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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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3:34 / 조회56회 / 댓글0건본문
올 초 백련불교문화재단과 BTN 불교TV는 성철 종정예하께서 “부처님께 밥값했다.”라고 하시며 흔연히 펴내신 『선문정로』의 저본이 되는 큰스님의 육성 녹음을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 길>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3월 12일(둘째 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매주 방영하기로 약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납은 한편으론 지금 여기 계시는 큰스님이 아니라 열반에 드신 지 이미 30여 년이 지난 만큼, 너무 늦은 세월이라 방송국에서 허락할까 하는 염려가 앞섰습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도 흔연히 응해 주어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42주간 방송된 백일법문 탄생의 뒷이야기
성철 종정예하께서는 1993년 11월 4일에 세수 82세로 열반에 드셨는데, 세월이 무심히 흘러 어느새 종정예하의 탄신 100주년(2012)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소납은 잠을 설치며 성철 종정예하의 탄신 100주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처럼, “백련암에서 문도들이 성철 종정예하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슬그머니 퍼져 나갔던지 BTN 영업 담당부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원택스님, 성철 종정예하의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여 분주하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희 BTN 불교TV와 같이 의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소납이 BTN을 방문하여 담당자들과 의논을 하게 되었습니다. BTN 담당부장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종정예하의 법문 녹음 테이프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배경 화면으로는 종정예하의 영상이나 사진을 사용하고, 음성은 자막으로 처리하면 대중들이 얼마든지 쉽게 보고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소납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만, 종정예하의 말씀이 워낙 빠르고 게다가 경상도 산청 골짜기의 사투리가 억세서 같은 경상도인 대구 사람인 저조차도 큰스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스님의 걱정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예년과 달리 지금은 방송 기술이 좋아져서 종정예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자막으로 보여주고 귀로 듣게 하면 누구나 시청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저희들이 충분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 놓고 결정만 해주시면 됩니다.”
음성 처리 및 사진 보완 기술이 좋아졌다는 말에 흔연히 마음을 정했습니다만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자막을 추출하기엔 무엇보다도 큰스님의 억양과 사투리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단 몇 분의 음성 샘플만 있어도 똑같이 복제가 될 정도로 음성 인식 및 복제 기술도 발전했고, 사진 속 인물이나 배경도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흔들리는 비디오 화면도 선명하게 되살려낼 정도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지만 당시(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일법문> 자막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원섭 박사가 한 글자 한 글자 받아 적고 다시 자막으로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막과 사진 및 동영상이 들어간 화면은 일주일에 한 번 본방, 두 번 재방(금요일 저녁 8시, 토요일 10시)이 나가는 것으로 42주간 <백일법문>을 방영하기로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1년이 52주이니 10개월 정도 방영되는 장편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음성 재료는 법문 테이프가 60여 개쯤 있으니 문제가 없었는데, 뒷배경으로 쓸 사진 자료가 부족한 것이 또 다른 걸림돌이었습니다. 성철 종정예하는 67년 가을부터 해인총림 초대방장으로 해인사에 주석하시면부터는 한 번도 가야산을 떠나신 적이 없으니, TV방송에 적당한 화면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사진은 큰스님 스냅 사진도 있고 또 『포영집泡影集』에 쓴 주명덕 선생 사진도 있어서 어찌 해볼 수가 있었는데, 동영상 자료 화면이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있는 것은 80년대 초반에 부산에 사는 장 거사님이 일본에 가셨다가 일본 소니사에서 나온 가정용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큰스님께 기증하셨는데, 아무 기술이 없던 소납과 원영스님(하남 정심사 회주스님)이 번갈아가며 잠시잠시 촬영해 둔 것이 전부였습니다.

원영스님은 그런대로 흔들림 없이 촬영을 잘 하였는데, 소납이 찍은 것은 초점도 안 맞고 소음도 들어가고 정말로 그런 엉터리 화면이 없었습니다. 큰스님께 “이놈아! 이것도 제대로 못 하나!” 꾸중도 여러 차례 듣곤 했지만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동영상 자료 화면이라고는 이것뿐이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담당자에게 건넸고, 담당자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받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줍잖게 찍어둔 화면이 효자가 되다
예정된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와 방송 송출에 들어갔습니다. 첫 방송이 나가고 난 뒤 “무슨 원성을 들을 것인가?” 하고 조바심 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청률이 얼마나 나오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속만 태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방속국에서도 별다른 말이 없어서 그럭저럭 안심하고 지내는데, 방송이 나간 지 한 5개월 지날 무렵인가? 백련암 아비라기도에 온 서울 신도 대표가 활짝 핀 얼굴로 저에게 다가와 뜻밖의 말을 하며 두 손을 모았습니다.
