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를 만들어 낸 불교의 바닷길 ]
잊혀진 불국토의 섬 몰디브
페이지 정보
주강현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3:22 / 조회94회 / 댓글0건본문
많은 한국인이 몰디브로 여행을 떠난다. 코발트 빛 해안으로 신혼부부들을 이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26개의 환초로 이루어지는데 섬의 총수가 무려 2,000여 개(1,192개)에 달한다고 한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세계적 관광지이다.
7세기 이후에 전래된 이슬람
수도 말레는 술탄의 왕궁이 있던 곳이다. 기원전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싱할라족이, 인도 본토에서는 드라비다족이 건너왔다. 작은 섬들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으므로 섬마다 다른 종족들이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의도적인 이주도 있었고 표류 등으로 인한 우연한 표착도 있었을 것이다.

몰디브의 인구와 언어 분포는 남북이 다르다. 북쪽은 남인도에서 건너온 드라비다족, 중부는 인도양을 건너온 아랍인, 남부는 스리랑카에서 건너온 싱할라족이다. 이슬람이 주도권을 쥔 중부에 술탄국 수도 말레가 있다.
몰디브 역사는 중국 문헌에 잘 전해져 온다. 원나라 왕대연이 편찬한 『도이지략』은 몰디브를 ‘북류北溜’로 호칭했으며, 수도 말레는 디에간[牒幹]이라고 했다. 명의 정화대함대 기록관으로 참여한 마환의 『영애승람』에서는 ‘유산국溜山國’, 기록관 비신의 『성사승람』에서는 ‘유양국溜洋國’이라고 했다. 정화대함대가 대서양, 즉 동아프리카까지 가는 해로에서 몰디브는 반드시 거쳐가는 중간 거점이었으므로 여러 기록이 남았다.
오늘날 몰디브는 전형적인 이슬람 술탄국이다. 인구 51만 명에서 98%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헌법상으로 수니파가 국교다. 세계인이 찾아오는 관광지임에도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라마단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아라비아 상인이 인도와 스리랑카로 건너오면서 몰디브제도를 거쳤고, 그들의 손으로 이슬람이 전해졌다. 오늘날 인도 남부 말라바르와 스리랑카 해협에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도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것이다. 몰디브에 당도한 이들은 상인과 다우선을 이용한 항해가들이었다. 따라서 몰디브의 이슬람은 ‘상인의 종교’로 당도한 것이다.
14세기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중국까지 세계를 누빈 이븐 바투타는 남인도 캘리컷에서 배를 타고 열흘 만에 지바툴 마할 제도(몰디브)에 이르렀다. 1340년의 일이다. 당도했을 당시 섬 주민은 이미 무슬림이었다. 바투타에 따르면, 아프리카 북부 마그레브에서 온 성자에 의해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아라비아 상인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상인도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주민들은 청렴하고 신앙심이 돈독하며 진실한 사람들이었고 식생활도 율법대로 하고 있었다. 섬마다 목조로 지은 좋은 이슬람사원이 하나씩 있었다.
무려 1400여 년간 지속된 불국토의 섬
그러나 12세기까지 몰디브는 완연한 불교의 땅이었다. 7세기 경에 전래된 이슬람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1200년대에 술탄왕국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불교가 사라졌다. 인도양 아라비아 상인이 당도하면서 이슬람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다디마구 섬은 몰디브제도에서 가장 늦게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불교왕국으로 존재했다.

