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원효 혜능 성철에게 묻고 듣다 ]
마음 돈오가 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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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1:05 / 조회15회 / 댓글0건본문
인간의 인지능력이 보여주는 가장 현저한 특징은 ‘사유 활동’이다. 차이를 기호(언어)에 담아 분류한 후, 기호로 분류된 차이들을 비교하고 선별하는 기준을 만들며, 선별 기준을 정당화시키는 논리와 이론을 마련하고, 논리·이론을 갖춘 견해와 관점을 수립하며, 그 견해와 관점으로 현상의 법칙적 질서를 파악하는 이해를 펼치는 것.–이 모든 것이 사유 활동에 속한다. 이 사유 활동의 중심축은 단연 ‘이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유 활동의 내용은 이해를 향하고, 이해는 모든 사유 활동의 동기와 방향 및 내용을 규정한다. 이해가 주도하는 사유 작용을 ‘이해 사유’라 불러보자.
사유의 두 유형, 이해 사유와 마음 사유
그런데 사유 작용이 오로지 이해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사유 내용은 기존 이해에 갇힐 수밖에 없다. 이해가 이해를 바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해가 사유를 장악하는 것이라면, 사유 활동과 내용은 기존의 이해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현실의 사유는 바뀐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작용하며, 그 내용도 끊임없이 바뀐다. 기존의 이해에 따라 재생산되는 내용도 많지만, 바뀐 이해, 새로운 이해가 사유 활동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해는 바뀌고, 그에 따라 사유 내용도 바뀐다. 현실의 사유는 과거의 이해와 수정된 이해, 새로운 이해가 섞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내용으로 바뀐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사유 안에서 이해가 바뀐다>라는 점이다. 이해가 바뀌는 데 영향을 주는 조건들을 반영하면서, 사유 안에서 이해가 바뀐다. 이 과정에서는 새로운 이해를 선택하는 ‘마음의 작용’이 결정적이다. 마음의 선택이 없으면, 이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여러 조건이 결실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해를 바꾸거나 새로 수립하는 사유 작용을 ‘마음 사유’라고 불러보자.
이렇게 보면 인간의 사유에는 두 가지 다른 유형이 섞여 있다. 하나는, ‘이해로 수렴되고 또 이해로부터 규정되는 사유’이다. ‘이해 사유’가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와 현재의 이해에 갇히지 않고 이해들을 수정·보완·대체하는 사유이다. ‘마음 사유’가 그것이다. 사유의 내용은, 이해 사유와 마음 사유가 상호 작용하면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마음 사유는 ‘이해를 바꾸는 사유’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기존 이해와 무관할 수 없다. 이해에 대한 마음 사유의 그 어떤 대응과 처리도 기존의 이해에 기대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음 사유가 새롭게 수립하는 ‘좋은 이해’, ‘맞는 이해’는, 기존의 ‘좋지 않은 이해’, ‘틀린 이해’를 조건 삼아 발생한다. 틀린 이해가 없으면 맞는 이해가 성립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는 ‘이해를 바꾸는 마음 사유’와 ‘기존 이해에 따라 이루어지는 이해 사유’는 무관한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양자는 언제나 서로 맞물려 있다. 연기적緣起的 상호의존 관계의 전형이다.
‘이해를 바꾸는 마음 사유’와 ‘기존 이해에 따라 이루어지는 이해 사유’는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성립하지 못한다. 한쪽이 없으면 사유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해 사유의 의미 규정력’이 없다면 사유의 그릇이 비게 되고, ‘마음 사유의 이해 구성력’이 없다면 사유 그릇의 내용물이 썩는다. 이해 사유와 마음 사유는, 원효의 말을 빌리면, ‘같지 않으면서도 별개의 것이 아닌[不一而不二]’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해 사유와 마음 사유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不一不異].> 인간의 사유는, ‘기존 이해에 따라 이루어지는 이해 사유’와 ‘이해를 바꾸는 마음 사유’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관계’로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알음알이[識] 현상이다.
마음의 재인지再認知 면모
‘마음 사유의 이해 구성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이해를 수립하거나 유지·수정·변화시키는 마음의 역할은 무엇 때문에 가능할까? 갑은 매사에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다. 인간의 좋은 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나쁜 점은 족집게처럼 짚어 비난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인간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자신을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물로 달려들어 구해주는 일을 겪고 나서의 변화다. 인간을 보는 관점과 이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유를 이끌어 가던 인간관을 반성하고 수정한다.
