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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사찰음식, 축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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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5 년 7 월 [통권 제147호]  /     /  작성일25-07-05 11:58  /   조회3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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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이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불교 전래 이후 꾸준히 발전해 오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과 불교의 불상생 원칙과 생명존중, 절제의 철학적 가치를 음식으로 구현하여 고유한 음식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또한 발효식품을 중심으로 하는 조리 방식과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하고, 사찰이 위치한 지역의 향토성을 반영하는 등 타 국가의 사찰음식과 차별화된다는 점도 높이 평가 받았습니다.

 

사진 1. 사찰음식대축제에 출품된 여름 국수공양.

 

사찰음식은 현재에도 사찰 내에서 왕성히 전승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조리법을 유지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그 영역을 확장해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가무형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사찰음식은 사찰마다 다양한 조리법이 이어져 오고 있고, 수행자를 중심으로 사찰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집단 전승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되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열린 제4회 사찰음식 대축제

 

사찰음식 대축제는 2015년 이후 열리지 못하다가 10년 만에 재개된 행사입니다. 10년 만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사찰음식은 국가무형유산이라는 타이틀을 안고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마치 사찰음식의 종합선물 세트를 받는 것처럼 신심 나는 잔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산문 밖으로 나온 사찰음식을 오랜 세월 연구하고 보급하고 계시는 명장 스님들과 그 뒤를 이을 장인 스님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불교의 식문화에 울림을 받고 일부러 찾아 나선 젊은 세대들의 참여가 많았다는 점도 특이할 만했습니다.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을 통해 늘 언급하고 있는 메시지로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사찰음식은 단지 음식으로써만이 아닌, 그 안에 담겨 있는 부처님의 말씀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진 2. 사찰음식대축제 현장.

 

발우공양鉢盂供養

 

발우공양은 ‘발우’라고 하는 그릇을 사용하는 불가의 식사법을 말합니다. 발우공양은 평등 공양입니다. 모든 대중이 차별 없이 나누고, 함께 하는 평등 공양입니다. 발우공양은 청정한 공양입니다. 개인 발우에 먹을 만큼의 양을 덜어서 먹고 식사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발우는 스스로 관리하고 청결을 유지합니다. 발우공양은 비움의 공양입니다. 청빈한 삶을 살아가는 데 울림을 주는 공양입니다. 자신이 먹을 만큼만 덜어서 공양하고, 고춧가루 하나도 남기지 않습니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수행자의 마음처럼 깨끗하고 맑은 비움의 공양입니다.

 

사진 3. 발우공양 모습을 재현한 닥종이 인형.

 

발우공양은 생명의 공양입니다. 자연과 하나 되어 서로를 배려하는 공양입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생태주의 사상의 근본입니다. 발우공양은 함께 하는 공양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공양입니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역할을 분담하고 소임을 정하여 대중이 함께하는 나눔의 공양입니다. 발우공양은 복덕의 공양입니다.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수많은 자연에 감사합니다. 온 우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양을 받고 바르게 살고자 원을 세웁니다. 발우공양에 담긴 깊은 뜻과 발우공양 의식을 통해 불가의 우수한 식문화가 세상에 널리 전해지면서 그 선한 영향력은 사찰음식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의 힘이 되었고 더 나아가 바람직한 삶의 지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찰음식 명장 스님과 장인 스님

 

이번 사찰음식 대축제의 꽃은 여섯 분의 사찰음식 명장 스님들과 열여덟 분의 사찰음식 장인 스님들께서 전해 주시는 음식 이야기였습니다. 명장 스님들께서는 강연과 퍼포먼스를 통해 사찰음식의 정신을 전해 주셨고, 장인 스님들께서는 각자의 인연에 맞게 사찰음식을 소개하고 전시해 주셨습니다. 명장 스님이 사찰음식 1세대 스님이라면 장인 스님은 차세대로서 사찰음식을 이끌어 가고 있는 2세대 스님이라고 표현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사진 4. 발효로 완성되는 봉녕사의 사찰음식.

 

현재 활발한 활동으로 사찰음식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주력하고 계시는 스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불가의 내림음식은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스미게 된 음식문화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장인 스님들께서 전시한 음식을 소개한 글을 보니, 행자 시절에 큰스님께 배운 음식, 은사 스님께 배운 음식, 학인 시절 공양주 소임을 맡으며 배운 음식 등 다양한 인연으로 이어진 스토리를 풀어내 주셨습니다. 

 

법해스님의 아침 발우공양

진관사에서는 매일 일상의례 공양인 발우공양을 매우 중요시 한다. 대방에서 매일 아침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며 부처님의 법의 말씀을 받들고 대중의 소통과 화합으로 수행자의 본분을 되새긴다. 대중이 함께 발우공양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불은상기게’와 ‘오관게’의 내용을 마음속 깊이 담는다. 

 

사진 5. 법해스님의 발우공양.

 

법송스님의 가지양념구이와 감자양념구이

은사스님께서 해주셨던 수제비와 채소 양념구이가 생각난다. 여름철에는 가지, 오이, 감장, 풋고추 등 다양한 채소로 상좌들을 위한 밥상을 차려주셨다. 제자들을 지극히 사랑하셨던 은사스님은 당신이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상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셨던 자상한 어른이다. 은사스님이 상좌들에게 만들어 주셨던 음식을 떠올리며 사찰음식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6. 법송스님의 가지양념구이.