몰디브의 불교왕국은 잊혀진 역사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불교의 역사는 기억에서 사라졌다. 불교왕국은 드라비다족의 거점인 북쪽 섬에 존재했다. 남아 있던 불상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불교는 미약하게나마 장기지속으로 이어지다가 소멸한 것으로 여겨진다. 흩어진 섬이라는 특징상 부분적으로 불교가 잔존했을 것으로 비정되지만 몰디브 불교사는 정립된 것이 없다.
몰디브의 불교사는 주류 불교사에서 제외되고 있다, 천 년 이상 불교왕국으로 존속하였으나 이슬람화되면서 기록과 전승이 끊겼으며, 몰디브 정부 자체가 불교 역사에 관하여 신경을 전혀 쓰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흔적이 알려졌다. 불교 실체를 제기한 이는 영국인 선교사였다. 스리랑카 감독관으로 파견 나온 벨(H. C. P. Bell)은 아일랜드 계통으로 식민 당국에서 일하면서 선교사 역할도 겸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이기도 했다. 시기리야(Sigiriya) 산정의 궁궐도 학계에 보고했으며, 로열아카데미 스리랑카 지부의 회원으로 논문도 발표하고 있었다.

제국주의성을 강하게 갖고 있던 로열아카데미는 전 세계의 역사와 문화, 지리를 연구하고 있었으며 토착문화 이해를 통하여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들이 불교에 관심을 표명한 것이다.
벨은 1879년 이 섬에 난파된 것을 계기로 불교 유적을 조사하기 위해 수차례 몰디브를 방문한다. 몰디브 북동쪽 다디마구(Dhadimagu) 섬에서 푸바무라(Fuvahmulah)라 불리던 고대 스투파를 발견한다. 둥근 스투파는 원주민에게 푸아 물라쿠 하비타(Fua Mulaku Havitta)로 불렸다. 그 옆에는 조금 작은 바두 하비타(Badu Havitta)도 있었다. 하비타는 산스크리트어 차이티야(Chaitya)를 몰디브 말로 음역한 것이다. 차이티야는 전통적으로 성소, 스투파를 뜻이다. 네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차이티야가 작은 스투파다.
벨이 모래를 걷어내고 하비타를 처음 보았을 때 높이는 약 12미터, 주변의 작은 하비타는 약 4.5미터였다. 높은 건축이었다. 벨은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그 사진이 몰디브 하비타로서는 최후의 기록이 되었다.
흐릿한 형태로 남아 있는 흑백 사진이 스투파의 유일한 증거이다. 스라랑카 싱할라왕국의 첫 도읍지였던 아누라다푸라의 제타바나 스투파와 흡사하다. 제타바나 다고바(Jetavana Dagoba)로도 불리는 이 사원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 중 하나였으며 특히 거대한 돔 모양이 특징적이다. 3세기경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제타나바가 높이 122미터의 거대한 것이라면 몰디브 스투파는 축소된 크기이다. 스리랑카에서 전래된 스투파가 축소 양식으로 세워진 것이다. 북부에는 드라비다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스리랑카 양식의 불탑이 남아 있는 것도 의문점이다.

1882년,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이에르달(Thor Heyerdahl)이 유적을 찾아왔다. 콘티키호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여 고대문명의 궤적을 찾아나선 항해 탐험가다. 탐사대가 이 유적을 조사했을 때, 이미 엉터리 고고학자의 발굴로 무너진 현장의 석재만이 남아 있었다. 약한 산호석으로 만들어진 하비타라서 복원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몰디브제도 불교왕국의 상징이던 하비타가 사라진 것이다. 이후 하비타 주변은 원주민이 농사를 짓거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변했다. 1950년대 들어와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스투파의 전모가 드러났다. 유물은 말레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불국토 스리랑카에서 건너와 산호섬에 세운 불국토
전설에 의하면 인도나 스리랑카에서 코이말라(Koimala) 왕자가 인도아대륙이나 몰디브 북쪽으로 들어와서 최초의 왕이 되었다고 막연하게 전해온다. 인도 북서부에서 첫 밀레니엄의 중반 정도에 한 무리의 망명 세력이 들어왔다. 망명 세력은 스리랑카에서 들어온 것으로 본다. 표류로 인하여 당도한 세력, 장사를 나섰다가 정착한 세력도 있었을 것이다. 언어, 민족, 바닷길 등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전파 루트가 확인되지만 정확한 바닷길은 알려지지 않는다.