갑이 인간관을 바꾼 것은, 인간에 대한 냉소적 이해를 ‘대상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눈을 볼 수 없듯이, 기존 이해 안에 갇혀 있다면 성찰과 평가가 불가능하다. 눈이 눈을 관찰할 수는 없다. 눈을 거울에 비추어 대상화해야 눈에 대한 관찰이 가능하고 눈 상태를 판단하여 눈병을 치료할 수 있다. 이해를 새로 수립하거나 수정하는 마음 사유도 마찬가지다. 마음 사유는, 거울을 보는 자리처럼, 이해나 경험을 대상화하여 관찰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 또한 마음 사유는 기존 이해나 경험에 달라붙어 밀착하는 자리에 설 수도 있다. 움켜쥐듯 달라붙는 마음 사유는 기존의 이해를 바꾸지 못한다.

마음은, ‘생명에서 작동하는 원초적 창발력이 인간 존재에서 나타나는 양상’이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마음이라는 원초적 창발력’은, ‘인지하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삼아 재인지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말할 때, 〈말한다〉라는 현상에 대한 인간의 인지는 두 유형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저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말할까?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하나?〉 등을 생각하면서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말하는 행위를 지속해 가기 위한 일련의 생각을 이어가면서, 마음 시선이 오직 말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말하고 있는 사태’를 ‘알면서 말하는 것’이다. 일련의 생각을 일으키면서 말하는 동시에, <말하고 있다>라는 현상 자체를 ‘알면서’ 말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는 눈처럼, 마음 시선이 ‘말하는 사태를 보는 자리’에 선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아는 마음 국면’을 수립하여 말한다. 좋은 느낌을 경험할 때는 〈좋은 느낌이구나〉라는 것을, 걸을 때는 〈걷고 있구나〉라는 것을 ‘대상처럼 보는 마음 국면’을 수립하여 느끼고 걸을 수 있다. 그 어떤 인지적 경험일지라도, 마치 괄호 안에 넣고 보듯, ‘대상으로 삼아 아는 마음자리’를 열고 그 자리에서 대상을 ‘다시 인지’할 수 있다. ‘재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주1)
동물은 ‘경험할 뿐’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들은 경험과 밀착되어 있다. 이에 비해 인간은 ‘경험을 경험’한다. 경험을 ‘대상처럼 다시 경험’한다. 인간만이 ‘재인지할 수 있는 존재’로 보인다. 마치 괄호치고 보듯이, ‘모든 경험을 다시 인지하는 자리를 열고 그 자리에서 재인지하는 능력’은, 인간 특유의 면모로 보인다. 재인지 능력은 ‘경험과 거리 두는 능력’이다. 이 ‘거리 두기’에서의 ‘거리’는 대상과의 ‘공간적 거리’가 아니라 ‘인식 내부의 구조적 거리’다.
‘거리 두고 재인지하는 면모’가 인간의 인지능력에 생겨나 인간 특유의 면모로 자리 잡은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언어능력 때문이다. 인간에게 발현된 특유의 현상은 모두 언어능력과 직결되어 있다. 언어로 유사한 특징과 차이를 하나로 묶는 것은, ‘유사한 것을 괄호 쳐서 하나의 단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능력은 ‘괄호 치는 능력’이기도 하다. 언어로 인해 발생한 괄호 치기 능력이 인간의 인지능력에 반영되는 것은 인과적으로 자연스럽다. 언어의 ‘괄호 치기 속성’과, 재인지 능력의 ‘괄호 치고 인지하기’는, 구조적으로 상응한다. 언어의 괄호 치기 속성은 ‘괄호 치고 거리 두어 재인지하는 인지능력’으로 이전되어 인간 특유의 재인지 면모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은 생존을 위한 환경 적응 방식을 ‘본능적’으로 수정하지만, 인간은 ‘인식적’으로 수정한다. ‘인식적 수정’은 곧 이해·관점·견해의 수정이다. 그런데 이해·관점·견해의 수정이나 새로운 내용의 수립은 무엇이 하는 것일까? 이해·관점·견해가 스스로 그 역할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해·관점·견해가 아닌 그 무엇의 역할이 있어야만 한다. 