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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천책의 『선문보장록』에 담긴 선사상과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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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룡  /  2025 년 9 월 [통권 제149호]  /     /  작성일25-09-04 14:24  /   조회1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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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이야기 21   

 

원 간섭기에 들어가면서 가지산문 출신 보각국사 일연(1206~1289)의 활약에 대해서는 지난 호에 다루었다. 무신 집권기에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사굴산문)의 사세가 약화되고 일연에서 태고보우로 이어지는 가지산문의 사세가 증가한 것이다. 또 하나 이 시기 주목해야 할 사건은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의 변화이다.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선종으로 창종한 이후, 당시 선종은 크게 조계종과 천태종으로 양분되었다. 백련사 4세 사주 천책은 『호산록』 과 『해동법화전홍록』 등을 저술하여 천태종의 부흥을 이끌었다. 특히 그의 저술로 알려진 『선문보장록』은 한국 선종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와 그 사상 등에 있어서 지금까지도 많은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선문보장록』의 저자 천책에 대한 논란

 

한국 선종사에 있어서 저자의 진위 문제가 선학계에 주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경우가 더러 있다. 논란이 팽팽한 경우일수록 그 저술의 영향력이 크기 마련이다. ‘책에 기록된 저자를 이름을 중시할 것인가, 저술의 성격과 사상을 중시할 것인가’ 하는 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저자의 진위 문제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다. 『선문보장록』의 저자 천책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지금까지도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이 그만큼 팽배하다는 이야기이다.

 

 

사진 1. 『선문보장록』 내지. 

 

『선문보장록』의 서문에는, 지원至元 30년(1293)에 ‘해동사문海東沙門 내원당內願堂 진정대선사眞靜大禪師 천책몽저天頙蒙且’가 편찬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에 표기된 ‘진정대선사 천책’이 백련사 4세 사주인 ‘진정국사 천책’과 동일 인물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원묘요세의 제자이자 백련결사의 이념을 정초한 천태종의 천책이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과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1979년 고익진은 「백련사의 사상전통과 천책의 저술 문제」(『불교학보』 16)를 통하여 『선문보장록』의 저자는 백련사 4세 사주 천책과는 다른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고익진의 주장에 담긴 핵심적인 논거는 진정국사 천책의 생애를 추적하면 이 책을 지은 시기가 90세 가까이 되어서 그렇게 오래 생존했을 리 없다는 점과 여기에 나타난 사상이 천책의 다른 저술의 사상과는 분명히 달라서 같은 인물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이영자, 한기두, 채상식, 허흥식, 박정선, 정영식 등의 국내 학자와 흑전양黑田亮, 서구방남西口芳男 등의 일본 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였는데, 고익진의 주장은 지속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쳐 왔다. 필자 또한 한동안 고익진의 이 같은 주장에 공감해 왔었다. 여기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상세히 하지는 않겠지만 최근 필자는 『선문보장록』의 저자가 다름 아닌 진정국사 천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2. 백련사와 다산초당 부근의 호수와 산. 사진: 서재영.

 

천책은 대단한 천재로서 시와 문장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한국문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선문보장록』의 저자가 진정국사 천책이라는 주장에 큰 힘을 실은 글은 1999년 강석근이 발표한 「시로써 불사佛事를 편 선승禪僧 천책天頙의 행적과 저술」이다. 이 글에서 천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백련사의 4대 법주를 지낸 천책은 불교계에 분명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스승인 요세를 대신하여 백련사의 사상적 이념이 되는 「임진년보현도량기시소壬辰年普賢道場起始䟽」와 「백련사결사문白蓮社結社文」을 지었고, 세속에서 과거에 급제한 이력과 탁월한 문학적 역량을 매개로 사대부들과 널리 교유하여 백련사를 종교 결사의 차원을 넘어 시사詩社로까지 성장시켰다. 또한 그는 근기가 미약한 일반대중을 끌어안으려는 방편으로 『법화경』을 신봉하며 생긴 이적을 엮은 『해동법화전홍록』을 편찬하여 하층민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이장용은 그를 “시로써 불사를 편[以詩作佛事]” 인물이라 하였다. 그리고 정약용은 최치원과 이규보와 함께 그를 한국의 3대 시인으로 인정하였으나.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잊혀진 시인이었다.(주1)

 

위의 인용문에는 천책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 그 핵심적인 사항이 잘 드러나 있다. 혜심의 『무의자시집』과 더불어 천책의 『호산록』에 수록된 글들이 주는 진한 감동을 국문학자인 강석근은 느꼈을 것이다.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를 거닐면 천책이 왜 ‘호산록湖山錄’이라 이름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강석근은 이글에서 『호산록湖山錄』의 저자인 천책이 『선문보장록』의 편자임을 논증하였는데, 필자 또한 이러한 견해에 공감한다.

 

『선문보장록』의 구성과 내용

 

진정국사 천책이 1293년 87세의 고령에 『선문보장록』의 서문을 작성하고서 이듬해 열반에 들었다는 전제 아래 다시 『선문보장록』을 들여다보면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어 수선사와 백련사가 위치한 순천과 강진이 대몽항쟁의 주요 거점이었음을 떠올려 보면 두 결사 사이에는 정치 사상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시기에 이르면 수선사와 백련사 사이가 경쟁 관계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책은 말년에 만덕산의 작은 암자인 용혈암龍穴庵에 머물렀다. 『선문보장록』 또한 그곳에서 편찬되었을 것이다.  