몰디브의 초전 전래는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원전 3세기는 아쇼카가 인도아대륙으로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아쇼카 시대에 각국에 불교를 전파시키고, 담마를 세울 때 몰디브까지 당도한 것으로 비정된다.
불교 전래 이전에는 스라우타(Srauta)로 알려진 제의 전통과 수리아(Surya) 숭배를 통합한 고대 형태의 힌두교를 믿었다. 기원전에 아쇼카에 의해 이 머나먼 섬까지 불법이 전래됐고, 그 바탕 위에 훗날 스리랑카에서 다시 불법이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몰디브 불교시대는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1,400여 년간 지속되었다. 아쇼카 시대의 불교, 스리랑카의 불교가 몰디브 바다에 적층되어 불교왕국을 성립시킨 것으로 비정된다.
벨은 불상 등을 분석하여 몰디브 불교는 독특하게 대승불교, 상좌부불교가 혼재된 것으로 보았다.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이 견고한 왕국 시스템을 정비했으며, 문자를 보급하고 아름다운 불교 조각을 만들어 내고 탑을 세우는 등 불교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다.
수도 말레의 국립박물관에 그 당시의 6~12세기 불상이 모여 있으며, 스리랑카 콜롬보 국립박물관에도 몰디브 불상이 남아 있다. 불상의 두상을 보면 스리랑카나 인도와 다른, 토착적 얼굴 양식을 보여준다. 어떤 불상은 힌두 신상과 혼재된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극단주의자들의 불상 파괴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에 불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도 없고, 이 작은 섬나라에 존재했던 불교를 연구하는 세계의 연구자도 없는 형편이다. 극단적인 무슬림에 의한 불상 파괴도 일어나고 있다.
2012년 2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말레박물관을 습격하여 이슬람 이전의 유물을 부순 것이다. 박물관 불상 30여 기가 파손되었다. 약한 화산석으로 만든 불상이라서 쉽게 부서졌다. 겨우 2개 정도만 어렵사리 복원된 상태다.

이 이름다운 보석 같은 섬이 기원전부터 1000여 년 이상 불국토의 섬이었음을 기억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몰디브 불교는 인도양으로 진출한 불교의 극서極西 경계선이었던 셈이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네팔 유일의 자따까 성지 나모붓다 사리탑
카트만두에서 남동쪽으로 52km 떨어진 바그마띠(Bagmati)주의 까브레빠란 삼거리(Kavrepalan-Chowk)에 위치한 ‘나모붓다탑(Namo Buddha Stupa)’은 붓다의 진신사리를 모…
김규현 /
-
햇살 속에서 익어가는 시간, 발효의 기적
8월은 발효의 계절입니다. 찌는 듯 무더운 날씨 가운데 발효는 우리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선사합니다. 오늘은 발효가 되어 가는 향기를 맡으며 발효를 이야기해 봅니다. 우리나라 전통 발효음식을 경험…
박성희 /
-
초의선사의 다법과 육우의 병차 만들기
거연심우소요 58_ 대흥사 ❻ 초의선사의 다법을 보면, 찻잎을 따서 뜨거운 솥에 덖어서 밀실에서 건조시킨 다음, 이를 잣나무로 만든 틀에 넣어 일정한 형태로 찍어내고 대나무 껍질…
정종섭 /
-
인도 동북부 수해 지역 찾아 구호물품과 보시금 전달
연등글로벌네트워크 회원들은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州 마이뜨리뿌리 지역의 사찰과 마을을 찾아 수해복구를 위한 보시금과 구호물품 등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지역은 지난 6월 초…
편집부 /
-
운문종의 법계와 설숭의 유불융합
중국선 이야기 53_ 운문종 ❽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문명을 구가하던 당조唐朝가 멸망하고, 중국은 북방의 오대五代와 남방의 십국十國으로 분열되었다. 이 시기에 북방의…
김진무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