수정이나 새로운 수립의 작용은, 이해·관점·견해 자체가 행하는 것도 아니고 이해·관점·견해의 내부에서 행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관점·견해의 내부에 있는 것은 모두 기존 이해·관점·견해의 영향과 범주 내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관점·견해를 수정하거나 새로 수립하려면 기존 것들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마음의 재인지 면모’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재인지 면모는 ‘생명의 원초적 창발력’과 ‘창발력의 인간적 구현인 언어능력’ 및 ‘인지능력’, 이 세 가지가 원인 조건이 되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마음이 이해를 수립하고 관리하는 능력도 여기서 발원한다. 마음이 ‘기존의 이해·관점·견해 및 그와 관련된 모든 현상’을 ‘거리 두고 재인지하는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인식적 수정이 이루어진다. ‘기존의 관점·견해·이해 및 그와 관련된 모든 현상’을 평가하여 유지하거나 수정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기도 하는, 이 모든 창발적 현상의 근거로 작용하는 것은 마음의 ‘재인지하면서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이해 수행’과 ‘마음 수행’ 그리고 ‘마음의 재인지 면모’
해탈 수행의 핵심 축은 ‘이해 수행’(혜학慧學)과 ‘마음 수행’(정학定學)이다. ‘특징적 차이[相]’로 나타나는 현상[法]에 대한 이해·관점·견해를 ‘사실 그대로’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재정립해 가는 노력이 ‘이해 수행’이다. 이러한 ‘이해 수행’은 ‘이해 돈오’에 의해 본격적 단계에 접어든다. ‘사실 그대로를 왜곡하는 이해의 인과 계열에서 한꺼번에 빠져나오는 이해 국면’이 ‘이해 돈오’이기 때문이다. <불변·독자의 자아는 본래 없다>라는 무아관無我觀, <모든 현상과 존재는 여러 조건의 인과적 연관으로 발생·유지·변화·소멸한다>라는 연기관緣起觀은 ‘이해 돈오’ 국면을 여는 관문이다.
‘마음 수행’은, 이해·관점·견해·감정·욕구를 수립한 후 그것들을 ‘붙들고 있는 마음’을 ‘괄호 쳐서 재인지하는 마음’으로 바꾸고, 그 ‘거리 둔 마음자리’에서 이해 등을 ‘사실 그대로에 상응하는 이로운 것’으로 만들어 굴리는 노력이다. 이러한 ‘마음 수행’은 ‘마음 돈오’에 의해 본격적 단계에 오른다. ‘사실 그대로를 왜곡하는 이해·관점·견해·감정·욕구의 인과 계열에서 한꺼번에 빠져나오는 마음 국면’이 ‘마음 돈오’이기 때문이다. 팔정도 정념 수행과 육근수호에서 설하는 알아차림(정지正知, sampajānāti), 원효가 설하는 ‘하나처럼 통하는 마음[一心]’, 혜능의 무념無念은 모두 ‘마음 돈오’ 국면을 여는 관문이다.
‘괄호 쳐서 재인지하는 마음’은 두 가지 선택이 모두 가능하다. 기존의 이해·관점·견해·감정·욕구들을 탐욕·분노·무지로 더욱 오염시켜 가는 선택도 가능하고, 그것들을 ‘사실 그대로에 상응하는 이로운 것’으로 바꾸어 가는 선택도 가능하다. 후자의 선택은, 이해·관점·견해를 ‘사실 그대로’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수립해 가려는 ‘이해 수행의 힘’이 받쳐주어야 이루어진다. 또 ‘이해를 사실 그대로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바꾸려는 이해 수행은, 언제나 ‘괄호 쳐서 재인지하는 마음’의 힘을 빌어야 한다. 이해 수행과 마음 수행은 이렇게 서로에게 힘을 보태면서 해탈의 행보를 세워준다.
선종의 돈오는 그 중심축이 ‘마음 수행 맥락의 돈오’에 있다. 이에 비해 교종의 돈오는 그 중심축이 ‘이해 수행 맥락의 돈오’에 있다. 이 차이를 식별하지 못하거나 무원칙하게 뒤섞어 버리면, 선종의 마음 돈오가 매몰되거나 교란되어 선문의 생명력이 다할 것을 심히 우려한 분이 성철스님이다. 현대 한국불교의 돈점논쟁은 성철스님의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발생한 진리 담론이다.
<각주>
(주1) 유식학에서는 인식 성립의 네 가지 조건(상분相分·견분見分·자증분自證分·증자증분證自證分)을 분석하면서 이들의 상호 관련성을 거론하는데, 필자는 증자증분을 ‘마음의 재인지 면모’에 대한 통찰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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