주관과 객관을 배대하는 이 사료간이 조동의 선법에도 응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인경구불탈은 현성공안을 말하는 것 같다. 메이호에게는 정편오위가正偏五位歌도 있는데, 부르기 쉬운 가사歌詞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동산의 정편오위正偏五位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본질과 현상, 이사事理의 관계가 상즉상입하는 관계로써 깨달음의 경지를 논하고 있다.
화도化度의 삶
1327년 광선사光禪寺의 개산조가 되었다. 토야마현의 해륙 교통의 요지로써 대중 포교에 적합한 곳이다. 이로써 토야마현의 3좌 도량이 완비되었다. 기카이가 개산조인 대승사, 케이잔이 개산조인 영광사와 더불어 지방 교화의 핵심지가 되었다. 메이호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가의 안위를 기원하는 영광사와 광선사는 칙원도량, 즉 관사가 되었다. 고다이고왕이 메이호를 왕실에 초청했지만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영광사 주지 10년 뒤에는 대중들의 요망에 의해 대승사의 주지가 되었다. 영광사는 케이잔 문하의 전체를 운영하는 중심 사찰이 되었다. 이로써 케이잔 문하의 사찰을 관할하는 승록으로서 동분서주하게 되었다. 영광사는 4철의 문하가 돌아가며 주지를 맡는 윤주제를 정착시킴으로써 훗날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메이호의 교화력은 지역에 미쳐 민중들을 크게 감화시켰다. 신인화도神人化度 설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메이호의 시중示衆을 들은 자들은 흔쾌히 귀의했다. 어느 날 왕과 같은 행동을 하는 자가 나타나 그에게 경례하고 스스로 백산신白山神이라고 했다. 불조정전의 보살계를 받고자 한다고 했다. 불계를 주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산이 부드럽고 나무도 많아 좋지만 물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가 사라지고 다음 날, 대승사의 남쪽에 맑은 물이 솟는 연못이 나타났다고 한다.(『속부상선림승보전續扶桑禪林僧寶傳』) 이는 그 지역의 백산신앙을 흡수하여 산문수호의 가람신으로 삼은 것을 의미한다.
민중 속에 조동의 법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메이호는 변재천辨財天을 현재의 히미시[氷見市] 앞바다에 봉안했다. 변재천은 인도의 음악을 주재하는 초복招福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병고와 재난, 악신을 물리치거나 상업의 번영을 도와주는 신으로 인기가 있었다. 대중교화의 방편으로 활용한 것이다.
메이호는 열반이 가까워지자 유게를 남겼다. “충만한 천지를 무애자재하게 활보하며, 통하지 않는 곳 없이 지극지묘한 법을 드러냈도다.” [普天匝地 八達疏通 七穿八穴 智不到中.] 『선림아송집禪林雅頌集』
지혜의 분별을 뛰어넘은 경지에서 이 세상을 활보했지만 흔적마저 남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근세에 만잔 도하쿠가 종통복고운동을 일으켜 그 명성이 전국에 이르렀으며, 메이호파의 중흥을 이룬다. 철통같은 수행이 천지를 비옥하게 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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