“원택스님, 스님께서 뭔 불사를 한다고 운을 떼시면 ‘또 뭔 일인고?’ 하며 궁시렁거리며 살았는데, 요사이 강남 보살들이 큰스님 백일법문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더. 우리 큰스님이 종정이 되셨을 때 서울 신도들은 은근히 기대를 했는데, 큰스님께서 ‘나는 산승이니 서울엔 가지 않는다’고 하셔서 얼마나 원망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더. 그런데 큰스님께서 이렇게 현대적인 법문을 진즉에 하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우리가 참 멍텅구리제! 그런 큰스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산 우리가 잘못이제, 바보제!’ 하면서 서울 불자들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이런 불사를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백일법문 방영이 7개월쯤 되었을 때 서울 봉은사에 계시는 원로의장 밀운 대종사께서 찾으신다는 전갈을 받고 서울을 올라왔습니다. 오래 전에 봉은사 주지를 하실 때 영암靈巖 원로위원을 모시고 사셔서 종정예하 심부름을 가면 인사를 드리곤 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삼배를 올리고 앉으니 노기 띤 목소리로 “지금 BTN에서 방영하고 있는 백일법문에 나오시는 성철 종정스님이 모습이 그게 무엇인고?” 하시면서 노발대발하시면서 “그런 모습뿐이라면 방송을 당장 집어치워라”고 하셨습니다. 심한 꾸지람을 듣고 BTN 사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원로의장 대종사님께서 찾으신다고 해서 인사를 드렸습죠. 그런데 노발대발하시면서 BTN에서 방영되는 백일법문에 나오시는 종정예하의 모습이 근엄하고 장엄한 모습이어야 하는데 전혀 종정스님의 권위를 느낄 수 없으니 다르게 하든지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큰 꾸중을 듣고 오는 길입니다. PD들과 의논하셔서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제 말을 다 들은 BTN 사장님은 기죽은 기색이 하나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원택스님, 저희들도 자료 화면이 빈약해서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신도님들의 분위기는 종정예하의 당당하고 거룩한 모습을 원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들도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걱정스럽게 화면을 내보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권위에 젖은 모습이 아니라 지금과 같이 소박하고 검소하고 꾸밈없는 천진불 같으신 큰스님 모습에 신도님들이 오히려 흠뻑 빠져 계십니다. 숲길을 걷다가 바위에 오르기도 하시고, 미끄러지기도 하시고, 나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시는 그런 천진한 모습에 오히려 감동하고 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곁에 계신 듯 푸근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종정예하는 예우할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어서 한껏 죄송스럽지만 시청자들은 권위 있는 모습보다 지금처럼 천연天然하신 모습에 더욱더 감격하고 계십니다.”
BTN 사장님의 간곡한 말씀에 더 말을 얹지 못하고 그래도 원로의장 스님의 염려를 마음에 담아 두시고 신경을 써 주실 것을 당부하고 백련암으로 돌아왔습니다.
42주간에 걸친 백일법문 대장정을 마치고 난 뒤 방송사에서 결산한 것을 들어보니, 42주 동안 최고의 시청률과 BTN 기부금 희사도 녹록치 않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하여 얼마나 다행인가! 안심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백일법문의 기쁨이 이어지길 바라며
그런데 지금 방영되고 있는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 길>에서는 그때의 영광을 기대할 수도 없겠지만 아울러 흔연한 기쁨을 전하는 불자님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담당 PD에게 물으니,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중간 정도의 성적을 내고는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라는 위로가 담긴 말만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화면만 놓고 본다면, 100주년 때의 백일법문과도 비교 안 될 정도로 풍부한 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큰스님 법에 뭔 증감增減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화면을 장식하는 배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것도 시절인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방송되고 있는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 길>이 8월말에 끝나면 곧 이어서 <본지풍광 강설-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이냐>가 이어집니다. 『정독 선문정로』를 펴낸 강경구 교수님은 “선문정로는 수행 가이드북, 본지풍광은 수행 실습북”이라고 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이 두 권의 책을 출간하시고 “부처님께 밥값”을 하셨다고 흔연해 하셨습니다. 『선문정로』나 『본지풍광』은 ‘견성즉불見性卽佛’의 바른 길을 설파하신 내용으로 어렵고 어려운 가르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의 직설直說을 경청할 수 없는 지금은 테이프에 남기신 음성 한마디 한마디가 수행의 밝은 횃불이 되리라 믿습니다.
부디 열심히 경청하시고 반복해서 들으셔서 성철 종정예하께서 성취하신 마음 공덕을 함께 향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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