 

경운스님의 표고버섯탕탕이찌개

출가 본사인 언양 석남사의 대표 내림음식이다. 버섯을 물에 불려 물기를 짜고 망치로 두들겨 들기름에 오랜 시간 볶은 다음 제철 채소를 넣어 만든 보양식이다. 표고버섯 탕탕이 찌개를 만드는 날엔 행자를 비롯해 사부대중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보양식으로 먹었던 음식이다. 오관게의 한 대목인 ‘정사양약위료형고正思良藥爲療形枯 : 밥 먹는 것을 약으로 여겨 몸의 여윔을 방지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 위성도업응수차식爲成道業應受此食 :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하여 공양을 받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사진 7. 경운스님의 표고버섯탕탕이찌개.

 

혜범스님의 들기름된장김치찜

운문사 강원에서 치문을 공부할 때 공양상에 올라왔던 음식이다. 대중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후원에 있는 커다란 가마솥에 포기김치를 그대로 넣고 된장을 풀어 지글지글 찌고 있었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대중의 건강을 위해 소임을 사시던 선배 스님들과 어른 스님들이 그리워지는 추억의 음식이다.

 

사진 8. 혜범스님의 들기름된장김치찜.

 

지견스님의 마순두부찜 / 유부오이쌈 / 두부버섯냉채

위가 좋지 않아서 자극적인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노스님을 위해 만든 음식이다. 마와 순두부를 이용하여 속이 편안한 음식을 대접한다. 세상의 어떤 말로도 다하지 못하는 은사 스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치유의 음식을 올린다.

 

사진 9. 지견스님의 유부오이쌈

 

중제스님의 영양전

일명 사찰식 피자라고 할 수 있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 앞뒤로 바삭하게 부친 뒤 각종 견과류와 채소, 과일 등을 올려내는 음식이다. 해인사 산내 암자로 출가한 중제스님은 성철 큰스님과 불필스님과의 인연으로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올린 적이 있다. 사찰에서 매일 먹는 일상식이 아닌 특별식으로 음식을 차렸고, 그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음식이 영양전, 이른바 사찰식 피자다.

 

사진 10. 중제스님의 영양전.

 

성견스님의 오이무채소박이

행자 시절 당시 노스님은 늘 따뜻한 눈빛과 자상한 말투로 대해 주셨다. 입맛이 없는 여름이면 시원한 물에 밥을 말고 새콤달콤한 오이소박이를 올려 드시는 걸 좋아하셨다. 노스님은 시간이 갈수록 오이소박이를 드시지 못했다. 옛날 노인들이 치아가 좋지 않을 때 무를 잘게 썰어 살짝 데친 다음 깍두기 김치를 담근 것을 송송이라 부른다. 좋아하시던 오이소박이를 편하게 드실 수 있게 만든 음식이 바로 오이무채소박이이다.

 

사진 11. 전통 공양간 모습.

 

여거스님의 절비빔밥

부처님오신날 절에 가면 주로 먹는 음식이다. 비빔밥은 사부대중의 화합을 의미한다. 또한 모두가 어우러져 균형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처의 마음이다. 승과 속이 다르지 않고 나와 네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며 모두가 어우러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음식이기도 하다. 

 

사진 12. 여거스님의 절비빔밥.

 

유화스님의 늙은호박배추물김치

어릴적 노스님과의 추억이 깃든 음식이다. 추운 겨울에 대중이 함께 먹을 김치를 담그려면 며칠 동안 추위와 씨름해야 했다. 너무 고된 수행의 길이었지만 지금은 노스님께 배운 김치 비법이 가장 큰 자산이다. 김장 때 양념 묻은 대야를 호박 삶은 물로 헹궈서 남은 배추를 넣고 만든 김치이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음을 노스님은 생활 속에서 일깨워 주셨다. 

 

사진 13. 유화스님의 늙은호박배추물김치.

 

혜성스님의 보리개떡장

먹는 것에 탐착하지 않고 음식을 약으로 인식하는 것이 불교적 입장이다. 보리를 도정하고 남은 보리겨를 버리지 않고 곱게 반죽해 개떡을 만든 뒤 왕겨를 덮어 은근한 불에 구워낸 후 여러 차례 발효과정을 거쳐 만든 음식이 보리개떡장이다. 은사스님은 인연이 성숙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수행이라 말씀하시며 발효음식을 전수해 주셨다.

 

사진 14. 혜성스님의 보리개떡장.

 

이제 사찰음식은 종교의 벽을 넘어 모두의 음식으로 도약했고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사찰음식이라고 하는 장르는 이제 음식의 한 챕터가 되었고, 한국전통음식의 기반입니다. 조리학과가 있는 대학에서는 사찰음식 과목을 전공필수 과목으로 선정하여 교육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인 르꼬르동블루에서도 수업에 사찰음식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득 사찰음식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다양한 갈래로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가 생각합니다. 단지 먹는 행위에서만이 아닌 그 너머에 무엇이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팔만대장경 속에 꽃피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우리 삶 속에 꽃피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종교를 떠난 큰 틀 안에서 활발하게 펼쳐 나가는 모습을 보며 ‘진리는 이렇게 통하는 것이구나’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찰음식이 국가무형유산을 넘어 유네스코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가의 라이프 스타일을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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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궁중음식문화재단이 지정한 한식예술장인 제28호 사찰음식 찬품장이다.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국임업진흥원,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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