 

사진 3. 강진 백련사 전경. 사진: 정종섭.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이란 그 서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도, 중국, 한국의 선적 가운데 선문의 보배가 되는 내용을 뽑아내어 상·중·하 세 권으로 나누어 편찬한 책이다. 전체의 내용은 천책의 자서自序, 본문 86칙, 몽암거사 이혼李混의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에 이 책의 한글 번역본이 『아난의 입 가섭의 마음–선문보장록』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주2) 이 책의 서문에서 천책은 이 책의 구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세 가지 부문은 다음과 같다. 선과 교학의 혼동이다. 그것을 상권에서는 선과 교학의 대화를 엮었다. 비방하는 쪽은 강사들이다. 중권에서는 강사들을 복종시키는 내용을 내세웠다. 선을 널리 유통시키는 자는 군신들이다. 하권에서는 군신이 서로 숭경하는 내용을 두었다. 이 세 가지 부문에서 인용한 것은 모두 예로부터 내려온 중요한 말씀들이지 억측이 아니다. 억설이 아니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제목을 ‘선문보장’이라 했다.(주3)

 

천책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의 상권은 ‘선교대변문禪敎大辯門’이라 이름하고 모두 25칙을 모아 놓았는데, 선이 교보다 우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권은 ‘제강귀복문諸講歸伏門’이라 이름하고 모두 25칙을 모아 놓았는데, 교학자들을 굴복시켜 선문으로 귀의하게 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권은 ‘군신숭신문君臣崇信門’이라 이름하여 모두 36칙을 수록하고 있는데, 임금과 신하가 모두 선문에 귀의하여 숭상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상권 22칙과 23칙에는 성주산문 무염국사의 무설토론이 수록되어 있고, 24칙에는 진귀조사설이 실려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나말여초 선사상을 밝히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선문보장록』에 나타난 선사상과 그 영향

 

무신 집권기를 거쳐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13세기 불교계를 이끈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혜심과 일연과 천책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세 고승들 사이에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몽고의 침략에 맞선 민족주체성이다. 그동안 『선문보장록』은 최치원의 『사산비명』과 더불어 나말여초의 선사상을 밝히는 자료로써 주목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천책이 『선문보장록』을 편찬한 동기와 더불어 상·중·하 세 권 86칙의 전체적인 내용 속에 담긴 특징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다룬 측면이 있다. 하권의 64칙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선법을 흥기시킨 내용이 들어가 있고, 83칙에는 이자현 거사의 깨달음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천책이 이 책의 곳곳에 이러한 내용을 수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몽고의 침략에 맞선 민족주체성의 일환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사진 4. 경허성우 진영.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혜심의 선사상 속에는 조사선과 공안선과 간화선이 공존하고, 선과 교와 정토 및 밀교적 요소가 공존하며, 유교와 불교 및 철학과 문학이 공존함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천책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선문보장록』은 지눌과 혜심의 수선사의 전통과 여말삼사의 원나라 임제종의 법맥을 전수하는 풍조 사이에 구산선문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조사선의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선서禪書란 점에서 한국선종사에서 의의가 있다.

 

『선문보장록』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것은 조선 선의 중흥조인 청허휴정과 근대 선의 중흥조인 경허성우에게 끼친 영향을 통하여 확인된다. 서산대사 휴정의 저술 가운데 『선가귀감』이 잘 알려져 있는데, 휴정의 선교관이 잘 나타나 있는 저술은 『선교석禪敎釋』이다. 이 책은 휴정이 묘향산 금선대에 있을 때 청허의 세 제자가 “『반야경』으로 선문의 종지를 삼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자 이에 옛글을 인용하여 조사선의 도리를 밝힌 글이다. 그런데 여기에 『선문보장록』의 내용이 그 전거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청허의 선사상 형성에 있어서 『선문보장록』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천책의 『선문보장록』과 작자 미상의 『선문강요집』은 『인천안목』과 더불어 조선 후기 선리 논쟁인 ‘삼종선-사종선 논쟁’에 있어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저술이다. 백파긍선의 『선문수경』, 초의의순의 『선문사변만어』 그리고 설두유형의 『선원소류』에 이르기까지 『선문보장록』에 수록된 내용이 등장하고 있다. 끝으로 구한말 경허성우에 의하여 편찬된 『선문촬요』에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문촬요』 국내편에는 보조지눌의 저술 이외에 『선문강요집』과 『선교석』과 더불어 천책의 『선문보장록』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고려 말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선 수행자들 사이에서 『선문보장록』이 중요한 지침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천책의 『선문보장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주>

(주1) 강석근, 「시로써 불사佛事를 편 선승禪僧 천책天頙의 행적과 저술」, 『동국어문논집』 8,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1992, 432-433쪽.

(주2) 천책 찬술, 현각 역해, 『아난의 입 가섭의 마음–선문보장록』, 동국대학교 출판부, 2010.

(주3) 위의 책,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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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룡
충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전북대 철학과 학부, 석사 졸업, 원광대 박사 졸업. 중국 북경대, 절강대, 연변대 방문학자. 한국선학회장과 보조사상연구원장 역임. 『보조지눌의 사상과 영향』, 『언어, 진실을 전달하는가 왜곡하는가』(공저)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brkim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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